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이사야 53장 7절은 고난받는 종,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과 침묵의 깊이를 보여주는 구절입니다. 이 말씀은 단지 고난에 대한 묘사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완전히 복종하신 그리스도의 성품을 드러내며, 그 순종이 어떻게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하는지를 설명합니다. 고통 앞에서 말없이 침묵하신 그리스도의 모습은, 인간적인 본능을 초월한 신적 인내이며, 하나님의 구속계획에 철저히 동의하신 하나님의 아들의 결단이었습니다. 이 구절을 통해 우리는 십자가를 향한 예수님의 발걸음이 얼마나 고요하면서도 영광스러웠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학대를 당하였으나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으며
"그가 학대를 받아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으며"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겪으신 고난의 성격과 그에 대한 반응을 동시에 보여줍니다. ‘학대’(נִגַּשׂ, niggas)는 억압, 학살, 강제적인 압박을 의미하는 말로, 폭력적인 강제성과 불의한 고통이 담겨 있는 단어입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받으신 종교적, 정치적 폭력 모두를 포함합니다.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불의한 재판과 로마의 정치적 희생양으로 내몰리신 예수님의 현실이 이 한 단어에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반응입니다.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으며'(וְלֹא יִפְתַּח פִּיו, velo yiftach piv)는 단순히 말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변호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이는 고통을 참는 차원이 아니라, 고통을 받아들이는 차원입니다. 예수님은 억울함을 호소하지 않으셨고, 자신을 방어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이는 자신의 고난이 아버지의 뜻 안에 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26장과 27장에서 우리는 예수님이 빌라도 앞에서도 거의 침묵하셨고, 자신에게 쏟아지는 거짓 고소에도 아무 대답하지 않으셨음을 봅니다. 이는 단순한 인간적인 침묵이 아닙니다. 이는 구속사의 침묵입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자신을 포기하시고, 어린 양처럼 죽음을 향해 나아가셨습니다.
이 침묵은 곧 순종이었습니다. 빌립보서 2장 8절에서 바울은 예수님의 성육신과 십자가 죽음을 가리켜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고난의 의미를 아셨고, 그것이 우리를 위한 희생이라는 것을 분명히 이해하셨습니다. 그렇기에 그 침묵은 무력함이 아니라, 능동적인 순종의 표현이었습니다.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같이
"그는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같이"
이 말씀은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을 상징적으로 묘사한 가장 유명한 표현 중 하나입니다. ‘도수장’(לַטֶּבַח, lattevach)은 도살장이며, ‘끌려가는’(יוּבָל, yuval)은 능동이 아니라 수동적인 수동태로 쓰여, 자신이 원해서가 아니라 외부의 힘에 의해 이끌려가는 모습을 그립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경우, 그는 수동적으로 끌려가신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 길을 선택하신 능동적 순종 속의 수동입니다.
‘어린 양’(כֶּשֶׂב, kesev)은 구약 제사에서 가장 자주 사용되는 제물이며, 유월절의 어린 양을 상징적으로 떠올리게 합니다. 출애굽기 12장에서 유월절 어린 양은 죽음을 넘어서는 구원의 표징이었습니다. 그 피가 문설주에 발려졌을 때, 죽음의 사자가 지나갔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 유월절 어린 양으로 오셨습니다. 요한복음 1장 29절에서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보며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선언합니다.
그리스도는 제물이셨습니다. 그는 단순히 피해자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우리 죄를 대신 지고 죽음을 향해 걸어가신 제사장이자 제물이셨습니다.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은 침묵하고 있지만, 그 침묵 속에는 죄인을 향한 사랑이, 인류를 위한 헌신이, 하나님을 향한 순종이 가득 차 있습니다.
이사야는 여기서 예수님의 구속 사역을, 대속 제사와 연결된 의식 속에서 묘사하고 있습니다. 제물은 말하지 않습니다. 그저 잡혀 죽습니다. 그러나 이 어린 양은 스스로 자신을 내어 주십니다. 요한복음 10장 18절에서 예수님은 "아무도 내 목숨을 빼앗지 못하나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강요당한 죽음이 아니라, 선택하신 희생입니다.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양이 그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함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이 표현은 앞선 어린 양의 이미지보다 더 구체적인 정서를 담고 있습니다. ‘털 깎는 자 앞에서’(לִפְנֵי גֹזְזֶיהָ, lifnei gozezeha)는 양이 자신의 털을 빼앗기는 순간, 무기력하게 순종하는 장면입니다. 일반적으로 양은 털을 깎일 때도 별다른 반항 없이 조용히 있습니다. 이 이미지는 십자가 앞에서의 예수님의 모습과 오버랩됩니다.
‘잠잠하다’(נֶאֱלָם, ne’lam)는 입을 다물고 말하지 않는다는 뜻뿐 아니라, 내면의 고요함과 인내를 함께 의미합니다. 그는 고통 속에서도 조용히 그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입을 열지 아니하였다’는 반복적인 표현은 단순히 물리적인 침묵이 아니라, 십자가 사역의 본질을 상징하는 구속적 침묵이었습니다.
이 장면은 누가복음 23장, 마가복음 15장에서 반복해서 등장합니다. 예수님은 여러 가지 고소를 당하셨고, 거짓 증언에 시달리셨지만, 거의 대부분 침묵으로 일관하셨습니다. 이는 억울해서 말하지 않는 침묵이 아니라, 자기 백성을 위한 중보자의 침묵이었습니다. 제사장이 대속 제물을 바칠 때, 동물을 대신 죽게 하며 그 죄를 전가했듯, 예수님은 모든 죄를 짊어지고 입을 열지 않으셨습니다.
신약의 사도들은 이 구절의 성취가 예수님의 삶과 죽음 속에서 이루어졌음을 강조합니다. 사도행전 8장에서 에디오피아 내시가 이사야 53장을 읽다가 빌립의 설명을 통해 예수님을 만나는 장면은 이 말씀의 실현이 복음을 어떻게 전달하고 적용하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본문입니다. 그 구절을 통해, 침묵하신 예수님은 말씀하시는 구주가 되십니다.
결론
이사야 53장 7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 속에 담긴 순종의 깊이, 침묵의 의미, 대속의 본질을 우리에게 선명히 보여줍니다. 그는 학대당하셨고,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침묵하셨고, 털 깎는 자 앞에서도 조용하셨습니다. 그 침묵은 단지 말하지 않음이 아니라, 구원의 목적을 향해 온전히 순종하신 고요한 복종이었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그 침묵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침묵은 죄에 대한 저항이 아니라, 사랑에 대한 복종이었고, 죽음에 대한 항복이 아니라 생명에 대한 헌신이었습니다. 그는 입을 열지 않으셨지만, 그 삶 전체로 복음을 외치셨습니다. 우리는 그 침묵 속에서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말해야 한다면, 그 침묵을 기억하는 고백으로 말해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야 한다면, 그 침묵으로 열어주신 생명의 길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침묵이 우리의 구원이었음을 기억하며, 오늘도 그분의 발자취를 따르는 삶으로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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