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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성경

스가랴 1:7-21 묵상

by 파피루스 2025. 7.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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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환상 속 하나님의 위로와 회복의 약속

 

스가랴 1:7-21은 선지자 스가랴가 본 첫 번째 환상으로, 하나님의 구속사가 회복의 방향으로 어떻게 펼쳐지는지를 계시합니다. 붉은 말을 탄 자와 그를 따르는 말들, 그리고 네 뿔과 네 공장의 환상은 유다 백성의 고난과 회복, 그리고 하나님의 공의가 어떻게 실현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이 본문은 단지 환상이나 상징적 묘사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 성도들에게도 하나님의 정의와 위로, 그리고 회복의 약속을 다시 붙들도록 격려하는 말씀입니다. 매일 성경을 묵상하는 사람이라면 이 본문을 통해 하나님께서 고난의 역사 속에서도 자기 백성을 잊지 않으시며, 반드시 구속사적으로 회복하시는 분이심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붉은 말을 탄 자: 하나님의 임재와 세상의 고요함 속 긴장

 

스가랴는 다리오 왕 제이년 열한째 달, 즉 스밧월 이십사일 밤에 환상을 봅니다. "내가 밤에 보니 붉은 말"(סוּס אֲדֹם, 수스 아돔)을 탄 자가 골짜기 속 화석류나무(하닷세임) 사이에 서 있습니다. 이 붉은 말은 심판과 전쟁의 상징일 수 있으나, 여기서는 하나님의 사자, 즉 여호와의 명령을 수행하는 자로 이해됩니다. 그를 따르는 자들은 붉은 말, 자주빛 말, 흰 말을 타고 있습니다. 말의 색은 사사기 5장이나 계시록 6장처럼 상징적 의미를 지니며, 각각 전쟁, 심판, 승리 또는 평안을 상징할 수 있습니다. 즉, 이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세상을 순찰하는 천사적 존재들입니다.

 

이 장면은 단순한 시적 이미지가 아니라, 고난 가운데 있는 유다 백성에게 하나님의 눈과 손이 온 세상을 감찰하고 계심을 알리는 신학적 선언입니다. 당시 유다는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왔지만 여전히 예루살렘은 재건되지 않았고, 이방 민족들은 자신들의 평화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11절에서 말 탄 자들이 보고합니다. "우리가 땅에 두루 다녀보았더니 온 땅이 평안하고 조용하더이다." 여기서 '평안하고 조용하다'(שֹׁקֵט וּשַׁלְוָה, 쇼케트 우샬레바)는 이방 세계의 겉보기에 안정된 상태를 묘사하지만, 이는 하나님의 공의가 실현되지 않고 있는 부조리한 고요함입니다.

 

이 장면을 묵상할 때, 우리도 삶 속에서 하나님의 정의가 지연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악인은 형통하고, 의인은 여전히 고통받는 현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세상의 겉모습에 속지 않으시며, 자기 백성을 향한 구원의 일정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묵상의 사람은 이 환상을 통해 하나님의 타이밍과 섭리를 신뢰해야 하며,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믿음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긍휼과 회복의 약속: 예루살렘을 다시 택하신 하나님

 

12절에서 말 탄 자 곧 여호와의 사자가 말합니다. "만군의 여호와여 주께서 예루살렘과 유다 성읍들을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신 지 몇 년이니이까?" 여기서 '긍휼히 여기다'(רִחֵם, 리헴)는 어머니의 자궁을 뜻하는 라함(רֶחֶם)에서 파생된 말로, 하나님께서 자녀를 향해 가지시는 깊은 애틋함을 나타냅니다. 이는 단순한 동정심이 아니라, 언약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끊을 수 없는 사랑을 상징합니다.

 

이에 대해 하나님은 선한 말씀과 위로의 말씀(דְבָרִים טוֹבִים דִּבְרֵי נִחֻמִים, 드바림 토빔 디브레이 니후밈)을 스가랴에게 전하십니다. 14절에서 하나님은 선포하십니다. "내가 예루살렘을 위하여 크게 질투하며 시온을 위하여 크게 분노하며" 여기서 '질투하다'(קָנָא, 카나)는 하나님의 열심과 언약적 사랑을 뜻하며, 우상숭배와 죄에 대한 심판뿐 아니라 회복과 구원을 향한 강한 의지를 나타냅니다.

