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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이 무너질 때 , 마틴 로이드 존스

by 파피루스 2020. 1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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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神)들이 무너질 때

“블레셋 사람이 하나님의 궤를 빼앗아 가고 에벤에셀에서부터 아스돗에 이르니라 블레셋 사람이 하나님의 궤를 가지고 다곤의 당에 들어가서 다곤의 곁에 두었더니 아스돗 사람이 이튿날 일찍이 일어나 본즉 다곤이 여호와의 궤 앞에서 그 얼굴이 땅에 닿았는지라 그들이 다곤을 일으켜 다시 그 자리에 세웠더니 그 이튿날 아침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 본즉 다곤이 여호와의 궤 앞에서 엎드러져 얼굴이 땅에 닿았고 그 머리와 두 손목은 끊어져 문지방에 있고 다곤의 몸둥이만 남았더라.“(사무엘상 5:1-4)

[제가 가장 존경하는 목사님이신 마틴 로이드 존스의 설교입니다. 한 동안 로이든 존스 목사님의 책에 빠져 미친 듯이 읽었었죠. 오늘 다시 읽으면서 역시 대가라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로이스 존스의 구약 설교 중에서 개인 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설교입니다.]


이 사건은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 중에서도 가장 슬픈 사건 중 하나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잊어버린 채 살다가 영적으로 타락함으로써 정치적, 군사적으로 쇠퇴하여 블레셋인들에게 정복당해 그 밑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얼마 후 그들은 이 블레셋인 들로부터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들은 군대를 소집해서 블레셋인들에게 전쟁을 걸지만 패배하고 맙니다. 그들은 패배의 원인을 너무 급하게 서두르다 여호와의 언약궤도 메지 않은 채 전쟁터에 나갔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언약궤를 일종의 마스코트로 생각했습니다. 즉 언약궤를 메고 나가면 행운이 따르고 성공할 것이요, 그것이 없으면 패배할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다시 군대를 소집하고 언약궤를 메고 올라가 블레셋인들에게 도전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완전히 참패를 당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언약궤마저 빼앗기고 맙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보려고 하는 이 네 구절은 그 후 어떤 일이 발생했는지에 대해 말해 주고 있습니다. 언약궤를 빼앗아온 블레셋인들은 언약궤를 파괴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이것을 아주 귀한 것으로 생각했고, 또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많은 승리을 안겨 주었으니 우리에게도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생각한 그들은 이 언약궤를 자기들의 신인 다곤 신전에 갖다 두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승리를 축하하며 잔치를 벌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때 별난 일이 발생했습니다. 그들의 신인 다곤이 바로 여호와의 궤 앞에 엎드러져 그 얼굴을 땅에 박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뜻밖의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사고라고 생각하고 다곤을 집어서 다시 선반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다시 승리를 축하했습니다. 그런데 또 기괴한 일이 발생합니다. 이튿날 신전에 가보니 다곤이 다시 여호와의 궤 앞에 엎드러져 얼굴을 땅에 박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다곤의 두 손과 머리와 목까지 끊어져 문지방 위에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본문 이야기입니다. 저는 이 이야기 속에 오늘의 교회에 주는 아주 중대하고 결정적인 교훈이 담겨 있다고 봅니다. 이 이야기는 원수에게 패하되 완전히 참패한 그리스도인들과 그들이 믿는 기독교를 보여 주는 한 폭의 그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숙적에 의해 거의 파멸되고 참패당한 하나님의 일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원수는 지금 승리감에 도취되어 몹시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현대 교회의 상황을 아주 사소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상세하게 설명해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지금까지 수 백년이 넘도록 오랫동안 블레셋인들의 잔인하고 맹렬한 공격을 받아 왔습니다.

