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와 심판, 복음의 보편성을 향하여
성경에서 숫자 ‘4’는 지리적, 창조적, 우주적 개념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하나님의 피조세계에 대한 질서, 통치, 그리고 보편성을 드러내는 중요한 신학적 상징입니다. 히브리어로 ‘아르바아(אַרְבָּעָה, arba‘ah)’와 헬라어 ‘τέσσαρες(tessares)’는 단순한 수량적 개념을 넘어서, 하나님의 피조계 전반에 스며든 질서와 균형, 그리고 방향성의 상징으로서 기능합니다. 동서남북 사방을 포함한 공간적 개념, 땅과 바다와 하늘과 궁창을 포함하는 창조 구조, 네 생물(계 4:6), 네 천사(계 7:1), 네 병거(슥 6:1–8), 네 기둥(잠 9:1) 등의 상징을 통해 성경은 숫자 ‘4’를 우주 질서와 심판, 복음의 전방위 확장을 가리키는 신비로운 수로 활용합니다. 이 글은 숫자 ‘4’의 성경적·신학적 의미를 주해적으로 정리하고, 하나님 나라의 보편적 통치와 심판, 구원의 공간적 완결성을 묵상하도록 인도합니다.
창조의 네 방향과 하나님의 질서
창세기의 창조 기사는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공간적 개념으로 서술합니다. 창세기 2장 10절 이하에서는 에덴에서 흘러나온 강이 네 갈래로 갈라져 세상을 적신다고 말합니다.
“강이 에덴에서 발원하여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더라” (창세기 2:10)
‘네 강’은 창조 질서의 확장을 상징하며, 하나님의 생명 공급이 지리적 제한을 받지 않음을 암시합니다. 이 네 강의 이름—비손, 기혼, 힛데겔, 유브라데—은 당시 알려진 세계의 전 방향으로 퍼지는 생명력을 상징합니다. 이는 후에 등장하는 동서남북 사방의 개념과 밀접하게 연결됩니다. 에스겔 7:2에서 다음과 같은 경고가 등장합니다.
“너 인자야 주 여호와께서 이 땅 이스라엘에 대하여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끝이 땅 사방에 이르렀나니”
여기서 ‘사방’은 히브리어 ‘כָּל־אַרְבַּע רוּחוֹת’(kol arba‘ ruchot)으로, 단순히 방향을 가리키기보다는 하나님의 심판이 온 세계를 아우른다는 포괄적 상징을 가집니다. 이는 곧 하나님이 우주의 한 중심에만 국한된 존재가 아니라, 세계 모든 방향과 공간을 주관하시는 전능자이심을 계시하는 본문입니다.
창조의 넷째 날에 하나님은 해와 달과 별을 창조하셨습니다. 이는 시간의 흐름과 질서를 위한 피조물들로, 공간의 방향성과 시간의 순환이 서로 맞물리는 하나님의 우주적 설계도를 상징합니다. 이때 등장하는 ‘계절, 날, 해’는 히브리어로 ‘מוֹעֲדִים’(mo‘adim), ‘יָמִים’(yamim), ‘שָׁנִים’(shaním)으로, 천체에 의한 주기성과 예배력, 절기의 근거를 마련해 줍니다. 따라서 숫자 ‘4’는 공간의 완성, 방향성의 구조화, 피조 질서의 외연적 정립을 의미하며, 창조 질서의 외형적 구현과 관련이 깊습니다.
또한, 잠언 30장에는 “땅 위에 작고도 지혜로운 네 가지”와 같은 구조가 반복되며 자연계 속의 ‘4가지 유형’을 통해 하나님의 창조적 다양성과 교육적 원리를 전달합니다. 이는 피조 질서 안에서의 질서, 균형, 규범이 ‘네 가지 범주’를 통해 표현됨을 시사합니다.
심판의 네 바람과 사방의 천사
요한계시록에 이르러 숫자 ‘4’는 종말론적 심판의 구조로 다시 등장합니다. 계시록 7장 1절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이 일 후에 내가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선 것을 보니 땅의 사방에서 부는 바람을 붙잡아 바람으로 하여금 땅에나 바다에나 각 나무에 불지 못하게 하더라”
‘네 천사’, ‘네 모퉁이’, ‘사방에서 부는 바람’은 모두 우주 전역을 통제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상징합니다. 여기서 ‘바람’은 히브리어 ‘רוּחַ’(ruach), 헬라어로는 ‘ἄνεμος’(anemos)로, 성령의 움직임이자 하나님의 심판적 권능의 표징입니다.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제어하는 장면은 심판의 보편성과 하나님의 통제력, 그리고 계시의 전역성을 나타냅니다. 이는 단지 자연현상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종말의 사건들을 주권적으로 관장하신다는 상징 언어입니다.
