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6편
1. 본문 읽기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현악 여덟째 줄에 맞춘 노래
1 여호와여 주의 분노로 나를 책망하지 마시오며 주의 진노로 나를 징계하지 마옵소서
2 여호와여 내가 수척하였사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여호와여 나의 뼈가 떨리오니 나를 고치소서
3 나의 영혼도 매우 떨리나이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4 여호와여 돌아와 나의 영혼을 건지시며 주의 사랑으로 나를 구원하소서
5 사망 중에서는 주를 기억하는 일이 없사오니 스올에서 주께 감사할 자 누구리이까
6 내가 탄식함으로 피곤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
7 내 눈이 근심으로 말미암아 쇠하며 내 모든 대적으로 말미암아 어두워졌나이다
8 악을 행하는 너희는 다 나를 떠나라 여호와께서 내 울음 소리를 들으셨도다
9 여호와께서 내 간구를 들으셨음이여 여호와께서 내 기도를 받으시리로다
10 내 모든 원수들이 부끄러움을 당하고 심히 떪이여 갑자기 부끄러워 물러가리로다
2. 주해
시편 6편은 7대 참회시로 알려져 있다. 7대 참회시는 32, 38, 51, 102, 130, 그리고 143편이다. 초대교회 카시오도루스(~주후 583년)이 주장한 이래 거의 고정된 분류다. 그는 일곱 참회시를 통해 하나님께 일곱 가지 방법으로 용서 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용서의 방법은 1)세례, 2)순교, 3)구제, 4)용서, 5)죄인을 돌이키는 것, 6)많은 선행, 7)회개이다. 그러나 본 시편은 다윗의 참회시로 알려진 시편 51편과 같은 개인적 참회를 구하는 내용이 담겨져 있지 않다. 그렇기에 참회시로 넣아야할지 약간 의문스럽다. 그러나 전반적인 흐름이 참회의 과정과 흡사하기 때문에 넣어도 무방하다고 본다.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참회의 관점에서 본 시편을 살펴보자.
구조
전반적으로 회개와 참회의 시기 때문에 명확하게 구분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크게 1-7절까지는 회개이며, 8-10절까지는 용서의 확신이다. 1-7절을 두 문단으로 나누어 아래와 같이 구분했다.
1-3절 주의 진노를 멈추소서
4-7절 자신의 신세를 아룀
8-10 용서의 확신
1-3절 주의 진노를 멈추소서
1 여호와여 주의 분노로 나를 책망하지 마시오며 주의 진노로 나를 징계하지 마옵소서
시인은 자신의 질병이나 환경이 ‘주의 분노’로 인한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적지 않은 학자들은 시편 6편을 ‘병상에서 드리는 참회기도’라고 말한다. 그 근거가 1절에 나타난 ‘주의 진노’에서 찾는다. 고대 세계에서 질병은 죄를 짓고 하나님의 벌을 받은 것이라고 믿었다. ‘책망’과 ‘징계’는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인 셈이다. 그는 하나님의 채찍의 손길을 느끼고, 용서를 구하는 기도를 시작한다.
2 여호와여 내가 수척하였사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여호와여 나의 뼈가 떨리오니 나를 고치소서
2절은 그의 상황에 대한 고백이다. 그는 수척해 있고, 뼈가 떨리고 있다. 질병으로 인한 것이 거의 확실해 보이는 이러한 고백은 자신의 힘으로 이길 수 없는 심각한 질병일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는 상황이 악화되지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며, 자신을 고쳐 달라고 하나님께 호소한다. 히브리 세계에서 ‘뼈’는 힘을 상징한다. 뼈가 떨린다는 말은 육신의 질병이나 다른 이유로 힘을 낼 수 없으며, 절망적인 상황에 봉착해 있다는 것을 말한다.
3 나의 영혼도 매우 떨리나이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그의 고통은 육신을 너머 ‘영혼(네페쉬)’까지 이어진다. 영혼으로 번역된 ‘네페쉬’는 번역이 포괄적이고 모호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마음과 지성, 종교적 감성까지 포함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히브리 인들은 네페쉬라는 단어를 통해 자신의 전존재적 의미를 표현하곤 했다. 김정우는 영혼의 떨림에 대해 ‘영육간에 임하는 전인적인 두려움과 당혹감을 잘 드러내어 준다’고 말한다.
