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위에서 분별하라: 거짓 그리스도와 참 구원의 길(마가복음 13:21-22)
말세의 징조 가운데 가장 치명적인 위협은 외부의 핍박보다 내부의 혼란, 곧 진리를 가장한 거짓입니다. 마가복음 13장 21-22절에서 예수님은 분명하게 경고하십니다. “그 때에 어떤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보라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행하며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을 미혹하려 하리라.” 이 말씀은 단지 종말의 혼란에 대한 예고가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시는 경계의 말씀이며, 구속사 안에서 그리스도 중심 신앙으로 돌아가라는 촉구입니다. 우리는 이 본문을 통해 참된 피난처 되신 주님께로 가는 ‘산으로의 도피’가 단지 공간의 이동이 아니라, 영적 분별력의 자리로 옮겨지는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거짓 그리스도의 등장: 종말의 미혹과 교회의 시험
본문에서 예수님은 ‘그때에’라는 시간을 강조하십니다. 이는 14절 이하에서 시작된 종말적 위기의 연속선상에 있는 시점으로,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이후에 벌어지는 혼란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이미 성전 파괴와 역사적 재앙에 대해 말씀하셨고, 이어지는 장면에서는 영적 미혹의 극심함을 경고하십니다.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저기 있다”는 말은 단지 외부의 정치 지도자나 종교 창시자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이는 영적 진리를 가장하여 교회 안에서조차 나타나는 거짓 가르침과 현상을 포함합니다. 교부 터툴리안은 이 구절을 해석하며 “거짓 그리스도는 단지 한 인물이 아니라, 교회 안에 침투한 왜곡된 진리의 얼굴로 드러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종말에는 이름 없는 이단만이 아니라, 그럴듯한 성경 해석, 인기 있는 영적 운동, 감성적 열광이 거짓 그리스도의 형태로 교회를 위협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이 단지 말을 잘하는 것이 아니라, “이적과 기사를 행한다”고 하셨습니다. 이는 구약에서 모세와 아론이 파라오 앞에서 이적을 보일 때, 애굽의 술사들도 유사한 능력을 따라 했던 장면을 떠올리게 합니다(출 7:11-12). 능력은 참됨의 유일한 기준이 아닙니다. 참된 신앙은 기적이 아니라, 말씀에 뿌리내린 분별력에서 드러납니다.
개혁자 칼빈은 이 본문을 주해하며, “기적이 믿음의 근거가 되어선 안 된다. 오직 성경의 진리가 믿음의 유일한 기준이어야 하며, 그 진리는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교회는 기적과 능력을 좇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라는 구속사의 핵심에 뿌리내려야 합니다. 거짓 그리스도가 아무리 이적을 보여도, 복음의 중심을 벗어나 있다면 그것은 미혹입니다.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려 하리라: 분별의 절박성
예수님의 경고가 더욱 충격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이 거짓 그리스도들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까지도 미혹하려 한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는 택하신 자들이 실제로 미혹될 수 있다는 뜻이 아니라, 미혹의 강도가 그만큼 강력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 할지라도, 깨어 있지 않으면 흔들릴 수 있다는 경고입니다.
여기서 '택하신 자들'은 하나님께서 창세 전부터 예정하신 구속의 대상, 즉 교회를 가리킵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에 의해 확정되었지만,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 성도는 여전히 미혹의 시험을 받습니다. 따라서 성도는 항상 말씀 안에서 분별력을 유지해야 하며, 영적 게으름이나 자만은 결국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교부 어거스틴은 이 구절에 대해 “하나님은 택하신 자들을 지키시는 분이시지만, 그들이 깨어 있기를 원하신다. 깨어 있음은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구원의 열매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보호는 절대적이지만, 그 보호는 인간의 책임 있는 반응 안에서 실현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늘 말씀을 가까이하고, 기도로 자신을 무장하며, 분별의 영을 구해야 합니다.
이 문맥에서 ‘산으로 도망하라’는 주님의 명령은 단순한 피신이 아니라, 분별의 자리로 옮겨지라는 말씀입니다. 산은 단지 위협에서 벗어나는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만남, 말씀 안에서 깨어 있음의 상징입니다. 우리가 산으로 도망해야 하는 이유는 미혹에서 벗어나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을 다시 듣기 위함입니다.
참된 산 위에서 드러나는 구속의 진리
성경에서 산은 하나님의 계시와 구속의 드라마가 펼쳐지는 무대입니다. 모세가 율법을 받은 시내산, 엘리야가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은 호렙산, 예수님께서 영광의 얼굴을 드러내신 변화산은 모두 하나님의 임재가 나타나는 자리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종말의 미혹이 가득한 이 시대에도, 참된 산은 오직 하나님께서 계신 자리입니다.
예수님은 마가복음 13장에서 연이어 “도망하라”, “뒤돌아보지 말라”, “깨어 있으라”는 말씀을 주십니다. 그리고 그 모든 명령의 종착지는 하나님께로 향하는 도피입니다. 오늘 본문도 마찬가지입니다. 거짓 그리스도들의 현란한 언변과 이적이 난무하는 시대일수록, 성도는 더욱 하나님의 산, 곧 말씀과 진리의 터 위로 도망쳐야 합니다.
이것은 단지 종말에 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미 수많은 거짓 메시지들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진리를 가장한 인기 있는 설교, 성경을 이용하지만 복음과는 무관한 영적 콘텐츠, 복 받기 위한 조건으로 전락한 기도와 예배. 이 모두가 현대 교회를 향한 미혹의 전략이 될 수 있습니다. 산으로 도망하는 신자는 이런 유혹 앞에서 분별하고, 오직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중심에 둘 수 있는 사람입니다.
성도 여러분, 산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주님 앞에 나아가는 매 순간, 말씀 앞에 무릎 꿇는 그 자리가 바로 산입니다. 하나님의 계시와 보호, 그리고 인도하심이 있는 그 자리에서 우리는 다시 참된 그리스도를 만나게 됩니다. 그분은 여기 있다, 저기 있다 말할 필요 없이, 이미 성령으로 우리 안에 거하시는 살아계신 구속자이십니다.
전체 결론
마가복음 13:21-22은 종말의 혼란 가운데 참된 분별력으로 깨어 있으라는 예수님의 경고입니다. 거짓 그리스도들이 행하는 이적과 기사는 외형적일 뿐, 복음의 본질을 왜곡하는 미혹입니다. 성도는 산으로 도망하듯 말씀의 자리, 하나님과의 교제의 자리로 향해야 하며, 그곳에서 참된 그리스도를 분별하고 믿음으로 설 수 있습니다. 산은 피난처가 아니라, 구속의 진리를 붙드는 신자의 삶의 자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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