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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행전

마가복음 11장 주해 묵상

by 파피루스 2025. 3.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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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11장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기 위해 감람산 벳바게에서 제자들에게 어린 나귀를 가져오게 하십니다. 제자들이 순종하여 나귀를 가져오고, 예수님은 그 위에 올라타셔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십니다. 많은 무리가 겉옷과 나뭇가지를 길에 펴며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라고 외칩니다. 그 다음 날, 예수님은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시고, 성전에 들어가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십니다. 이는 성전이 기도하는 집이 아닌 강도의 소굴이 되었음을 질타하신 것입니다. 돌아가는 길에 제자들은 무화과나무가 말라버린 것을 보고 놀라고, 예수님은 하나님을 믿고 기도에 있어 믿음을 가르치십니다. 사람들의 질문에 예수님은 세례 요한의 권위 문제를 반문하시며, 대답을 유보하게 하십니다. 이 장은 예수님의 공적 사역의 전환점으로서, 왕으로 오신 예수님, 의로우신 심판자이자 교회의 정결자이신 그리스도의 면모를 드러냅니다.

마가복음 11장 구조

  1. 예루살렘 입성 (11:1-11)
  2.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심 (11:12-14)
  3. 성전을 정결케 하심 (11:15-19)
  4. 무화과나무가 마름 (11:20-26)
  5. 예수님의 권위에 대한 논쟁 (11:27-33)

마가복음 11장 중요한 주제 해설

마가복음 11장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며 공적 사역의 정점에 도달하는 장입니다. 첫째, 예수님의 입성은 메시아로서의 공개적 선언입니다. 이는 스가랴 9:9의 예언을 성취하는 행위로서, 겸손한 왕이 나귀를 타고 오심으로 구속의 왕권을 드러냅니다. 둘째, 무화과나무 저주는 단순한 나무에 대한 분노가 아니라, 외형만 있고 열매 없는 이스라엘 종교 체계에 대한 경고입니다. 성전 정결 사건과 연결되어, 하나님께 드려져야 할 예배가 타락하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셋째, 무화과나무가 마른 것을 보며 예수님은 믿음의 기도를 강조하십니다. 참된 신앙은 외형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신뢰에서 나오며, 기도는 그러한 믿음을 실천하는 삶의 핵심입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의 권위에 대한 논쟁은 그분이 어떤 권세로 사역을 하시는지를 묻는 자들에게 진정한 권위는 하늘로부터 온다는 점을 반문으로 돌려주심으로 드러내십니다. 이 장은 겉모양의 신앙을 넘어, 내면의 순전함과 믿음의 열매를 요구하시는 예수님의 메시지를 깊이 새기게 합니다.

마가복음 11장 주해 및 묵상

예루살렘 입성 (11:1-11)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기 전, 벳바게와 베다니에 가까이 이르러 제자 둘을 보내어 아무도 타보지 않은 나귀 새끼를 가져오게 하십니다. 이는 스가랴 9장 9절의 예언을 성취하는 행동으로, 겸손하고 평화로운 왕으로 오시는 메시아의 모습을 나타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께 나귀를 내어 드리고, 많은 이들이 겉옷과 나뭇가지를 길에 펴며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11:9)라 외칩니다. 이는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 곧 메시아로 환영한 장면이지만, 그 기대는 정치적 해방자로서의 오해에 기반한 것이었습니다.

칼빈은 이 장면을 “예수님께서 의도적으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심은 자신이 진정한 메시아이심을 밝히기 위함이며, 동시에 장차 있을 십자가 죽음을 향한 결연한 행보”라 해석합니다. 어거스틴 또한 “백성들의 환호는 진심이었으나, 이해는 부족했다”고 말하며, 메시아의 정체성에 대한 오해가 십자가 사건으로 이어짐을 지적합니다. 예수님은 성전 안을 둘러보시고 날이 저물어 다시 베다니로 돌아가십니다. 이는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기 전의 마지막 점검처럼 느껴지며, 다음 날 벌어질 사건을 예고합니다.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심 (11:12-14)

다음 날 아침, 예수님은 시장하셔서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가까이 가시나 열매를 찾지 못하십니다. 이는 무화과철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잎이 있어 기대를 품게 한 나무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 나무를 향해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먹지 못하리라"(11:14) 하시며 저주하십니다.

이 사건은 단지 자연에 대한 분노가 아니라, 상징적인 행위입니다. 무화과나무는 종종 이스라엘을 상징하며, 외형은 무성하지만 열매 없는 신앙, 곧 형식적 종교생활을 책망하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칼빈은 이를 “신앙의 열매 없는 위선자들에 대한 강한 경고”라 하며, 성도는 외적 경건이 아닌 참된 열매로 신앙을 증거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예수님의 이 저주는 뒤이은 성전 정결 사건과 함께 이해될 때, 신앙공동체 전체에 대한 각성과 경고로 읽힙니다.

성전을 정결케 하심 (11:15-19)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도착하시자 성전에 들어가셔서 매매하는 자들과 환전상들의 상을 뒤엎으시고,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엎으십니다. 예수님은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11:17)라며 질책하십니다.

