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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설교문

사도행전 16:16~34 설교

by 파피루스 2025. 5.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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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에서도 찬송하라: 하나님의 주권과 복음의 능력”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도 하나님의 은혜로 거룩한 주일을 맞이하신 여러분 모두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고난 가운데에서도 찬송하고, 억눌린 가운데에서도 자유를 외쳤던 바울과 실라처럼, 우리도 이 아침에 감사와 찬송으로 나아가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함께 살펴볼 본문은 사도행전 16장 16절부터 34절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복음이 어떻게 영혼을 풀어내는지, 그리고 그 복음이 고난과 억압 가운데서도 찬송하게 하는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함께 묵상하고자 합니다.

 

영적 억압과 해방의 시발점

본문은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하던 중 겪은 사건으로 시작합니다. 빌립보는 로마의 식민지였으며, 당시 헬라문화와 로마법이 공존하던 곳입니다. 그런 도시에서 한 점치는 여종이 등장합니다. 성경은 그녀가 “점으로 그 주인들에게 큰 이익을 주는 자”라 하였습니다(행 16:16). 여기서 “점”(μαντεύομαι, manteuomai)은 신탁을 가장한 영적 기만의 언어입니다. 이 여종은 ‘비진리의 영’, 곧 ‘점치는 귀신’(πνεῦμα πύθωνα, pneuma pythōna)의 지배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바울과 일행을 따라다니며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고 외칩니다(행 16:17). 얼핏 보면 옳은 말이지만, 복음은 진리의 영으로만 선포되어야 하며, 어둠의 영이 섞여 들면 그것은 진리를 왜곡하는 것이 됩니다. 바울은 이 여종 안에 있는 영이 하나님의 영이 아님을 분별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하여 귀신을 쫓아냅니다(행 16:18). 여기서 우리는 예수 이름의 권세(ἐξουσία, exousia)를 다시금 보게 됩니다.

 

복음이 선포되면 반드시 그 주변의 영적 영역이 반응하게 되어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복음을 삶에서 증언하면, 세상의 어둠과 결탁한 이익, 구조, 문화가 들끓고 움직이게 됩니다. 그만큼 복음은 정적이지 않고, 능동적이며 영적 전쟁의 중심에 있습니다.

 

복음을 대적하는 세상의 권력

귀신이 떠나간 후 이 여종은 더 이상 점을 치지 못하게 되었고, 그 주인들은 경제적 손실을 느낍니다. 그래서 바울과 실라를 고소하여 억지로 관원들 앞에 세우고 옷을 찢기우고 매질을 당하게 합니다(행 16:19-22). 여기서 우리는 복음의 선포가 개인의 구원만이 아니라 사회구조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바울의 행동은 단순한 퇴마 행위가 아니라, 한 인간의 자유를 회복시키는 일이었고, 그 일은 곧 이익을 빼앗긴 자들의 분노를 자극했습니다.

 

이 장면은 오늘날 우리가 복음의 진리를 전할 때에도 세상은 그로 인해 위협받는 자신의 체계를 보호하기 위해 우리를 공격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억압된 구조, 탐욕의 체계는 언제나 복음 앞에서 분노합니다. 그렇기에 바울과 실라처럼 진리를 위해 매맞고 갇히는 일이 우리 삶에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고난이 하나님의 복음 역사 속에서 결코 헛되지 않다는 사실입니다(마 5:10-12).

 

고난 속 찬송과 하나님의 개입

가장 감동적인 장면은 깊은 감옥 안, 발에 착고가 채워진 상태에서 바울과 실라가 한밤중에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행 16:25)는 구절입니다. 여기서 ‘찬송하다’는 말은 (ὕμνεω, hymneō), 즉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며 노래했다는 뜻입니다. 고난의 중심에서 터져나온 찬송은 단순한 노래가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을 선포하는 신앙의 고백입니다.

 

성도 여러분, 고난이 깊을수록 우리의 찬송은 더욱 높이 울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 찬송 가운데 거하시고(시 22:3), 그 찬송은 우리를 환경의 지배에서 영적 통치로 옮기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그 찬송은 감옥을 뒤흔드는 지진으로 이어집니다.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지니라”(행 16:26).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 개입이며, 복음의 능력이 구체적 현실에 나타난 장면입니다.

 

간수의 회심과 복음의 열매

지진이 일어나자 간수는 죄수들이 도망갔을까 두려워 자결하려 합니다. 로마법에서는 죄수가 도망갈 경우 간수가 생명을 걸어야 했기에 그는 절망 속에 칼을 든 것입니다(행 16:27). 이때 바울이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고 외칩니다(행 16:28). 복음을 받은 자는 원수조차 해치지 않으며, 절망하는 자에게 소망을 말합니다.

 

간수는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려 묻습니다.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행 16:30). 고난 속 찬송, 신실한 복음의 증거는 결국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됩니다. 이에 바울은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고 말하며(행 16:31), 그 밤에 온 가족이 세례를 받고 하나님을 믿고 크게 기뻐합니다(행 16:33-34).

 

여기서 ‘구원’(σωτηρία, sōtēria)은 단지 죽어서 천국 가는 것을 넘어서서, 지금 이 자리에서 하나님의 다스림 안으로 들어오는 전인격적인 변화와 회복을 뜻합니다. 그리고 그 구원은 간수 한 사람에게서 그치지 않고 가정 전체로 확장됩니다. 복음은 언제나 공동체를 새롭게 하며, 그 기쁨은 단지 개인적인 감정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방식입니다.

 

결론 정리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사도행전 16장의 말씀은 단순한 사건 기록이 아닙니다. 이것은 복음의 본질을 보여주는 구속사의 현장입니다. 억눌린 자가 해방되고, 복음이 세상의 구조를 흔들며, 고난 가운데 찬송이 터져 나오고, 그 찬송이 영혼을 변화시키는 기적이 되는 이야기입니다.

 

복음은 어두움 가운데서도 빛을 비추고, 닫힌 문을 여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우리가 어떤 환경에 처하든지, 예수 이름으로 찬송하고 기도할 때, 하나님의 권능은 반드시 역사하십니다. 그리고 그 찬송은 또 다른 이의 영혼을 향한 구원의 통로가 됩니다.

오늘도 우리 삶 가운데 주어진 감옥 같은 현실 속에서도, 바울과 실라처럼 기도하며 찬송합시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지진을 일으키시고, 문을 여시고, 새 생명의 기쁨을 부어주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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