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복음-행전

마가복음 13:1-8절 주해 및 묵상

by 파피루스 2025. 3. 29.
반응형

무너질 성전과 흔들리지 않을 나라(마가복음 13:1-8)

마가복음 13장은 종말론적 메시지를 담고 있는 예수님의 감람산 강화입니다. 그 시작인 1-8절은 성전의 멸망을 예고하시며, 그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구속사의 진행과 그리스도의 재림을 준비하는 마음을 강조하십니다. 웅장한 건물이 무너진다는 선언은 단지 건축물에 관한 경고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진정한 본질과 영원함을 대비하는 선포입니다. 우리는 이 본문을 통해 구속사 안에서 성전이 어떤 의미를 지니며,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성도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함께 살펴볼 수 있습니다.

무너질 성전: 겉의 영광과 안의 타락

제자 중 한 사람이 감탄하며 말합니다. "선생님이여 보소서 이 돌들이 어떠하며 이 건물들이 어떠하니이까." 이 표현은 단순한 감탄이라기보다, 당시 유대인들의 신앙 중심에 있던 성전의 위엄과 자부심을 드러냅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헤롯 대왕에 의해 확장되고 장엄하게 복원되었으며, 그 돌의 크기와 장식의 정교함은 유대인뿐만 아니라 로마인에게도 경탄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반응은 차갑게 느껴질 정도로 냉정합니다. "네가 이 큰 건물들을 보느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이 말씀은 AD 70년 로마에 의해 실제로 성전이 파괴될 사건을 예언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단지 역사적 사건의 예고로 끝나지 않습니다. 이는 구속사의 큰 전환을 알리는 선언입니다. 성전이 더 이상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중심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참된 성전은 이제 사람의 손으로 지은 건물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십니다.

요한복음 2장에서 예수님은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만에 다시 세우겠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그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한 새로운 성전의 탄생을 예고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마가복음 13장에서의 성전 파괴는 종교 구조의 해체이자, 그리스도를 통한 새로운 시대, 곧 새 언약 공동체의 시작을 의미합니다. 교부 요한 크리소스톰은 이 구절을 해석하며,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돌 위의 제사보다, 성령 안에서 드리는 영적 예배를 기뻐하신다"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성전을 통해 형식과 외형에 매달린 유대인의 신앙을 해체하시고,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완전한 구속을 이루시는 진정한 성전으로 자신을 제시하십니다. 성전의 붕괴는 슬픔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의 서곡이며,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시대의 도래를 뜻합니다.

미혹의 때: 종말의 시작과 성도의 분별력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충격을 받았고, 감람산에서 따로 그분께 질문합니다. “이 모든 일이 이루어지려 할 때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예수님은 곧장 경고하십니다.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이는 종말에 대한 관심이 사람들의 마음을 쉽게 혼란과 거짓으로 끌고 갈 수 있음을 경계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그리스도라 말하는 자들이 많이 일어날 것이라 하시며, 전쟁과 난리의 소문이 들릴 때에도 놀라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단순히 불안한 시대 상황을 예언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도래가 인간의 계산이나 외형적 사건을 통해 증명되는 것이 아님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끝은 아직 아니니라.” 이 구절은 종말의 징조들—전쟁, 지진, 기근 등이 실제로 벌어질 것이지만, 그것이 끝의 본질은 아님을 알려주십니다. 교회사 속에서도 수많은 이단들과 종말론자들이 이러한 사건들을 문자적으로 해석해 성도들을 현혹시킨 예가 많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본질적으로 우리에게 분별을 요구하십니다. 종말은 사건의 나열이 아니라, 구속사의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하나님의 시간입니다.

칼빈은 이 본문을 해석하며, "주님은 우리로 하여금 외부 사건이 아닌, 오직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종말의 의미를 찾게 하신다"고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은 갑작스럽게 올 것이며, 인간의 계산이나 예측으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계속해서 깨어 있고, 말씀 안에 뿌리내린 채 살아가야 합니다.

산고의 시작: 고통 가운데 자라는 소망

8절에서 예수님은 “이것은 재난의 시작이니라”고 말씀하시며, 그것을 “산고”에 비유하십니다. 이는 매우 중요한 비유입니다. 산고는 고통스러운 과정이지만, 그것은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위한 전조입니다. 종말의 고통은 무의미한 파괴가 아니라, 새 하늘과 새 땅을 향한 진통입니다.

이 비유는 구속사의 흐름 속에서 세상의 종말이 단지 멸망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가 충만히 임하는 출산의 고통이라는 관점으로 확장됩니다. 교부 오리게네스는 이 구절을 주석하며, “하나님의 나라는 피할 수 없는 고통의 과정을 통해 세상 가운데 태어난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종말의 징조를 말씀하시며 산고에 비유하신 이유는, 종말이 절망이 아니라 소망임을 우리로 하여금 기억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성도는 산고 중에도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고통 뒤에 오는 영광이 있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8장에서 바울은 피조물이 탄식하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합니다. 고통은 하나님의 구속이 다가오고 있다는 증거이며, 하나님의 백성은 그 고통 속에서도 소망을 품고 살아갑니다.

이러한 시각은 우리가 종말을 단지 두려워하는 시간이 아니라, 더 깊이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시간으로 받아들이도록 인도합니다. 종말은 파멸의 시간이 아니라, 완성의 시간입니다. 산고는 아픔이지만 생명을 낳습니다. 마찬가지로 모든 역사적 격변과 고난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준비의 과정이며, 성도는 이 시간을 두려움이 아니라 믿음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전체 결론

마가복음 13:1-8은 성전의 멸망을 통해 외형적 종교 구조의 한계를 드러내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성전과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되었음을 선포합니다. 종말의 징조들은 인간의 예측이나 불안으로 접근할 수 없는 하나님의 구속사적 흐름 속에 있으며, 고통은 오히려 새로운 나라의 탄생을 알리는 산고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두려움이 아니라 분별과 소망으로 이 시대를 살아가야 합니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