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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성경

아가 2:8-17 묵상 사랑하는 자의 음성

by 파피루스 2025. 4.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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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계절이 오고, 부르시는 음성이 들릴 때에

아가 2:8-17은 연인의 사랑이 더욱 절정으로 치닫는 장면입니다. 산을 넘어 달려오는 사랑하는 이의 음성, 겨울이 지나고 꽃이 피는 봄의 계절, 사랑의 노래가 들려오는 그 계절 가운데, 신랑은 신부를 부르십니다. 이는 단순한 연애의 정서가 아닌,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향해 끊임없이 부르시는 은혜의 손짓을 담은 시적 선언이며, 그리스도와 교회 사이의 거룩한 사랑의 교제를 드러내는 깊은 계시입니다.

산을 넘는 음성, 달려오는 은혜

“나의 사랑하는 자의 음성이로구나”(2:8). 이 고백은 단지 감성의 표현이 아니라, 영혼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인식하고 응답하는 장면입니다. 여기서 '음성'은 히브리어 ‘קול(콜)’로, 단순한 말이 아니라 그 존재 전체를 감지하게 하는 소리입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임재는 종종 '음성'으로 나타났으며, 예수님도 요한복음 10장에서 "내 양은 내 음성을 듣는다"고 하셨습니다. 여인은 이 음성을 듣고 즉시 알아봅니다. 사랑은 눈보다 귀가 먼저 열리는 신비입니다.

“보라 그가 산을 넘으며 작은 산을 빨리 달리는구나.” 이 표현은 신랑의 열정과 속도, 사랑의 적극성을 보여줍니다. 산은 장애물을, 언덕은 현실의 고난을 상징합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자는 그것을 뛰어넘습니다. 칼뱅은 이 장면을 해석하며, “그리스도께서 성도의 마음을 얻기 위해 어떤 방해도 거리낌 없이 넘으신다”고 했습니다. 이는 주님이 우리에게로 다가오시는 열심, 즉 복음의 능동적 성격을 보여줍니다.

“나의 사랑하는 자는 노루와도 같고 어린 사슴과도 같아서”(2:9). 노루와 사슴은 민첩함과 순결을 상징합니다. 고대 근동에서 이는 종종 신비한 존재, 혹은 고귀한 사랑의 대상을 지칭할 때 쓰이곤 했습니다. 신랑은 성급하게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조심스럽게 바라보며, 문 밖에서 기다립니다. “우리 벽 뒤에 서서 창으로 들여다보며 창살 틈으로 엿보는구나.” 이는 침범이 아닌 기다림의 언어입니다. 그분은 억지로 문을 열지 않으시고, 안에서 자발적으로 응답하길 원하십니다. 이는 계시록 3:20의 “문 밖에서 두드리노니”와 맞닿아 있습니다.

겨울은 지나고, 부르심의 계절이 왔도다

신랑은 노래합니다. “일어나서 함께 가자”(2:10). 이 짧은 문장은 신앙의 여정을 담고 있는 복음의 초대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언제나 관계 안으로의 초대이며, 정적인 머무름이 아니라 동적인 동행으로 이어집니다. “보라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2:11). 이 말씀은 회복의 선언입니다. 겨울은 고난과 숨죽임의 계절이며, 비는 눈물과 시련의 상징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제 지나갔습니다. 이제는 생명의 계절, 부활의 새봄이 도래하였습니다.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가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 비둘기의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구나”(2:12). 이는 이스라엘의 봄절기, 곧 유월절과 오순절 사이의 계절을 떠올리게 하며, 생명의 부활을 상징합니다. 꽃은 아름다움과 소망, 새는 자유와 회복, 비둘기는 평화와 성령을 상징합니다. 불링거는 이 계절의 이미지가 복음이 피어나는 시대, 곧 그리스도의 사역 이후 교회에 주어진 은혜의 시기를 예표한다고 말했습니다.

