신앙생활/설교문

[부활부터 오순절까지] 사도행전 2:42-47 떡을 떼고 나눔

파피루스 2025. 4. 24. 01:25
반응형

불에서 태어난 공동체, 성령이 짜신 천의 무늬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부활의 영광과 오순절의 불길을 지나, 성령이 직접 짜신 공동체의 삶을 바라보게 됩니다. 성령은 단지 감정의 불꽃이나 일시적 감동으로 머무르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틈을 엮고, 고통을 공감으로, 나눔을 일상으로 바꾸시는 분이십니다. 사도행전 2장 42절부터 47절까지의 본문은 바로 그 성령이 만든 공동체, 하나님의 숨결로 짜인 삶의 무늬를 보여줍니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사도행전 2:42-47)

이 본문은 '교회란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를 성경이 선포하는 장면입니다. 교회는 프로그램이나 구조, 제도 이전에 ‘함께 있음’과 ‘함께 숨 쉬는 삶’입니다. 오늘 우리는 그 공동체의 모습 하나하나를 따라가며, 우리의 교회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사도의 가르침, 말씀 위에 짜인 기초(사도행전 2:42)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사도행전 2:42)

공동체의 시작은 말씀에서 출발했습니다. 사도들의 가르침은 단지 신학의 나열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 십자가, 부활, 승천, 그리고 재림의 약속까지 전 인류를 위한 구속사의 정수가 담긴 진리였습니다. 그들은 말씀을 '듣는 것'에 멈추지 않고, 그것을 '받아들였으며' 삶으로 흘려보냈습니다.

그 가르침은 단순한 교육이 아니라 존재의 재형성이었습니다. 그 말씀은 심령을 깨뜨리고, 사고를 흔들며, 삶의 방향을 뒤바꾸는 힘이었습니다. 말씀은 그저 정보를 주는 것이 아니라, 존재의 본질을 다시 짜주는 영적 직조의 실입니다. 성령이 임하신 후, 사람들은 말씀 앞에 순종하며 그 위에 자신의 삶을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말씀은 공동체를 연결하는 보이지 않는 혈관과 같았습니다. 그것이 끊기면 교회는 기계적인 모임으로 전락하고, 이어지면 살아 움직이는 몸이 됩니다. 초대교회는 사도들의 말씀을 매일같이 목마르게 들었고, 그 말씀은 곧 삶의 방향이자 태도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동일한 질문을 해야 합니다. 나는 무엇 위에 나의 신앙을 세우고 있는가? 유행하는 감정의 바람인가, 아니면 흔들리지 않는 복음의 반석인가? 초대교회는 말씀에 단단히 뿌리박은 공동체였으며, 우리는 그 뿌리를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새롭게 세워져야 할 자리, 바로 말씀이 중심인 자리입니다.

떡과 교제, 예배가 된 일상(사도행전 2:42-46)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집에서 떡을 떼고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사도행전 2:42, 46)

그들의 교제는 피상적이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식탁에서부터 시작되어 삶 전체로 이어지는 깊은 나눔이었습니다. 그들은 함께 먹었고, 함께 웃었으며, 함께 울었습니다. '떡을 뗀다'는 표현은 단순한 식사를 넘어, 예수님의 몸을 나누는 성찬의 의미와 일상의 신앙이 섞여 있는 깊은 상징입니다.

식탁이 예배가 되었고, 가정이 성전이 되었습니다. 이들은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지만, 동시에 각자의 집에서 예배를 지속했습니다. 성령은 공간을 거룩하게 만드는 분이 아니라, 공간을 통해 사람을 거룩하게 만드시는 분입니다. 예배는 시간이 아니라 태도이고, 장소가 아니라 관계입니다.

그들은 성찬의 떡을 나누며 예수님의 희생을 기억했고, 일상의 식사 속에서도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교제가 단순한 모임을 넘어 사랑의 실천으로 이어졌고, 식탁은 치유의 장이자 거룩한 쉼터가 되었습니다. 마음의 벽이 허물어지고, 성령 안에서 서로가 서로를 품는 진정한 관계가 탄생했습니다.

