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주간 설교 월요일 무화과 나무 저주
마 21:18-19 막 11:12-14
마태복음 21:18-22
18 이른 아침에 성으로 들어오실 때에 시장하신지라
19 길 가에서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리로 가사 잎사귀 밖에 아무 것도 찾지 못하시고 나무에게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 무화과나무가 곧 마른지라
20 제자들이 보고 이상히 여겨 이르되 무화과나무가 어찌하여 곧 말랐나이까
2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 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져지라 하여도 될 것이요
22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마가복음 11:12-14
12 이튿날 그들이 베다니에서 나왔을 때에 예수께서 시장하신지라
13 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더니 가서 보신즉 잎사귀 외에 아무 것도 없더라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
14 예수께서 나무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이를 듣더라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주님은 성전에 잠깐 들어 가셨다 그날(일) 저녁 예루살렘을 빠져 나갑니다.
막 11:11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전에 들어가사 모든 것을 둘러 보시고 때가 이미 저물매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베다니에 나가시니라
예수님은 무엇을 보셨을까요? 아마 월요일에 성전을 청결하신 것을 보면 성전에서 일어난 일들을 세밀하게 보신 것이 분명합니다. 성경은 성전에서 들어가셔 무엇을 하셨는지 침묵하고 있기 때문에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주님께서 베다니에서 나오셔서 배가 고파 무화과나무가 보여 그곳에 가셨습니다. 아쉽게도 그 때는 무화과가 열릴 때가 아니어서 열매가 없었습니다.(막 11:13)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주님은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막 11:14)고 말씀하십니다.
그 다음 날 어제 그 무화나 나무를 지나게 됩니다. 제자들은 무화과나무가 뿌리채 말라있는 모습을 발견하고 깜짝 놀랍니다. 베드로는 어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말씀이 기억이 나서 무화과나무가 말랐다고 예수님께 전합니다. 그런데 뜻밖의 말씀을 하십니다.
마태복음 11:23-25
2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25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시니라
주님의 말씀은 기이하게 들립니다. 무화과나무가 마른 것과 믿음이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는 것일까요? 그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 봅시다. 주님은 제자들과 함께 다시 성전으로 들어가십니다. 그 때 대제사장들과 서기관과 장로들이 예수님께 무슨 권위로 이렇게 하느냐고 따져 묻습니다. 그러자 주님은 그들에게 답을 하지 않지 않으시고 세례요한의 세례의 출처를 묻습니다. 그들은 난처해하며 ‘우리는 모른다’고 답합니다. 주님은 그 말씀을 들으시고 ‘그럼 나도 너희에게 답하지 않겠다’고 대응하십니다.
당시 세례 요한은 모든 유대인들이 존경하는 믿음의 사람이었고, 거룩한 사람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촉구합니다.(마 3:8) 열매 없는 삶, 그것은 당시 유대인들의 삶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는 사실은 열매 없는 삶을 살아가던 유대인들의 영적 현주소였습니다. 주님은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심으로 그나무로 하여금 이후로 그 어떤 열매도 맺지 못하도록 회개의 기회를 차단해 버리십니다.
열매 없는 삶이란 결국 하나님에 대한 ‘믿음 없음’이었습니다. 믿음은 자신의 신뢰나 확신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확신과 신뢰입니다. 그대로 된다는 말은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할 때 진정한 기적이 일어날 것임을 말하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3:7-12
7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세례 베푸는 데로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8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9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10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11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12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베다니(Bettany)는 아람어로 ‘베트(집)-아니(가난한 비참한)’입니다. 주님께서 그곳에서 나오신 것을 볼 때 나사로의 집에서 머무신 것으로 보입니다. 가장 가난한-비참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은 자신들의 모든 것을 쏟아 부어 주님을 경배하지만 진작 열매를 맺어야할 이들은 열매 없음으로 인해 하나님의 저주를 받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신실치 못함으로 앗수르와 바벨론에게 멸망당함으로 모세를 통해 내리신 저주가 임합니다. 우리의 삶은 어떤 열매를 맺고 있습니까? 진정한 믿음으로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일어나는 헌신과 사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