또한 스가랴 6장에서는 네 병거가 등장하는데, 이는 하나님의 심판과 섭리를 네 방향으로 수행하는 상징적 도구입니다. 병거들은 백마, 붉은 말, 검은 말, 어두운 말에 각각 실려 있으며, 이는 전쟁, 기근, 죽음, 심판을 상징하며, 계시록의 네 말 탄자와 병치됩니다.
“내가 또 눈을 들어 본즉 네 병거가 두 산 사이 곧 구리 산 사이에서 나오더라” (스가랴 6:1)
이는 계시록의 네 생물과도 연결되며, 각각 사자, 송아지, 사람, 독수리로 상징된 생물들은 하나님의 창조 세계 전역을 대표하는 존재들이자, 예배의 근원으로 기능합니다(계 4:6–8). 이 네 생물은 에스겔의 환상(겔 1장)에서도 등장하며, 하나님의 보좌를 운반하는 ‘헤드로빔적 존재들’로 간주됩니다. 따라서 숫자 ‘4’는 심판과 예배가 피조 세계 전 영역에 걸쳐 확장되는 보편적 구조로 기능합니다. 이 보편성은 하나님이 단지 이스라엘의 민족적 신이 아니라, 온 우주의 주권자이심을 선포하는 신학적 선언입니다.
복음의 전방위 확산과 인류 구원의 보편성
성경은 ‘4’의 구조를 통해 복음의 확장을 공간적으로 서술합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은 다음과 같은 예수님의 지상 명령을 기록합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사도행전 1:8)
‘예루살렘–유대–사마리아–땅끝’이라는 네 단계는 지리적, 인종적, 사회적 경계를 넘어 복음이 전 세계로 확장되는 상징적 틀을 형성합니다. 여기서 ‘땅끝’은 히브리어 개념 ‘קְצֵה הָאָרֶץ’(qetseh ha’aretz), 즉 ‘땅의 극한’으로, 하나님의 통치와 구원이 어느 한 민족이나 지역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복음서의 저자들도 이러한 ‘4’의 구조로 계시의 전모를 드러냅니다. 마태, 마가, 누가, 요한으로 이루어진 네 복음서는 각각 다른 대상과 시각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증언하며, 복음의 완전성과 보편성을 나타냅니다. 초대교회는 이를 ‘복음의 사방(四方)적 증언’이라 여겼으며, 이는 계시록에 등장하는 네 생물의 상징성과도 연결됩니다.
마태는 유대인을 향한 왕으로서의 예수를, 마가는 종으로 오신 예수, 누가는 인자로서의 예수, 요한은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예수를 조명합니다. 이는 동서남북의 각각 다른 문화와 계층, 필요를 향한 복음의 입체적 선포로 이해될 수 있으며, 그만큼 숫자 ‘4’는 구원의 확장성과 예수 그리스도의 전인격적 사역을 포괄하는 상징입니다.
또한 교부시대에는 ‘네 복음서’가 땅의 네 방향에 대한 하나님의 언어적 선포로 해석되었으며, 이는 문자적 기록을 통한 영적 확산의 상징으로 여겨졌습니다. 네 생물의 얼굴이 복음서의 성격과 연결되어 정교한 상징체계를 구성했으며, 이는 중세 신비주의와 정교회 전통에서도 지속적으로 해석되었습니다.
마무리
숫자 ‘4’는 성경 전체에 걸쳐 창조, 심판, 복음의 확산이라는 핵심 주제를 공간적, 지리적 상징을 통해 구현하는 구조적 단위입니다. 하나님은 사방을 통해 자신의 통치를 드러내시며, 심판과 구원 모두에서 보편성과 정당성을 확보하십니다. 숫자 ‘4’는 우주의 질서를 가리키는 동시에, 하나님의 섭리가 세계 전역에 미친다는 계시의 도구로 기능합니다. 이 숫자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이 단지 특정한 민족이나 지리적 국경에 제한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복음의 사방적 선포와 선교적 사명을 깊이 깨닫게 만듭니다. 우리가 이 상징을 묵상할 때, 하나님 나라의 공간적 충만함과 모든 민족을 향한 구원의 열정을 함께 붙들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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