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러운 옷을 벗기시고, 정결한 옷을 입히시는 하나님
스가랴 3:1-10은 스가랴가 본 네 번째 환상으로, 대제사장 여호수아 앞에 선 사탄과 하나님의 판결, 그리고 여호수아에게 입혀지는 정결한 옷의 상징을 담고 있습니다. 이 장면은 포로에서 돌아온 유다 백성의 죄와 회복, 그리고 그들을 위한 중보자적 사역의 회복을 상징하며, 그 중심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본문은 사탄의 고발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게 되는 복음의 진수를 보여주는 장면이며, 묵상하는 성도에게 자기 죄에 대한 자각과 동시에 하나님의 긍휼에 대한 깊은 감사를 일깨우는 은혜의 본문입니다.
정죄와 고발의 자리에 선 대제사장 여호수아
본문은 여호수아가 여호와의 천사 앞에 서 있는 모습으로 시작됩니다(1절). 여호수아(יְהוֹשֻׁעַ, 여호슈아)는 당시 유다 공동체의 대제사장이며, 이름의 의미는 '여호와는 구원이시다'입니다. 그는 단지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영적 대표로 등장합니다. 하지만 그는 더러운 옷을 입고 서 있으며(3절), 이는 제사장직의 정결 요구를 충족하지 못함을 상징합니다.
그 앞에는 사탄(שָּׂטָן, 사탄)이 서서 그를 고발합니다. '사탄'은 '고소자', '대적자'라는 뜻으로, 욥기 1장에 나오는 하늘 법정에서의 고소자 역할과 동일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율법을 근거로 여호수아의 부적격함을 지적합니다. 이 장면은 단지 여호수아 개인에 대한 고소가 아니라, 이스라엘 전체를 향한 고발이며, 하나님의 구속사가 공의와 죄의 문제 앞에서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탄을 책망하십니다(2절). "여호와께서 너를 책망하노라." 여기서 '책망하다'(גָּעַר, 가아르)는 강력한 질책이며, 하나님이 사탄의 논리를 거부하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택하셨기에, 여호수아를 불 가운데서 꺼낸 그슬린 나무처럼 여기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선택이 인간의 죄보다 더 강력하다는 선언입니다. 우리 역시 묵상 가운데 사탄의 정죄 속에서 무력감을 느낄 수 있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책망이 아니라 긍휼로 대하십니다. 선택하신 백성을 결코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더러운 옷을 벗기시고, 정결한 옷을 입히시는 은혜
3절과 4절에서 여호수아는 더러운 옷(בְּגָדִים צֹאִים, 브가딤 초임)을 입고 서 있습니다. 여기서 '더럽다'는 표현은 인간의 도덕적 타락뿐 아니라, 제사장이 감당해야 할 정결의 요구에 대한 절대적 부족을 뜻합니다. 하나님은 명령하십니다.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네 죄악을 제거하였으니 의복을 입히리라."
이 장면은 이사야 61:10의 말씀, "그가 내게 구원의 옷을 입히시며 의의 겉옷으로 덧입히셨다"는 말씀과 긴밀히 연결됩니다. 여호수아는 스스로 정결하게 될 수 없으며, 오직 하나님께서 입혀주시는 정결한 옷을 통해서만 그 직분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정결한 옷'(בְּגָדִים מַחֲלָצוֹת, 브가딤 마하라초트)은 단지 깨끗한 옷이 아니라, 하나님의 용서와 회복의 표시이며, 구속사적 정결을 상징합니다.
또한 5절에서는 정결한 관(צָנִיף טָהוֹר, 차니프 타호르)을 머리에 씌우라고 명령하십니다. 이 '관'은 출애굽기 28장에서 대제사장이 쓰는 고유한 머리관이며, "여호와께 성결"이라는 글귀가 적혀 있습니다. 이는 여호수아가 다시 하나님의 임재 앞에 설 수 있도록 인정받았다는 표식이며, 사역의 회복을 의미합니다.
