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1장 요약
에베소서 1장은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영적 복을 찬양하며 시작됩니다(1:3). 하나님은 창세 전에 성도들을 선택하셔서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자로 삼으셨고,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과 죄 사함을 주셨습니다(1:4-7). 성령의 인치심을 통해 우리의 구원이 보증되었음을 강조합니다(1:13-14). 바울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지혜와 계시를 받아 그분의 부르심과 영광, 그리고 그리스도의 능력을 깊이 깨달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1:17-19). 그리스도는 만물을 다스리는 머리로 교회 위에 계시며, 교회는 그의 몸으로 그 충만함을 담는 존재임을 선포합니다(1:22-23).
에베소서 1장의 구조 분석
- 서두 인사 (1:1-2)
-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에 대한 찬양 (1:3-14)
- 선택과 예정 (1:4-6)
- 구속과 죄 사함 (1:7-10)
- 성령의 인치심과 유업의 보증 (1:11-14)
- 바울의 기도: 지혜와 계시를 위한 간구 (1:15-19)
- 그리스도의 높임과 교회의 머리 되심 (1:20-23)
에베소서 1장 주해와 묵상글
1) 서두 인사 (1:1-2)
바울은 에베소서를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가 되었다고 소개하며 서두를 시작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울의 사도직이 자신이 선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의해 주어졌음을 강조하는 점입니다.
'하나님의 뜻'이란 표현에는 자신의 모든 사역이 전적인 하나님에 의한 시작, 이유가 되시는 하나님을 강조하는 동시에 하나님을 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면 하지 않았을 것이고, 만약 하나님께서 원하시지 않으면 사도으 삶을 살지 않았을 알 것이라 말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자신의 본성과 거스르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 기꺼이 헌신했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어서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신실한 자들"에게 편지를 쓴다고 명시하며,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그들 가운데 함께하기를 기도합니다. 이 짧은 인사는 편지 전체의 주제를 암시합니다. 곧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신자들의 삶과 공동체에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설명하는 내용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2)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에 대한 찬양 (1:3-14)
'찬송하리로다' 바울은 인사의 서두를 하나님을 찬양함으로 시작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찬양을 이전에 하나님께서 행하실 일과 앞으로 행한 모든 것에 대한 긍정이며 신뢰입니다.
이 부분은 하나님의 은혜와 계획이 어떻게 성도들에게 나타났는지를 세밀히 설명하며, 찬양의 언어로 가득합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모든 신령한 복"을 강조하며, 이 복이 "하늘에 속한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합니다. 이는 우리의 구원이 단순한 지상적인 복이 아닌 영원한 차원에서의 축복임을 의미합니다. 이 복은 다음과 같은 주제로 세분됩니다.
2-1) 선택과 예정 (1:4-6)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구원이 인간의 행위와 무관하게, 창세 전부터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일임을 명확히 합니다. 이 말씀은 칼뱅의 예정론의 핵심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예정론에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이며, 이는 인간의 공로나 자격과 무관하게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선하신 뜻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칼뱅은 인간이 타락 이후 완전히 무능력한 상태에 있다고 보았으며,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선택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에 기반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칼뱅에 따르면, 예정은 '이중 예정'(double predestination)으로 나누어집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어떤 사람들은 구원받도록 선택하시고, 다른 사람들은 정당한 심판을 통해 멸망받도록 정하셨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교리는 인간의 자유 의지를 철저히 제한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칼뱅은 인간의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과 은혜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이를 주장했습니다. 바울이 언급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라는 표현 역시 이러한 예정론적 관점을 강하게 지지합니다. 인간이 선택될 수 있는 유일한 이유는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이며, 이는 인간의 어떤 자격이 아닌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대속적 사역에 근거합니다.
이 예정의 개념은 신학적으로도 깊은 의미를 지닙니다. 첫째로, 인간은 구원의 전 과정에서 전적으로 수동적인 존재임을 나타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세 전에 택하셨다는 사실은 인간이 그 어떤 공로도 세울 수 없으며,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분명히 합니다. 이 예정의 선택은 '거룩하고 흠이 없게' 되기 위한 목적으로 이루어졌으며, 이는 인간이 선택받은 이후의 삶에서 나타나야 할 거룩함과 성화를 강조합니다. 칼뱅은 이를 '효과적 부르심'(effectual calling)이라고 표현하며, 하나님의 선택은 단지 구원의 약속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성도들의 삶에서 거룩함으로 이어지는 열매를 맺게 한다고 보았습니다.
