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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설교문

부활 설교 고전 15:35-49, 부활의 몸, 썩지 아니할 형체의 영광

by 파피루스 2025. 4.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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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몸, 썩지 아니할 형체의 영광

고린도전서 15장 35절부터 49절은 부활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고, 성도들이 장차 입게 될 부활의 몸의 실체를 설명하는 바울의 깊은 신학적 고백입니다. 단순히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개념을 넘어서, 전혀 다른 질적 생명으로의 전환을 말하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될 구속사의 미래를 선언합니다.

 

어떤 몸으로 다시 살아납니까 (고전 15:35-38)

“누가 묻기를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아나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하리니…”(35절)

 

이 질문은 단순한 호기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고린도 교회 안에서 부활의 가능성 자체를 부정하려는 사람들의 냉소적 질문이었습니다. 바울은 이런 질문에 대해 “어리석은 자여”라고 시작하며 강하게 반박합니다. 여기서 ‘어리석은’이라는 표현은 단지 무지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신앙의 핵심을 비틀어 본질을 훼손하려는 태도에 대한 경고입니다.

 

바울은 농부의 손에 들린 ‘씨앗’의 비유를 통해 부활의 원리를 설명합니다. 씨앗은 심겨질 때 죽어야만, 곧 그 껍질이 썩고 깨어질 때에야 비로소 생명을 발아합니다. 심긴 씨는 본래와 같은 형체로 올라오지 않습니다. 다른 모양, 다른 실체로 자라납니다. 바울은 이 자연의 원리를 들어 부활의 몸 역시 지금 우리가 가진 이 육체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형체로 다시 살아난다는 사실을 설명합니다.

 

하나님은 각기 다른 종자에 맞게 각기 다른 형체를 주신 분입니다. 그분은 창조의 주이시며, 형체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 선언은 부활이 단지 과거의 생명을 되살리는 것이 아니라, 창조의 질서를 따라 다시 주어지는 새 생명이라는 구속사적 통찰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는 죽음 이후, 그리스도 안에서 전혀 새로운 존재로 다시 태어납니다.

 

하늘의 형체, 썩지 않을 몸 (고전 15:39-44)

“육체는 다 같은 육체가 아니니 사람의 육체도 다르고…”(39절)

바울은 이어서 육체의 다양성을 설명합니다. 사람과 짐승, 새와 물고기의 육체가 다르듯이, 이 땅에서의 육체와 하늘에서의 형체도 다릅니다. 이 비교는 단순한 생물학적 분류가 아닙니다. 이는 하나님의 창조 섭리 안에 존재하는 ‘질서의 다양성’과 ‘영광의 위계’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해와 달과 별들도 서로 다른 영광을 지녔고, 별마다 빛이 다르듯이, 부활의 몸도 지금의 육체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영광스러운 실체라는 사실을 선포합니다. 이 구절에서 ‘영광’이라는 단어는 히브리어 ‘카보드’의 개념과 연결됩니다. 단순히 빛나는 외형이 아니라, 존재의 무게와 본질의 충만함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부활의 몸은 하나님이 주시는 새로운 영광의 무게를 담는 그릇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42절)라며 네 가지 대조를 통해 부활의 몸을 설명합니다. 첫째,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둘째,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셋째,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넷째,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42-44절).

 

이 네 가지 대조는 단순히 질적 전환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땅의 몸은 타락 이후 죄의 지배 아래에 있고, 결국 죽음으로 마무리되지만, 부활의 몸은 죄의 흔적이 사라진 하나님 나라의 몸입니다. ‘신령한 몸’은 헬라어로 ‘소마 프뉴마티콘’, 성령에 의해 지배되고 다스려지는 존재를 말합니다. 즉, 그리스도인의 부활은 단지 ‘살아남’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존재로의 탄생이며, 새 창조의 완성을 입는 사건입니다.

 

첫 사람 아담과 마지막 아담, 두 생명의 경륜 (고전 15:45-49)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주는 영이 되었나니…”(45절)

바울은 부활의 본질을 이해시키기 위해, 두 아담의 대조를 들고 나옵니다. 이는 성경 전체를 아우르는 성경신학적 구조입니다. 첫 사람 아담은 흙에서 난 존재로, 하나님께서 ‘생기를 불어넣으심’으로 살아있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죄로 인해 타락했고, 그 이후 모든 인류는 죽음 아래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반면 마지막 아담, 곧 예수 그리스도는 ‘살려주는 영’이 되셨다고 선언합니다. 여기서 ‘살려주는’이라는 말은 헬라어 ‘조오포이운(zōopoioun)’이며, 단순히 생명을 유지시킨다는 뜻이 아니라, 죽은 것을 살리는 근원적인 능력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생명을 주는 자이시며, 새로운 인류의 머리로서 두 번째 아담이 되셨습니다.

 

바울은 우리의 존재가 처음엔 ‘흙에 속한 자’였지만, 장차는 ‘하늘에 속한 자’로 변화된다고 말합니다(48-49절). 우리는 본래 아담의 형상을 입고 태어났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제는 하늘의 형상을 입을 자로 변화되는 중에 있습니다. 이 변화는 단지 천국에 들어가는 자격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형상을 입어, 하나님의 자녀로서 온전한 모습으로 회복되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형상’이라는 단어는 창세기의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의 회복을 떠올리게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단지 한 개인의 승리가 아니라, 구속사 전체를 꿰뚫는 하나님의 창조 회복 선언입니다. 부활은 곧 창조의 회복이며, 하나님의 형상이 완성되는 순간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은 단지 부활절 하루의 기념이 아니라, 우리의 삶 전체를 견인하는 신앙의 근거입니다.

 

결론

고린도전서 15장 35절부터 49절은 부활을 철저히 구속사적 시선에서 바라보게 합니다. 바울은 부활의 몸이 단지 이 육체의 연장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질서 속에서 주어지는 하나님의 형체라고 선언합니다. 씨앗의 비유와 다양한 형체의 차이를 통해, 부활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설계하신 완전한 생명으로의 도약임을 드러냅니다. 첫 아담 안에서 죽을 수밖에 없던 우리에게, 마지막 아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생명이 주어졌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활은 반드시 일어납니다. 그 부활은 곧 하나님의 창조 완성이며, 우리를 위한 실재하는 약속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썩지 않을 그 몸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이 땅의 삶을 살아갑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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