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복음-행전

마가복음 10장 주해 묵상

by 파피루스 2025. 3. 26.
반응형

마가복음 10장

예수님께서는 유대를 지나 요단 강 건너편으로 가셔서 다시 무리를 가르치십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시험하며 이혼에 대해 묻자, 예수님은 창조 질서를 근거로 남자와 여자가 한 몸을 이루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 하시며 이혼을 금하십니다. 이어서 제자들이 아이들을 막는 장면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라 하시며 아이들을 안고 축복하십니다. 한 부자 청년이 영생에 대해 묻지만 재물에 대한 집착으로 돌아가고,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이 사람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하지만 하나님으로는 가능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의 보상에 대한 질문에 예수님은 이 세상과 내세에서 받을 축복을 약속하십니다. 예수님은 세 번째로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예고하시고, 야고보와 요한의 영광에 대한 요구에는 섬김의 길이 참된 크기의 길임을 강조하십니다. 여리고에서 맹인 바디매오를 고치심으로 이 장은 예수님을 향한 간절한 믿음이 어떻게 응답받는지를 보여주며 마무리됩니다.

마가복음 10장 구조

  1. 이혼에 대한 가르침 (10:1-12)
  2. 어린아이와 하나님 나라 (10:13-16)
  3. 부자 청년과 영생의 문제 (10:17-31)
  4. 세 번째 수난 예고 (10:32-34)
  5. 야고보와 요한의 요구와 섬김의 본 (10:35-45)
  6. 여리고에서 바디매오를 고치심 (10:46-52)

마가복음 10장 중요한 주제 해설

이 장의 핵심 주제는 하나님 나라의 가치와 그에 합당한 제자도의 본질입니다. 먼저, 예수님은 결혼을 인간의 편의가 아닌 하나님의 창조 질서 안에서의 언약으로 정의하시며, 거룩한 연합의 무게를 강조하십니다. 이어지는 어린아이에 대한 말씀은 하나님의 나라가 순전함과 의존성을 가진 자들에게 열려 있음을 보여줍니다. 부자 청년의 이야기는 외적 율법 준수가 구원을 보장하지 않으며, 진정한 제자도는 자신을 부인하고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는 믿음을 요구한다는 점을 드러냅니다. 제자들이 보상을 기대할 때, 예수님은 현세와 내세의 상급을 약속하시되, 첫째와 꼴찌의 전복적 논리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질서를 설명하십니다. 또한 수난 예고와 섬김의 본은 예수님의 삶 자체가 낮아짐과 희생임을 보여주며, 진정한 크기는 섬김에 있다는 제자도의 핵심을 가르칩니다. 마지막으로 바디매오의 치유는 영적 눈뜸의 상징으로, 믿음으로 예수께 나아오는 자에게 구원이 임함을 선언하는 장면입니다.

 

이혼에 대한 가르침 (10:1-12)

예수님께서 유대를 떠나 요단 건너편으로 가시자, 바리새인들이 이혼에 대한 질문으로 시험하려고 다가옵니다. 그들은 모세가 이혼증서를 써 주어 아내를 버리는 것을 허락했음을 근거로 예수님의 입장을 묻습니다. 예수님은 모세의 율법이 이혼을 허락한 것은 인간의 완악함 때문이라 말씀하시고, 창조의 질서를 상기시키십니다.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둘이 한 몸을 이루게 하신 창조 본래의 의도를 강조하시며,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10:9)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구절은 결혼의 신성함과 불가분성을 명확히 밝히며, 그 기초가 단순한 인간 계약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임을 보여줍니다. 칼빈은 이 본문을 해석하며 "결혼은 사회적 관습 이상의 것이며, 하나님 앞에서 신성하게 지켜져야 할 언약이다"라고 말합니다. 또한 교부 요한 크리소스톰은 "이혼을 허용한 모세의 조항은 인간의 죄악성을 고려한 차선의 규례이며, 예수님은 본래 창조주의 의도로 되돌아가게 하신다"고 주석합니다.

결혼이 단지 인간의 결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의해 성립된다는 진리는 오늘날에도 중요한 신학적 원리로서, 가정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결혼 생활 가운데 마주하는 현실의 어려움 속에서도 부부가 이 관계의 신적 근거를 기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린아이와 하나님 나라 (10:13-16)

사람들이 어린아이들을 예수님께 데려오자, 제자들은 이를 막으려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노하시며 말씀하십니다.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10:14).

이 본문은 하나님 나라의 본질이 어떤 자들에게 열려 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말씀입니다. 어린아이는 자격이나 능력이 아니라 전적인 의존과 신뢰로 관계를 맺는 존재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러한 존재가 하나님 나라를 받을 수 있다고 하십니다.

어거스틴은 이 본문을 통해 "신앙은 교리적 이해 이전에 전적인 의탁과 겸손한 수용에서 출발한다"고 보았고, 칼빈 역시 "어린아이의 단순함과 의존성이 신자들이 가져야 할 신앙의 전형이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문은 자신을 낮추는 자, 그리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려는 이에게 열립니다. 제자들이 이를 가로막은 것은 영적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어리석음이었고, 예수님은 그들에게 분명한 교훈을 주십니다.

 

부자 청년과 영생의 문제 (10:17-31)

한 사람이 예수님께 달려와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10:17)라고 묻습니다. 예수님은 먼저 그를 ‘선하다’고 부른 이유를 되묻고, 계명을 지키라 하십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이를 지켰다고 대답합니다. 예수님은 그를 사랑하사 한 가지를 더 요구하십니다.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10:21).

