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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성경

매일성경, 빌립보서 2:5 - 2:18 묵상

by 파피루스 2025. 5.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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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은 자의 삶: 낮아짐의 순종과 영광의 기쁨

빌립보서 2장 5절부터 18절은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겸손, 그리고 십자가에 이르기까지의 순종을 중심으로 한 찬가이자, 그 모범을 따라 살아야 할 성도들의 삶에 대한 강력한 권면의 말씀입니다. 이 본문은 단지 신학적 진술에 그치지 않고, 성도가 실제로 매일의 삶 속에서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자기를 비우며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함을 구체적으로 보여줍니다. 마치 시편을 읊조리듯이, 이 말씀을 하루하루의 묵상 주제로 삼아 마음 깊이 새겨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낮아지심과 높아지심: 구속사의 중심

본문 5절에서 바울은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라고 권면합니다. 여기서 '마음을 품다'는 표현은 헬라어 φρονεῖτε(phroneite)이며, 단순히 감정이나 생각 이상의, 삶의 방향과 중심을 설정하는 의지를 의미합니다. 바울은 단순한 도덕적 모범이 아니라, 구속사 속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자기 비움과 낮아지심을 신자의 삶의 토대로 삼으라고 말합니다.

 

6절은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라고 기록합니다. '본체'는 μορφὴ(morphē)로, 본질과 속성을 포함한 존재의 본질을 뜻하며, 예수님께서 본질상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신적 본질을 자신의 유익을 위해 사용하지 않으시고, 도리어 스스로 낮아지셨습니다.

 

7절에서는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라고 말합니다. '비우다'는 헬라어 κενόω(kenoō)로, 신성을 버린 것이 아니라, 자신의 권리와 영광을 포기하고 낮추셨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모습으로 오셨을 뿐 아니라, 종(δοῦλος, doulos)의 자리까지 낮아지셨습니다. 이는 단순한 겸손이 아닌, 완전한 순종과 섬김의 행위입니다.

 

그리고 8절에서 그 절정은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로 이어집니다. 예수님의 순종은 단지 고난을 견디는 것을 넘어서, 저주받은 자로 간주되던 십자가의 죽음(σταυρός, stauros)에 이르기까지의 철저한 자기부인입니다. 이는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이루신 대속의 희생이며, 하나님의 구속 역사의 중심입니다.

 

이와 같은 낮아지심은 곧바로 9절에서 하나님의 높이심으로 이어집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에서 '지극히 높이다'는 헬라어 ὑπερυψόω(hyperypsoō)로, 최고의 권위와 영광의 자리에 세우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순종을 영화롭게 하시고, 10절과 11절에서 그 이름 앞에 모든 무릎이 꿇고 모든 입술이 주라 시인하게 하십니다. 여기서 '주'는 κύριος(kurios)로, 구약의 여호와의 명칭에 해당하며, 예수님을 완전한 주권자로 높이신 선언입니다.

 

이 부분은 구속사의 핵심인 성육신과 십자가, 부활과 승천을 담고 있으며, 우리가 따를 모범이자 동시에 구원받은 자로서의 본질적 정체성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이루어가는 구원

12절부터 바울은 이 위대한 복음 진리를 바탕으로, 신자의 실천적 태도에 대해 권면합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는 말은 오해하기 쉬우나, 우리의 구원이 인간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는 뜻이 아닙니다. 헬라어 κατεργάζεσθε(katergazesthe)는 '내면에 있는 것을 밖으로 드러내 완성하다'는 뜻으로, 이미 받은 구원을 삶 속에서 나타내는 적극적인 참여를 뜻합니다.

 

'두려움과 떨림'은 φόβος(fobos)와 τρόμος(tromos)로, 하나님의 거룩하심 앞에 경외심을 품고 살아가는 태도를 말합니다. 이는 율법적 공포가 아니라, 구속의 은혜에 대한 경건한 응답이며, 자만하지 않고 성령의 인도하심에 늘 깨어 있는 신자의 자세입니다.

13절은 이 구절의 핵심을 명확히 해 줍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여기서 '행하다'는 ἐνεργέω(energeō)로, 에너지의 어원이 된 단어이며,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실제적으로 작용하시며, 뜻을 세우시고 그것을 행하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이는 성도의 성화 여정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에 의한 것임을 분명히 합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균형을 가르칩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이지만, 그 은혜에 응답하여 우리의 삶 속에서 열매로 나타나는 실천은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기에 우리는 협력자로서 경외함과 진지함으로 자신을 훈련해 가야 합니다.

 

세상 가운데 빛으로 나타나는 자녀들

14절부터 16절까지는 성도의 구체적인 삶의 태도를 설명합니다.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는 권면은 공동체 안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원망'은 γογγυσμός(goggysmos)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하나님께 불평했던 모습과 연결되고, '시비'는 διαλογισμός(dialogismos)로, 논쟁과 판단을 가리킵니다. 이는 교회 공동체 안에 불화를 일으키는 대표적인 요소이며, 바울은 복음에 합당한 삶을 위해 이를 지양하라고 권면합니다.

 

15절에서는 그 이유를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나”라고 설명합니다. '흠이 없고 순전하다'는 것은 도덕적 완전함이 아니라, 내면의 진실성과 성실함을 의미하며, '빛들로 나타나'는 것은 φωστῆρες(phōstēres)로, 밤하늘의 별처럼 어두운 세상에서 빛나는 존재를 뜻합니다.

 

이것은 마태복음 5장에서 예수님께서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신 말씀과도 연결됩니다. 성도는 세상 속에서 진리와 사랑, 그리고 순종의 삶으로 하나님의 빛을 비추는 존재입니다. 바울은 이 빛의 정체성을 '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타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는 단지 복음을 전파하는 것을 넘어서, 삶 자체가 생명의 말씀을 드러내는 간증이 되어야 함을 뜻합니다.

 

그리고 그는 “그리스도의 날에 내가 다름질도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하므로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사도 바울이 성도들이 진실하게 성장하여, 종말의 날에 기쁨과 보람을 누리기를 바라는 목회자의 간절한 소망입니다.

 

17절과 18절에서 그는 “내가 너희 믿음의 제물과 섬김 위에 나를 전제로 드릴지라도 기뻐하고 기뻐하리니…”라고 고백합니다. 여기서 '전제'는 헬라어 σπένδομαι(spendomai)로, 포도주를 부어 바치는 제사 행위를 말하며, 자신의 생명을 희생제물로 비유한 표현입니다. 즉, 바울은 성도들의 신앙이 완성되기 위해 자신이 피 흘려 죽는다 해도 기쁘다는 헌신의 고백을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 고백은 우리에게도 동일한 도전을 줍니다. 복음과 교회를 위해 내 삶이 소진되더라도, 그것이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고백이 있는가? 우리가 정말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살아가는가를 깊이 돌아보게 하는 말씀입니다.

 

마무리

빌립보서 2장 5절부터 18절은 신자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명확히 보여줍니다. 자기를 비우고 십자가에 순종하신 예수님의 삶은 성도의 삶의 본이 되며, 구속사 안에서 우리가 어떤 정체성을 지니고, 어떤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줍니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행하시며, 그 뜻을 따라 우리를 빚어가십니다. 우리가 복음을 삶으로 드러내고, 세상 가운데 빛으로 나타날 때,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고, 우리 역시 주님의 기쁨 안에 참여하게 됩니다. 이 말씀을 매일 묵상하며, 순종과 겸손의 걸음을 충실히 걸어가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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