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 없는 마음에 임하는 여섯째 나팔의 심판
요한계시록 9:13–21은 여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 때 임하는 심판의 장면입니다. 앞선 다섯째 나팔이 사람을 죽이지 않고 괴롭게 했던 데 비해, 여섯째 나팔은 직접적인 죽음을 동반하는 심판으로 격화됩니다. 이 장면은 단순한 물리적 전쟁이나 재앙의 묘사가 아니라, 회개하지 않는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정당한 심판을 선포합니다. 이 본문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이 단지 형벌이 아니라 회개로 초대하는 최후의 기회임을 알게 됩니다. 동시에 인간의 죄성이 얼마나 완악하며, 회개의 은혜조차 거부할 수 있는지를 깊이 성찰하게 됩니다. 말씀을 묵상하는 자는 이 경고 속에서 하나님의 뜻과 공의를 깨달아, 더 늦기 전에 돌이키는 지혜를 갖추어야 합니다.
유브라데 강에서 풀려나는 네 천사 (13–15절)
13절은 여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 때의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금 제단 네 뿔에서 나는 음성이 등장하며, 이는 앞서 계 8:3–5에서 성도의 기도와 연결된 장소입니다. 심판은 공허하게 임하지 않고, 성도의 기도와 하나님의 공의가 만나는 지점에서 실행됩니다. 14절에서 음성은 나팔을 가진 여섯째 천사에게 명령합니다. "큰 강 유브라데에 결박한 네 천사를 놓아 주라". 유브라데 강은 고대 세계의 동쪽 경계로, 종종 이방의 침략과 전쟁의 상징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결박되었던 천사들은 곧 사탄의 사자들이며, 하나님에 의해 특정한 시간, 곧 “그 해와 달과 날과 시”를 위해 예비되었다고 기록됩니다. 이 구절의 헬라어는 "τῇ ὥρᾳ καὶ ἡμέρᾳ καὶ μηνὶ καὶ ἐνιαυτῷ"로, 하나님의 심판이 임의적인 것이 아니라 철저히 계획된 시간표 안에서 진행됨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무질서하게 세상을 다루지 않으시며, 악의 세력조차 그분의 섭리 아래 제한적으로 활동합니다. 이러한 묘사는 하나님의 주권과 정밀함을 다시 한 번 강조하는 부분입니다.
이백만 마병대와 불, 연기, 유황 (16–19절)
16절부터는 네 천사에 의해 풀려난 세력으로 묘사되는 이백만 마병대에 대한 묘사가 시작됩니다. “그들의 수는 이만만이라”고 표현되며, 이는 문자적 수치라기보다는 상징적 과장법(hyperbole)으로, 그 규모의 어마어마함을 보여주는 표현입니다. 전쟁의 공포와 심판의 강도를 극대화하는 상징입니다.
17절에서 요한은 그 환상 속 말들과 탄 자들의 형상을 묘사합니다. 불 붉은 색, 자주 빛, 유황 빛 흉갑을 입었으며 말들의 머리는 사자 같고, 입에서는 불과 연기와 유황이 나옵니다. 이는 문자적 전쟁의 말이 아니라, 죽음을 퍼뜨리는 초자연적 존재들로서 심판의 도구임을 보여줍니다. 말들의 입에서 나오는 세 가지, 불(πῦρ), 연기(καπνός), 유황(θεῖον)은 성경에서 하나님의 심판과 관련된 상징입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에서도 유황이 등장했고(창 19:24), 불과 유황은 종말론적 형벌의 주요 도구입니다.
18절은 이 세 가지 재앙으로 인류 삼분의 일이 죽임을 당했다고 기록합니다. 이 심판은 전 세계적인 재앙이며, 이미 계 8장에서도 등장했던 '삼분의 일'이라는 제한적 표현을 반복함으로써, 아직도 완전한 심판이 아닌 회개의 기회를 남겨두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19절은 마병대의 말들에 대해 다시 묘사하며, 그들의 권세는 입과 꼬리에 있음을 강조합니다. 꼬리는 뱀과 같고, 머리가 있어 해함을 준다고 말합니다. 이는 악의 세력이 앞에서만이 아니라 뒤에서도 공격하고 미혹한다는 상징으로, 거짓과 미혹의 교묘함을 암시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단순한 물리적 파괴가 아니라, 미혹과 혼란을 통한 심리적·영적 파괴를 포함합니다.
회개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탄식 (20–21절)
20절부터는 이처럼 무서운 심판을 겪고도 회개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평가가 이어집니다. "이 재앙에 죽지 않고 남은 사람들은 손으로 행한 일을 회개하지 아니하고…" 라고 기록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심판이 회개를 자동으로 일으키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인간의 마음은 단순히 고난으로는 바뀌지 않으며, 성령의 감화가 없이는 그 완악함이 깨뜨려지지 않습니다.
그들이 회개하지 않은 행위들은 우상숭배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금, 은, 동, 돌, 나무로 만든 우상들”은 구약에서도 반복적으로 비판된 영적 음란과 반역의 상징입니다. 이 우상들은 “보지도 듣지도 걷지도 못하는 것”으로, 생명도 감각도 없는 허상을 섬기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보여줍니다. 회개 없는 신앙은 결국 거짓 신앙과 우상숭배로 흐르게 됩니다.
21절에서는 회개하지 않은 죄악들을 더 구체적으로 나열합니다. 살인, 복술(φαρμακεία – 약물 중독이나 주술 행위 포함), 음행, 도둑질. 이는 십계명의 후반부와 유사한 구성으로, 공공 윤리와 도덕의 붕괴를 뜻합니다. 특히 '복술'은 고대 사회에서 종교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기에, 단순한 주술이 아닌 왜곡된 영성의 표현으로 볼 수 있습니다. 결국 이 본문은, 하나님의 심판은 결코 인간의 윤리적 각성이나 도덕 개혁을 이끌 수 없으며, 오직 성령의 역사와 말씀의 진리만이 참된 회개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메시지를 강조합니다.
마무리
요한계시록 9:13–21의 여섯째 나팔 심판은 단순히 죽음과 재앙의 확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가 인류의 완악함 앞에 더는 유예되지 않는 순간을 보여줍니다. 유브라데에서 풀려난 마병대는 상징적으로 거대한 악의 세력이며, 하나님께서 정한 시간 안에서 제한적으로 활동하며 심판을 수행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비극은 이 모든 심판을 보고도 사람들이 회개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 본문은 종말의 공포를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 회개를 촉구하는 하나님의 자비로운 외침입니다. 지금이야말로 그 음성에 귀 기울이고 돌이킬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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