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의 지혜, 지금도 부르신다: 창조 전부터 계셨던 하나님의 지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 앞에 함께 나아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잠언의 말씀은 우리 일상에 필요한 실천적 지혜를 담고 있을 뿐 아니라, 구속사의 깊은 비밀과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드러냅니다. 오늘 우리가 묵상할 말씀은 단순한 조언이 아닌, 하나님의 지혜가 어떻게 창세 이전부터 함께하셨고, 지금 우리를 향해 부르짖고 계신지를 알려주는 귀한 진리의 선포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지혜의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깊이 알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지혜는 부르짖는 존재입니다
본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지혜가 부르지 아니하느냐 명철이 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느냐” (잠 8:1). 여기서 ‘부르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קָרָא, qārāʾ)인데, 이는 단순한 소리가 아닌, 강력한 외침을 의미합니다. 지혜는 침묵하지 않습니다. 지혜는 소극적인 정보가 아니라, 능동적으로 인간을 부르고 설득하려는 존재입니다. 이 지혜는 “길 가의 높은 곳과 네거리에 서며 성문 곁과 문 어귀와 여러 출입하는 문에서 불러 이르되” (잠 8:2-3)라고 기록됩니다. 즉, 지혜는 인생의 분기점, 갈림길, 그리고 공동체의 중심인 성문에서 사람들을 향해 외칩니다.
이 장면은 복음의 외침과도 닮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고 하셨습니다(요 7:37). 진리는 언제나 찾아오는 이에게 열려 있으며, 오히려 먼저 다가와 부르십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지혜를 찾지 않아도 지혜는 우리를 부르십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 외침을 듣는 귀를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창조 이전부터 계셨던 지혜
잠언 8장 22절부터는 지혜가 단순한 덕목이 아닌 존재적 실체로 등장합니다. “여호와께서 그 조화의 시작 곧 태초에 일하시기 전에 나를 가지셨으며” (잠 8:22)라는 말씀은 매우 신학적인 표현입니다. 여기서 ‘가지셨다’는 말은 히브리어 (קָנָה, qānāh)인데, 이 단어는 ‘소유하다’ 혹은 ‘창조하다’는 의미를 둘 다 가질 수 있습니다. 많은 신학자들은 이를 ‘세우셨다’로 해석하며, 지혜는 하나님의 창조 사역에 있어 첫 열매, 곧 조화의 근본 원리로 이해합니다.
이 지혜는 “아직 바다가 생기지 아니하였고 큰 샘들이 있기 전에 내가 이미 났으며” (잠 8:24), “여호와께서 하늘을 지으시며 궁창을 해면에 두르실 때에 내가 거기 있었고” (잠 8:27)라고 고백합니다. 이 모든 고백은 지혜가 창조 질서와 깊이 연관되어 있으며, 무질서 속에 질서를 세우는 하나님의 영원한 질서임을 의미합니다.
요한복음 1장도 이렇게 시작합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 1:1). 여기서 ‘말씀’(λόγος, logos)은 히브리 지혜문학의 ‘지혜’를 염두에 둔 표현이며,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합니다. 따라서 잠언 8장의 ‘지혜’는 단순한 관념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연결된 인격적 존재로 볼 수 있습니다. 교부 힐라리우스와 어거스틴은 이 구절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로 보았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기뻐하신 지혜
잠언 8장 30절은 매우 시적인 고백을 담고 있습니다. “내가 그 곁에 있어서 창조자가 되어 날마다 그의 기뻐하신 바가 되었으며 항상 그 앞에서 즐거워하였으며”. 여기서 ‘창조자’로 번역된 말은 히브리어 (אָמ֑וֹן, ’āmôn)인데, 이는 ‘장인’ 혹은 ‘조력자’라는 뜻으로 해석되며, 창조 행위에 있어 하나님의 협력자로서의 지혜를 묘사합니다. 그리고 이 지혜는 “항상 그의 앞에서 즐거워하였으며 사람의 세계에서 즐거워하며 인생들을 기뻐하였느니라” (잠 8:31)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은 매우 놀랍습니다. 하나님의 기쁨은 추상적인 완전성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지혜 안에서 창조된 세계, 특히 인간 존재 안에서 드러납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기뻐하시며, 그 기쁨의 중심에 지혜가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창조는 단지 권능의 발현이 아니라, 기쁨과 즐거움의 표현이라는 것입니다. 이 기쁨은 성육신하신 예수 안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납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마 3:17). 하나님의 기쁨은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우리 안에도 임합니다.
지혜는 곧 우리를 향한 구속의 길입니다
잠언 8장의 지혜는 단지 인간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도덕적 개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상을 구속하시기 위한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드러냅니다. “사람의 세계에서 즐거워하며 인생들을 기뻐하였느니라”는 표현은 이 지혜가 단지 신적인 영역에 머무르지 않고, 인간 세계로 내려오려는 의지를 품고 있다는 상징적 언어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는 성육신의 신비를 예고하는 장면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세상의 지혜와는 다른 ‘십자가의 지혜’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 1:18) 하였고,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고전 1:25)라고 선포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지혜는 십자가로 드러났고, 그 십자가는 가장 고귀한 구속의 길이 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이 지혜를 따르는 것은 단지 인생의 기술을 익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속 계획에 동참하는 일입니다. 지혜는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생명과 진리의 길로 이끌어갑니다.
결론 정리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가 묵상한 잠언 8장은 단지 지혜의 아름다움을 묘사하는 시편이 아니라, 창세 전부터 계셨고, 지금도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구속 역사 속에 깊이 자리 잡은 신적 지혜를 보여줍니다.
이 지혜는 지금도 성문에서, 길가에서, 마음의 분기점마다 외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음성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그 지혜는 단지 교훈이 아니라 한 인격이며,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을 통해 우리는 진정한 창조의 질서를 알고, 기쁨과 평안을 누리며, 무엇보다 구속의 길을 따르게 됩니다.
오늘도 지혜이신 주님 앞에 겸손히 서서, “주여 내게 말씀하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라고 고백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창조 이전부터 예비하신 그 지혜가 여러분의 걸음을 인도하시고, 그 길 끝에서 생명과 평강의 열매가 충만히 맺히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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