둘째로, 예정은 인간의 자유 의지와 조화를 이루는 신비로운 방식으로 나타납니다. 칼뱅은 인간의 자유 의지가 타락으로 인해 심각하게 훼손되었으며, 구원에 있어서는 전적으로 무능력하다고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선택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게 되면, 성령의 역사로 인해 우리의 의지가 하나님을 향해 새롭게 변화된다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예정은 인간의 의지가 무시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새롭게 변화되고 자유롭게 하나님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신비로운 은혜의 과정입니다. 바울은 이 부분에서 예정의 궁극적인 목적이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기쁨을 따라 이루어지는 것임을 명확히 합니다. 이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영광과 그분의 기쁨을 위해 존재한다는 예정론의 중요한 교리적 기반을 제공합니다.
셋째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정하신 목적은 그분의 은혜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칼뱅은 구원이 인간에게 주어진 궁극적인 이유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함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는 것은 그분의 자비와 은혜를 드러내는 것이며, 이는 피조물로서 인간이 마땅히 드려야 할 찬양의 이유가 됩니다. 예정론은 인간 중심의 신학을 배격하고 하나님 중심의 신학을 추구하며, 구원의 전 과정을 통해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는 것을 목표로 삼습니다.
칼뱅의 예정론은 또한 성도들에게 위로와 확신을 줍니다. 우리가 선택받은 것은 우리의 공로나 행위가 아닌 하나님의 변치 않는 사랑과 그분의 뜻에 따른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구원은 결코 흔들리지 않습니다. 이는 성도들에게 구원의 확신을 주며, 하나님의 은혜와 그분의 주권적인 사랑에 대한 깊은 신뢰를 심어줍니다. 또한, 예정론은 우리가 겸손하게 하나님 앞에 서게 만듭니다. 우리는 구원을 자랑할 수 없으며,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할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깨닫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에베소서 1장에 나타난 '선택과 예정'의 교리는 칼뱅의 예정론과 깊이 연결되어 있으며,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와 인간의 무능력을 강조함으로써 구원의 모든 과정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데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 교리를 통해 성도들이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얼마나 특별한 위치에 있는지를 깨닫고, 그분의 은혜에 대해 감사하며 찬양하도록 초대하고 있습니다.
2-2) 구속과 죄 사함 (1:7-10)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라는 구절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을 통한 죄 사함을 강조합니다. 여기서 "구속"이라는 용어는 헬라어로 '루트로시스' (λύτρωσις)로서, 이는 값을 지불하고 자유롭게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 단어는 고대 사회에서 주로 노예를 해방시키기 위해 사용되었으며, 예수님의 구속은 죄의 노예 상태에 있던 우리가 그분의 피로 인해 자유를 얻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단순한 용서의 차원을 넘어, 죄의 권세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피는 단지 상징적인 것이 아니라 실제로 값을 지불한, 우리의 영혼을 죄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한 대가였습니다.
구속은 또한 우리가 하나님과의 깨어졌던 관계를 회복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죄로 인해 인간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멀어졌으나, 그리스도의 피는 화목 제물로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였고, 그 결과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는 레위기에서 말하는 속죄 제사를 연상시키며, 예수님께서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어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집니다. 구속은 단지 개인적인 죄의 용서에 그치지 않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새롭게 태어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울이 "구속"이라는 개념을 사용할 때, 이는 단순한 죄의 용서만이 아닌, 전인적인 해방을 포함합니다. 구속은 우리를 죄의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시키며,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입은 자로서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받게 합니다. '루트로시스'는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사랑의 극치를 드러내며, 인간이 결코 자신의 힘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자유와 용서를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셨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또한, 바울은 이 구속의 은혜가 "하나님의 뜻의 비밀"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뜻의 비밀'이라는 표현은 헬라어로 'μυστήριον' (mystērion)으로서, 이는 감추어져 있던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그리스도를 통해 계시된 것을 의미합니다. 이 비밀은 구약의 선지자들이 기대하고 예언했던 내용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인류에게 나타난 구원의 완성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단지 이스라엘 민족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민족에게 열려 있으며, 이로써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얼마나 보편적이며 깊은지 알 수 있습니다.