지난 몇 백년 동안 블레셋인들이 하나님의 교회와, 하나님, 그리고 하나님의 그리스도를 공격해 온 형태는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그들은 지적인 지식과 이해를 통해 맹공격해 왔습니다. 사람들은 지금까지 100년 이상 하나님의 계시를 옆으로 제쳐놓고, 대신 그 자리에 철학을 올려놓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무오한 말씀을 더 이상 믿지 않습니다. 대신 인간의 사념, 인간의 이성, 인간의 명철, 인간의 추론을 믿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과학이라는 형태를 빌린 블레셋인들의 공격도 있습니다. 찰스 다윈이 1859년 종의 기원을 출판한 지 벌써 100년이 지났습니다. 그 책은 성경을 공격했을 뿐 아니라, 기독교 신앙의 전 기초와 토대를 단번에 흔들어 무너뜨렸습니다. 블레셋인들은 또 사회 및 정치 형태를 빌려 교회를 공격해 왔습니다. 인간의 운명은 사회적으로 법률을 제정하고 국회에서 결정을 내리며, 불법 행위들을 경감시키고 고통을 개선함으로써 완전해질 수 있다는 생각이 유행하게 된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이 상황을 직시한다면, 우리는 대번 현대 블레셋인들이 고대 블레셋인들 처럼 큰 성공을 거두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될 것입니다. 현대 블레셋인들은 고대 블레셋인들과 사실상 똑같습니다. 그들은 고대 블레셋인들의 행동을 미세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그대로 되풀이 하고 있습니다. 자, 제 말이 무슨 뜻인지 보여 드리겠습니다. 저는 고대 블레셋인들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빼앗았을 때 그것을 파괴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여러분에게 이미 지적해 드린 바 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다곤 신전에 두었다가 혹시 사용할 기회가 오면 선반에서 내려 사용할 것이다.” 즉 언제 그것을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것을 부숴 버리지 않고 저 구석진 곳 뒷자리 어딘가에 올려놓았습니다.

 현대 블레셋인들도 이와 똑같은 일을 자행해 왔습니다. 현대인은 정말 하나님과 기독교를 믿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그것과 완전히 절교하지는 않습니다. 어느 세기 살았든 인간은 고대 블레셋인들이 했던 것을 그대로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 목적에 합당할 때라든가 그렇게 하고 싶다고 느낄 때는 기독교를 사용합니다. 더 이상 기독교를 믿지는 않지만, 기독교를 저 뒤 어딘가에 두었다고 생각하고, 필요할 때 꺼내 쓴 다음 더 이상 필요 없으면 다시 그 자리에 처박아둡니다. 그들은 실제로 기독교를 믿지 않습니다. 진심으로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습니다. 그저 막연한 존경심을 가지고 입으로만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이것이야말로 금세기 내내 우리가 처해 있던 입장입니다. 지금은 전 우주적으로 분명히 성공하고 있는 블레셋인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와 하나님의 주장이 굴욕적인 패배를 당해 아주 비참한 상태에 빠져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사건이 이런 시대 이런 상황 속에 있는 우리에게 전해 주는 것이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감사 하게도 그것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말해 줍니다. 간단한 질문을 하나만 던져 보겠습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이런 참패를 당해야만 했을까요? 사람들은 이스라엘이 패배한 원인은 블레셋이 강력하고, 힘이 있으며, 용맹스러웠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영화, 라디오, TV, 쾌락과 세속적인 추구 들이 우리를 이처럼 패배시키는 원인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이처럼 강력한 원수와 대면하고 있는데, 이 블레셋인들이 워낙 강하고 능하기 때문에 그동안 교회가 패배했으며, 오늘날도 패배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여러분에게 그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구약 시대 때 이스라엘이 패배한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가 패하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닙니다. 성경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의 패배는 원수가 강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내적으로 약해졌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잊어버린 채 게으르고 나태한 신앙생활을 하는 순간, 자기 자신과 자신의 힘을 믿는 순간에는 항상 패했습니다. 문제는 블레셋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약해진 것이 언제나 그것이 문제였습니다.       

   그것은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은 항상 하나님이 그들의 패배를 허락하셨을 때만 패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았으며, 하나님과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려 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할 때마다 그들이 하나님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가르쳐 주시기 위해, 그대로 내버려 두셨습니다.

