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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성경

아가서 1:1-2:7 묵상, 솔로몬의 아가라

by 파피루스 2025. 4.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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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이름으로 부른 바 된 자여

아가서 1:1-2:7은 성경 전체에서 가장 서정적이며, 사랑의 본질에 대해 가장 깊이 있는 묵상을 가능하게 해주는 본문입니다. 이 본문은 문자 그대로의 연애 시를 넘어, 하나님과 그의 백성, 곧 그리스도와 교회의 친밀한 사랑을 영적 비유로 담아냅니다. 연인의 대화로 펼쳐지는 이 시는 단순한 감정의 표현이 아니라, 언약 가운데 맺어진 사랑의 진실함과 순결함,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정체성과 순종을 상기시키는 강력한 예언적 이미지입니다.

사랑으로 시작되는 노래, 그 이름의 향기

“솔로몬의 아가라”(1:1). 아가서는 히브리어 성경에서 '노래 중의 노래(שִׁיר הַשִּׁירִים)'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사랑 노래가 아니라, 가장 고귀한 노래, 즉 최고의 사랑을 노래하는 시편이라는 선언입니다. 칼뱅은 아가서를 해석할 때, 문자적인 해석과 함께 교회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이는 초기 교부들인 오리게네스, 요한 크리소스톰의 전통과도 일치합니다.

“내게 입맞추기를 원하니 네 사랑이 포도주보다 나음이로구나”(1:2). 여기서 입맞춤은 단지 육체적 접촉이 아니라, 언약의 표현이며, 사랑의 확증을 뜻합니다. 여인의 이 고백은,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에 대한 갈망을 드러냅니다. ‘사랑이 포도주보다 낫다’는 표현은 하나님의 사랑이 세상의 그 어떤 즐거움보다 뛰어나다는 고백입니다. 포도주는 당시 가장 귀한 기쁨의 상징이었지만, 그 사랑은 그것을 능가합니다.

이어 “네 기름이 향기로워 좋은 향기라 네 이름이 부어지는 향기름 같으므로 처녀들이 너를 사랑하는구나”(1:3)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이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인격 전체와 명예를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언제나 그의 본성과 일치합니다. 그의 이름이 향기로운 기름처럼 퍼진다는 것은, 그분의 존재가 만물에 생기를 부여하는 본질임을 말합니다. 마치 복음이 세상에 전파될 때 향기처럼 번지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이름 또한 교회 안에서 기쁨의 향기로 드러납니다.

이 사랑을 사모하는 여인의 간청은 이어집니다. “왕이 나를 그의 방으로 이끌어 들이시도다”(1:4). 이는 단순한 연적 표현이 아니라, 성소 안으로 들어가는 예배자의 자세를 떠올리게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가까이 부르시며, 그의 은밀한 처소로 인도하십니다. 매튜 헨리는 이 장면을 가리켜,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를 부르시는 사랑으로 시작되며, 그의 내밀한 사랑의 자리로 이끄신다”고 말합니다.

검으나 아름다운 자, 거절당한 사랑의 자각

여인은 스스로를 고백합니다. “예루살렘의 딸들아 내가 비록 검으나 아름다우니”(1:5). 여기서 '검다'는 표현은 햇볕에 탄 피부로, 천한 노동을 하는 삶의 흔적입니다. 외면상은 천하지만, 본질은 아름답다는 고백입니다. 이는 겉모습에 구애받지 않는 언약적 사랑을 반영합니다. 불링거는 이 표현을 두고, “그리스도의 신부는 외형보다 그분과 맺은 언약의 아름다움으로 빛난다”고 해석했습니다.

여인은 자신이 해의 빛에 그을린 이유를 설명합니다. “내 어머니의 아들들이 나에게 노하여 포도원지기를 삼았으니 내 포도원을 내가 지키지 못하였구나”(1:6). 이는 외부의 억압과 자기 삶의 불완전함에 대한 탄식이기도 합니다. 그녀는 다른 이의 포도원은 돌보았으나 자신의 포도원, 곧 영혼의 내면은 소홀히 했음을 고백합니다. 이 표현은 예배자의 자기 성찰을 떠오르게 하며, 바쁘게 사역하지만 정작 자신의 영혼은 돌보지 못하는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 됩니다.

이어 그녀는 사랑하는 이에게 묻습니다. “내 마음으로 사랑하는 자여 내가 양치는 곳과 정오에 쉬게 하는 곳을 내게 말하라”(1:7). 이는 목자 되신 주님을 향한 갈망이며, 주님과의 만남을 원하는 예배자의 질문입니다. 정오, 곧 한낮의 빛 가운데 그분과 쉬기를 원한다는 이 표현은, 진리의 밝은 자리에서 그분을 만나고 싶어하는 신자의 마음입니다.

