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2장 전체 요약
누가복음 12장은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무리에게 주시는 권면과 경고의 말씀으로 가득합니다. 외식하는 바리새인들을 경계하며, 숨은 것이 드러날 심판을 경고하고, 하나님을 경외함이 사람을 두려워하는 것보다 우선되어야 함을 강조하십니다. 물질과 재물에 대한 탐심을 경계하시며,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통해 참된 부요함은 하나님께 있음을 가르치십니다. 이어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의 나라를 구할 것을 명하신 후, 주의 재림을 준비하는 종의 태도, 마지막 심판과 분쟁에 대한 경고로 마무리하십니다. 이는 깨어 있는 제자의 삶을 촉구하는 구속사적 메시지입니다.
누가복음 12장 구조분석 목록
- 바리새인의 누룩을 주의하라 (12:1–3)
- 사람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라 (12:4–7)
- 사람 앞에서 예수님을 시인하라 (12:8–12)
-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 (12:13–21)
- 염려하지 말라 (12:22–34)
- 깨어 준비하라 (12:35–40)
- 충성된 청지기의 상과 불충한 자의 심판 (12:41–48)
- 불을 던지러 왔노라 (12:49–53)
- 시대를 분별하라 (12:54–56)
- 화해하고 심판을 피하라 (12:57–59)
1. 바리새인의 누룩을 주의하라 (12:1–3)
수많은 무리가 모여 서로 밟힐 만큼 몰려든 상황 속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먼저 말씀하십니다. "바리새인의 누룩 곧 외식을 주의하라" (12:1). 이는 바리새인의 삶과 신앙에 스며든 위선, 곧 겉과 속이 다른 신앙 태도를 경계하라는 말씀입니다. 누룩은 소량이지만 반죽 전체를 부풀게 하듯, 외식은 공동체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치명적인 영적 병균입니다.
예수님은 이어서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긴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다"고 하십니다 (12:2). 이는 인간의 외적인 경건과 형식이 하나님의 눈앞에서는 무의미하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외형이 아닌 중심을 보시며, 감추어진 것까지 낱낱이 드러내십니다. 이 경고는 종말론적 심판의 빛 아래 모든 것이 드러날 것을 전제한 구속사적 선언입니다.
"너희가 어두운 데서 말한 모든 것이 광명한 데서 들리고, 골방에서 귀에 대고 말한 것이 지붕 위에서 전파되리라" (12:3)는 말씀은 두려운 동시에 위로이기도 합니다. 진리를 위해 고난받은 자의 은밀한 외침도 결국 하나님께서 드러내시고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거짓 경건과 진정한 헌신은 마지막 날 반드시 구별될 것입니다. 우리는 외식의 누룩을 멀리하고, 마음 중심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진실한 제자의 길로 서야 합니다.
2. 사람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라 (12:4–7)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또 말씀하십니다. "내 친구 너희에게 말하노니 몸을 죽이고 그 후에는 더 이상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12:4). 이 구절은 매우 직설적이며, 신앙 고백을 위해 핍박과 박해를 마주해야 했던 제자들에게는 현실적 위로와 동시에 도전이 되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정체성을 "내 친구"라고 부르시며, 이 위대한 관계 안에서 두려움 대신 확신으로 서라고 하십니다.
사람은 몸은 해칠 수 있어도 영혼은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지는 권세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12:5)는 예수님의 말씀은, 진정한 두려움의 대상이 누구인지를 명확하게 가르쳐줍니다. 하나님은 심판의 권세를 가지신 분이며, 그분 앞에서 살아가는 삶이 곧 구속사적 삶입니다. 경건은 사람의 평가가 아닌, 하나님의 평가를 염두에 둘 때 비로소 살아있는 신앙이 됩니다.