이 장면을 묵상하는 우리는 매일의 삶에서 자주 더러운 옷을 입은 채 서 있을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깨닫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옷을 벗기시고, 새 옷을 입히시는 분입니다. 그분의 은혜는 죄보다 크고, 정죄보다 강하며, 회복보다 더 선명한 소망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정결은 우리의 공로가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입니다. 묵상은 이 은혜를 날마다 되새기며, 우리의 죄를 자백하고 그분의 새 옷을 받아 입는 시간입니다.
여호와의 종, 가지: 장차 오실 메시아의 예표
6절부터는 여호수아에게 새로운 사명이 주어집니다. 하나님은 "내 길을 행하며 내 직무를 지키면 내가 너로 내 집을 다스리게 하며 내 뜰을 지키게 하리라"(7절)고 약속하십니다. 이는 단지 성전에서의 제사장직 복귀가 아니라, 더 큰 구속사적 사역의 서막입니다. 제사장은 단지 제사만 드리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과 백성 사이의 중보자로서 거룩한 통로가 되는 사람입니다.
8절에서 하나님은 여호수아와 그 앞에 있는 동료들을 "예표"(מוֹפֵת, 모페트)라고 부르십니다. 그들은 장차 올 여호와의 종, 곧 '가지'(צֶמַח, 체마흐)를 상징하는 인물입니다. '체마흐'는 예레미야 23:5과 33:15, 이사야 4:2 등에서 반복되어 등장하는 메시아적 상징어입니다. 가지는 다윗의 줄기에서 새로 나올 메시아를 상징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단어입니다.
여호수아의 회복과 정결은 단지 그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될 영원한 중보자, 영원한 대제사장의 도래를 미리 보여주는 모형입니다. 9절에서 언급되는 '한 돌'도 메시아적 상징입니다. "내가 너 여호수아 앞에 둔 돌"은 이사야 28:16의 시험한 돌, 베드로전서 2:6의 머릿돌과 연결되며, 이는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가리킵니다.
또한 그 돌에 '일곱 눈'(עֵינֵי שִׁבְעָה, 에이네이 쉬브아)이 있다고 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완전한 감찰과 섭리를 상징하며(계 5:6), 메시아의 전능성과 전지성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은 그 돌을 통해 이 땅의 죄악을 하루에 제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9절 후반). 이 '하루'는 십자가에서 예수께서 단번에 속죄 제물이 되신 그날을 상징하며, 히브리서 10:10에서 말하는 "단번에 영원한 제사를 드리심"과 직결됩니다.
10절은 이 놀라운 구원의 성취 이후의 평화를 묘사합니다. "그 날에 너희가 각각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로 서로 초대하리라." 이 표현은 열왕기상 4:25과 미가서 4:4에서도 사용된, 평화와 안식의 상징입니다. 이는 종말론적 평화이며, 메시아의 통치 아래에서 이루어질 영원한 샬롬(שָׁלוֹם, 샬롬)의 그림입니다.
묵상은 이러한 종말론적 소망을 오늘의 현실에 연결시키는 거룩한 훈련입니다. 정결한 옷을 입은 우리는 이제 그리스도의 대사로서, 세상을 향해 샬롬을 선포하는 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구원은 개인적 정결에 그치지 않고, 열방을 향한 회복의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마무리
스가랴 3장은 사탄의 고발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로 구속받는 자의 정체성을 선명히 보여줍니다. 더러운 옷을 입고 있던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명령으로 정결한 옷을 입게 되고, 메시아의 그림자인 가지와 돌을 통해 온 인류를 향한 구원의 계획이 선포됩니다. 이 말씀은 단지 과거 이스라엘의 회복이 아니라, 오늘을 사는 우리 각자에게도 주어진 구속의 메시지입니다. 묵상은 이 구속사의 흐름에 나를 깊이 연결하는 시간이며, 하나님 앞에 정결하게 살아갈 새 결단의 자리가 됩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정결한 옷을 입히시며, 복음의 증인으로 부르십니다. 그 은혜를 기억하고, 담대히 살아가십시오.
2025년 8월 매일성경 묵상 본문입니다. 날짜와 요일, 묵상 본문을 정리했습니다. 각 묵상글은 날짜에 표기된 본문을 클릭하시면 보실 수 있습니다. 성경을 더 깊이 이해하는 복된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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