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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성경

요한계시록 21:22-22:5 묵상

by 파피루스 2025. 7.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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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수의 강과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복

요한계시록 21:22-22:5은 새 예루살렘의 내적 모습과 그 안에서 이뤄지는 완전한 하나님의 통치를 보여줍니다. 성전 없이 하나님과 어린양이 함께하시는 도성, 밤이 없고 영원한 빛이 비추는 삶, 생명나무와 생명수의 강이 흐르는 풍요로움이 묘사됩니다. 이 말씀은 단순한 환상이 아니라, 구속사적 완성 속에서 우리가 누릴 영원한 복을 제시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매일 묵상하는 성도라면 이 본문을 통해 지금 나의 삶과 신앙을 점검하고, 하나님의 뜻과 영광을 소망하며 더욱 거룩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성전이 따로 없는 도성, 하나님 그 자체가 성전이심

요한은 21장 22절에서 놀라운 고백을 합니다. "성 안에서 내가 성전을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여기서 "성전"(ναὸν, 나온)은 하나님의 임재가 머무는 거룩한 장소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 그분 자신과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가 성전이 되셨기에, 따로 존재하는 구조물로서의 성전은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2:19에서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고 말씀하신 것과 연결되며, 그분의 부활을 통해 새로운 성전의 시대가 열렸음을 의미합니다.

성전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단순히 공간적 개념의 부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가 도성 전체를 충만히 덮고 있다는 선언입니다. 이는 구속사의 궁극적인 목적이 곧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완전한 연합이라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성도는 이 말씀을 묵상하며, 지금 이 땅의 예배가 완전한 임재를 향한 예표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매일의 삶에서 주님과 동행하는 성전된 삶을 살아가야 하며, 그분의 임재를 누리는 삶을 지향해야 합니다.

도성에는 해나 달이 필요 없다고 말합니다. 23절에서 말하듯,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어린양이 그 등불이 되심이라." 여기서 "영광"(δόξα, 독사)은 하나님의 현존과 거룩함의 발현이며, '등불'(λύχνος, 뤼크노스)은 성소 안에 있는 금촛대를 연상케 합니다. 이제 어린양이 친히 우리에게 빛을 비추시며, 하나님의 빛은 더 이상 차단되지 않고 온전히 드러납니다. 이는 세상의 그 어떤 피조물도 하나님의 진리와 생명을 대신할 수 없다는 점을 강하게 보여주는 메시지입니다.

모든 나라와 민족이 그 빛 가운데로 나아오는 구원의 보편성

24절부터 27절까지는 새 예루살렘의 개방성과 보편성을 강조합니다.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리라." 이는 계시록 전체에 나타나는 선민 중심의 구도가 아니라, 구속사적 완성 안에서 모든 민족이 구원의 빛으로 들어오는 통합을 상징합니다. 여기서 "만국"(τὰ ἔθνη, 타 에쎄네)은 단지 정치적 단위로서의 국가가 아니라, 구속받은 자들의 보편성을 뜻하며,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열렸음을 보여줍니다.

성문은 낮에 닫히지 않으며, 도성 안에는 밤이 없습니다. 밤은 성경에서 죄, 두려움, 숨음, 심판의 상징이었으나(요 3:19, 출 12:29-30), 이제 완전한 구원이 임함으로써 그 모든 그림자는 사라지고 하나님의 빛만이 존재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물리적 상태가 아니라, 구원의 실재, 곧 더 이상 죄가 침투할 수 없는 거룩의 완성을 의미합니다.

27절은 도성의 거룩함을 다시 강조합니다.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 이는 이 땅에서의 성도된 삶이 얼마나 진실해야 하는지를 묵상하게 합니다. 어린양의 생명책(βιβλίον τῆς ζωῆς, 비블리온 테스 조에스)에 이름이 기록된 자란, 단지 예수를 믿는 자에 그치지 않고, 그 믿음으로 거룩과 진리를 추구하며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매일의 삶에서 진실함을 지키며, 하나님의 뜻 안에서 살아가는 자로서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외형적 종교생활이 아니라, 생명책에 기록된 자답게 진실한 마음과 삶으로 하나님 앞에 서야 하는 것입니다.