예수님은 이어서 참된 위로를 주십니다. "참새 다섯 마리가 두 아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하나님 앞에는 그 하나도 잊어버리시는 바 되지 아니하느니라" (12:6). 창조 세계의 가장 작고 하찮은 피조물조차 하나님의 돌보심 안에 있다면, 하물며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살아가는 제자들을 하나님께서 얼마나 귀히 여기시겠습니까?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니라" (12:7).
예수님의 이 말씀은, 두려움에 빠지기 쉬운 이 땅의 제자들에게 주시는 구속사적 확신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안에 속한 자이며, 그분의 뜻을 따라 사는 삶은 결코 외면되지 않습니다. 고난이 있더라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담대히 복음을 따르는 자들이야말로, 하나님 나라의 참된 백성입니다.
3. 사람 앞에서 예수님을 시인하라 (12:8–12)
예수님은 이어서 중요한 말씀을 주십니다.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인자도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는 자는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부인함을 당하리라" (12:8–9). 이는 종말론적 선언이자, 구속사 전체를 꿰뚫는 핵심 고백의 위치를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삶은 단지 조용한 내면의 신앙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반드시 사람들 앞에서 드러나야 하며, 세상 가운데서 주님을 따르는 삶이 곧 그분을 시인하는 방식입니다. 믿음을 숨기는 것은 곧 부인의 또 다른 형태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가 그분을 고백할 때, 마지막 날 그 고백을 기억하시고 우리를 시인하십니다.
예수님은 또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받으려니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사하심을 받지 못하리라" (12:10). 이는 복음을 끈질기게 거부하고, 성령의 역사마저 배척하며 스스로 돌이킬 길을 차단하는 자들에 대한 경고입니다. 성령은 구속사의 중재자이며, 우리로 하여금 회개케 하고 그리스도를 믿게 하시는 분입니다. 그분을 거부한다는 것은 곧 구원의 유일한 통로를 거절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위로도 더하십니다. "회당이나 정사자나 권세 있는 자들 앞에 끌려가거든 어떻게 무엇으로 대답하며 무엇으로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12:11). 이는 복음을 증거하다가 당하는 압박 앞에서의 두려움을 위한 말씀입니다. 성령께서 그때 그 말할 것을 가르쳐 주시리라는 약속은, 제자 공동체에 주어진 신적 동행의 확증입니다 (12:12).
예수님의 이 말씀은 단지 순교적 용기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살아가는 자는 언제 어디서든 주를 시인할 수 있다는 믿음의 실재를 보여줍니다. 구속사에 참여하는 삶은 단순한 교리 수용이 아니라, 삶의 전 영역에서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고백의 연속입니다. 우리는 사람 앞에서 주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시인하며, 주님의 재림의 날에 주께 시인받는 복된 존재로 살아가야 합니다.
4.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 (12:13–21)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던 무리 중 한 사람이 말합니다.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산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 (12:13). 이는 매우 현실적이고 개인적인 요청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하시며, 이 질문을 단호히 거절하십니다 (12:14). 이어서 예수님은 물질과 탐심에 대한 본질적인 경고의 말씀을 주십니다. "삶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12:15).
그리고 곧바로 예수님은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드십니다. 한 부자가 땅에서 큰 소출을 얻자 창고를 더 크게 짓고 거기에 곡식과 물건을 쌓아두며 말합니다. "내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12:19). 그러나 하나님은 그에게 말씀하십니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12:20).
이 비유는 재물을 단지 소유의 관점에서만 보는 현대인에게 강한 도전을 줍니다. 부자는 모든 것을 계획하고 소유하지만, 단 한 가지, 즉 자신의 영혼과 하나님과의 관계는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구속사적 관점에서 이 말씀은, 참된 부요는 재물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의 관계와 삶의 방향에 있음을 선포하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 부자와 같다고 하십니다 (12:21).
5. 염려하지 말라 (12:22–34)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어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12:22). 이는 일상적 생계의 문제를 가볍게 여기려는 말씀이 아니라, 제자된 삶의 우선순위를 정립하라는 구속사적 요청입니다. 우리의 삶은 하나님께 속해 있으며, 모든 공급과 보호도 그분께로부터 옵니다.
