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에 등장하는 레판(Remphan): 구약적 배경과 신약적 신학 해석
1. 들어가며
사도행전 7장 43절에서 언급되는 ‘레판’(Remphan)은 신약성경에서 단 한 번 등장하는 독특한 명칭으로, 스데반의 설교 가운데 이스라엘 백성의 우상숭배를 지적하며 등장하는 이름이다. 이 구절은 구약의 아모스서(암 5:26)를 인용한 것으로, 고대 근동 지역의 이방신 숭배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메시지와 연결된다. 스데반은 구약 이스라엘의 역사적 불순종을 회고하며, 그들이 애굽에서 나와 광야를 지나는 동안에도 참 하나님 대신 우상에게 절하고 제사를 드렸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본 논문은 ‘레판’의 정체에 대해 구약 배경, 언어적 분석, 고고학 및 비교종교학적 자료를 검토하고, 신약에서의 신학적 의미와 적용을 정리하고자 한다.
2. 본문 분석: 사도행전 7:43과 아모스 5:26
사도행전 7:43은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너희가 몰록의 장막과 신 레판의 별을 받들었으며 너희가 그것들을 경배하려고 만든 형상이니 내가 너희를 바벨론 너머로 옮기리라 함과 같으니라.” 이 구절은 아모스 5:26의 말씀을 인용한 것으로, 원문은 다음과 같다: “너희가 너희 왕 십굿과 기운과 너희 우상을 위하여 만든 신들의 형상을 지고 다녔느니라.” 여기서 ‘십굿’은 고대 셈어에서 태양신 또는 별신을 의미하는 ‘키윤(Kiyyun)’ 혹은 ‘카이완(Kaiwan)’으로 해석된다. 헬라어 70인역(LXX)은 이를 ‘레판’(Ῥαιφάν, Rephan)으로 옮겼고, 바울은 이 번역을 그대로 따랐다.
따라서 ‘레판’은 원래 히브리어 ‘키윤’(כִּיּוּן)으로 불렸던 우상이며, 고대 근동에서 숭배되던 별신 혹은 토성의 신을 가리킨 것으로 학자들은 보고 있다. 이는 바벨론이나 앗수르 문화권에서 흔히 나타나는 별과 행성 숭배와 관련이 있으며, 고대 이스라엘도 이러한 문화의 영향을 받았다. 스데반은 이 점을 예루살렘 종교 지도자들에게 지적함으로써, 과거 이스라엘의 불순종이 오늘날 그들 속에도 여전히 반복되고 있음을 고발하는 것이다.
3. 레판의 정체와 고고학적 배경
‘레판’이라는 이름은 고대 중동 언어에서 직접적으로 나타나지는 않지만, ‘카이완’(Kēwān, Akkadian: Ka-ai-wanu)이라는 이름은 바빌로니아 문헌에서 토성(Saturn)과 연결된 신의 명칭으로 알려져 있다. 바벨론과 앗수르 천문학에서는 토성을 ‘카이완’으로 불렀으며, 이 이름은 결국 헬라어 70인역에서 ‘레판’으로 음역되었다.
고고학적으로도 고대 가나안과 근동 지역에서는 별을 형상화한 토우, 제단, 동상 등이 발견되었으며, 이는 이스라엘 주변 민족들의 신앙이 하늘의 별들과 행성을 숭배하는 체계였음을 시사한다. 이방 민족들은 별의 운행을 통해 신들의 계시를 받는다고 믿었고, 그것을 조작하거나 점을 치는 방법으로 발전시켜 나갔다. 이러한 문화적 배경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출애굽 이후 광야에서조차 참 하나님 대신 이방의 우상 숭배를 끌어들였던 것이다.
4. 신학적 해석: 스데반의 설교와 우상에 대한 경고
스데반은 사도행전 7장에서 장엄한 설교를 통해 이스라엘 역사의 전체를 조망한다. 그는 아브라함부터 시작하여 모세, 출애굽, 광야, 성막, 솔로몬 성전까지 이어지는 역사를 복기하며, 그것이 하나님 중심의 신앙이 아니라 인간 중심의 종교로 타락해 왔음을 비판한다. 그 정점이 바로 우상숭배의 행위이다. “몰록의 장막”과 “레판의 별”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하나님을 버리고 인간이 만든 대체신을 섬긴 상징이며, 하나님의 진노를 촉발한 불순종의 결정체이다.
여기서 ‘장막’(σκηνὴ, skēnē)과 ‘별’(ἄστρον, astron)은 각각 종교적 상징과 하늘의 상징을 의미한다. 즉,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성막이 아니라 몰록의 장막을 세우고, 하나님의 영광이 아닌 별의 형상을 쫓았다는 것이다. 이는 영적인 우상숭배이자 신앙의 왜곡이며, 하나님께서는 이런 타락을 바벨론 포로라는 심판으로 응답하셨다.
스데반은 이 과거의 사건을 통해 당시 유대 지도자들의 형식적인 신앙과 성전 중심주의를 고발한다. 그는 참된 신앙은 성전이나 제사제도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임재와 말씀에 순종하는 삶에 있음을 강조하며, 그들은 결국 선지자들과 메시야(예수)를 거부한 동일한 패역한 길을 따르고 있음을 선언한다.
5. 오늘날의 적용과 신학적 성찰
레판은 오늘날 문자 그대로 숭배되지 않지만, 그것이 상징하는 우상숭배의 본질은 여전히 살아 있다. 인간이 만든 사상, 이념, 물질, 성공, 심지어 종교 그 자체까지도 하나님을 대체하는 레판이 될 수 있다. 바울은 골로새서 2:8에서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경고하며, 하나님 대신 세상의 원리와 전통을 따르는 것을 우상숭배의 일환으로 본다.
스데반의 메시지는 단순한 고고학적 자료나 역사 비판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는 과거를 현재에 끌어와 청중에게 회개와 변화를 촉구한다. 우리 역시 과거 이스라엘처럼 외적 신앙의 틀은 갖추었으나, 실상은 다른 대상을 섬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한다. 레판은 우리 안에 있는 자기중심성과 신앙의 왜곡을 드러내는 영적 거울이다.
6. 결론
레판은 고대 근동의 별신, 특히 토성과 연결된 우상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대신 숭배했던 대상이다. 스데반은 이 구약의 사건을 인용하여 당시 유대인들의 형식적인 신앙을 비판하였으며, 그들의 외적 경건이 실제로는 우상숭배와 다르지 않음을 지적하였다. 오늘날 우리도 삶의 중심에 무엇을 두고 있는지를 점검하며, 하나님을 전심으로 섬기는 참된 신앙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레판은 단지 고대의 우상이 아니라, 지금도 인간 마음 깊은 곳에 숨어 있는 하나님 아닌 ‘무엇’을 상징하며, 그것은 끊임없이 드러나고 도전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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