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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행전

누가복음 8장 강해

by 파피루스 2025. 4.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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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8장

누가복음 8장은 예수님의 사역이 점점 확장되며 복음의 본질과 반응, 그리고 믿음의 능력을 강조하는 장입니다. 비유로 말씀하신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통해 말씀에 대한 태도를 점검하게 하시고, 풍랑과 귀신들린 자, 병든 여인과 죽은 자를 살리시는 사건들을 통해 예수님이 자연, 영적 세력, 질병, 죽음을 다스리시는 구속의 주임을 드러냅니다. 믿음으로 반응하는 자가 하나님의 가족이며, 구속사 안에 참여하는 자임을 선포하십니다.

누가복음 8장 구조분석 목록

  1. 여러 여인이 예수님을 섬김 (8:1–3)
  2. 씨 뿌리는 자의 비유 (8:4–15)
  3. 등불의 비유 (8:16–18)
  4. 예수님의 참 가족 (8:19–21)
  5. 풍랑을 잠잠케 하심 (8:22–25)
  6. 거라사 귀신들린 자를 고치심 (8:26–39)
  7. 야이로의 딸과 혈루증 여인 치유 (8:40–56)

여러 여인이 예수님을 섬김 (8:1–3)

누가복음 8장의 시작은 매우 인상적인 방식으로 열립니다. 예수님께서 각 성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며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실 때, 열두 제자와 함께 몇몇 여인들이 동행하고 있었다고 기록합니다 (8:1). 이 여인들은 단지 구경꾼이나 후원자가 아니라, 예수님의 사역에 실제로 참여하고 헌신한 제자 공동체의 일원이었습니다.

그들 중에는 일곱 귀신이 나간 막달라 마리아와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 수산나, 그리고 그 외에 많은 여인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사역을 위해 자기들의 소유로 섬겼다고 기록됩니다 (8:2–3). 이 장면은 누가복음이 갖는 구속사적 특징을 잘 보여줍니다. 즉, 하나님의 나라는 남녀, 빈부, 사회적 지위에 상관없이 믿음으로 반응하는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 귀신 들린 자와 병든 자를 고치신 후, 그 은혜에 응답하여 자발적으로 헌신하는 이 여성들의 모습은, 구속의 은혜가 삶의 전반에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지를 보여줍니다. 이들은 단지 도와주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함께 세워가는 동역자들이었습니다. 이는 오늘날 교회 공동체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할 진리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구속 사역을 결코 혼자 감당하지 않으셨고, 그 사역에는 이름도, 얼굴도 잘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이 진심을 다해 동참했습니다. 그들의 섬김은 오늘 우리가 복음을 누릴 수 있는 배경이 되었습니다.

씨 뿌리는 자의 비유 (8:4–8): 말씀의 씨와 마음밭의 진실

예수님은 큰 무리가 모여들자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씨를 뿌리는 자가 씨를 뿌리러 나가서" 네 가지 밭에 떨어진 씨의 결과를 이야기하십니다. 길가, 돌밭, 가시밭, 좋은 땅이 그것입니다 (8:5–8). 여기서 씨는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하고, 밭은 말씀을 받는 사람들의 마음을 의미합니다.

길가는 말씀을 들은 즉시 마귀가 와서 그 마음에서 빼앗아가 믿지 못하게 하는 자들이고 (8:12), 돌밭은 말씀을 기쁨으로 받되 뿌리가 없어 시험이 올 때 믿음을 버리는 자들이며 (8:13), 가시밭은 세상 염려와 재물, 향락에 얽매여 결실하지 못하는 자들을 의미합니다 (8:14). 그러나 좋은 땅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켜 인내로 결실하는 자들입니다 (8:15).

