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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설교문

부활부터 오순절까지, 맛디아를 사도 세우다

by 파피루스 2025. 4.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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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자리를 메우는 기도, 다락방에 내리는 하나님의 숨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부활과 오순절 사이, 어찌 보면 시간으로는 단 열흘에 불과하지만, 믿음으로는 인류 전체의 역사가 농축된 깊은 기다림의 순간으로 들어갑니다. 본문은 사도행전 1장 12절부터 26절까지입니다. 승천하신 예수님, 떠난 유다의 자리, 남겨진 제자들, 그리고 기도하며 기다리는 다락방. 이 장면은 단지 과거의 사건이 아닙니다. 이 장면은 오늘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영적 지침서이며, 상실 속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부르심을 회복하고 새롭게 서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신적 내러티브입니다.

 

“제자들이 감람원이라 하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돌아오니… 그들이 들어가 유하는 다락방으로 올라가니…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그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 (사도행전 1:12-14)

 

내려온 발걸음, 다시 시작되는 순종의 여정 (사도행전 1:12)

"감람원이라 하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돌아오니" (사도행전 1:12) 이 구절은 단지 공간의 이동이 아니라, 믿음의 전환점이 됩니다. 제자들은 하늘을 응시하던 감람산에서, 땅을 밟는 예루살렘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주님은 이미 하늘로 올려지셨고, 시선은 구름 너머를 향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말씀하셨습니다. "예루살렘에 머물러라." 그 말씀 한마디가 제자들의 방향을 결정지었습니다.

 

신앙은 감정을 따르지 않습니다. 신앙은 말씀을 따릅니다. 순종은 눈물이 마르기도 전에 시작되어야 합니다. 그들이 감람산에서 예루살렘까지 내려오는 길은 짧았지만, 마음의 길은 깊고 길었습니다. 떠난 주님을 그리워하면서도, 남겨진 사명을 붙들고 걷는 그 길은 모든 성도의 길이기도 합니다. 오늘도 주님은 우리 각자에게 말씀하십니다. “지금은 감정보다 믿음으로 걸을 시간이다.”

 

다락방, 찢어진 마음이 하나 되는 자리 (사도행전 1:13-14)

“그들이 들어가 유하는 다락방으로 올라가니…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 (사도행전 1:13-14) 다락방은 흔들리던 믿음이 다시 엮어지는 공간이었습니다. 거기에는 겁쟁이였던 베드로도 있었고, 의심하던 도마도 있었으며, 조용히 울고 있던 마리아도 있었습니다. 각자 다른 기억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의 기도 안에서 모였습니다.

 

그들은 과거의 실패를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서로를 비난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전혀 기도에 힘썼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전혀’라는 단어는 완전한 집중, 끊임없는 지속, 영혼의 몰입을 의미합니다. 그들의 기도는 조용한 내면의 눈물과 간절한 기다림이 섞인 울림이었습니다. 다락방은 단지 위로를 받는 장소가 아니었습니다. 다락방은 사명을 임신하는 자궁과 같았습니다. 교회가 거기서 태어났고, 성령이 그 위에 머물게 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 다락방은 필요합니다. 내면의 어지러움, 공동체의 불협화음, 사명의 불확실함을 안고 함께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다름을 같음으로 만드는 유일한 도구이며, 각자의 상처를 공동의 기대감으로 전환시키는 하나님의 기적입니다.

 

결핍을 정직하게 마주하는 믿음, 맛디아의 부르심 (사도행전 1:15-26)

"요셉이라 하는 바사바와 맛디아를 세우고… 제비를 뽑아 맛디아를 얻으니 그가 열한 사도의 수에 가입하니라" (사도행전 1:23-26) 유다의 자리는 공백이었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그 빈자리를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모른 척하지 않았고, 감추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 결핍을 직면하였고, 기도로 하나님의 뜻을 구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점은 '제비 뽑기'가 아니라 '기도'입니다. 베드로는 말합니다. “주여, 모든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이여.” 그들은 하나님이 중심을 보시는 분임을 알고 있었고, 그 중심을 구하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마띠아는 알려진 인물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눈에 띄는 제자도 아니었고, 복음서에는 그의 이름조차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다락방 안에 있었고, 부르심을 기다리고 있었으며, 하나님은 그를 통해 비워진 자리를 메우셨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언제나 '남아 있는 자들'을 통해 이뤄집니다. 이름 없이, 조용히, 끝까지 자리를 지킨 자를 하나님은 보십니다. 그리고 그에게 다음 장을 맡기십니다. 마띠아의 부름은 우리 각자가 교회와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오늘 여러분은 다락방에 있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은 이미 보고 계십니다.

 

기다림의 끝에서 부어지는 불, 오순절의 문턱에서 (사도행전 2:1)

이 모든 기다림은 불꽃을 위한 준비였습니다. 성령은 아무 곳에나 임하지 않으십니다. 준비된 곳에, 기도가 있는 곳에, 하나된 공동체에 임하십니다. 오순절의 불은 다락방의 기도 위에 내려왔고, 각 사람 위에 불의 혀처럼 임하였습니다. 그것은 감각이 아니라 실재였습니다. 그것은 체험이 아니라 사명이었습니다. 이제 제자들은 '보내심 받은 자들'로 세상 가운데 나아갈 준비가 되었습니다.

 

우리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인생의 문제 앞에서, 사역의 결핍 속에서, 시대의 어둠 한복판에서 우리는 다락방을 찾아야 합니다. 다락방은 교회 건물이 아닙니다. 그것은 함께 모인 심령이며,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버티는 공동체의 중심입니다. 다락방은 불확실함을 믿음으로 견디는 자리이며, 결핍을 기도로 메꾸는 공간입니다.

 

마무리: 기다림은 성령의 손바닥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다락방의 사람들입니다. 아직 성령은 오지 않았고, 세상은 여전히 유다의 흔적을 안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때가 하나님의 시간이 시작되는 순간입니다. 상실을 기도로, 결핍을 순종으로, 기다림을 연단으로 바꾸는 시간. 그것이 다락방의 의미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물으십니다. "너는 남아 있느냐? 너는 기도하고 있느냐? 너는 비어진 자리를 품고 있느냐?" 그렇다면 성령은 반드시 임하실 것입니다. 그 불은 다시 시작될 것이며, 교회는 다시 일어날 것입니다.

 

우리의 기다림이 하나님의 숨결을 맞이할 준비가 되기를. 마띠아처럼 이름 없이 끝까지 서 있는 자가 되기를. 그리고 성령이 내릴 때, 교회는 다시 세상을 향해 불붙은 발걸음을 내딛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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