 

15절은 하나님의 공의를 드러냅니다. "나는 조금 노하였거늘 그들은 힘을 내어 고난을 더하였느니라." 하나님은 바벨론을 사용하여 이스라엘을 징계하셨으나, 이방 민족들은 자신들의 탐욕으로 그 징계를 넘어서 학대하고 멸시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공의가 반드시 실현될 것이라는 선언으로 이어집니다.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다시 위로하실 것이며, 성전이 다시 건축되고 성읍들이 다시 번성하게 될 것입니다(16-17절). 이 환상은 단지 건물의 재건을 넘어, 하나님의 임재가 다시 시온에 돌아오신다는 신학적 선언입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묵상할 때, 하나님은 폐허처럼 보이는 우리의 삶에도 동일한 위로를 주시며, 회복의 약속을 주십니다. 그분의 긍휼은 결코 사라지지 않으며, 우리를 향한 언약은 반드시 성취됩니다.

 

네 뿔과 네 공장: 하나님의 심판과 정의의 도구

18절부터 21절까지는 두 번째 환상이 이어집니다. 선지자가 보니 네 개의 뿔(קְרָנוֹת, 크라노트)이 등장합니다. 이는 고대 근동에서 뿔이 힘과 권세, 왕국을 상징하는 점을 고려할 때, 이스라엘을 흩트린 네 나라 혹은 강대국을 뜻합니다. 역사적으로 이는 앗수르, 바벨론, 메대-바사, 헬라 등으로 해석될 수 있으나, 단순히 숫자보다 '전체'를 의미하는 상징으로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이 뿔들은 유다와 예루살렘을 흩뜨린 존재들이며, 하나님의 백성을 압제했던 힘의 상징입니다. 그러나 이어서 등장하는 네 명의 공장(חָרָשִׁים, 하라쉼)은 그 뿔들을 떨어뜨릴 도구들입니다. '공장'이란 목수 또는 대장장이처럼 재료를 다루는 장인을 뜻하는데, 여기서는 하나님의 정의를 실현하는 도구로 등장합니다.

 

이 장면은 하나님의 심판이 강대국들의 권세를 무너뜨리고, 그분의 구속사를 완성해 가심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정의는 인간의 역사 속에서 반드시 실현되며, 그분은 그 목적을 위해 특별히 준비한 도구들을 사용하십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묵상할 때, 악이 승리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결국 하나님의 공의가 드러난다는 믿음을 붙들게 됩니다. 또한, 하나님은 평범한 사람도 공의의 도구로 사용하신다는 사실을 통해, 우리 자신이 그분의 정의의 일꾼으로 부르심 받았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묵상은 이 두 번째 환상을 통해, 세상의 뿔 앞에 무력해 보이는 교회와 성도들이 하나님의 손에 붙들릴 때 어떤 권세를 지닐 수 있는지를 깨닫게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가 흐르는 통로가 되어야 하며, 불의한 세상 속에서 그분의 정의와 자비를 실현하는 '공장'의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마무리

스가랴 1:7-21의 환상들은 당시 유다 백성에게는 절망 속 위로였고, 오늘날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통치와 회복의 메시지입니다. 붉은 말을 탄 자는 세상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말들의 순찰은 공의의 정지 상태를, 하나님의 응답은 회복과 위로의 확증을, 네 뿔과 공장은 하나님의 정의 실현을 뜻합니다. 이 말씀은 단지 과거의 역사나 예언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유효한 하나님의 메시지입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의 일하심을 신뢰하고 그분의 회복에 동참하는 삶을 살아간다면, 우리 역시 그분의 구속사 안에 쓰임 받는 자가 될 것입니다.


2025년 8월 매일성경 묵상 본문입니다. 날짜와 요일, 묵상 본문을 정리했습니다. 각 묵상글은 날짜에 표기된 본문을 클릭하시면 보실 수 있습니다. 성경을 더 깊이 이해하는 복된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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