이 비유는 단지 사람들이 다양하다는 일반적 진술이 아닙니다. 이는 구속사의 결정적인 진리를 담고 있습니다. 곧, 복음은 모든 이에게 뿌려지지만, 그 열매는 마음의 상태에 따라 극명하게 달라진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복음을 선포하러 이 땅에 오셨고, 그 말씀은 생명의 씨앗이지만, 모든 사람이 그것을 결실로 이어가지 못합니다. 결국 구속사의 열매는 듣는 자의 태도에 의해 결정된다는 경고이자 초청입니다.

예수님의 비유는 단지 듣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듣고 이해하고 순종하여 열매 맺는 것에 초점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씨를 뿌리는 예수님의 사역은 단순한 가르침이 아니라, 십자가와 부활로 완성될 생명의 시작입니다. 그분은 말씀으로 우리 마음밭에 하나님 나라의 현실을 심으시고, 인내와 순종을 통해 열매 맺기를 원하십니다.

비유의 해석과 구속의 초청 (8:9–15): 숨겨진 진리에서 드러난 구속

제자들이 이 비유의 뜻을 물었을 때, 예수님은 놀라운 대답을 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다른 사람에게는 비유로 하나니" (8:10). 이는 단지 이해력의 차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에게는 하나님 나라의 깊은 비밀이 열리지만, 그렇지 않은 자들에게는 들려도 깨닫지 못한다는 영적 원리를 뜻합니다.

예수님은 이어 씨의 비유를 해석해 주십니다. 말씀은 생명이요, 그 말씀을 받아들이는 마음이 구속의 통로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구속사는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접근합니다. 그러나 단지 듣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뿌리를 내리고 열매 맺는 데까지 이르는 것이 진정한 믿음입니다. 이 과정은 시험과 인내, 세상의 유혹을 이겨내는 과정으로 연결됩니다.

씨가 좋은 땅에 뿌려진다는 것은 결코 쉽게 되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회개와 갈망, 꾸준한 순종을 통해 이루어지는 은혜의 과정입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해 듣는 자들이 스스로의 마음을 돌아보게 하십니다. 오늘날 우리도 동일한 질문 앞에 서야 합니다. 내 마음은 길가인가, 돌밭인가, 가시밭인가, 아니면 좋은 땅인가? 나는 구속사의 말씀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이 비유는 단지 개인의 상태를 분석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구속사는 열매 맺는 자들을 통해 이어지고 확장됩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들은 자를 통해 전해지고, 또 다른 밭에 씨를 뿌리는 사역으로 이어집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우리에게 구속의 통로가 되라는 초청이며,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하라는 요청입니다.

등불의 비유 (8:16–18)

예수님께서는 씨 뿌리는 비유에 이어, 등불의 비유를 통해 복음을 들은 자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등불을 켜서 그릇으로 덮거나 평상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는 들어가는 자들로 그 빛을 보게 하려 함이라" 하십니다 (8:16). 이는 복음을 들은 자는 그 복음의 빛을 감추지 말고 드러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등불'은 복음의 진리를 말하며, '등경 위에 둔다'는 것은 삶 속에서 그 진리를 살아내고 증거하는 삶을 의미합니다. 이는 단지 전도나 선교의 의미만이 아니라, 복음에 합당한 삶의 자세를 의미합니다. 구속사는 은밀한 진리로 끝나지 않고, 반드시 세상 가운데 드러나야 하는 빛입니다. 예수님은 이 진리를 감추지 말라고 말씀하시며, "숨은 것이 장차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감추인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하십니다 (8:17).

이는 심판의 경고이기도 하며 동시에 구속의 약속이기도 합니다. 복음으로 살아가는 자는 드러나게 되어 있고, 또한 복음을 거절하는 자는 결국 드러나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삼가 어떻게 들을까 스스로 조심하라"는 예수님의 명령은 (8:18), 단순히 들음의 태도를 넘어, 그 들음이 삶의 열매로 이어져야 한다는 구속사적 요청입니다. 복음은 받은 자의 마음에 숨겨진 채 머물 수 없습니다. 반드시 빛처럼 흘러나가야 하며, 그것이 곧 구속사의 열매가 됩니다.