청년은 근심하며 돌아섭니다. 이는 재물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이 사건을 통해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말씀하십니다.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는 표현은, 인간의 조건으로는 불가능한 구원을 하나님은 가능케 하신다는 복음의 핵심을 드러냅니다.

베드로가 모든 것을 버린 자신들을 언급하자, 예수님은 복음과 나를 위하여 버린 자는 현세에서도 백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얻으리라고 약속하십니다. 동시에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10:31)고 말씀하심으로써 하나님 나라의 질서가 세상의 질서와는 반대임을 가르치십니다.

 

세 번째 수난 예고 (10:32-34)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제자들을 따로 데리고 자신의 고난과 죽음, 부활을 다시 예고하십니다.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져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날 것이라는 내용은 세 번째이자 가장 구체적인 수난 예고입니다.

이 구절은 예수님의 고난이 예측 불가능한 사고가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있는 필연적 사명이었음을 보여줍니다. 칼빈은 이 예고에 대해 “그리스도는 자신의 고난을 피하지 않으셨고, 오히려 기꺼이 맞이하셨다”고 말하며, 이를 통해 제자들이 십자가 신학의 진수를 배우도록 의도하신 것이라 해석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미리 알려주시며, 두려움보다는 믿음과 준비된 마음으로 그분의 길을 따르도록 이끄십니다.

 

야고보와 요한의 요구와 섬김의 본 (10:35-45)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께 영광 중 좌우편에 앉게 해달라고 요청합니다. 이는 하나님 나라를 정치적 질서나 세속 권세처럼 오해한 대표적인 장면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요구에 대해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10:38)라고 하시며, 그들이 마셔야 할 고난의 잔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제자들 모두가 이에 분개하자, 예수님은 참된 크기는 섬김에 있다는 가르침을 주십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10:43). 예수님 자신도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셨으며, 많은 사람을 위한 대속물로 자기 목숨을 주기 위해 오셨다고 선언하십니다(10:45).

이 장면은 제자도의 본질을 요약합니다. 교부 이레네우스는 “예수님의 대속적 섬김은 인간의 죄를 대신 짊어지신 하나님의 깊은 사랑의 표현”이라 말하며, 이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향을 분명히 해줍니다. 예수님의 길을 따르는 자는 권세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기꺼이 자신을 내어주는 섬김의 자세를 갖춰야 합니다.

 

여리고에서 바디매오를 고치심 (10:46-52)

예수님께서 여리고를 지나가실 때, 디메오의 아들인 맹인 바디매오가 길가에 앉아 구걸하다가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외칩니다. 주변 사람들이 그를 꾸짖었지만, 그는 더욱 크게 외쳤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부르시고, 바디매오는 겉옷을 벗어 던지고 예수께 달려갑니다.

예수님은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10:51)고 물으시고, 그는 "보기를 원하나이다"라고 응답합니다. 예수님은 그의 믿음을 칭찬하시며, 그의 눈을 뜨게 하십니다. 바디매오는 곧 보게 되어 예수님을 따릅니다.

이 짧은 장면은 매우 중요한 영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바디매오는 육체의 눈이 아니라 마음의 눈으로 예수님을 먼저 본 자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으로 부름으로써, 메시아로 인식하고 믿음으로 나아간 자였습니다. 칼빈은 이 본문을 통해 "참된 믿음은 어떤 방해에도 멈추지 않고 예수께로 나아간다"고 설명합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공적 치유가 맹인의 눈을 뜨게 한 사건이라는 것은, 제자들에게 참된 영적 깨달음을 열어주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의도를 상징적으로 담고 있습니다.

 

전체 결론

예수님은 인간의 관계조차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읽으십니다. 이혼을 묻는 바리새인들에게 율법의 허용을 근거로 삼지 않고 창세기의 창조 목적을 근거로 드십니다. 부부는 결코 사람의 뜻으로 나눌 수 없는 하나님의 결합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하십니다. 이어 제자들이 하찮게 여긴 어린아이를 예수님은 품에 안고 축복하십니다. 이는 하나님의 나라가 권세나 자격이 아니라 순수함과 신뢰로 나아가는 자의 것임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부자 청년은 모든 계명을 지켰다고 했지만 정작 자신이 의지하는 재물은 내려놓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사랑하셨지만, 영생은 율법의 조항이 아니라 예수님을 따르는 삶에 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인간의 불가능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는 가능한 길을 여십니다. 제자들이 버림에 대한 보상을 기대할 때, 예수님은 영적 가족과 생명의 복을 약속하시되, 하나님 나라에서는 뒤에 된 자가 먼저 되는 질서가 있음을 가르치십니다. 영광을 구한 야고보와 요한에게는 십자가의 잔을 묻고, 자신이 온 이유가 섬김과 대속임을 선언하십니다. 가장 마지막에 등장한 맹인 바디매오의 고백은 마가복음 전체의 제자도 요약처럼 보입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는 비록 보이지 않았지만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마음으로 보았고, 믿음으로 고백하였으며, 고침받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눈으로 보고도 깨닫지 못한 제자들보다 오히려 이 맹인의 믿음이 본이 됩니다. 믿음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예수님을 붙잡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728x90
반응형

'복음-행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가복음 12장 주해 및 묵상  (0) 2025.03.26
마가복음 11장 주해 묵상  (0) 2025.03.26
마가복음 9장 주해 및 묵상  (0) 2025.03.26
마 26:1-5 예수님을 죽이려는 음모  (0) 2025.0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