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사랑을 회복하라: 에베소 교회를 향한 그리스도의 음성
요한계시록 2:1–7은 아시아 일곱 교회 중 첫 번째 교회인 에베소 교회에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지입니다. 주님은 그들의 수고와 인내를 칭찬하시며, 거짓 교사를 분별한 것에 대해 높이 평가하십니다. 그러나 그들 안에 ‘처음 사랑을 버렸다’는 결정적 책망을 하십니다. 에베소 교회는 외적인 건전함은 유지했지만, 내적인 정열과 주님에 대한 사랑을 잃은 상태였습니다. 이 말씀은 신앙의 본질이 단지 행위나 교리의 정통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회복에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오늘날 우리도 바른 신학과 활동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날마다 처음 사랑을 회복해야 합니다.
수고와 인내, 진리 수호의 모범된 교회
본문 1절은 주님께서 자신을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로 소개하십니다. 이는 요한계시록 1장에서 이미 나타난 그리스도의 형상과 이어지며, 교회의 주인이신 그리스도께서 각 교회를 가까이 돌보신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거니신다’는 헬라어 peripateō(περιπατέω)는 단순히 걷는 것이 아니라, 감독하고 살피며 교제하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주님은 멀리 계시지 않으며, 교회 안을 걸으시며 함께하시고 관찰하십니다.
2절에서 주님은 에베소 교회의 수고(kopos, κόπος)와 인내(hupomonē, ὑπομονή),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을 칭찬하십니다. ‘수고’는 땀이 날 정도로 힘든 노동을 의미하며, 이는 에베소 교회가 단지 형식적인 예배가 아닌 실제적 헌신의 삶을 살았다는 증거입니다. ‘인내’는 외부의 핍박과 내부의 혼란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영적 견고함을 말합니다. 또한 그들은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거짓된 자로 드러냈습니다. 이는 영적 분별력이 살아 있는 교회였음을 보여줍니다.
4절에 이르기까지는 모범적인 교회로 보입니다. 3절에서도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하였다”는 말씀이 반복되며, 그들의 신실함을 주님은 높이 평가하십니다. 여기까지 보면 에베소 교회는 교리적으로 정통하고, 윤리적으로 모범적이며, 사역적으로도 열심인 이상적인 공동체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 다음 구절에서 우리는 이 교회가 놓치고 있었던 치명적인 문제와 마주하게 됩니다.
처음 사랑을 버렸도다
4절에서 주님은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처음 사랑’(tēn agapēn sou tēn prōtēn)은 단순한 감정적 열정만이 아니라, 구원받은 자로서의 첫 은혜, 첫 헌신, 첫 기쁨을 포괄하는 개념입니다. 교리와 사역은 남았지만, 사랑은 식어 있었습니다. 교회를 향한 주님의 칭찬은 이 한 구절로 무게 중심이 뒤바뀝니다.
여기서 주목할 표현은 ‘버렸다’(aphēkas, ἀφῆκας)입니다. 이는 실수로 놓친 것이 아니라, 의지적으로 무시하거나 떠났다는 뜻입니다. 에베소 교회는 사랑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스스로 ‘버린’ 것입니다. 이는 단지 영적 침체의 문제가 아니라, 주님과의 관계의 본질적인 균열을 의미합니다. 아무리 외적인 경건이 유지되어도, 주님과의 사랑이 식어 있다면 그것은 본질을 놓친 신앙입니다.
5절은 강력한 회개의 요청입니다.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고 하십니다. ‘떨어졌다’는 말은 ekpiptō (ἐκπίπτω)로, 원래의 자리에서 미끄러져 내려간 상태를 뜻합니다. 즉, 그들은 아직 교회 안에 있었고 예배도 드렸지만, 실상은 본질에서 벗어난 상태였습니다. 주님은 사랑 없는 신앙을 인정하지 않으시며, 회개하지 않으면 “내가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겠다”고 경고하십니다. 이는 주님의 임재와 공동체로서의 정체성이 사라진다는 심각한 경고입니다.
에베소 교회는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하는 점에서도 주님과 뜻을 같이하고 있었습니다(6절). 니골라당은 초대교회 내의 이단적 집단으로, 은혜를 빌미로 한 윤리적 타락과 우상 숭배를 용인했던 자들로 보입니다. 주님은 그러한 타락을 미워하셨고, 에베소 교회 역시 그러한 기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시 말하건대, 기준은 있었지만 사랑은 사라졌던 것입니다.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7절은 에베소 교회뿐 아니라, 모든 교회에 주시는 말씀입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여기서 ‘교회들’(복수형)이라는 표현은 이 메시지가 보편적인 적용을 갖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령은 시대를 초월하여 각 교회에 동일한 진리를 말씀하시며, 각 성도는 이를 마음으로 들어야 합니다.
이기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겠다”는 약속이 주어집니다. 이는 창세기의 에덴동산에서 죄로 인해 접근할 수 없게 된 생명나무의 회복을 의미하며, 요한계시록 22장에서 다시 완성될 약속입니다. ‘이기는 자’는 단지 윤리적 승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과 사랑을 끝까지 지켜낸 자를 의미합니다. 이 약속은 마지막 날의 보상이면서도, 지금도 사랑을 회복하는 자에게 열리는 은혜의 열매입니다.
우리는 사랑이 사라진 사역, 감격 없는 예배, 마음이 식은 교리를 얼마나 많이 경험하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처음 사랑을 잃었다는 것은 단지 감정적 열정이 식은 것이 아니라, 주님과의 관계의 중심이 무너졌음을 뜻합니다. 교회 생활이 익숙해질수록 우리는 본질을 잃을 수 있습니다. 그때마다 우리는 처음 사랑을 기억하고, 다시 주님께 돌아가야 합니다.
마무리
요한계시록 2:1–7은 외적으로는 흠이 없어 보이는 에베소 교회를 향한 주님의 칭찬과 책망, 그리고 회개의 요청을 담고 있습니다. 처음 사랑을 회복하라는 이 말씀은 단지 감정적인 회복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신앙의 본질로 돌아가라는 부르심이며, 주님과의 관계 안에서 다시 기쁨과 충성을 회복하라는 요청입니다. 주님은 지금도 교회 한가운데를 거니시며 우리의 사랑을 살피고 계십니다. 우리가 다시 처음 사랑을 회복할 때, 주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낙원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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