예수님의 참 가족 (8:19–21)

이어지는 장면에서 예수님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예수님을 만나러 왔으나 무리로 인해 가까이 오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이 사람들이라" 하십니다 (8:21). 이는 가족 관계를 부정하는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서의 참된 가족의 정체성을 구속사적으로 재정의하시는 선언입니다.

예수님은 혈연적 유대나 민족적 전통이 아니라, 말씀에 반응하고 순종하는 자들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요, 주님의 가족이라고 선언하십니다. 이는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적 테두리를 넘어, 믿음으로 구속사의 가족 안에 참여하는 모든 이들을 포함시키는 확장된 언약의 개념입니다.

예수님을 향한 참된 친밀함은 단지 가까이 있다는 물리적 거리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말씀에 대한 영적 반응과 순종에서 비롯됩니다. 이 장면은 교회 공동체의 본질을 보여줍니다. 교회는 같은 말을 하고 같은 문화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동일한 복음을 믿고 동일한 말씀을 따라 살아가려는 이들의 공동체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말씀을 듣는 데서 그치지 않고, 순종을 통해 구속사에 참여하는 예수님의 가족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풍랑을 잠잠케 하심 (8:22–25)

마지막 장면은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너시다가 풍랑을 만나는 장면입니다. 예수님께서 주무시고 계시는 동안 큰 바람이 불어 배에 물이 가득 차게 되자 제자들은 다급히 예수님을 깨워 구원을 요청합니다 (8:24). 예수님은 깨어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시고, 그것들이 잔잔하게 되자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8:25).

이 사건은 단순히 자연을 다스리는 기적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창조주로서, 그리고 구속의 주로서 세상의 모든 질서 위에 계심을 드러내는 구속사적 사건입니다. 풍랑은 인생의 위기를 상징하며, 배는 교회를, 제자들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상징합니다. 이 장면은 고난 중에 있는 교회와 성도들에게, 주님께서 함께 계시며, 그분의 말씀으로 모든 두려움을 이기실 수 있음을 보여주는 복음의 선언입니다.

예수님은 고난 중에도 우리 안에 계시며, 주무시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결코 우리를 잊지 않으십니다. 문제는 주님의 능력보다 우리의 믿음이 어디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 믿음은 단지 기적을 바라보는 믿음이 아니라, 주님이 누구신지를 아는 인격적 신뢰입니다. 제자들은 이 사건을 통해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물을 명함에 순종하는가"라는 질문에 도달합니다 (8:25). 이 질문은 누가복음 전체, 나아가 복음서 전체를 이끄는 핵심 질문입니다.

풍랑을 잠잠케 하신 주님은, 장차 십자가에서 죄와 죽음의 폭풍도 잠잠케 하실 분입니다. 그분은 단지 파도를 이기시는 분이 아니라, 죄의 심판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 믿음 위에 서는 것이야말로, 구속사의 중심에 참여하는 삶입니다.

거라사 귀신들린 자를 고치심 (8:26–39)

예수님께서 갈릴리 맞은편 거라사 지방에 이르셨을 때, 무덤 사이에서 살며 귀신 들린 자 하나를 만나게 됩니다. 그는 사람들과 함께 살지 못했고, 쇠사슬로 묶어도 끊으며 광야로 도망치는 자였습니다 (8:27,29). 이 인물은 단순히 개인적 질병이 아닌, 영적 포로됨과 인간의 철저한 무너짐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은 이 자를 향해 말씀하시고, 귀신이 "군대"라 불릴 만큼 많은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내쫓으십니다 (8:30).

