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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행전

마가복음 12:28-34 주해와 묵상

by 파피루스 2025. 3.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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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 중에서 첫째 되는 계명은 무엇이니이까?

마가복음 12:28-34는 예수님께서 한 서기관의 질문에 대답하시는 장면입니다. 이 대화는 단순히 율법의 서열을 묻는 것을 넘어, 율법 전체의 핵심이 무엇인지, 그리고 하나님의 구속사적 뜻이 무엇인지를 드러냅니다. 질문한 서기관은 다른 무리들과 달리 예수님의 지혜에 감동받아 진심으로 묻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단호하고 명확하게 답하십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 말씀은 신명기 6장 4-5절, 즉 유대교에서 가장 중요한 신앙 고백인 쉐마에 근거한 대답입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율법을 나열하지 않으시고, 율법 전체의 본질을 드러내십니다.

이 대화는 단지 한 질문에 대한 답변이 아니라, 구속사 전체의 방향성을 요약하는 선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 그것이 율법의 목적이며, 그리스도의 사역 역시 이 사랑의 완성을 위해 존재합니다.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라

예수님이 인용하신 신명기 6장은 이스라엘의 정체성과 가장 밀접한 본문입니다. 쉐마는 하루에 두 번 유대인들이 암송하던 기도이자 고백입니다. 이 말씀은 단순한 신앙의 외침이 아니라, 하나님과 언약 맺은 백성의 삶 전체를 이끄는 중심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통해 율법의 첫째 되는 계명이란 하나님 사랑임을 선언하십니다.

여기서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라는 표현은 전인격적 헌신을 의미합니다. 헬라어 본문에서 각각의 단어는 인간의 내면과 외면, 지성과 의지, 감정과 행동의 총체를 포괄하는 개념들입니다. 이는 단순한 감정적 사랑이 아니라, 삶 전체를 하나님께 드리는 헌신의 태도입니다.

이 사랑은 단순한 명령 그 이상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기에, 그 사랑에 대한 응답으로 나타나는 사랑입니다. 이 말씀을 개혁주의적으로 해석하면, 인간의 자유의지가 아닌,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에 의한 사랑의 실현입니다. 우리는 본성상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기에, 성령의 내주하심과 중생의 은혜가 없다면 이 명령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계명은 율법이 요구하는 것이지만, 동시에 복음의 능력 안에서만 실현될 수 있는 것입니다.

어거스틴은 이 구절을 해석하며, “하나님을 사랑하라, 그리하면 네가 원하는 대로 하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오해하기 쉬우나, 진정한 하나님 사랑이 있다면 그 사람의 모든 행위는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진짜 하나님 사랑은 그 자체로 윤리적 기준이 되며,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답게 회복시킵니다.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예수님은 첫째 계명을 말하신 후, 둘째 계명도 이에 버금간다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레위기 19장 18절을 인용한 것입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둘로 나눌 수 없는 하나의 계명입니다. 요한일서 4장 20절에서도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형제를 미워하면 그것은 거짓말이라고 단언합니다.

이웃 사랑은 인간 사이의 도덕적 의무로만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은 이 사랑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단순히 친절이나 동정심을 넘어서, 자신을 아끼는 마음으로 타인을 대하라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사랑은 구속사적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인간이 회복된 삶을 살아가는 구체적 증거입니다.

이웃 사랑은 구속의 결과로 나타나는 열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죄에서 건지신 목적은, 단지 죄 사함에 그치지 않고, 우리가 그분처럼 사랑하며 살게 하시려는 데 있습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5장 14절에서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느니라”고 말하며, 그리스도인의 삶은 결국 사랑으로 요약된다고 말합니다.

칼빈은 이웃 사랑을 교회 공동체 안에서 가장 실질적으로 실현된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는 반드시 이웃을 사랑하게 되어 있다고 말하며, 사랑은 교회의 유기적 일치를 이루는 핵심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 사랑은 말로만이 아니라, 실제로 도움이 필요한 자들에게 손을 내미는 구체적 행위로 나타납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함께 묶으신 이유는, 율법의 본질이 결국 관계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가 회복될 때, 비로소 율법은 그 목적을 다하게 됩니다.

하나님 나라에 멀지 아니하도다

예수님의 대답을 들은 서기관은 매우 지혜롭게 반응합니다. 그는 단지 동의하는 것이 아니라, 제사의 형식보다 이 두 계명이 더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제사 중심의 형식주의 종교와 마음의 중심을 중시하는 예배의 차이를 보게 됩니다.

서기관의 고백은 단순한 신학적 이해가 아니라, 예수님의 가르침에 깊이 감동한 신앙의 표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에게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도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표현은 그가 이미 천국 백성이라는 뜻은 아니지만, 진리의 핵심에 가까이 왔음을 의미합니다. 율법의 본질을 꿰뚫어 본 자, 사랑을 율법의 완성으로 받아들인 자는 하나님의 나라를 향한 문턱에 선 사람입니다.

구속사적으로 볼 때,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임한 나라입니다. 그리고 그 나라의 백성은 율법을 문자적으로 지키는 자들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 안에서 율법의 본질인 사랑을 실천하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가까이 간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마음 깊이 받아들여 삶으로 반응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 장면은 율법 논쟁이 단순한 신학적 논쟁을 넘어서, 실제로 하나님 나라에 참여하느냐 아니냐의 문제로 이어지는 중요한 전환점이 됩니다. 예수님은 사랑이라는 본질을 붙잡은 자에게 하나님의 나라의 문턱까지 인도하십니다. 그러나 그 문턱을 넘는 것은 단지 지식이 아니라, 믿음과 회개의 결단입니다.

예수님은 이 대화를 마치신 후 더 이상 누구도 감히 그에게 묻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이는 단순한 침묵이 아니라, 진리 앞에서 모든 인간의 논쟁이 중지되었음을 상징합니다. 사랑은 율법의 핵심이자, 구속의 목적이며, 그리스도인의 존재 이유입니다.

전체 결론

마가복음 12:28-34는 율법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예수님께서 분명히 밝혀주신 말씀입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율법의 뿌리이며, 구속의 목적입니다. 이 사랑은 성령 안에서만 가능한 전인격적 응답이며, 이 사랑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합니다. 사랑은 단순한 명령이 아니라, 복음의 열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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