예수님은 까마귀와 들의 백합화를 예로 들어 설명하십니다. 까마귀는 씨도 뿌리지 않고 곡간도 없지만 하나님이 기르시며, 백합화는 수고도 길삼도 하지 않지만 솔로몬의 모든 영광보다 더 아름답게 입는다고 하십니다 (12:24–27). 예수님은 이를 통해 말씀하십니다. "믿음이 작은 자들아" (12:28). 염려는 신앙의 결핍이며, 하나님 아버지를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됩니다.
예수님은 반복해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 (12:29). 이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의 필요를 아시며, 그분의 나라를 구하는 자에게는 그 모든 것을 더하신다는 약속을 중심에 둔 선언입니다 (12:30–31). 구속사는 단지 종말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오늘 우리 삶의 중심과 질서에 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권면하십니다. "너희는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 (12:32).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며, 하늘에 있는 배지지 않는 전대, 곧 없어지지 아니하는 보물을 쌓으라" (12:33). 이는 재물의 방향을 바꾸라는 요청이며, 구속사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우리의 삶을 헌신하라는 부르심입니다.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듯이, 하나님 나라에 마음을 두는 삶이야말로 진정한 제자의 길입니다 (12:34).
6. 깨어 준비하라 (12:35–40)
예수님은 계속해서 제자들에게 종말론적 준비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 (12:35). 이는 주인이 잔치에서 돌아와 문을 두드릴 때, 곧바로 열어줄 수 있도록 깨어 있는 종의 모습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이 깨어 있는 종들이 복이 있다고 말씀하시며, 오히려 주인이 허리를 띠고 상을 베풀어 섬기겠다고 하십니다 (12:37). 이는 천국에서의 놀라운 역전, 즉 주님이 제자들을 섬기시는 영광의 그림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주인이 이튿밤이나 세째 밤에 이르러서도 그 종들이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 (12:38). 이는 종말이 언제 도래할지 알 수 없으므로 항상 준비되어 있어야 함을 가르치는 말씀이며, 구속사 안에서 시간은 언제나 긴박하게 흐르고 있다는 인식을 심어줍니다.
또한 도둑이 언제 올지 알았다면 집을 지키지 않았겠느냐는 비유를 통해, 인자가 생각지 않은 때에 올 것을 경고하십니다 (12:39–40). 이는 교회가 깨어 있어야 할 이유이며, 신자의 삶이 일상의 반복 속에서도 종말적 긴장을 잃지 않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구속사는 단지 과거와 현재의 사건이 아니라, 미래에 완성될 하나님의 역사이며, 그 날을 향해 우리는 항상 준비된 자로 서 있어야 합니다.
깨어 있는 삶은 단지 바쁘고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기억하고 복음의 방향에 따라 삶을 정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인이 돌아올 날을 기대하며, 그분을 기쁘시게 할 삶을 지금 이 순간에 살아내는 것, 그것이 구속사의 제자들이 가진 삶의 태도입니다.
7. 충성된 청지기의 상과 불충한 자의 심판 (12:41–48)
베드로가 예수님께 묻습니다. "주께서 이 비유를 우리에게 하심이니이까 모든 사람에게 하심이니이까" (12:41). 이에 예수님은 충성된 청지기에 대한 비유로 답하십니다. "주인이 그 종에게 그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줄 자가 누구냐" (12:42). 청지기는 주인의 뜻을 따라 종들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하는 자로서, 주인의 집을 책임지는 자입니다.