4-7절 자신의 신세를 아룀
4-7절을 세분화 시키면 4-5절과 6-7절로 구분할 수 있다 4-5절에서는 죽을지도 모르는 자신의 운명에 대해, 하나님께 자신의 고통을 아뢰고 있다. 6-7절에서는 좀 더 구체적인 예를 들어 자신의 몸이 극도로 쇠약해 졌다고 말한다. 신세타령처럼 들리는 이곳은 하나님께 자신을 낮추는 겸손의 고백이다.
4 여호와여 돌아와 나의 영혼을 건지시며 주의 사랑으로 나를 구원하소서
징벌은 하나님의 떠나심으로 이해된다. 죄인들에 대한 심판의 시작은 ‘방치’하는 것입니다. 방치는 악을 조장하는 것이 아니라, 간섭하지 않으심으로 회개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오랜 시간 동안 하나님의 응답을 받지 못한 시인은 이제 다시 자신에게 돌아와 달라고 간구한다. 그리고 자신의 영혼을 건지며, 사랑으로 구원해 달라고 간구하다.
5 사망 중에서는 주를 기억하는 일이 없사오니 스올에서 주께 감사할 자 누구리이까
만약 자신이 죽는다면 주를 기억하지 않을 것이며, 감사하지도 못할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 이제라도 돌아와 자신을 구원해 주기를 간고한다. 문장 속에는 만약 하나님이 자신을 구원하시면 주를 기억하며, 감사하겠다는 결의이다. 주를 기억하는 것은 지식적 기억이 아니라, 삶 속에서 하나님을 잊지 않고 언제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겠다는 다짐에 대한 약속이다. 죄는 하나님의 말씀을 망각하는 것이다. 구원으로 이어진 삶은 ‘감사’로 끝이 난다. 성도는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는 존재이어야 한다.
6 내가 탄식함으로 피곤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
눈물로 침상을 띄운다는 표현은 과장법이지만,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고통 속에서 눈물 흘려본 자들은 다윗의 고백이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니라는 것에 동의할 것이다. 그만큼 그는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침상을 띄울 만큼 많은 눈물을 흘렸다는 말이다. 오랜 기간, 하나님의 징계로 인해 회개하며 하나님을 기다리는 삶을 살았다. ‘내 요를 적시나이다’라는 표현도 동일한 의미다.
7 내 눈이 근심으로 말미암아 쇠하며 내 모든 대적으로 말미암아 어두워졌나이다
적당한 눈물은 건강에 이롭지만, 과도한 눈물은 눈을 상하게 할 뿐 아니라 온몸을 상하게 한다. 볼테르는 ‘남자가 온갖 말을 다 하여도 여자가 흘리는 한 방울의 눈물에는 당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만큼 강력한 힘을 갖지만, 다른 면에서도 건강을 해친다.
8-10 용서의 확신
시인은 결국 확신으로 돌아간다. 기도하는 자들의 결론이기도 하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8 악을 행하는 너희는 다 나를 떠나라 여호와께서 내 울음 소리를 들으셨도다
8절은 두 문장이 대비를 이룬다. 악행자들에게 '나를 떠나라'는 외침은 후반부에서 그 이유를 밝힌다. 여호와께서 자신의 울음소리를 들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확신은 거룩한 삶을 지탱한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으면 흔들리는 갈대처럼 악과 세상의 유혹에 넘어지기 십상이다.
9 여호와께서 내 간구를 들으셨음이여 여호와께서 내 기도를 받으시리로다
8절의 '음성'이 9절에서 '간구'로 바뀐다. 동일한 의미다. '들으셨다'는 후반부에서 '받으시리로다'로 이어진다. 믿음에도 논리적 추론이 필요하다. 하나님께서 심판을 작정하셨다면 듣지도 않으실 것이다. 시인은 들으심의 확신은 응답의 확신으로 확장한다. 이것은 경건한 삶을 살아가는 의인들이 기억해야할 중요한 기도의 원리다.
10 내 모든 원수들이 부끄러움을 당하고 심히 떪이여 갑자기 부끄러워 물러가리로다
마지막 고백은 원수들에데 대한 종말이다. 그들은 부끄러움을 당하고, 떨고, 물러갈 것이다. '부끄러움'은 종종 하나님의 심판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움을 당한다는 말은 자신의 죄와 치부가 드러나 심판을 받는다는 말이다. 은혜를 죄를 가리우고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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