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힌 문과 열린 마음, 다시 찾은 사랑의 자리
아가 5:2-6:3은 사랑하는 자의 부재와 그로 인한 갈망, 그리고 다시 회복되는 사랑의 교제를 그리는 본문입니다. 신부는 문 밖에 선 신랑의 음성에 응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다 그를 놓치지만, 이후 애타게 그를 찾아 나섭니다. 이 장면은 주님의 임재 앞에서 우리가 얼마나 깨어 있어야 하며, 사랑이 어떻게 다시 회복되는지를 보여주는 깊은 은혜의 묵상입니다.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 앞에서 머뭇거리는 마음
“내가 잘지라도 마음은 깨었는데 나의 사랑하는 자의 소리가 들리는구나”(5:2). 신부는 자고 있었지만, 마음은 깨어 있었습니다. 이는 성도가 영적 무감각 속에서도 여전히 주님의 음성을 듣고자 하는 이중적 상태를 보여줍니다. 주님은 문 밖에서 부르십니다. “내 누이, 내 사랑, 내 비둘기, 내 완전한 자야 문을 열어다오.” 이 부름은 애정이 가득 담긴 언어로, 깊은 관계 속에서의 간청입니다. 불링거는 이 장면을 주님의 임재를 간절히 원하시며 문을 두드리시는 그리스도의 사랑이라 설명합니다.
그러나 신부는 주저합니다. “내가 옷을 벗었으니 어찌 다시 입겠으며 내가 발을 씻었으니 어찌 더럽히리이까”(5:3). 일상의 편안함과 익숙함이 주님의 초청보다 우선되는 순간입니다. 이는 성도가 주님의 요청 앞에서 가지는 현실적 안일함, 게으름, 자기중심적 사고를 상징합니다. 칼뱅은 이 장면을 두고 “주님의 은혜는 부르심 안에 임하나, 그 부르심에 즉각 응답하지 않는 자는 그 은혜를 잠시 놓치게 된다”고 경고합니다.
결국 신부는 문을 열기로 결심합니다. “나의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문을 열었으나 그는 벌써 물러갔네”(5:6). 이미 신랑은 떠났고, 신부는 놀라워하며 그를 찾기 시작합니다. 주님의 임재는 강제로 유지되지 않으며, 응답을 통해 누려야 할 은혜입니다. 여인은 신랑의 손잡이에서 몰약의 향기를 맡습니다. 이는 주님께서 남기신 흔적, 곧 은혜의 잔향이며, 사라진 것 같지만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 있는 하나님의 자비를 상징합니다.
길에서 맞은 고난과 자문, 그리고 사랑의 고백
신부는 거리로 나서지만, 성을 순찰하는 자들에게 맞고 상처를 입습니다(5:7). 이는 주님을 향한 갈망을 드러내는 신자의 외로운 순례길에서 겪는 세상의 거절과 고통을 상징합니다. 매튜 헨리는 이 부분을 주석하며 “그리스도를 향한 열정은 때로 세상에 의해 오해되고 조롱당한다”고 말합니다. 신부는 이 고통 가운데서도 사랑하는 이의 흔적을 잊지 않고, 예루살렘의 딸들에게 요청합니다. “너희가 나의 사랑하는 자를 만나거든 내가 사랑함으로 병이 났다고 하려무나”(5:8).
여인들은 반응합니다. “여자들 중에 어여쁜 자야 너의 사랑하는 자가 남의 사랑하는 자보다 나은 점이 무엇인가?”(5:9). 이는 신자의 고백이 단지 감정이 아닌, 실제로 가치 있고 차별화된 사랑임을 요구하는 질문입니다. 이에 신부는 사랑하는 이를 장엄하고도 섬세하게 묘사합니다. “그는 순금 같고 머리는 정금 같고 머리털은 구불구불하고 까마귀 같이 검고”(5:10-11). 이는 신랑의 존귀함과 아름다움을 시적으로 풀어내는 고백이며, 단순한 외모가 아니라 인격 전체를 향한 찬미입니다.
