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증인들이라는 이름으로
마가복음 16장 9절부터 11절까지의 본문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가장 먼저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신 사건을 중심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본문은 부활 사건의 시작을 알리며, 그 놀라운 사실이 처음에는 믿어지지 않았다는 점을 솔직하게 드러냅니다. 예수님은 일곱 귀신이 나간 막달라 마리아에게 가장 먼저 나타나셨고, 마리아는 예수님과 함께하던 자들에게 그 사실을 전하였지만, 그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이 짧은 본문은 예수님의 부활이라는 가장 위대한 사건이 어떻게 세상 가운데 알려졌는지, 그리고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는지를 보여줍니다. 부활을 경험한 자는 그 자체로 증인이 되어야 하며, 부활을 전할 때 마주하게 되는 불신의 장벽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과정을 통해 우리는 어떻게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갈 것인지를 배우게 됩니다. 이 본문을 중심으로, 우리도 부활의 증인으로서 살아가는 삶의 자세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주님은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나타나셨습니다
"예수께서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 전에 일곱 귀신을 쫓아내어 주신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시니" (마가복음 16:9)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처음으로 나타나신 이는 열두 제자 중 누구도 아닌 막달라 마리아였습니다. 당시 문화 속에서 여성의 증언은 법적 효력을 갖지 못했으며, 여성은 남성보다 사회적으로도 종교적으로도 열등하게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런 통념을 깨고, 구원의 메시지를 가장 먼저 전할 자로 마리아를 택하셨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선택은 회복과 은혜, 그리고 새로운 질서의 시작을 알리는 메시지였습니다. 마리아는 과거에 일곱 귀신에 사로잡혔던 여인이었습니다. 그런 그녀에게 먼저 부활의 영광을 보여주셨다는 사실은, 우리가 누구이든, 어떤 과거를 가졌든지 간에 주님의 부르심 앞에서 새로워질 수 있다는 강한 메시지를 줍니다.
예수님은 가장 먼저, 가장 회복이 필요한 자에게 다가오셨습니다. 이는 지금도 동일합니다. 우리의 삶이 깨어지고 부정한 것으로 여겨졌던 자리일지라도, 주님은 가장 먼저 우리에게 찾아와 부활의 생명을 보여주십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그 경험으로 인해 부활의 증인이 되었고, 우리도 마찬가지로 주님을 만난 그 자리에서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과거가 아니라, 지금 내가 주님의 부활을 믿고 그것을 드러내며 살아가는지의 여부입니다.
부활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용기를 배우다
"그는 가서 예수와 함께하던 사람들 곧 슬퍼하며 울고 있는 자들에게 이 일을 알리니" (마가복음 16:10)
막달라 마리아는 주님을 만난 후 곧장 예수님과 함께하던 이들에게 달려가 이 소식을 알립니다. 당시 제자들은 예수님의 죽음 앞에서 슬퍼하며 울고 있었습니다. 절망과 낙심, 두려움 속에서 그들은 예수님을 잃었다는 상실감에 잠겨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그들에게 전합니다. "예수님이 살아나셨다"는 가장 놀랍고도 위대한 소식을 전하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경험을 나눕니다.
여기서 우리는 증인의 삶이 단지 어떤 사실을 아는 것을 넘어, 그것을 전하려는 행동에서 시작된다는 점을 배우게 됩니다. 마리아는 아직 그들이 믿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을지도 모릅니다. 슬픔에 잠겨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의 소식을 전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본 것을 전하는 데에 있어서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증인의 삶입니다.
우리도 부활의 기쁜 소식을 전해야 할 사명을 받았습니다. 때로는 상대가 그 말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을 알기에, 우리는 전하는 데에 주저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만난 주님, 우리가 체험한 회복과 은혜는 침묵으로 간직할 것이 아니라 담대히 전해야 할 것입니다. 세상은 여전히 슬픔과 낙심 가운데 있으며, 우리가 전할 부활의 소식은 여전히 그들에게 필요합니다. 부활의 증인은 본 자로서, 경험한 자로서, 전하는 자로서 살아가야 합니다.
부활을 믿지 않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신앙의 자세
"그들은 예수께서 살아나셨다는 것과 마리아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듣고도 믿지 아니하니라" (마가복음 16:11)
막달라 마리아는 부활의 증인으로서 분명한 소식을 전했지만, 예수님과 함께했던 자들은 그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믿음의 공동체라고 여겼던 사람들조차도 이 놀라운 사건 앞에서 마음을 열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당시뿐 아니라 오늘날에도 여전히 반복되는 현실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다고 고백하지만, 정작 삶 속에서 그 믿음이 실천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믿지 않는 자들이 단지 교회 밖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도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우리는 유념해야 합니다. 부활은 단지 역사적인 사건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 역사하는 현실입니다.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단지 예수님의 부활을 과거의 사건으로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부활이 오늘 내 삶에 어떤 의미를 가지며, 나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는가를 질문해야 합니다. 부활을 믿지 않는 자들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부활의 증인은 침묵하지 않습니다. 불신과 회의, 무관심과 냉소가 가득한 세상 속에서 우리는 부활의 생명을 드러내는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말뿐 아니라 삶 전체로 드러내야 합니다. 희망 없는 사람에게 희망을 주고, 절망에 빠진 자에게 생명의 소망을 전하는 삶, 그 삶이 바로 부활의 증인의 삶입니다. 마리아의 전함이 단번에 받아들여지지 않았을지라도, 그녀의 전함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우리 역시 결과를 두려워하지 않고,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그 은혜를 전하는 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마무리
마가복음 16:9–11의 본문은 짧지만 강력한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막달라 마리아에게 가장 먼저 나타나셨고, 그녀는 두려움 없이 기쁜 소식을 전했습니다. 하지만 그 소식은 즉시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현실적인 우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가 주님을 만났다는 사실입니다. 그 만남은 곧 부활의 증인이 되어야 할 이유이며, 우리가 그 생명의 소식을 전할 책임이 있다는 뜻입니다. 이 세상은 여전히 부활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으며, 우리는 그 소식을 지닌 사람들입니다. 오늘 우리도 막달라 마리아처럼 삶 속에서 주님의 부활을 선포하는 증인으로 살아가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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