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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설교문

부활에서 오순절까지, 부활의 아침

by 파피루스 2025. 4.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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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나셨느니라, 빈 무덤에서 시작된 성령의 불길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부활절 이후의 새벽, 우리 모두는 고요한 떨림과 함께 말씀 앞에 서게 됩니다. (마태복음 28:5-6) "천사가 여자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는 무서워하지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 이 말씀은 단순히 놀라운 소식을 전하는 문장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을 관통하여 우리 존재 깊은 곳을 뒤흔드는 하나님의 울림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침묵을 깨는 첫 음절이요, 어둠의 역사에 찬란한 균열을 내는 생명의 메아리입니다.

두려움과의 조우(마태복음 28:5)

"무서워하지 말라." 이 말씀은 우리 믿음의 여정 속에서 너무나 자주 듣지만, 그 깊이를 다 헤아리기 어려운 말씀입니다. 이 말은 마치 깊은 밤에 불현듯 등불이 켜지는 순간과도 같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두려움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입니다. 특히 죽음을 마주할 때, 인생의 끝자락에 섰을 때, 우리는 말을 잃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에 하나님은 찾아오십니다. 천사의 이 한마디는 하나님께서 고통과 두려움 속에 있는 우리에게 보내신 첫 번째 사랑의 응답입니다.

이 응답은 단지 감정적 위로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무덤 앞에서 두려워 떨고 있는 여인들에게 '무서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인간이 본능적으로 반응할 수밖에 없는 두려움조차 넘어서게 하십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이 두려움을 몰아내는 단호한 선언입니다. 더 이상 죽음은 최후의 승자가 아닙니다. 더 이상 무덤은 끝이 아닙니다. 오히려 죽음은 새로운 시작의 문턱이 되었고, 무덤은 생명이 태어나는 산실이 되었습니다.

말씀의 기억과 실재(마태복음 28:6)

"그가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이 짧은 구절 안에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말씀의 권위가 응축되어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고난과 죽음을 예고하셨고, 제자들은 그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분은 자신의 말씀대로 살아나셨습니다. 말씀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 구절은 단지 과거의 성취가 아닙니다. 지금도 여전히 말씀은 살아 있고, 성취되고 있으며, 우리의 삶 속에서도 실재하고 있습니다.

말씀은 때로 우리 안에 씨앗처럼 심겨져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 안에는 생명을 품고 있으며, 하나님의 때가 이르면 반드시 열매를 맺습니다. 부활의 아침은 그 씨앗이 움트는 순간입니다. 사흘간의 고요함 속에 묻혀 있던 약속의 말씀이 드디어 빛을 뚫고 나온 것입니다. 말씀은 신비이지만 동시에 실재입니다. 우리는 그 실재 속에 살아가고 있고, 그 실재가 우리의 미래를 비춥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혹시 지금 여러분의 삶에도 침묵만이 감돌고 있는 상황입니까? 아무런 징조도 없이 하나님의 말씀이 잊혀진 듯 느껴지십니까? 그렇다면 오늘 이 부활의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그가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주님의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짐을 믿고, 그 약속의 씨앗을 소중히 간직하시길 바랍니다.

부활, 그 거룩한 단절(마태복음 28:6)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이 구절은 단순한 위치의 부재를 말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존재의 전환이요, 우주의 질서를 새롭게 짜는 선언입니다. 예수님은 더 이상 죽음과 사망의 장소에 계시지 않습니다. 그는 사망의 자리에 계셨으나, 거기 머물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그 자리를 떠나셨습니다. 그것은 회피가 아니라, 정복입니다. 이 부재는 절망이 아니라, 가장 위대한 승리의 표시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죄와 죽음, 고통과 단절이라는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하나님의 직접적인 돌파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죽음에 들어가셨고, 그 안에서 사망을 깨뜨리셨습니다. 더 이상 무덤은 침묵의 공간이 아닙니다. 더 이상 죄는 우리를 묶어 둘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단절입니다. 옛 질서에서의 해방이요, 새로운 존재 방식으로의 전환입니다. 부활은 단지 생명의 연장이 아니라, 본질의 재창조입니다. 그리스도는 단순히 돌아오신 것이 아닙니다. 그는 새로우신 모습으로, 승리자로,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실 영광의 주님으로 다시 서셨습니다.

빈 무덤에서 오순절까지의 여정(사도행전 1:3, 2:1)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활은 정점이 아닙니다. 그것은 구속사의 강물 속에서 흘러가는 거대한 여정의 출발점입니다. 부활의 빈 무덤은 곧 오순절 다락방의 문을 열어주는 통로였습니다. 예수께서는 부활 후 40일 동안 여러 차례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분은 그들에게 말씀하셨고, 떡을 떼셨고, 숨결을 내쉬며 성령을 예고하셨습니다. 그 시간은 위로의 시간이자, 회복의 시간이었으며, 동시에 사명의 시간으로 이어지는 준비의 시간이었습니다.

엠마오 길에서 절망하던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말씀을 풀어주시며, 마음을 뜨겁게 하셨습니다. 갈릴리 바닷가에서 낚시하던 베드로에게는 사랑을 묻는 질문으로 그를 회복시키셨습니다. 도마에게는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시며 의심을 끌어안으셨습니다. 이렇게 주님은 부활하신 몸으로 그들을 품으시며, 성령을 받을 공동체로 재구성하셨습니다.

그리고 40일이 지나 주님은 감람산에서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그 승천은 떠남이 아니라, 더 깊은 임재의 서막이었습니다. 그분은 사라지신 것이 아니라, 더 넓은 차원에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시작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열흘 후, 오순절의 날이 이르렀습니다. 그날, 성령은 마침내 불의 혀처럼 임하셨고, 다락방을 흔드는 바람처럼 하나님의 숨결이 교회 위에 부어졌습니다.

오순절은 부활의 내면화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능력이 이제 성령을 통해 제자들 안에 임한 것입니다. 교회는 그 순간부터 단순한 모임이 아니라, 부활의 생명을 품은 살아 있는 유기체가 되었습니다. 빈 무덤의 생명은 이제 제자들의 심장 속에서 뛰기 시작했고, 그 심장은 곧 세상의 심장으로 확장되기 시작했습니다.

마무리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는 그 빈 무덤 앞에 다시 서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자리는 단지 역사의 한 지점이 아닙니다. 그것은 지금도 살아 있는, 매일 아침 우리를 부르는 부활의 자리입니다. 무덤은 더 이상 어두움의 심장부가 아닙니다. 그것은 새벽을 품은 산실이며, 성령의 숨결을 준비하는 기도실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그가 계시지 않은 그 자리는 단지 비어 있는 공간이 아니라, 충만한 약속의 자리입니다. 하나님은 빈 자리를 사용하셔서 생명을 선포하십니다. 그 비어 있음은 낭비가 아닙니다. 그것은 충만을 위한 여백입니다. 지금 우리의 심령 안에도 빈 무덤이 있습니까? 두려움으로 가득 찬 빈 공간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 자리를 주님께 내어드리십시오. 그분은 살아 계십니다. 그리고 살아 계신 주님은 반드시 찾아오십니다.

다시 불타오르십시오. 다시 믿음의 심장을 뛰게 하십시오. 성령의 불길은 아직 꺼지지 않았습니다. 살아나셨습니다. 그리고 그 불은 우리 안에서 다시 시작되고 있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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