신랑은 신부에게 “바위 틈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 있는 나의 비둘기야”(2:14)라고 부르며, 그 모습을 보여달라고 청합니다. 이는 숨어 있는 자에게 향한 부르심입니다. 바위 틈은 위협과 고독의 장소지만, 동시에 보호의 장소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숨기시고 보호하시지만, 또한 우리와 얼굴을 대면하길 원하십니다. “네 소리를 듣게 하라 네 얼굴을 보게 하라 네 소리는 부드럽고 네 얼굴은 아름답구나.” 이 사랑의 부름은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교회가 예배 가운데 드리는 찬양과 교제를 기다리시는 주님의 마음을 반영합니다. 매튜 헨리는 “하나님은 그의 백성의 음성을 기뻐하시며, 신자의 기도와 찬양은 그분 앞에 향기로운 향”이라 표현했습니다.

이러한 사랑의 부름에 응답하기 위한 준비는 다음 구절에 나타납니다.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2:15). 포도원은 사랑의 정원을 상징하며, 작은 여우는 그것을 해치는 방해 요소들, 곧 죄와 유혹, 게으름과 분열을 의미합니다. 칼뱅은 이 구절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는 단지 허락된 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것을 지키기 위한 성도의 책임이 따름을 보여준다”고 주석합니다. 사랑은 스스로 보호받지 않으면 무너지기 쉽고, 조심스럽게 가꾸어야만 열매 맺을 수 있는 정원입니다.

나의 사랑은 내게 속하였고, 그가 백합화 가운데서 먹이는구나

마지막 두 절은 신부의 사랑의 확신과 갈망을 담고 있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고 나는 그에게 속하였도다”(2:16). 이 구절은 아가서 전체를 아우르는 핵심 구절 중 하나로, 상호적 소유의 고백입니다. 히브리어 문장은 아주 강한 결속을 나타내며, 단순히 소유가 아니라 언약적 일치를 뜻합니다. 그리스도께 속한 자는 그분 안에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게 되고, 그분도 우리를 자기 것으로 삼으십니다. 이는 요한복음 10장의 목자와 양의 관계를 상기시킵니다.

“그가 백합화 가운데서 양 떼를 먹이는도다.” 이 말씀은 보호와 공급의 언약을 상징합니다. 백합화는 앞서 여인을 상징했던 꽃으로, 그 사랑 안에서의 거처, 곧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기르신다는 이미지입니다. 성도는 그리스도의 목장 안에서 양육되고 인도받으며, 그 은혜 가운데 자랍니다. 츠빙글리는 이 표현을 두고 “그리스도는 교회라는 정원 안에서 자신의 양을 직접 기르시는 목자”라 강조했습니다.

마지막 절에서 신부는 다시 간청합니다. “내 사랑하는 자야 너는 돌이켜라 베데르 산 위의 노루나 어린 사슴 같을지라”(2:17). 이 말씀은 잠시 사랑하는 이와 이별하는 장면이기도 하며, 동시에 재회의 약속을 내포한 간청입니다. '베데르'는 '갈라놓는' 혹은 '분리의 산'이라는 뜻으로, 사랑이 이루어지기까지 기다림과 간절함이 교차하는 자리입니다. 주님께서 아직 완전히 나타나지 않으셨지만, 그분의 임재를 갈망하며 기다리는 이 신부의 태도는, 바로 교회의 고백이며, 주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의 마음을 대변합니다.

전체 마무리

아가 2:8-17은 사랑하는 이의 음성을 듣고 마음을 여는 영혼의 여정을 그려냅니다. 산을 넘고 언덕을 지나 다가오시는 신랑의 모습은, 모든 장애를 뚫고 우리에게 임하시는 하나님의 열정을 상징하며, 그 음성을 알아듣는 자는 곧 계절이 바뀌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겨울이 지나고 꽃이 피는 봄, 곧 은혜의 계절은 우리를 사랑의 동산으로 초대하며, 그곳에서 주님은 우리의 목자가 되시고, 우리는 그분의 소유된 자로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나 그 사랑은 보호받아야 합니다. 작은 여우, 곧 일상의 유혹과 죄가 사랑을 허물 수 있기에,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지키고 그것을 가꾸는 영적 책임을 져야 합니다. 동시에 아직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은 주님의 임재를 갈망하며, 우리는 기다림 속에서 부르심에 응답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 우리 안에 들려오는 주님의 음성이 있다면, 그 음성 앞에 머물러야 합니다. 주님은 지금도 벽 너머에서 창살 너머로 우리를 바라보며 말씀하고 계십니다. “일어나 함께 가자.” 이 부르심에 응답하는 자에게, 은혜의 봄은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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