이 비밀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통일하시는 계획을 의미합니다. '통일'이라는 개념은 모든 창조 세계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로 묶이고, 죄로 인해 파괴된 조화가 회복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단지 영적인 회복만을 의미하지 않고, 온 우주적 차원에서의 회복을 내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해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피조물이 그분의 통치 아래 회복되기를 원하십니다. 이는 로마서 8장에서 바울이 언급한 '피조물의 탄식'과도 연결되며, 그리스도를 통한 궁극적인 회복의 약속을 나타냅니다.
그리스도의 구속은 단지 개인의 죄의 사함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일원으로서 공동체적 삶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됩니다. 예수님의 희생은 우리를 단순히 죄의 형벌에서 구해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관계 안으로 들어가도록 초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하나님의 가족으로서 서로를 섬기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는 공동체를 이루어야 합니다. 구속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일원으로 부르며, 하나님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서로 간의 관계도 회복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결국, 바울이 말하는 구속의 은혜는 우리가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얼마나 중요한 위치에 있는지를 깨닫게 하며,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이루신 놀라운 사랑과 희생의 역사를 깊이 묵상하게 합니다. 우리는 더 이상 죄의 노예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서 자유롭게 된 자들입니다. 이 자유는 단지 죄에서 벗어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능력을 포함합니다. 구속받은 자로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세상에 드러내며, 그분의 은혜를 찬양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2-3) 성령의 인치심과 유업의 보증 (1:11-14)
성도들이 구원을 받은 이후에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인치심이란 하나님의 소유됨을 나타내는 표입니다. 이는 고대 문서나 물건에 찍히는 인장처럼, 성령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녀라는 확신을 주고, 장차 누릴 유업의 보증이 되심을 의미합니다. 이 인치심은 신분과 소속을 확실히 드러내는 것이며,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하심을 약속하는 표지입니다. 여기서 유업이란 "하늘에 있는 모든 신령한 복"이며, 이는 성령의 역사로 확정됩니다.
성령의 인치심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누리는 특권과 보호의 상징입니다. 고대 사회에서 인장은 소유주가 누구인지를 명확히 하는 도구였으며, 법적 효력이 있는 증명이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성령의 인치심은 우리가 하나님의 소유이며, 그분의 보호 아래 있음을 나타냅니다. 성령의 인치심은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끝까지 함께하신다는 약속입니다. 이 인치심은 우리의 구원이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임을 확증하는 표지로 작용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맺으신 언약이 결코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성령의 인치심은 장차 우리에게 주어질 유업의 보증이 됩니다. '유업의 보증'이라는 표현에서 '보증'은 헬라어로 'ἀρραβών' (arrabōn)이며, 이는 오늘날 계약에서의 보증금과 비슷한 개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통해 우리에게 그분의 약속을 확증하시고, 앞으로 우리가 받을 영광스러운 유업을 미리 맛보게 하십니다. 이 보증은 단지 약속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의 축복을 현재적으로 경험하게 합니다. 성령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며,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가도록 지속적으로 인도하십니다.
성령의 인치심은 또한 우리의 정체성과 관련이 깊습니다. 성령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신분을 변함없이 유지하게 하십니다. 이 신분은 인간의 노력이나 행위에 의해 획득된 것이 아니며,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인치심을 주셨다는 것은 우리가 이제 더 이상 세상의 가치에 따라 사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왕국의 가치에 따라 사는 자임을 의미합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법을 가르치고, 그분의 뜻에 순종하도록 힘을 주십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삶은 우리의 일상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입니다.
바울은 이 성령의 인치심이 결국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는 목적을 지닌다고 말합니다. 이는 우리가 받은 구원의 모든 과정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함이며, 성령의 인치심도 그 일환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의 인도를 받아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갈 때, 우리의 삶은 하나님께 대한 찬양과 영광의 통로가 됩니다. 성령의 인치심은 단지 개인적인 확신에 그치지 않고, 공동체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 성령의 인치심을 받은 모든 성도는 서로를 격려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증거하며, 그분의 영광을 세상에 드러내는 사명을 공유합니다.