   이 세상은 그때나 지금이나 조금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은 여전히 우리를 대적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지금처럼 약하고 힘이 없는 이유는 그들이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한 잘못을 되풀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 우리의 능력과 힘, 우리의 명철을 의지해 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말하자면 우리에게 지극히 중요한 이 교훈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 우리 마음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신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자신이 누구인지 잊어버리고, 자기가 하나님만 의존하게 되어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망각한 채 어리석게도 자신의 능력과 용맹을 믿으면, 언제나 그 힘을 잃고 패배했습니다. 저는 그것이 본문이 주고 있는 가장 중요한 교훈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교회 역사상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무슨 일을 행하실까요? 오늘 본문에 나와있는 이 오래된 이야기가 그 질문을 답해 줍니다. 이럴 때 하나님이 행하시는 첫 번째 일은 항상 우리가 계획하고 결정한 것들 속에 들어오셔서 그것들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어 놓으시는 것입니다. 자, 오늘의 본문을 보십시오. 블레셋인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승리에 도취해 있습니다. 이제는 완전한 세상이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이 축제분위기에 빠져있는 바로 그 순간, 일이 잘못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다곤이 엎드려졌고, 결국 몸뚱이만 남고 다 망가져 버렸습니다.

 


   이 오래된 이야기를 읽고 있으면 마치 20세기에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완벽하게 묘사해 주는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 같습니다. 19세기말, 이 세상은 자신감과 낙관주의로 팽배해 있었습니다. 인간이 그 지식과 발전과 진보와 진화의 결과, 정말 낙원 같은 세계로 들어가기 직전에 있다고 믿었습니다. 20세기는 인류역사상 가장 위대한 세기가 될 거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20세기에 들어서자마자 전쟁을(1911년 모로코를 두고 영국, 프랑스 대 독일의 전쟁)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20세기에 전쟁이라니,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 위기가 정말 발생했습니다. 다곤이 엎드려 진 것입니다. 그러자 우리는 그를 다시 세워 놓고 그대로 계속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1912년 어느 날, 이번에는 정말 굉장한 배가 대서양에서 침몰했다는 기사를 보고 온 세계가 경악했습니다. 그것은 타이타닉호라는 이름을 가진 아주 훌륭한 배였습니다. 사람들은 그 배를 가리켜 과학의 궁극적 성취라고 말했습니다. 절대 가라앉지 않을 배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 배는 빙산에 부딪쳐 침몰 했고 수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다곤이 또다시 엎드러진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그렇지만 괜찮아, 사고야 언제든지 나게 마련이니까. 다곤을 제자리에 갖다놓고 계속해 나가자. 어서 이 낙원으로 들어가자”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계속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얼마가지 않아서 우리는 다곤이 또다시 엎드러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불과 25년동안 두 번 세계대전을 치르게 되었습니다. 결국에는 일본에 원자폭탄이 떨어지면서 우리가 기대한 20세기의 완전한 낙원은 산산조각이 나버리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모든 것이 완전하다고 생각하지만, 다곤은 계속 엎드러지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잘못되어 갈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지금 이 시간까지 계속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제가 보기에 이 모든 일들에 대한 설명은 오직 하나입니다. 그것은 다곤을 그의 신전 마룻바닥에 계속 엎드러지게 하시는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의 삶을 소란하게 만들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들이 하나님을 떠나 인생을 즐기도록 내버려 두시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하나님의 말씀에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셨느니라”(사 57:21) 그리고 이 일은 비단 국가들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들에게도 똑같이 해당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러한 때에 하시는 두 번째 일을 서둘러 지적해 보겠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가 섬기는 신들을 겸비케하시고 굴욕을 당하게 하십니다.  당시 블레셋인들의 신은 다곤이었습니다. 그런데 패배해서 사로잡힌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다곤을 겸비케 만들고, 굴욕을 당하게 만들더니, 마침내 부숴 버리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에도 하나님은 우리의 신들을 겸비케 하시고 굴욕을 당하게 하십니다.

   현대에 우리들의 신들을 무엇일까요?  그것은 교육과 정치와 과학이라는 신들입니다. 우리는 이들을 모두 신으로 만들고 숭배해 왔지만 교육은 점차 늘어나는 청소년 비행, 알코올 중독, 부도덕, 부정, 이혼 등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치는 인류가 처한 많은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과학은 어떤 의미에서 현재 이 시간 우리의 가장 큰 문제점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인간이 지난 몇 백년 동안 숭배해 온 최고의 신은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인간은 그 동안 자기 자신을 숭배해 왔습니다. 하나님이 필요 없다고 말했던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인간은 자기 형상을 만들어 놓고 그 앞에 절해 왔습니다. 그래서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20세기는 우리에게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그 실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인간이 만들었던 나치 강제수용소나 러시아 강제 수용소를 들여다보십시오. 무죄한 사람들에게 원자 폭탄을 떨어뜨려 단숨에 날려버리는 인간들을 보십시오. 그것이 인간입니다. 이미 결혼한 다른 사람의 삶과 가정 속으로 파고들어가 그 가정을 고의적으로 망가뜨려 놓은 인간을 보십시오. 그것이 인간입니다. 신문은 매일 인간이라는 신이 굴욕당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을 숭배하는 자들 앞에서 고꾸라져 낮아진 채 굴욕을 당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이런 때에 하나님이 하시는 두 번째 일입니다.