이어지는 구절은 전신을 찬미하는 시로서, 그의 눈, 뺨, 입술, 손, 몸, 다리까지 하나하나 열거됩니다(5:12-15). 이 묘사는 인간이 그리스도를 어떻게 인식하며 사랑하고 있는지를 드러냅니다. 헬라어로 ‘찬미하다’는 뜻을 지닌 ‘ἐπαινέω’처럼, 이 고백은 단지 묘사가 아니라 숭배에 가까운 감정입니다. 마지막으로 신부는 선언합니다. “그는 나의 사랑하는 자요 나의 친구로구나”(5:16). 이 구절은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가장 친밀하고 인격적으로 표현한 구절입니다. 그는 나의 주님이시며, 동시에 친구이신 분입니다. 이는 요한복음 15장에서 예수님이 “나는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라”고 하신 말씀과 연결됩니다.
다시 찾은 사랑의 확신, 동산 안에 있는 그분
6장에서는 예루살렘의 딸들이 다시 질문합니다. “여자들 중에 어여쁜 자야 네 사랑하는 자가 어디로 갔는가?”(6:1). 이는 앞서 신부의 고백을 들은 이들이 이제 그 사랑을 함께 찾고자 하는 열망의 표현으로 바뀌었음을 보여줍니다. 신자의 간증은 공동체를 변화시키며, 그리스도를 찾는 열정은 전염됩니다.
이에 신부는 응답합니다. “나의 사랑하는 자는 자기 동산으로 내려갔고 향기로운 밭에 이르러 그 동산에서 양떼를 먹이며 백합화 가운데 거니는구나”(6:2). 이는 이전까지 문밖에서 서 계시던 주님이 이제는 다시 동산 안, 곧 교회와 교제의 자리로 돌아오셨다는 고백입니다. 백합화는 순결한 자, 신자들을 상징하며, 주님은 그의 백성 가운데 거하시며 먹이시고 돌보십니다. 이는 시편 23편의 목자 이미지를 떠오르게 합니다.
그리고 신부는 고백합니다. “나는 나의 사랑하는 자의 것이요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나의 것이며 그가 백합화 가운데 먹이는도다”(6:3). 이 구절은 아가서 2:16에서 발전된 형태로 반복됩니다. 앞서 2:16에서는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고 나는 그에게 속하였도다”라고 표현되었지만, 이제는 순서가 바뀌어 “나는 그의 것이요 그가 나의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사랑의 성숙과 겸손을 나타내는 고백입니다. 처음에는 내 중심에서 출발했지만, 이제는 그분이 먼저이고, 나는 그의 소유임을 자각하는 신앙의 깊이가 드러납니다.
불링거는 이 고백을 두고 “성숙한 믿음은 하나님의 주권적 사랑을 먼저 고백하며, 그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인정하게 되는 과정”이라 설명했습니다. 이처럼 주님을 향한 갈망, 부재의 고통, 회복의 감격은 신앙 여정의 반복이며, 우리 모두가 경험하는 믿음의 사이클입니다.
전체 마무리
아가 5:2-6:3은 사랑의 부재와 회복, 기다림과 만남이 교차하는 감정의 여정을 따라 펼쳐집니다. 주님의 음성을 들으면서도 응답하지 못했던 신부는 결국 그를 잃고, 거리에서 상처를 입으며 주님을 찾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 신부는 그분의 존귀함을 깊이 깨닫고, 그분이 단지 나의 연인일 뿐 아니라 나의 친구임을 고백하게 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신랑은 다시 돌아오십니다. 교회의 동산, 성도의 마음, 그 예배와 교제의 자리로 주님은 임재하시며, 우리는 다시 그분의 것이 되었다는 확신 속에 서게 됩니다. 이 고백은 단지 회복의 기쁨을 넘어, 주님의 은혜가 얼마나 인내롭고 신실한지를 증언하는 복음의 이야기입니다.
오늘 우리도 여전히 주님 앞에 문을 닫고 있지는 않은지, 주님의 음성 앞에서 머뭇거리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 문을 여는 순간, 다시 찾아오시는 주님의 발걸음은 더없이 부드럽고, 그분의 임재는 동산을 다시금 향기로 가득 채우게 될 것입니다. 나는 주님의 것이고, 그분은 나의 모든 것이 되십니다. 이것이 회복된 사랑의 확신입니다.
'매일성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가서 1:1-2:7 묵상, 솔로몬의 아가라 (0) | 2025.04.16 |
---|---|
누가복음 24:36-53 묵상, 제자들을 찾아가신 예수님 (0) | 2025.04.16 |
누가복음 24:13-35 묵상,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와 예수님 (0) | 2025.04.16 |
누가복음 24:1-12 묵상, 돌문이 열리고, 기억이 살아나다 (0) | 2025.04.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