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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서

이사야 53장 4절 강해, 우리의 슬픔과 질고를 대신 지신 그리스도

by 파피루스 2025. 4.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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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슬픔과 질고를 대신 지신 그리스도

이사야 53장 4절은 고난받는 종의 사역의 본질을 더욱 분명히 드러내 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은 단지 물리적인 고통이나 사회적 배척을 넘어, 인류 전체의 죄악과 그로 인한 모든 고통을 대신 짊어진 사건입니다. 이 구절은 신약에서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구속사적으로 가장 깊이 이해하게 해주는 통로입니다. 사람들은 그를 하나님의 벌을 받는 자로 오해했지만, 실상 그는 우리의 질고와 슬픔을 대신 짊어진 메시아이셨습니다. 이 놀라운 대속의 진리를 본문 속에서 함께 깊이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그가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라는 본문의 시작은 단호하면서도 위로에 찬 선언입니다. 여기서 '실로'라는 표현은 히브리어로 ‘אָכֵן’(aken)인데, 이는 ‘참으로’, ‘분명히’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단순히 강조하는 말이 아니라, 독자의 오해와 혼동을 반박하며 진리를 선언하는 어조입니다. 이는 앞선 3절에서 사람들이 그를 귀히 여기지 않고 멸시했던 현실을 전환시키는 분기점과 같습니다. 사람들의 평가는 잘못되었으며, 그분이 당하신 고난은 자기 죄 때문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질고 때문이었다는 선언입니다.

‘질고’(חֳלִי, choliy)는 육체적 질병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는 인간의 모든 연약함, 곧 죄로 인해 발생한 육적, 정신적, 사회적 고통과 한계를 포함하는 단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질고를 ‘지고’(נָשָׂא, nasa’) 가셨다고 말씀합니다. 이 동사는 ‘들어 올리다’, ‘떠맡다’, ‘짐을 지다’는 뜻을 가지며, 제사장이 백성의 죄를 상징적으로 짊어지고 광야로 내보낸 속죄 염소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합니다. 예수님은 단순한 동정자로 우리 곁에 계신 분이 아니라, 우리의 고통과 죄를 실제로 자신의 어깨에 짊어지신 대속자이십니다.

예수님의 공생애는 이러한 짊어짐의 삶으로 가득합니다. 마태복음 8장 17절에서 이사야 53장 4절은 직접 인용되며, 예수님이 병든 자를 고치신 장면에 적용됩니다. 신약은 이 구절을 육체적 질병과도 연결시키면서,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모든 영역의 고통을 짊어지신 분임을 선포합니다. 그러나 그 치유는 단지 의술적 능력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죄의 결과인 죽음과 고통을 근본적으로 제거하기 위한 십자가의 예표였습니다.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본문 후반에서 이어지는 표현,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은 더욱 구체적인 감정의 고통을 묘사합니다. 여기서 ‘슬픔’(מַכְאֹבוֹ, makhov)이라는 말은 단순히 감정적 아픔을 넘어,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상처를 함께 포함하는 표현입니다. 이것은 단지 병이나 눈물의 문제가 아니라, 죄로 인해 뒤틀린 인간의 내면 전체를 다루는 단어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깊은 상실감, 배신, 상처, 두려움, 불안, 고독의 정서를 누구보다 깊이 경험하셨습니다.

‘당하였다’는 표현은 원어로 ‘סָבַל’(saval)이며, 이는 억지로 지워진 짐처럼 고통을 감내하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자발적인 사랑의 순종이지만, 동시에 무거운 짐을 억지로 진 자처럼 완전히 짓눌린 모습을 연상케 합니다. 주님은 이러한 슬픔을 피하지 않으시고, 온전히 받아들이시며, 그 짐을 기꺼이 지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 27:46)라 부르짖으셨습니다. 이 절규는 단지 정서적 표현이 아니라, 인간의 고통을 하나님 앞에서 대표하여 쏟아낸 대속적 기도입니다.

예수님은 단지 우리의 죄를 이론적으로 처리하신 분이 아니라, 우리의 눈물을 함께 흘리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삶의 현실 속에 오셔서, 인간의 가장 낮은 자리까지 내려가셨고, 우리의 가장 깊은 고통까지 들어오셨습니다. 우리는 그분 안에서만 참된 위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우리가 아파할 때 함께 아파하시며, 우리가 무너질 때 함께 짓눌리셨던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이사야는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고백을 덧붙입니다. 사람들의 시선은 예수님의 고난을 오해했습니다. 그들은 그분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고난을 당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징벌’(נָגוּעַ, nagua‘)은 치명적인 심판을 뜻하며, ‘하나님께 맞다’는 표현은 원어로 ‘מֻכֵּה אֱלֹהִים’(mukkeh Elohim)으로, 하나님의 직접적인 타격을 받은 자라는 의미입니다.

이 고백은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사람들이 품었던 오해를 보여줍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범죄자나 이단자로 여겼고, 십자가에서 죽는 것이 하나님의 심판이라 여겼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 반대였습니다. 그는 죄가 없으신 분이셨고, 우리를 대신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받으신 분이셨습니다. 고난은 그의 죄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죄 때문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구속사의 중심 개념인 ‘대속’을 만나게 됩니다.

칼빈은 이 구절을 해석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는 비록 인간의 눈에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자로 보였지만, 실상은 그 저주를 대신 지심으로 하나님의 의를 만족시키셨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만나는 자리입니다. 그분은 정죄받은 자처럼 죽으셨지만, 오히려 그 죽음을 통해 많은 이들이 의롭다 함을 얻는 역설적 승리를 이루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여전히 그분의 고난을 오해할 수 있습니다. 고통은 때로 하나님의 심판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고난은 우리를 위한 대속이었습니다. 우리는 그 고난을 보고 눈물을 흘릴 뿐 아니라, 그것을 통해 참된 자유를 얻는 자들입니다. 그분이 맞으셨기에, 우리는 위로를 얻습니다. 그분이 징벌받으셨기에, 우리는 평화를 누립니다.

결론

이사야 53장 4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이 어떤 성격을 지니는지를 구속사적으로 분명하게 드러냅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셨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셨으며, 우리가 받았어야 할 징벌을 대신 감당하셨습니다. 사람들은 그 고난을 하나님의 저주라 여겼지만, 실상은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한 하나님의 깊은 사랑이었습니다.

이 말씀은 단지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지금 우리의 삶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영적 거울입니다. 우리는 종종 우리의 질고를 혼자 감당하려 하고, 슬픔 가운데 하나님께서 멀리 계시다고 생각하지만, 실상 하나님은 우리의 가장 깊은 고통 가운데 이미 들어오셔서 함께하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그 모든 짐을 친히 지고 가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도 이 진리를 붙들고 살아가야 합니다. 십자가 앞에서 우리의 모든 짐을 내려놓고, 그분의 고난을 기억하며, 감사로 나아가야 합니다. 주님께서 지신 고난은 결코 헛되지 않았습니다. 그 고난이 있었기에, 오늘 우리가 자유함을 누립니다. 그리고 그 고난이 있었기에, 우리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소망을 품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 놀라운 은혜를 날마다 기억하며,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거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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