생명수의 강과 생명나무, 그리고 하나님과의 영원한 교제

22장 1절부터 5절은 도성 안에 흐르는 생명수의 강과 생명나무에 대한 묘사로 시작합니다. 천사는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ποταμὸν ὕδατος ζωῆς, 포타몬 휘다토스 조에스)을 보여주며, 이는 하나님의 보좌와 어린양의 보좌에서 흘러나옵니다. 이는 에스겔 47장과 스가랴 14장을 배경으로 한 묘사이며, 성전에서 흘러나와 온 땅을 소생시키는 생명의 강을 떠올리게 합니다. 하나님의 생명이 도성 안을 충만히 채우고 있으며, 그 생명은 끊임없이 흘러 성도들의 내면을 적십니다.

강 좌우에는 생명나무(ξύλον ζωῆς, 크실론 조에스)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고, 그 잎사귀는 만국을 치료한다고 합니다. 생명나무는 창세기 2장에 처음 등장한 이후, 죄로 인해 인간이 접근할 수 없게 되었던 나무입니다. 그러나 이제 구속사적 완성 안에서 성도는 다시 그 생명나무에 이르게 됩니다. 열두 가지 열매는 완전한 공급을 의미하며, 열두 달마다 결실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끊이지 않는다는 상징입니다. 잎사귀가 만국을 치료한다는 구절은 하나님의 구원이 모든 민족에게 동일하게 임하며, 죄와 상처로 병든 세상이 완전한 치유를 경험하게 됨을 보여줍니다.

3절에서 요한은 "저주가 다시 있지 아니하고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라고 말합니다. '저주'(κατάθεμα, 카타데마)는 창세기 3장의 타락 이후 인간에게 주어진 결과였으나, 이제 그 저주는 사라지고 오직 섬김과 예배만이 남습니다. 이는 우리의 존재 목적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λατρεύω, 라트류오)에 있음을 분명히 하며, 성도의 삶은 하나님 중심적 예배로 귀결됨을 나타냅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복은 4절에서 말하는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는 말씀입니다. 이는 민수기 6:24-26의 제사장 축복기도의 완전한 실현이며, 구약 내내 감히 볼 수 없었던 하나님의 얼굴을 이제 성도는 직접 대면하게 됩니다. 이 말씀은 가장 친밀한 교제, 가장 완전한 임재, 가장 깊은 사랑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이마에 있다는 것은 그분의 소유됨과 정체성의 확증을 상징하며, 이는 성도의 영원한 안전과 존귀함을 나타냅니다.

5절은 결론처럼 말합니다. 밤이 없고 등불과 햇빛이 필요 없으며,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으로 영원히 왕 노릇하리라. 이는 다스림의 회복이자, 창조 질서의 회복입니다. 성도는 더 이상 피조물의 제한 속에 사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권세와 빛 안에서 다스리는 존재로 회복된 것입니다. 이 말씀은 단지 미래의 영광이 아니라, 지금 우리의 삶이 어떠한 정체성과 목적을 지녀야 하는지를 깊이 일깨워 줍니다.

마무리

요한계시록 21:22-22:5은 구속사의 완성에서 성도에게 주어질 영광과 복을 구체적이고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성전 없는 도성, 영원한 빛, 생명수의 강과 생명나무, 그리고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친밀한 교제는 우리가 도달할 영원한 나라의 참된 모습입니다. 이 본문을 묵상하며 우리는 지금의 삶을 재정비하고, 매일을 거룩한 소망으로 살아야 합니다. 어린양과 함께 그 도성에 거할 날을 기대하며, 오늘도 진리와 사랑 안에서 순종의 삶을 걸어가야 합니다.


2025년 8월 매일성경 묵상 본문입니다. 날짜와 요일, 묵상 본문을 정리했습니다. 각 묵상글은 날짜에 표기된 본문을 클릭하시면 보실 수 있습니다. 성경을 더 깊이 이해하는 복된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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