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샬롬! 주의 평강이 가득하길 원합니다. 오늘 우리는 부활의 아침 이후, 깊은 내면의 여정 속으로 우리를 초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함께 묵상하고자 합니다. 요한복음 20장 27절과 28절의 말씀을 중심으로 도마의 고백 앞에 섭니다.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요한복음 20:27-28)
이 구절은 단순한 한 사람의 회심 기록이 아닙니다. 그것은 의심의 골짜기를 지나 믿음의 봉우리로 올라서는 인류 전체의 서사요, 구속사의 심장부에서 울려 퍼지는 가장 내밀한 고백입니다. 부활하신 주님 앞에서 도마는 그의 손끝으로 영원을 만지고, 그의 입술로 하나님을 호명하며, 그의 존재 전체로 신앙의 중심을 고백합니다. 이 고백은 단지 한순간의 감정이 아니라, 교회가 태동하는 거룩한 틈에서 터져나온 영적 선언입니다.
상처를 보여주시는 주님(요한복음 20:27)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요한복음 20:27). 부활하신 주님은 그 영광스러운 몸을 가지고 계심에도, 상처를 간직한 채 도마 앞에 서십니다. 이 얼마나 역설적인 장면입니까? 생명을 이기신 그분의 손에는 여전히 못자국이 있고, 옆구리에는 창자국이 남아 있습니다. 이는 주님이 영광을 취하심에 있어 고통을 잊지 않으셨다는 뜻이며, 구원의 정체성이 단지 승리의 외침이 아닌, 상처를 끌어안은 사랑임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손은 피로 새겨진 복음의 사본입니다. 그 손을 통해 우리는 구속의 무게를 체감하게 됩니다. 우리가 가진 믿음이 피상적인 긍정이 아니라, 실체적 고난 위에 세워진 것임을 이 상처가 증거합니다. 믿음의 여정 속에서 우리는 자주 무너지고 의심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런 우리에게 상처를 내미십니다. 그것은 질책이 아니라 초대이며, 숨김이 아니라 드러냄입니다. 주님의 상처는 인간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얼굴입니다.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요한복음 20:27)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이 말씀은 들리는 순간, 심장을 울리는 성령의 부름입니다. 도마에게 하신 이 말씀이 우리에게도 울림이 됩니다. 주님은 도마의 의심을 부끄럽게 하지 않으시고, 그의 내면에 자리한 두려움과 질문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십니다. 주님은 진실한 의심을 믿음의 가능성으로 바라보십니다. 그것이 바로 구속의 자비입니다.
도마의 의심은 단순한 불신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사랑했던 스승의 죽음을 마주한 상실의 시간 속에서 진실을 갈망한 제자였습니다. 그 갈망을 주님은 외면하지 않으시고, 상처를 내어주시며 그 마음을 품어 주십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들려집니다.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그것은 회피가 아니라, 상처와 마주한 결단이며, 감정이 아니라 신뢰의 전환입니다.
믿음은 단번에 이뤄지는 계시가 아닙니다. 믿음은 삶의 모든 궤적 속에서 조금씩 형성되는 존재의 구조입니다. 주님은 도마의 손끝이 아니라, 그의 마음이 변화되기를 원하셨고, 결국 그 믿음은 그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고백으로 꽃피우게 되었습니다.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요한복음 20:28)
이 한 문장은 기독교 신앙의 정수입니다. 도마는 단순히 예수를 '부활한 자'로 인정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그리스도를 '자기 존재의 주권자'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요한복음 20:28) 이 고백은 추상적인 신앙 진술이 아니라, 마음과 정신과 육신을 통째로 내려놓는 인격적 항복이며, 살아 있는 고백입니다.
이 고백은 공동체 안에서 울려 퍼지며, 장차 다가올 오순절의 불씨가 됩니다. 도마의 입술에서 터져 나온 이 고백은 성령의 바람을 예비하는 울림이었고, 그 고백 위에 교회의 기초가 놓이게 됩니다. 주님을 주님으로,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이 선언은 교회의 태동과도 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이 시간, 도마의 고백을 통해 다시 교회의 심장 소리를 듣습니다. 우리가 누구를 믿는지, 그분이 우리에게 어떤 분이신지를 선명히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상처 위에 세워지는 공동체(사도행전 2:1)
오순절의 다락방은 갑작스레 타오른 불꽃이 아닙니다. 그것은 상처를 본 자들, 고백을 한 자들, 믿음을 안고 돌아온 자들이 모여 만든 공간이었습니다. 도마의 고백은 단지 개인의 회복이 아니라, 공동체의 회복으로 이어졌습니다. 상처 위에 선 이들의 모임, 의심과 갈등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은 이들의 모임 위에 성령이 임하신 것입니다.
교회는 상처 없는 사람들의 모임이 아닙니다. 오히려 교회는 각자의 손끝에 도마의 상처를 간직한 자들이 모여, 주님의 상처와 교차할 때 비로소 온전한 믿음을 이루는 자리입니다. 성령은 바로 그 상처와 고백 사이에 임하십니다. 도마의 고백은 공동체 안에서 생명을 불러일으키는 첫 불씨가 되었고, 교회는 그 불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성령은 고백 위에 임하시고, 고백은 세상을 향한 증언으로 확장됩니다.
이 공동체는 부활의 상처를 보고, 고백으로 나아간 자들이 모인 순례자들의 무리였습니다. 각자의 여정 속에서 고통과 실패를 경험한 이들이, 도마의 손끝에서 배운 신앙의 언어를 들고 모였습니다. 오순절의 불은 단지 불꽃이 아니라, 도마의 눈물과 고백, 상처와 믿음이 타오르는 은혜의 결실이었습니다.
마무리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도마라는 이름을 다시 새롭게 바라보게 됩니다. 그는 의심의 이름이 아니라, 고백의 사람이며, 공동체의 첫 불씨입니다. 그리고 그의 고백은 오늘 우리 각자에게도 부르심이 됩니다.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이 고백은 상황이 바뀌었기 때문이 아니라, 주님의 상처가 그의 눈을 열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혹시 믿음이 흔들리는 시기를 지나고 계십니까? 혹시 상처와 질문이 많아 믿음 앞에서 망설이시는 분이 계십니까? 그렇다면 오늘 도마와 함께 주님의 상처를 바라보십시오. 그 손과 옆구리에서 흘러나오는 하나님의 사랑을 느껴보십시오. 주님은 여러분을 책망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손을 내미시며 말씀하십니다.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이제 우리도 고백해야 할 때입니다. 그 고백 위에 성령이 임하시고, 그 고백 안에서 교회는 시작됩니다. 도마의 입술을 타고 울려 퍼진 이 한마디,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가 우리 모두의 신앙의 토대가 되기를, 그리고 그 고백이 오늘 여러분의 삶에서도 살아 있는 믿음으로 자리잡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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