오늘 우리의 식탁은 어떤가요?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고, 진심을 나누며, 영적 교제를 나누는 삶의 자리가 되고 있습니까? 초대교회의 떡은 단지 음식이 아니라, 주님의 은혜의 언어였습니다.

통용의 삶, 나눔이 된 존재방식(사도행전 2:44-45)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매” (사도행전 2:44-45)

공동체는 단지 말로 하나 된 것이 아니라, 실제로 삶을 나눈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내 것’이라는 말을 줄였고, ‘우리’라는 단어를 실천했습니다. 이들은 법으로 강제되지 않았습니다. 오직 성령의 은혜로 자발적으로 자신의 것을 나누었습니다.

이 통용은 단순한 경제제도가 아닙니다. 그것은 신뢰에서 비롯된 사랑의 결정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믿지 않고는 이런 나눔은 불가능합니다. 그들은 공동체의 필요를 자신의 필요처럼 느꼈고, 부족한 자를 도우는 것이 곧 예배의 연장임을 알았습니다.

이 나눔은 단순한 동정이 아니라 연대였습니다. 공동체 구성원은 서로의 짐을 짊어지는 방식으로 신앙을 실천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얼마나 나누고 있습니까? 시간, 마음, 물질, 자리를 나누는 그 영성 안에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초대교회는 헌금이 아니라 삶을 드린 공동체였습니다. 우리는 그 불꽃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기심과 소유 중심의 삶을 넘어, 자발적인 손 내밈과 열린 마음의 문화로 나아가야 합니다.

찬미와 기쁨, 외쳐지는 은혜의 울림(사도행전 2:46-47)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사도행전 2:46-47)

그들의 찬미는 무대 위가 아닌 삶 위에서 울렸습니다. 그들은 기쁨으로 가득 찼고, 그 기쁨은 말로 바뀌어 하나님을 향한 찬양이 되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찬양의 본질입니다. 억지로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넘쳐흐르는 감격이 멜로디가 되는 것입니다.

그들의 기쁨은 닫힌 성전 안에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세상의 칭송으로 이어졌습니다. 외부 사람들은 이 공동체를 보고 존경했습니다. 그리고 이 찬미 속에서 복음이 전해졌고, 주께서 날마다 구원받는 사람을 더하게 하셨습니다 (사도행전 2:47)

전도는 프로그램이 아닙니다. 살아 있는 공동체의 증언입니다. 교회가 세상 속에서 순전함과 기쁨과 나눔으로 살아갈 때, 복음은 자연스럽게 흘러나갑니다. 성령은 전도를 강요하지 않으시고, 복음을 살게 하십니다. 복음을 사는 삶, 그것이 최고의 설교이며 가장 강력한 복음 전파입니다.

그리고 주께서 더하셨습니다. 날마다. 지속적으로. 성령이 임하신 공동체는 확장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외적인 성장보다 내적인 생명력이 먼저였고, 그 생명은 결국 이웃을 품는 확장의 움직임이 되었습니다.

마무리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오순절 이후에 성령이 탄생시킨 교회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건물이 아니라 몸이었고, 시스템이 아니라 성령의 숨결이었습니다. 말씀 위에 서고, 떡을 떼며, 통용하고, 찬양하는 그 공동체의 삶이 곧 오늘 우리 교회가 회복해야 할 본질입니다.

우리는 그 줄기의 일부입니다. 부활의 아침으로부터, 오순절의 불길로 이어지는 하나님의 큰 흐름 안에서 오늘 이 순간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여전히 말씀하십니다. “그들처럼 살아가라. 성령 안에 거하라.”

그 불이 꺼지지 않게 하십시오. 그 기쁨이 식지 않게 하십시오. 오늘 우리의 교회도 다시 오순절 이후의 공동체처럼 살아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합니다. 아멘.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