예수님은 주인이 돌아왔을 때 그 종이 그렇게 하고 있으면 복이 있을 것이라 하시며, 그를 그 모든 소유를 맡길 것이라 약속하십니다 (12:43–44). 이는 주인의 뜻을 따라 충성되게 섬긴 자가 마지막 날에 더 큰 영광과 사명을 맡게 될 것을 가리킵니다. 이는 구속사 속에서 청지기의 삶을 사는 자들이 받을 상급에 대한 예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또 말씀하십니다. 만일 그 종이 마음에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동료 종들을 때리고 먹고 마시며 방탕한 삶을 산다면, 주인은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각에 와서 그를 심히 때리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같은 벌을 주실 것이라 하십니다 (12:45–46). 이는 구속사의 긴장을 놓아버리고, 자기 욕망을 따라 사는 자들이 받을 심판을 경고하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또 중요한 원리를 말씀하십니다.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하시고, 많이 맡은 자에게는 더 많이 달라고 하시리라는 것 (12:48). 이는 은혜가 곧 책임이 된다는 복음의 진리를 강조합니다. 말씀을 알고, 복음을 받은 자일수록 그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하며, 무지나 게으름이 면책의 이유가 될 수 없습니다. 구속사적 제자도는 맡은 바 사명을 알고, 그것을 끝까지 충성되게 감당하는 삶입니다.
8. 불을 던지러 왔노라 (12:49–51)
예수님은 이어서 충격적인 선언을 하십니다.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라 그것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12:49). 이 말씀은 세상에 평화를 주기 위해 오셨다는 일반적인 기대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선언입니다. 예수님의 오심은 죄와 어둠 가운데 있는 세상에 하나님의 불, 곧 심판과 정결함의 역사를 불러일으키는 것입니다. 이 불은 성령의 임재이기도 하고, 심판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받아야 할 세례가 있으며, 그것이 이루어지기까지 얼마나 답답한지 말씀하십니다 (12:50). 이 세례는 물로 받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서의 고난과 죽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고난을 알고 계셨고, 그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것을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이 말씀은 구속사의 중심이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에 있음을 재확인하는 선언입니다.
예수님은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하게 하려 함이로다" (12:51). 이는 예수님의 복음이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반응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는 현실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구속사는 회복의 복음이지만, 동시에 분별과 대립을 낳는 진리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자와 거절하는 자는 반드시 나뉘게 됩니다.
가족 안에서도 나뉘는 복음의 칼 (12:52–53)
예수님은 이 복음의 분열이 가족 안에서조차 발생할 것이라 하십니다. "이후로 한 집에 다섯 사람이 있으면 세 사람이 둘과 둘이 세 사람과 나뉘리니" (12:52). 아버지와 아들이, 어머니와 딸이,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서로 대적하게 될 것이라 하십니다 (12:53). 이는 복음이 개인의 내면뿐 아니라 가장 친밀한 관계 속에서도 갈라지는 칼날이 될 수 있음을 뜻합니다.
이 말씀이 주는 의미는, 복음을 따르는 삶이 결코 모든 사람에게 받아들여지는 삶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때로는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외면당하고, 반대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에게 그 길이 고난의 길일지라도 반드시 걸어야 할 진리의 길임을 말씀하십니다.
구속사는 모든 사람을 구원으로 이끄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이지만, 그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회개로, 복음에 대한 순종으로만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복음은 항상 갈림길을 만들며, 어떤 이는 그 길을 따르고, 어떤 이는 그 길을 거절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 분열과 고난을 감당할 준비를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제자도는 편안함을 보장하는 길이 아니라, 복음을 위해 고난받을 각오를 하는 삶입니다. 그리고 그 길의 끝에는 십자가에서 이루실 구속의 불꽃이 있고, 그 불은 이 세상의 모든 허상과 어둠을 태워내는 하나님의 심판이자 정결의 도구가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그 불길 가운데서 연단하시고, 정금처럼 빚어 구속사의 일꾼으로 세우십니다.