귀신들은 예수님의 권세를 인정하며 스스로 무저갱으로 들어가지 않게 해달라고 간청합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요청을 허락하셔서 귀신들이 근처의 돼지 떼에 들어가게 하시고, 돼지들은 비탈을 타고 호수로 몰려가 몰사합니다 (8:32–33). 이는 예수님께서 단지 사람을 회복시키는 수준을 넘어, 악한 세력을 완전히 몰아내시고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구속권세를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군중은 오히려 두려움에 사로잡혀 예수님께 떠나달라고 요청합니다 (8:37). 그러나 귀신 들렸던 자는 변화된 모습으로 예수님 곁에 앉아 있고, 제자 되기를 간청합니다. 예수님은 그를 보내며 "하나님이 네게 어떻게 큰일을 행하셨는지를 말하라" 하십니다 (8:39). 이 장면은 구속사에서 복음이 이방 땅에 뿌려지고, 그 땅의 첫 증인으로 부름받는 자가 어떤 과거를 가졌든지 하나님 나라의 일꾼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무너진 인간 안에 하나님 나라를 세우시며, 과거를 능히 뒤엎는 구속의 능력을 증명하십니다.

야이로의 딸과 혈루증 여인 치유 (8:40–48)

예수님이 다시 갈릴리로 돌아오시자 무리가 몰려옵니다. 그 가운데 야이로라는 회당장이 자기 딸이 죽게 되었으니 와서 고쳐달라고 간청합니다 (8:41–42). 그러나 그 도중, 12년 동안 혈루증을 앓은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댑니다. 이 여인은 많은 의사에게 고통을 당하고 모든 재산을 허비했으나 차도가 없던 자였습니다 (8:43).

그녀는 군중에 숨어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대며, 이것이 마지막 희망이라는 믿음으로 다가왔습니다. 그 순간 그녀의 병이 즉시 나았고, 예수님은 "내게서 능력이 나간 줄 알았다"고 말씀하십니다 (8:46). 이는 예수님께서 단지 무의식적으로 능력을 나누신 것이 아니라, 믿음을 통해 능력을 주시는 인격적 주님이심을 나타냅니다.

예수님은 그 여인에게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십니다 (8:48). 이 말은 단지 병이 나았다는 치유의 선언이 아니라, 그녀가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되었음을 선포하는 구속사적 선언입니다. 그녀의 고통은 단지 육체의 질병이 아니라, 사회적 배제와 영적 수치의 총합이었으나, 예수님의 한 마디로 정체성과 존재가 새로워졌습니다. 이는 구속이 개인 안에서 어떤 변화와 회복을 이루는지를 보여주는 감동적인 장면입니다.

죽은 자를 살리시는 권세 (8:49–56)

혈루증 여인과의 만남이 끝날 즈음, 야이로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딸이 죽었다고 전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그리하면 딸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시며, 야이로와 함께 집으로 향하십니다 (8:50). 이 말은 단지 희망적인 위로가 아니라, 죽음조차도 예수님의 구속 능력 아래 있다는 선언입니다.

예수님은 우는 자들과 조롱하는 무리를 밖으로 내보내시고, 아이의 손을 잡아 "아이야 일어나라" 말씀하십니다 (8:54). 그 영이 돌아와 아이가 살아납니다. 이 사건은 예수님이 생명의 주권자이심을 나타내는 가장 강력한 구속사적 기적입니다. 죽음은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한계이지만, 예수님은 그 한계를 무너뜨리시고 새로운 생명을 부여하십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사건과 앞선 혈루증 여인의 사건이 함께 연결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혈루증은 12년 동안 지속되었고, 야이로의 딸은 12세입니다. 이는 단순한 수적 우연이 아니라, 시간과 생명의 주권이 모두 예수님의 손 안에 있음을 상징하는 구조적 장치입니다. 예수님은 낡은 것과 죽은 것, 오래된 고통과 막 시작된 생명을 모두 품으시고, 회복하시는 구속자이십니다.

또한 예수님은 이 기적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하십니다 (8:56). 이는 단지 겸손 때문이 아니라, 십자가를 통한 구속이 완전히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기적이 곧 복음의 완성이 될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참된 구속은 단지 놀라운 사건이 아니라, 죄와 죽음을 이긴 십자가의 능력을 통해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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