3) 바울의 기도: 지혜와 계시를 위한 간구 (1:15-19)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을 위한 간구를 통해 그들이 하나님을 더 깊이 알기를 기도합니다. 여기서 '하나님을 알다'라는 것은 단순히 지식적 이해를 넘어, 인격적이고 관계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이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성품과 뜻을 깊이 깨닫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특히 성령으로부터 오는 "지혜와 계시"를 강조하며, 이 지혜와 계시는 단지 인간적인 지식이 아닌,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적인 통찰력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통찰력을 통해 성도들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과 그리스도의 부르심의 목적을 더욱 명확히 이해하게 됩니다.
바울은 또한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부르심의 소망과 성도들이 받을 유업의 풍성함을 깨닫기를 간구합니다. '부르심의 소망'은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향해 가지고 계신 궁극적인 목적과 그분의 영광스러운 계획을 의미합니다. 이 소망은 단순한 기대나 희망을 넘어, 하나님께서 반드시 성취하실 약속과 구원의 완성을 담고 있습니다. 바울은 성도들이 이 부르심의 소망을 깨달음으로써 현재의 어려움과 고난을 능히 이겨낼 수 있는 영적인 힘과 용기를 얻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바울은 성도들이 받을 유업의 풍성함을 깊이 깨닫기를 원합니다. 여기서 '유업'이란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약속하신 영원한 축복과 하나님의 나라에서의 영광을 말합니다. 바울은 성도들이 단지 이 유업을 미래에 기대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현재의 삶 속에서도 그 유업의 일부를 경험하고 누리기를 바랍니다. 이는 성령의 역사로 인해 가능해지며, 성도들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분의 풍성한 은혜를 이미 맛보고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됩니다.
바울의 기도는 단순히 성도들이 구원의 감격을 느끼는 데 그치지 않고, 그들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계속 성장하기를 원합니다. '지식에서 성장한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욱 깊어지고, 그분의 뜻을 이해하며 그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과정은 성령의 도우심을 통해 이루어지며, 성도들은 매일의 삶 속에서 하나님을 더욱 깊이 경험하게 됩니다.
바울은 또한 "하나님의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성도들 안에서 역사하기를 간구합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능력'은 단순한 물리적 힘을 넘어, 영적인 생명력을 의미합니다. 이 능력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음에서 다시 살리신 부활의 능력입니다. 부활의 능력은 죽음을 이기고 생명을 가져오는 궁극적인 하나님의 능력으로, 성도들 역시 이 능력에 참여하게 됩니다. 이는 성도들이 죄와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새로운 생명 안에서 살아가도록 돕는 능력입니다.
바울은 성도들이 이 부활의 능력을 체험함으로써, 그들의 삶이 단순한 종교적 행위에 그치지 않고, 살아있는 신앙의 여정을 걷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 능력은 성도들이 일상에서 경험하는 고난과 시험을 능히 이겨내게 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 나가는 데 필요한 모든 힘을 제공합니다. 따라서 바울의 기도는 단지 개인의 영적 성장을 위한 것이 아니라, 성도들이 공동체 안에서 서로를 세우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살아가도록 돕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도는 성도들이 하나님께 대한 신뢰와 순종 안에서 온전해지기를 바라는 깊은 사랑과 열망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4) 그리스도의 높임과 교회의 머리 되심 (1:20-23)
에베소서 1장의 마지막 부분은 그리스도의 승귀와 교회의 머리 되심을 선포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리시고, 하늘의 모든 권세와 권위 위에 앉히셨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단순한 인간 지도자가 아닌, 모든 만물 위에 뛰어나신 주님이심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승귀는 단지 죽음에서 부활하신 사건에 그치지 않고, 하늘 보좌에 앉으셔서 하나님 우편에 위치하게 되신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모든 통치자와 권세자들 위에 계시는 예수님의 절대적인 권위를 상징하며, 만물의 주권자가 되심을 확증합니다.