이에 대해 신랑은 대답합니다. “가장 아름다운 여자야 너는 여자들 중에 가장 아름답다”(1:8). 이는 외형이 아니라 내면의 진실함과 언약의 충실함을 향한 하나님의 평가입니다. ‘아름답다’는 히브리어 ‘야페(יָפֶה)’는 단순히 보기 좋다는 뜻을 넘어, 온전하고 흠이 없음을 나타냅니다. 이는 성도의 신분이 외적인 조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부여된 신분임을 말합니다.

향기 나는 사랑, 숨어 있는 은혜

1:9-2:7에 이르는 본문은 신랑과 신부의 대화가 교차되며, 서로를 향한 찬탄이 이어집니다. 신랑은 신부를 “내 사랑아 내가 너를 바로의 병거의 준마에 비하였구나”(1:9)라고 표현합니다. 이는 전쟁에서 가장 빼어난 말을 의미하며, 신부의 위엄과 아름다움을 강조한 비유입니다. 고귀한 존재로서의 신부는 그리스도와 연합된 교회를 상징합니다.

신부는 “나의 사랑은 내게 엔게디 포도원의 고벨화 송이로구나”(1:14)라고 응답합니다. 고벨화는 감미로운 향을 내는 꽃으로, 성령의 열매와 같은 영적 향기를 나타냅니다. 이 대화 속에 드러나는 상호 존중과 감탄은, 언약 안에서 맺어진 신앙 공동체의 순결한 교제를 상징합니다.

2장으로 넘어가며 신부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사론의 수선화요 골짜기의 백합화로다”(2:1). 이는 겸손한 자기 인식입니다. 당시 수선화와 백합화는 흔한 들꽃으로 여겨졌기에, 신부는 자신을 특별한 존재가 아닌 들판에 핀 작은 존재로 봅니다. 그러나 신랑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자들 중에 내 사랑은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 같도다”(2:2). 평범해 보이던 존재가, 가시투성이 세상 속에서 유일한 아름다움으로 부각됩니다.

사랑의 고백은 이어져 “그가 나를 연회장으로 인도하였으니 그 사랑은 내 위에 깃발이로구나”(2:4). 이는 연회 속 즐거움 이상의 의미입니다. ‘깃발’은 군대의 진을 상징하며, 보호와 승리의 상징입니다. 곧, 신부는 사랑 안에서 보호받고 있으며, 그 사랑은 공개적으로 드러난 것임을 의미합니다. 매튜 헨리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향해 사랑의 깃발을 높이 드셨고, 이는 결코 숨겨질 수 없는 은혜”라고 했습니다.

신부는 “건포도 과자로 내 힘을 돕고 사과로 나를 시원하게 하라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생겼다”(2:5)라고 말합니다. 사랑에 사무친 영혼의 상태를 노래하는 이 구절은, 하나님을 향한 열망이 얼마나 깊은지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신부는 마지막으로 이 고백을 잇습니다. “예루살렘의 딸들아 내가 노루와 들사슴으로 너희에게 부탁하노니 내 사랑이 원하기 전에는 흔들지 말고 깨우지 말지니라”(2:7).

이 말씀은 사랑의 본질이 타인의 강요가 아닌, 자발적 의지와 주권 속에 있다는 것을 상기시킵니다. 하나님의 사랑도, 신자의 사랑도 억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정하신 시간과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불링거는 이 구절을 두고, “하나님의 시간은 언제나 완전하며, 우리는 그것을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고 주석합니다.

전체 마무리

아가서 1:1-2:7은 단순한 연애시가 아니라, 성경 전체의 구속사를 품고 있는 신비로운 언어입니다. 이 본문은 하나님과 그의 백성 사이의 사랑이 얼마나 깊고, 진실하며, 순결한지를 보여주는 시적 계시입니다. 신자는 때로 '검으나 아름답고', 때로는 '자신의 포도원을 돌보지 못하였지만', 하나님은 그를 가장 아름다운 존재로 부르시며 사랑으로 회복하십니다.

이 사랑은 일시적인 감정이 아닌, 언약에 기초한 헌신이며, 그 사랑의 이름은 향기처럼 퍼지고 깃발처럼 높이 들립니다. 주님은 우리를 부르시고, 그의 방으로 이끄시며, 우리가 준비될 때까지 기다리십니다. 오늘도 우리를 향한 그분의 사랑은 여전하며, 그의 입술에서 들려오는 말씀이 우리 영혼을 흔들고 회복시키십니다. 사랑은 흔들어 깨울 일이 아니라, 기다리며 응답할 은혜입니다. 이 말씀 앞에 서는 우리는, 그 사랑에 순종하며 응답하는 자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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