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양을 먹이라, 사랑 위에 세운 사명
오늘 우리는 부활하신 주님과 베드로 사이에 오간, 가장 고요하지만 가장 심오한 대화 앞에 서 있습니다. 그 대화는 새벽 바람이 불던 갈릴리 바닷가, 잔잔한 물결 위로 햇살이 비치던 자리에서, 따뜻한 숯불과 함께 피어오르던 생선 냄새 속에서 이루어진 장면입니다. 오늘 본문은 요한복음 21장 17절입니다.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심으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하시니라” (요한복음 21:17)
이 말씀은 단지 한 제자에게 주어진 위로의 말이 아닙니다. 이는 실패의 자리에서 다시 시작하는 회복의 불씨이며, 무너진 존재에게 주어진 사랑의 사명입니다. 부활의 광휘 앞에 아직 어두운 그림자를 지닌 베드로에게 주님은 다시 손을 내미십니다. 그리고 그 손은 정죄가 아닌, 품음이며, 단절이 아닌 시작을 의미합니다. 오늘 우리는 이 대화를 따라, 베드로의 시선으로 주님의 눈을 바라보고자 합니다. 그 눈 속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것은 바로 사랑과 사명, 그리고 성령의 시대를 준비시키는 깊은 은혜입니다.
다시 만난 갈릴리(요한복음 21:1)
갈릴리는 추억의 장소이면서도, 한없이 고백과 눈물이 깃든 땅입니다. 처음 주님을 만났던 바로 그 자리에서, 주님은 부활하신 이후 다시 그들을 부르십니다. 이는 단순한 장소의 반복이 아닙니다. 주님은 언제나 우리가 처음 사랑했던 자리로, 처음 사명을 받았던 순간으로 우리를 이끌어 가십니다(요한복음 21:1).
갈릴리는 기억의 장소입니다. 그러나 그 기억은 회피해야 할 부끄러움이 아니라, 주님 안에서 다시 빛나는 가능성입니다. 주님은 과거를 지워버리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것을 거룩한 땅으로 바꾸십니다. 실패했던 장소, 부인했던 밤, 무너졌던 감정의 잔해 속으로 주님은 다시 들어오십니다. 그리하여 우리로 하여금 눈물 흘렸던 바로 그 자리에서 다시 시작하게 하십니다. 이것이 부활 이후 주님의 방식입니다. 새로움을 낯선 곳이 아닌, 상처의 자리에서 다시 피워내는 은혜의 손길입니다.
세 번의 질문, 세 번의 회복(요한복음 21:17)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이 질문은 베드로의 심장을 세 번 두드립니다. 이것은 책망의 반복이 아닙니다. 이는 상처를 따라가 회복의 길을 다시 짓는 하나님의 작업입니다(요한복음 21:17). 예수님은 베드로가 했던 세 번의 부인을 하나씩 하나씩 안아주듯, 그의 무너진 자아를 손끝으로 다시 세우십니다.
주님의 질문은 논리적 답을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영혼을 열게 하고, 진실을 끌어올리게 하는 거룩한 감정의 불씨입니다. 베드로는 그 세 번째 질문 앞에서 근심합니다. 그 근심은 단순한 슬픔이 아닙니다. 그것은 과거의 그림자와 현재의 은혜가 충돌하는 내면의 울림입니다. "주여, 주께서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이 고백은 더 이상 자신을 주장하는 고백이 아닙니다. 그것은 주님께 모든 것을 내어드리는 항복의 언어입니다.
사랑은 한 번의 고백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무너짐을 지나며 더 단단해지고, 상처를 통과하며 더 깊어집니다. 주님은 그 사랑 위에 사명을 다시 얹으십니다. "내 양을 먹이라." 이는 단순한 지시가 아닙니다. 그것은 주님의 양 떼를 맡기는, 복음의 목자로 세우는 위대한 신뢰의 표현입니다. 베드로는 무너졌던 만큼, 사랑받았고, 그 사랑 위에 공동체를 품는 사명이 위임됩니다.
숯불과 기억, 눈물과 불씨(요한복음 18:18, 21:9)
숯불은 상징입니다. 그것은 부인의 밤, 배반의 냄새, 불안의 그림자가 담겨 있는 장면입니다(요한복음 18:18). 그리고 요한복음 21장, 부활 후 그 숯불이 다시 피워집니다(요한복음 21:9). 그러나 이번에는 손을 녹이기 위한 불이 아니라, 마음을 회복시키기 위한 불입니다. 그 숯불 옆에는 생선과 떡이 준비되어 있었고, 정죄가 아닌 사랑의 식탁이 펼쳐졌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상처를 지우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그 상처 위에 자신의 사랑을 덧입히십니다. 우리의 기억을 바꾸시는 것이 아니라, 그 기억을 덮어쓰는 은혜를 주십니다. 베드로가 손을 데웠던 그 불빛 속에서, 이제 그는 마음을 데우고 있습니다. 그 불씨는 이내 오순절의 불로 번지게 될 것입니다. 고백은 숯불에서 시작되었고, 공동체는 그 자리에서 다시 타오르게 됩니다.
오순절을 준비하는 사명자(사도행전 2:14)
회복은 목적 없는 위로가 아닙니다. 회복은 반드시 사명으로 이어집니다. 주님은 단지 베드로의 아픔을 어루만지기 위해 갈릴리에 오신 것이 아닙니다. 그를 다시 세우셔서, 성령의 시대를 여는 첫 사도로 사용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오순절의 현장에서 가장 먼저 일어나 사람들 앞에서 담대히 복음을 선포한 이는 바로 이 베드로였습니다(사도행전 2:14).
오순절은 하늘의 불이 임하는 날이었지만, 동시에 회복된 사명이 불타오르는 날이기도 했습니다. 사랑으로 회복된 자, 상처를 품은 자, 다시 고백한 자가 성령의 불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 됩니다. 베드로는 바로 그런 그릇이 되었습니다. 우리 역시 그렇습니다. 우리도 실패하고 무너졌던 자리에서 주님을 다시 만난다면, 성령은 우리를 통해 새로운 불길을 시작하실 것입니다.
마무리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은 지금도 동일한 질문을 하십니다.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그 질문은 단지 베드로에게만 던져진 것이 아니라, 오늘 이 자리에서 말씀을 듣는 우리 각자에게도 향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질문에는 비난이 없습니다. 오직 사랑이 담겨 있고, 회복이 기다리고 있으며, 사명이 함께 따라옵니다.
우리의 사랑은 여전히 부족하고, 때로는 흔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런 사랑조차 받아주시고, 그 위에 공동체를 맡기시며, 다시 사명을 부어주십니다. "내 양을 먹이라"는 그 한마디는 오늘날 교회를 향한 가장 선명한 부르심이며, 우리가 살아가야 할 이유입니다.
사랑 위에 세운 사명, 회복 위에 세워진 교회, 그리고 상처 위에 임한 성령. 이것이 부활에서 오순절까지 이어지는 하나님의 깊은 이야기입니다. 오늘 우리의 고백이 베드로의 고백처럼 진실되기를, 그리고 우리 각자의 삶이 그 고백 위에 세워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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