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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선지서

이사야 53장 12절

by 파피루스 2025. 4.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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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을 의롭게 한 고난받는 종의 승리

이사야 53장 12절은 고난받는 종의 사역에 대한 하나님의 최종 선언이며, 종의 낮아짐과 철저한 순종이 결국 높아짐과 승리로 연결된다는 구속사의 대미를 장식하는 구절입니다. 본문은 종의 희생이 헛되지 않았음을 선포할 뿐 아니라, 그 희생이 어떻게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었고, 그에 따라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를 높이시는지를 보여 줍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그리고 그분의 중보 사역의 영광스러운 결말을 함께 목도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에게 존귀한 자와 함께 분깃을 받게 하며

본문은 “그러므로”라는 단어로 시작됩니다. 히브리어로 ‘לָכֵן’(lakhen)은 단순한 연결어가 아니라, 앞서 말한 모든 고난과 수고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이자, 종의 헌신에 대한 하늘의 보상이라는 전환점입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뜻에 철저히 순종한 종을 높이십니다. 이는 단지 보상의 개념이 아니라, 하나님의 정의와 영광의 실현입니다.

 

“그에게 존귀한 자와 함께 분깃을 받게 하며”라는 표현에서 ‘분깃’(חֵלֶק, cheleq)은 전리품, 몫, 상속 등의 의미를 지닌 단어입니다. 전쟁 이후 승리자들이 전리품을 나누듯, 고난받은 종에게도 그 수고에 합당한 몫이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존귀한 자들’(רַבִּים, rabbim)은 구약에서는 일반적으로 강한 자들, 군대의 장수들을 의미할 수 있지만, 신학적으로는 하나님 나라에서의 승리를 함께 누릴 자들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고, 그 권세는 하늘과 땅의 모든 것 위에 주어졌습니다(마 28:18). 이는 히브리서 1장 3절에서도 “그는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는 표현으로 강조됩니다. 그분의 높아지심은 단지 위치의 상승이 아니라, 구속 사역의 완성과 그 영광스러운 인정입니다.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리니

이어서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리니”라는 말씀은 승리자의 영광을 더욱 구체적으로 묘사합니다. 여기서 ‘탈취한 것’(שָׁלָל, shalal)은 전쟁에서 얻은 전리품을 뜻하며, 이는 단지 물질적 보상이 아니라 영적 승리를 상징하는 표현입니다. ‘나눈다’(יַחֲלֹק, yachaloq)는 함께 소유함을 뜻하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얻으신 승리를 성도들과 함께 나누신다는 의미로 확장됩니다.

 

에베소서 4장 8절은 “그가 사로잡힌 자들을 사로잡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고 말합니다. 이 말씀은 이사야 53장 12절과 직결되는 구절로서, 예수님이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승리한 왕으로서 그 영광을 백성들과 나누신다는 뜻입니다. 이 나눔은 단지 상급의 분배가 아니라, 복음의 전파, 성령의 선물, 교회의 탄생으로 이어지는 신약적 성취입니다.

 

강한 자는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기도 하며, 동시에 그분 안에서 강하게 된 성도들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가장 약한 자처럼 죽으셨지만, 부활을 통해 가장 강한 자가 되셨습니다. 그 승리는 우리가 싸우지 않고 얻은 승리가 아니라, 그분이 홀로 싸워 이기시고 우리에게 나누어 주신 은혜의 전리품입니다.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본문은 다시 고난받는 종의 사역으로 시선을 돌립니다. “이는”이라는 접속어는 종이 영광을 얻은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사용된 것으로, 그의 고난이 단지 고난으로 끝나지 않고, 반드시 결과를 낳았음을 보여줍니다.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라는 표현은 자발적인 희생을 강조합니다. 여기서 ‘버리다’(עָרָה, arah)는 자신을 쏟아붓다, 완전히 내어주다라는 의미로,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자신의 생명을 스스로 내어주신 것을 표현합니다.

