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구속사를 드러내는 정합적 수
숫자 ‘3’은 성경 전체를 아우르는 핵심 상징 중 하나로, 완전함과 충만함, 신적 질서와 계시의 정점을 나타냅니다. 본문에서는 ‘3’이라는 숫자가 창조, 계시, 구속, 그리고 종말에 이르기까지 성경 신학적 구조 속에서 어떻게 일관되게 사용되며, 신학적 의미를 어떻게 내포하고 있는지를 탐구합니다. 히브리어 ‘שָׁלֹשׁ’(shalosh)와 헬라어 ‘τρεῖς’(treis)는 단순한 수량을 넘어 신적 구성과 상징으로 기능하며, 성부·성자·성령의 삼위일체, 삼일 부활, 세 번의 시험, 세 가지 기둥(믿음·소망·사랑) 등을 통해 하나님의 진리와 구속 계획이 어떻게 구조화되어 있는지를 드러냅니다. 이 글은 숫자 ‘3’을 통해 하나님의 계획 속에 숨겨진 질서와 조화를 묵상하며, 신자의 삶 속에서 이 상징이 가지는 신학적, 실천적 함의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삼위일체와 신적 존재의 내적 충만함
기독교 신앙에서 가장 핵심적인 교리는 삼위일체(Trinitas)입니다. 하나님은 본질상 하나이시나, 세 위격으로 존재하시는 분으로 고백됩니다. 이 교리는 신구약을 통틀어 ‘3’이라는 상징 안에 그 구조적 정당성을 부여받습니다.
예수님께서 지상명령을 주시는 장면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마태복음 28:19)
여기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은 각각 분리된 세 위격을 드러내지만, ‘이름’이라는 단수 명사로 수식되어 본질적으로 하나이심을 증언합니다. 이 삼중 구조는 히브리어적 사고 안에서 완전성과 충만함을 상징하는 수 ‘3’과 일치하며, 하나님 존재 자체의 내적 관계성과 자족성을 표현합니다.
창세기 18장에서 아브라함은 ‘세 사람’으로 나타난 하나님의 사자들을 대접합니다. 이는 삼위 하나님의 예표로 해석되며, 신적 방문과 심판, 그리고 약속이 동시에 주어진 계시의 장면입니다. 신학자들은 이를 ‘에피파니’적 현현의 상징으로 보며, 하나님이 인간에게 스스로를 나타내실 때 삼중 구조를 취하신다는 특징을 주목합니다.
하나님의 본질이 ‘삼위’로 드러난다는 사실은 단지 교리적 선언에 그치지 않고, 성도 개개인의 신앙생활 속에서도 ‘기도–말씀–순종’, 혹은 ‘믿음–소망–사랑’과 같이 삼중적 균형을 이루도록 요청합니다. ‘3’은 단순한 수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그리고 존재론적 안정감의 구조로 작동하는 것입니다.
죽음과 부활, 시험과 계시: 구속사의 삼중 리듬
숫자 ‘3’은 구속사의 흐름 속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구조적 리듬을 형성합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사건은 이 ‘3’이라는 숫자를 통해 신학적 깊이를 갖게 됩니다.
“이르시되 인자가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되” (마가복음 9:31)
‘사흘 만’에 부활하셨다는 이 반복되는 선언은 단순한 시간 계산이 아니라, 성취와 완성의 상징입니다. 히브리어 사고에서 ‘사흘’은 기대와 전환, 새 창조를 의미합니다. 이는 요나가 큰 물고기 뱃속에 ‘삼일’ 동안 있었던 사건과도 병행됩니다.
“요나가 밤낮 사흘을 물고기 뱃속에 있었느니라” (마태복음 12:40)
예수님은 이 사건을 자신의 부활의 예표로 해석하셨으며, 이는 하나님의 구속 계획이 ‘3’이라는 시간적 틀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을 부각시킵니다. 이처럼 ‘3일’은 고난과 기다림, 회복을 아우르는 구속의 구조입니다.
성경에서 시험도 자주 세 번 반복됩니다. 사탄은 광야에서 예수님을 세 번 시험하며,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고, 주님은 그에게 세 번 ‘사랑하느냐’고 물으십니다.
“그가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요한복음 21:17)
이 세 번의 질문은 베드로의 회복을 위한 완전한 갱신의 행위였으며, ‘3’은 회복의 충만성을 상징합니다. 이는 회개의 과정도 단회적이 아닌 삼중적 성찰을 요청함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숫자 ‘3’은 죽음에서 생명으로, 시험에서 영광으로, 단절에서 회복으로 나아가는 신적 리듬의 구조입니다. 하나님의 구속사는 이 ‘3’의 패턴 안에서 점진적으로 펼쳐지고, 성도는 이 구조를 통해 자신의 신앙 여정을 성찰하게 됩니다.
계시와 신앙, 공동체의 삼중 축: 성도의 삶 속 실천적 의미
숫자 ‘3’은 신자의 신앙생활과 교회 공동체 구조에도 깊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 13절은 가장 유명한 삼중 구조 중 하나입니다.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고린도전서 13:13)
여기서 ‘믿음–소망–사랑’은 성도의 내면적 성장과 공동체적 기능을 지탱하는 삼중 축입니다. 이 세 가지는 서로 독립적이지 않고, 삼위일체처럼 상호 침투하며 균형을 이룰 때 진정한 영성이 형성됩니다.
또한 교회의 구조 안에서도 ‘사도–선지자–목사’와 같은 삼중 직분, 또는 ‘예배–교제–봉사’와 같은 기능적 삼분법이 존재합니다. 이러한 구조는 우연이 아니라,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 방식과 동일한 수적 상징성을 따르고 있는 것입니다.
계시록에서도 삼중적 구조는 계속해서 반복됩니다. 세 인(seals), 세 나팔(trumpets), 세 대접(bowls)은 각기 7개의 단위로 구성되며, 종말의 완결성을 향해 삼중 계시 구조로 진행됩니다. 이 삼중 구조는 하나님 나라의 점진적 도래를 드러내며, 성도가 그 흐름에 참여하도록 초청합니다.
또한 예수님은 부활 후 세 번에 걸쳐 제자들에게 나타나시며, 각각의 만남 속에서 위임과 회복, 그리고 사명의 확증을 부여하십니다. ‘3’은 단지 계시의 횟수가 아니라, 완전한 이해와 결단을 위한 신적 간섭의 구조인 것입니다.
성도는 이 ‘3’의 상징을 삶 속에서 단순한 반복이 아닌 ‘충만한 순환’으로 받아들이며, 하나님과의 관계, 이웃과의 연합, 그리고 자아 안의 성숙을 동시에 추구하는 영적 균형을 이루어야 합니다.
마무리
숫자 ‘3’은 성경 전체에 걸쳐 신적 완전성과 구조적 조화를 나타내는 핵심 상징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본질,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적 사건, 시험과 회복의 반복, 그리고 교회 공동체의 삼중 기능은 모두 ‘3’이라는 숫자 안에서 신학적 정합성을 이룹니다. 우리는 이 숫자를 단지 수리적 단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 방식이자 구속의 리듬으로 받아들이며, 성경 속에서 드러나는 삼중 구조를 따라 신앙의 균형을 유지하고자 해야 합니다. 숫자 ‘3’은 우리에게 완전함의 갈망을 심어주고, 그 안에서 하나님의 질서와 사랑을 체험하도록 초청하는 영적 통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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