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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설교문

부활부터 오순절까지, 오순절 성령 강림

by 파피루스 2025. 4.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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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처럼, 바람처럼, 말처럼 임하신 하나님

오늘 우리는 교회의 첫 숨결이 시작된 자리, 오순절의 다락방 앞에 다시 섭니다. 그날의 공기는 뜨거웠고, 그 기도는 무거웠으며, 그 임재는 충격적이었습니다. 부활로부터 50일, 승천으로부터 10일이 지난 그날, 하나님은 약속하신 성령을 불과 바람과 말로, 공동체와 개인의 삶 위에 직접 내리셨습니다. 본문은 사도행전 2장 1절에서 4절입니다.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호련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사도행전 2:1-4)

이 장면은 단순한 역사적 기념일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늘과 땅이 맞닿은 지점이며, 믿음이 현실로 폭발한 순간이며, 교회가 처음으로 호흡하기 시작한 출산의 순간입니다. 오늘 우리는 그 순간을 다시 밟으며, 성령이 왜 불처럼, 왜 바람처럼, 왜 언어로 임하셨는지를 깊이 묵상하고자 합니다.

한 공간에 하나 된 마음 (사도행전 2:1)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사도행전 2:1)

하나님은 흩어진 곳이 아니라, 모인 곳에 임하십니다. 그러나 이 모임은 단지 물리적 집합이 아닙니다. 이것은 마음이, 생각이, 시선이 모인 하나됨의 공간이었습니다. 두려움도 있었고, 기대도 있었고, 아직 닫히지 않은 상처도 있었지만, 그들은 분열하지 않았습니다. 분노하지 않았습니다. ‘다같이’라는 단어 속에는 오랜 기다림의 인내와 관계의 끈질김,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는 믿음이 녹아 있습니다.

‘한 곳’은 예루살렘의 어느 다락방이었지만, 영적으로는 성령을 맞을 준비가 된 지성소였습니다. 기도의 향이 가득 찬 그 공간은, 시간의 감각을 넘어서 성령의 리듬을 따르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모인다는 것은 신앙의 능력이 됩니다. 고립은 우리의 연약함을 증폭시키지만, 연합은 성령의 임재를 가능케 합니다.

하늘에서 불어온 창조의 숨결 (사도행전 2:2)

“호련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사도행전 2:2)

성령의 첫 임재는 청각을 자극했습니다. 갑작스러운 폭풍과도 같은 바람 소리. 바람은 단지 환경의 변화가 아니라, 존재 자체를 흔드는 하나님의 접촉입니다. 이 바람은 창세기 1장의 성령의 운행, 에스겔 골짜기의 생기를 떠오르게 합니다. 죽은 뼈들이 다시 일어서는 그 숨결이 이제 살아 있는 제자들의 심령을 흔듭니다.

하나님은 조용히 다가오시기도 하지만, 오순절에는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크고 강하게, 불쑥 그리고 불가항력적으로 침입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날은 무너진 심령을 깨우는 날이었고, 마른 공동체에 생명을 불어넣는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바람은 온 집에 가득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단지 방이 채워졌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들은 숨 쉴 수 없을 만큼 가득 찬 임재 속에 잠겼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령을 조심스럽게 주시지 않았습니다. 아낌없이, 거침없이, 숨이 차오를 만큼 그들을 감쌌습니다.

불로 임한 거룩한 임재의 선언 (사도행전 2:3)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사도행전 2:3)

이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불입니다. 불은 언제나 하나님의 직접적인 임재의 상징이었습니다. 시내산의 불, 성막 위의 불기둥, 엘리야의 제단 위에 떨어진 불. 그리고 그 불이 이제 제자들, 한 사람 한 사람의 머리 위에 내려앉습니다. 더 이상 하나님의 불은 특정 장소, 특정 제사장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모든 사람 위에 임한 불로.

‘불의 혀’는 두 가지를 상징합니다. 첫째, 그 불은 정결하게 하십니다. 우리 안에 있는 죄성과 자기중심성을 태워냅니다. 둘째, 그 불은 말하게 합니다. 침묵의 공동체가, 두려움에 말문 닫았던 자들이 이제 복음을 말하게 됩니다. 불은 멈춘 존재에 운동성을 주며, 닫힌 마음에 생동하는 언어를 불어넣습니다.

그리고 그 불은 갈라졌습니다. 공동체 전체에 내리되, 개별적으로 임했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원리입니다. 공동체 안에 임하되, 개인의 이름으로 응답되게 하시는 하나님. 교회의 불은 집단적 임재 안에서 개인적 소명을 일으킵니다.

언어의 기적, 복음의 파열 (사도행전 2:4)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사도행전 2:4)

이제 성령은 말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 말은 각 나라의 언어, 각 사람의 고백, 각 민족의 정서에 닿는 말이 됩니다. 이는 바벨 이후 나뉘었던 언어가 성령 아래서 다시 하나 되는 첫 사건입니다. 그러나 그 하나됨은 동일한 말이 아니라, 서로 다른 말 안에 담긴 하나님의 일을 들을 수 있는 통합입니다.

하나님은 동일하게 역사하시되, 각기 다르게 말하게 하십니다. 이것이 복음의 놀라움입니다. 성령은 방언이라는 기적을 넘어서, 복음을 삶의 언어로 번역하게 하십니다. 제자들은 그날 갑자기 외국어를 배운 것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타인의 영혼을 만지는 언어로 말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도 이제 말해야 합니다. 우리가 받은 불로, 우리가 들은 바람으로, 우리가 본 임재로, 이제는 세상을 향해 말해야 합니다. 가만히 있는 교회는 죽은 교회입니다. 말하지 않는 성도는 불을 잃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이 성령의 언어로 세상을 다시 해석하고, 복음으로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마무리

사랑하는 여러분, 오순절은 더 이상 과거의 사건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늘, 지금, 우리에게 다시 임할 수 있는 현재형의 능력입니다. 우리가 모일 때,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가 하나 될 때, 그 불은 다시 임할 수 있습니다. 그 바람은 다시 불 수 있습니다. 그 말은 다시 터질 수 있습니다.

교회의 시작은 성령이었습니다. 그리고 교회의 생명도 성령이어야 합니다. 우리의 말이 다시 뜨거워지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예배가 다시 떨리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공동체가 다시 불붙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이곳에도 다시 불을 내려주시기를. 우리의 심령 위에도, 우리의 입술 위에도, 그리고 우리 교회 위에도, 바람처럼, 불처럼, 말처럼 다시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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