 

요한복음 10장 18절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아무도 내 생명을 빼앗지 못하나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예수님의 죽음은 수동적인 피살이 아니라, 능동적인 자기 헌신이었습니다. 이 희생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철저한 순종이었습니다. ‘사망에 이르게 하며’는 예수님의 죽음이 단순한 생명의 종료가 아니라,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완전히 감당하신 대속의 죽음이었음을 암시합니다.

이 죽음은 인간의 눈에 보기에는 실패처럼 보일 수 있으나,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승리의 절정이었습니다. 고난받는 종은 죽음을 통과하여 부활로 나아갔고, 그 길이 바로 많은 이들을 구원하는 생명의 길이 되었습니다. 이는 곧 복음의 중심이자, 신앙의 본질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이 자기희생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았음이라

이사야는 고난받는 종이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았다’고 기록합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실제 죽음 상황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누가복음 22장 37절에서 예수님은 스스로 이 말씀을 인용하시며, “내가 범죄자 중에 헤아림을 받았나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는 십자가에서 두 강도 사이에 못 박히셨고, 사람들은 그를 죄인으로 여겼습니다.

 

‘헤아리다’(נָשָׁב, nashab)는 셈하다, 포함시키다의 뜻으로, 예수님이 단순히 그들과 함께 있었다는 물리적 의미가 아니라, 그들과 동일시되셨음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는 죄 없으신 분이셨지만, 철저히 죄인의 자리로 내려오셨고, 죄인의 몫을 감당하셨습니다. 이는 고린도후서 5장 21절의 말씀,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이라는 구절과 일치합니다.

이 동참은 단순한 연민이 아닙니다. 그것은 죄를 실제로 담당하신 대속의 자리였습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심에도 불구하고, 죄인의 처벌을 받으심으로써, 우리에게 의인의 자리를 주셨습니다. 이 놀라운 교환이 바로 십자가에서 이루어진 복음의 핵심입니다.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이사야 53장의 마지막 구절은 고난받는 종의 사역을 요약하며, 그의 중보적 사명을 부각합니다.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며”라는 말씀은 단지 죄의 총량을 대신 졌다는 의미가 아니라, 각 사람의 죄를 구체적으로 짊어지셨다는 뜻입니다. ‘담당하다’(נָשָׂא, nasa’)는 짐을 메고 이동하는 것을 뜻하는 동사로, 레위기의 속죄 제사에서 대제사장이 백성의 죄를 전가시키고 염소가 그것을 짊어지고 광야로 가는 장면을 연상시킵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죄를 상징적으로 처리하신 것이 아니라, 실제로 짊어지셨습니다. 그는 죄인의 자리로 내려오셨고, 죄인의 벌을 받으셨으며, 그 대가를 온전히 치르셨습니다. 이로써 죄의 문제가 단번에 해결되었고, 하나님의 의가 만족되었습니다.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는 표현은 누가복음 23장 34절에서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하신 기도,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라는 말씀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는 고통 중에도 자기를 죽이는 자들을 위해 중보하셨습니다. 이는 대제사장의 사역을 완성하신 구속자의 모습입니다. 히브리서 7장 25절은 “그는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의 중보는 단지 십자가 위에서만 끝난 것이 아니라, 부활 후에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는 하늘 보좌 우편에서 지금도 우리를 위해 간구하십니다. 그의 중보는 실패한 죄인들을 의인으로 세우며, 연약한 자들을 끝까지 붙드시는 은혜의 통로입니다.

 

결론

이사야 53장 12절은 고난받는 종의 사역이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영광과 구속의 완성으로 연결된다는 선언입니다. 그는 철저히 낮아졌고, 죄인으로 여겨졌으며, 죽기까지 순종하셨지만, 하나님은 그를 높이시고 그와 함께 하늘의 유업을 나누게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 영혼을 쏟아부어 사망에 이르렀고, 그 대가로 수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그 대속의 열매로 구원받은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의 승리에 동참할 뿐 아니라, 그의 고난에도 참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의 이름을 높이고, 그의 복음을 전하며, 그의 중보적 사역을 이 땅에서 드러내는 삶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 말씀 앞에서 우리는 다시 한 번 고백합니다. “주님, 주의 고난이 저를 살렸습니다. 주의 순종이 저의 의가 되었습니다. 주의 승리가 저의 소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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