이 장면은 매우 격정적이고 상징적인 사건으로, 단순히 상업행위에 대한 반감이 아닌, 성전의 본질적 목적이 상실되었음을 드러냅니다. 기도의 집인 성전이 인간의 탐욕과 형식적 예배로 더럽혀졌고, 이는 하나님의 임재와 관계없는 공간이 되었다는 비판입니다. 어거스틴은 이 사건을 “영적 부패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선언”이라 하였고, 칼빈은 “하나님의 교회는 본질적으로 기도의 장소, 말씀의 터전이어야 하며, 세속화될 수 없다”고 강조합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이 사건 이후 예수님을 죽일 계획을 더욱 구체화하지만, 무리를 두려워하여 때를 보게 됩니다. 예수님의 행동은 성전 제도의 종말을 암시하며, 그분 자신이 새 성전, 곧 하나님의 임재의 중심이 되실 것을 예고하는 사건이기도 합니다.

무화과나무가 마름 (11:20-26)

다음 날 아침, 제자들은 어제 예수님이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말라버린 것을 보고 놀랍니다. 이에 예수님은 믿음의 중요성을 강조하시며, "하나님을 믿으라"(11:22)고 하시고, 산더러 바다에 던지우라 해도 의심하지 않고 믿으면 그대로 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기도할 때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면 받은 줄로 믿으라고 하시며,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죄를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라 하십니다.

이 장면은 단순한 기적이 아니라, 제자들에게 주어진 권세와 신앙생활의 본질이 믿음과 기도, 그리고 용서에 있음을 가르치는 핵심 교훈입니다. 칼빈은 “기도는 성도의 권리이자 의무이며, 믿음 없이는 기도의 능력이 드러날 수 없다”고 말하며, 기도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의 표현이라고 강조합니다. 또 용서의 조건은 단순한 행위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과 연결된 심령의 문제임을 깨닫게 합니다.

예수님의 권위에 대한 논쟁 (11:27-33)

예수님이 성전에 다시 들어가 가르치실 때,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고 묻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그들에게 반문하십니다.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냐 사람에게서냐?"(11:30). 그들은 만약 하늘로부터라 말하면 왜 믿지 않았느냐는 질문을 받을 것이고, 사람에게서라 하면 무리가 두려워 답하지 못합니다. 결국 그들은 "우리가 알지 못하노라"고 대답하고, 예수님도 그들에게 자신이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말하지 않으십니다.

이 장면은 권위의 본질에 대한 신학적 논쟁을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권위는 사람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반면, 종교지도자들의 권위는 사람의 인정을 기반으로 한 외형적 권위였습니다. 칼빈은 "진정한 권위는 성령의 사역을 통해 나타나며, 사람의 권세는 본질적으로 무력하다"고 말합니다. 이는 모든 종교적 사역과 지도력이 하나님의 위임 아래 있을 때에만 유효하다는 중요한 원리를 보여줍니다.

전체 결론

마가복음 11장은 예수님의 공적 사역의 절정과 함께, 이스라엘의 종교 체계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담고 있습니다. 무화과나무와 성전 정결 사건은 열매 없는 신앙과 타락한 예배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하며, 믿음과 기도의 본질, 그리고 하나님의 권위에 순종하는 자세를 강조합니다. 예수님은 평화의 왕으로 입성하셨지만, 타협 없는 진리와 회복을 요구하십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도 외형이 아닌 참된 신앙의 열매를 맺고 있는지 점검하며, 믿음과 기도로 주님 앞에 겸손히 나아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모습은 단순한 행진이 아니라 구속사 전체의 방향을 결정짓는 상징적 행위입니다. 나귀를 타고 오신 예수님은 평화의 왕으로서 세상의 권력과는 다른 방식으로 다가오십니다. 사람들은 열광하며 그분을 맞이하지만, 그 외침 뒤에 자리한 기대는 세속적 메시아상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바로 다음 날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사건은 성전 정결과 연결되어 해석됩니다. 겉으로는 번성한 신앙과 종교 체계 안에 실상은 열매가 없고, 하나님의 뜻과 멀어진 상태를 예수님은 책망하십니다. 성전에서 장사치들을 내쫓으신 예수님의 모습은 하나님의 집을 회복하시려는 심판자의 모습이자, 기도의 공동체로서의 교회를 되살리려는 회복자의 모습입니다. 다음 날 무화과나무가 마른 것을 본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믿음으로 기도할 때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음을 가르치십니다. 기도는 형식이 아니라 전적인 신뢰이며, 용서 없는 기도는 응답을 기대할 수 없다는 주님의 말씀은 신앙생활의 중심이 무엇인지 묻게 합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께 권위를 묻는 종교 지도자들에게 그분은 되묻는 방식으로 답을 유보하십니다. 이는 권위가 사람으로부터가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임을 나타내며, 모든 신앙과 사역의 권위는 철저히 하나님께 근거해야 함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겉모습이 아니라 중심의 진실함을 보십니다. 우리 역시 신앙의 외형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열매 있는 삶을 살아가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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