   세 번째 하나님이 하신일은 심판을 선포하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그는 블레셋인들에게 하나님은 이런 식으로 다뤄질 수 없다는 사실을 경고하고 계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능력을 나타내고 계셨습니다. 그들에게 앞으로 하실 일을 보여 주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블레셋인과 이스라엘인, 양쪽 모두에게 동시에 심판을 선포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금세기 중 온 인류에게 가장 분명하게 밝혀져야 할 일이 한 가지 있다면,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심판을 선언하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그것 외에는 세계대전이 두 번이나 발생한 것에 대해 적절히 설명할 만한 이유가 없습니다. 이것은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순복하지 않는 모든 사람들이 마지막 파멸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인간을 향한  메시지는 이 심판의 메시지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 원한다면, 그는 반드시 하나님이 오래전에 다곤 신전에서 계시해 주셨던 이런 진리들을 깨닫고 믿어야 한다는 사실을 선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신 하나님입니다. 이스라엘 백성과 블레셋인들이 범한 잘못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궤 속에, 하나의 상자 속에 담아 들고 다닐 수 있는 분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언약궤만 메고 가면 전쟁에서 이길 줄 알았습니다. 하나님을 자기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분으로 알았던 것입니다. 블레셋인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다곤 신전에서 그들에게 가르쳐 주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분은 사람들에 의해 운반되는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인간을 손에 쥐고 계신 분입니다. 다시 말해 살아 계신 하나님,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능력의 하나님이심을 가르쳐 주셨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그분은 유일하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블레셋인들은 그분을 다곤 옆에 세워 두면서 자기들이 하나님께 경의를 표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는 여러 신들 중의 한 신이다. 그는 우리의 신 다곤과 비슷하니 다곤 옆에 세워 두자.” 그들은 하나님을 여러 신들 중 하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곤 신전에서 하나님만이 유일한 하나님이심을 그들에게 증명해 보이셨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살아 계신 하나님 옆에 다른 신을 갖다 두면, 하나님이 그 신을 엎드러지게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침묵시켜 버릴 것입니다. 어떤 신이든지 하나님은 용납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이 파시즘이든 나치즘이든 공산주의이든 하나님은 다 멸망시키실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나라나, 우리인종, 우리국적이나 우리의 민족성을 신격화하면, 그것들 역시 똑같은 운명에 처 해질 것입니다. 혹시 우리의 삶 속에서 아내를 신격화하여 하나님 옆에 나란히 세워 두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파멸시킬 것입니다. 남편이든, 자녀든, 지식이든, 우리 인생에서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하나님 옆에 나란히 세워 두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파멸시킬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하나님이 지시하신 방법대로 다가가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과 블레셋인들은 잘못된 방식으로 하나님의 궤를 다루다가 고난을 당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일 우리가 정말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하나님을 알기 원한다면,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방법대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은 오직 한 길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 올자가 없느니라”(요 14:6)고 말씀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입니다. 만유 중에 가장 거룩하신 분 앞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길은 오직 한 길뿐인데, 그것은 예수님의 피를 통해서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이 부족한 자로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할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 외에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전혀 없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해 특히 이 지극히 중요한 교훈을 배워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개인의 삶 속에서나 우리 교회에서 축복을 받기 원한다면, 우리 자신을 의지하면 안 됩니다. 우리 지식과 명철, 의 철학, 우리의 논쟁, 우리의 기관들을 믿으면 안 됩니다. 대신 자신의 무력함을 깨닫고 하나님께 나아가 그분의 성령으로 충만해져야 합니다. 성령으로 충만해져야만 비로소 현대인을 만나 이 메시지를 전하며 도전하여 그들이 자신의 죄를 깨닫고 , 회개하고, 통회함으로써 홀로 구원하실 수 있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돌아서게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여, 저희는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과 증거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게 해주시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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