9. 시대를 분별하라 (12:54–56)
예수님께서는 무리에게 말씀하시며 날씨를 통해 시대를 읽는 그들의 민감함을 예로 드십니다. "너희가 구름이 서쪽에서 이는 것을 보면 곧 말하기를 소나기가 오리라 하며... 남풍이 부는 것을 보면 말하기를 심히 더우리라 하느니라" (12:54–55). 자연의 징조에 대해 사람들은 민감하게 반응하며 삶을 준비합니다. 그러나 정작 영적 시대의 징조에 대해서는 무지하거나 무관심한 태도를 보인다는 것이 예수님의 지적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향해 "외식하는 자여! 너희가 천지의 기상은 분간할 줄 알면서 어찌 이 시대는 분간하지 못하느냐"고 책망하십니다 (12:56). 이는 구속사의 중요한 전환점인 메시아의 도래와 하나님 나라의 임함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종교 지도자들과 백성들의 어리석음을 지적하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사역과 존재 자체가 하나님의 때를 알리는 가장 분명한 징조임에도 그들이 이를 분별하지 못함을 안타까워하십니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주어지는 경고입니다. 우리는 시대의 변화에는 민감하면서도, 영적인 흐름과 하나님의 뜻에는 둔감해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구속사의 시계는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으며, 우리는 그 시대적 부르심에 반응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깨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뜻을 민감하게 분별하고, 자신의 삶을 그 흐름에 맞춰 정렬해 나가는 사람입니다. 지금 이 시대, 주님은 우리에게 어떤 순종과 결단을 요구하고 계신지를 물어야 합니다.
10. 화해하고 심판을 피하라 (12:57–58)
예수님은 이어서 보다 현실적인 예를 들어 영적 결단을 촉구하십니다. "또 어찌하여 옳은 것을 스스로 판단하지 아니하느냐" (12:57)고 하시며, 재판장 앞에 끌려가는 자가 도중에 상대와 화해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이유는, 도달하기 전에 합의하지 않으면 결국 재판장에게 넘겨지고, 옥졸에게 넘겨져 갇히게 되며, 마지막 한 렙돈까지 다 갚기 전에는 나오지 못할 것이라는 경고입니다 (12:58–59).
이 비유는 단순히 인간관계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심판을 앞둔 자들에게 주어진 은혜의 기회를 놓치지 말라는 구속사적 권면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우리가 회개하고 화해해야 할 시점은 바로 지금이며, 심판대 앞에 서기 전에 그 은혜의 기회를 붙잡아야 합니다. 이 땅에서의 삶은 화해의 기회이자, 회개의 문이 열려 있는 시간입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주신 '지금'이라는 시간의 소중함을 일깨워 줍니다. 종말의 날이 갑자기 도래할 것이라는 경고와 함께, 아직 늦지 않았을 때 복음 앞에서 회개하고, 그 은혜의 길로 돌아서야 한다는 간절한 요청입니다. 하나님은 공의로 심판하시지만, 또한 자비로 용서하시는 분이시며, 우리가 스스로 판단하고 돌이킬 때 그분은 언제나 받아주시는 아버지이십니다.
하나님의 때 앞에서 결단하라
이 두 비유는 모두 하나님의 시간이 이미 우리 삶에 임했다는 사실을 전제로 합니다. 구름과 남풍처럼 예수님의 오심과 사역은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도래했음을 가리키는 명백한 징조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분별하지 못하고 여전히 무관심하거나 오해 가운데 머무는 자들은 결국 하나님의 때를 놓치게 됩니다.
또한 화해의 비유는 지금이 바로 구속의 은혜를 누릴 마지막 기회일 수 있음을 상기시킵니다. 우리는 재판장 앞에 서기 전에, 곧 심판이 시작되기 전에 은혜의 복음을 받아들이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해야 합니다. 이 기회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수 있으며, 주님은 그 '오늘'이라는 날을 소중히 여기라고 말씀하십니다.
구속사는 단지 종말에 대한 두려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오늘 지금 여기에서 하나님 앞에 바로 서게 하려는 사랑의 초청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각자에게 오늘이라는 시간을 허락하시고, 그 시간 안에 하나님 나라에 응답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깨어 분별하고, 겸손히 회개하며, 주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그분은 여전히 우리를 기다리시며, 화해의 손을 내미시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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