그리스도가 하늘의 모든 권세 위에 앉히심을 받았다는 것은 우리의 신앙적 소망의 근거가 됩니다. 성도들은 이 땅에서 고난과 어려움을 겪을지라도, 그리스도께서 하늘 보좌에 계시며 만물을 통치하고 계신다는 확신을 통해 위로와 힘을 얻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이 높임을 통해 성도들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부활의 능력과 그리스도 안에서 누릴 영광스러운 소망을 더욱 분명히 깨닫기를 원합니다.
이와 더불어 바울은 교회를 "그의 몸"이라고 칭하며,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 되심을 명확히 합니다. 머리로서의 그리스도는 교회를 다스리며, 모든 성도들이 그분의 지시를 따르는 유기적인 관계를 나타냅니다. 머리는 몸을 지배하고, 몸의 모든 기능을 조정하며, 필요한 자양분을 공급합니다. 이처럼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로서 교회를 공급하시고 인도하시며, 모든 성도들이 그분 안에서 하나가 되어 성장하도록 이끄십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충만함이 거하는 곳이며, 이는 단순한 비유적 표현이 아닙니다. '충만함'이라는 개념은 그리스도가 가지신 모든 영적 축복과 능력이 교회 안에 온전히 임재한다는 의미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그분의 충만함을 나타내는 곳이며, 성도들은 그 안에서 하나님의 충만한 은혜를 누리게 됩니다. 이는 교회가 단순한 인간의 모임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과 그리스도의 임재가 드러나는 공동체임을 의미합니다.
또한 교회는 그리스도의 충만함을 세상에 드러내는 도구입니다.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서로를 돌보고 사랑하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세상에 전하는 역할을 감당합니다. 그리스도의 충만함은 교회 안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통해 세상에 흘러가야 합니다. 바울은 이 점을 강조하면서 성도들이 각자 맡은 바 사명을 통해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를 세상에 전파하기를 원합니다. 교회는 단지 모이는 장소가 아니라, 흩어져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도구로 부름받았습니다.
그리스도의 높임과 교회의 머리 되심은 성도들에게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첫째, 우리는 교회의 머리 되신 그리스도께 온전히 의지하고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라야 합니다. 둘째, 교회는 그리스도의 충만함이 거하는 곳으로, 성도들이 서로를 섬기고 사랑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합니다. 셋째, 그리스도의 승귀는 모든 성도들에게 위로와 소망의 근거가 되며, 그분이 모든 만물을 통치하고 계시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큰 용기와 확신을 줍니다.
결론적으로, 에베소서 1장의 마지막 부분은 그리스도의 승귀와 교회의 머리 되심을 통해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주신 영광스러운 부르심과 그분의 주권적 통치에 대한 신뢰를 강조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충만함을 나타내는 몸으로서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공동체이며, 모든 성도는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충만히 누리며 서로를 섬기는 사명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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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묵상글: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누리는 삶
에베소서 1장은 성도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신령한 복을 찬양하며 시작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창세 전부터 계획하신 사랑의 대상이며,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받고, 성령의 인치심으로 보증된 사람들입니다. 이 모든 축복은 하나님의 은혜와 영광을 찬양하게 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우리의 공로나 능력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근거합니다.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누린다는 것은 단순히 물질적 풍요나 세상적인 성공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의 은혜 안에서 살아가는 삶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성도들이 하나님을 더 깊이 알고, 그의 부르심의 소망을 깨닫기를 간구합니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 안에 있음을 깨닫고, 그분의 능력에 의지하며 살아가도록 인도합니다.
또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가 되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하나님의 충만함이 거하는 곳입니다. 교회 안에서 우리는 서로를 섬기고 사랑하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세상에 드러내야 합니다.
에베소서 1장은 성도들에게 두 가지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첫째,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선택받고 구원받은 우리는 그의 영광을 찬송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둘째, 우리는 교회의 일원으로서 그리스도의 머리 되심을 인정하고, 그분의 충만한 은혜를 누리는 공동체 안에서 자라나야 합니다.
오늘 하루,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는 통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이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로 충만하여, 교회와 세상 가운데 그분의 충만함을 증거하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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