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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성경

아가서 8:5-14 묵상, 사랑은 죽음처럼 강하고

by 파피루스 2025. 4.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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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인을 품고 사는 자여, 끝까지 불타오를 그 열정으로

아가서 8:5-14은 술람미 여인의 사랑의 고백이 절정에 이르는 장면이며, 그 사랑이 얼마나 견고하며 거룩한지를 온몸으로 보여주는 결말입니다. 이 본문은 주님과 그의 백성 사이의 언약적 사랑이 단순한 감정을 넘어 죽음처럼 강하며, 인장처럼 새겨져야 할 것임을 선포합니다. 사랑은 여기서 끝이 아니라 영원히 지속될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는 불꽃이며, 그 사랑으로 인해 교회는 영광스럽게 깨어나고, 마지막까지 그 열정을 지켜나가야 합니다.

사랑은 인 같이 마음에 새기며, 죽음같이 강한 것이라

본문은 “그 사랑하는 자를 의지하고 거친 들에서 올라오는 여자가 누구인가”라는 외침으로 시작합니다(8:5). 이는 마치 창세기 2장에서 하와가 아담의 곁에서 지음받는 장면을 떠올리게 하며, 이제 술람미 여인이 신랑을 의지하며 새로운 삶의 자리로 나아가는 장면입니다. 이는 회복된 교회, 성숙한 신자가 주님만을 의지하며 세상 속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상징합니다.

“사과나무 아래에서 내가 너를 깨웠노라”(8:5)는 말은 신랑의 고백으로, 사랑이 처음 시작된 자리를 상기시키며, 거기서 생명의 흔적이 있었음을 말합니다. 여기서 ‘사과나무’는 아가서 전체에서 사랑과 생명의 상징으로 등장하는데, 히브리어 ‘תַּפּוּחַ(탑푸아흐)’는 향기로운 과일로, 주님과의 첫사랑, 언약의 자리, 구원의 기억을 상징합니다.

이어지는 8:6은 아가서 전체에서 가장 중심적인 구절이며, 사랑의 본질에 대해 명확하게 선언합니다. “너는 나를 도장 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 같이 팔에 두라.” 고대 근동에서 ‘도장’은 소유와 권위, 언약의 확증을 의미합니다. 이 말씀은 사랑이 단순한 감정의 흐름이 아니라, 의지적으로 붙드는 언약이라는 점을 분명히 합니다. 칼뱅은 이 구절을 주석하며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 마음에 새겨지는 인장이며, 우리가 주를 사랑할 수 있는 이유도 그분이 먼저 우리를 자신의 것으로 인쳐주셨기 때문”이라 설명합니다.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질투는 스올 같이 잔혹하며 불길 같으니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8:6). 여기서 '여호와의 불'이라는 표현은 히브리어로 ‘שַׁלְהֶבֶתְיָה(샬헤베트야)’로, ‘여호와의 불꽃’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는 성령의 불길, 하나님의 질투하시는 사랑, 곧 거룩한 열정의 속성을 상징합니다. 불링거는 이를 두고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의 사랑과 달리 타협하지 않으며, 전인격을 요구하는 불같은 열정”이라고 해석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태우며, 죽음보다 강하고, 질투보다 완고한 하나님의 속성입니다.

“많은 물도 이 사랑을 끄지 못하겠고 홍수라도 삼키지 못하나니 사람이 그의 온 가산을 다 주고 사랑과 바꾸려 할지라도 오히려 멸시를 받으리라”(8:7). 이는 사랑이 물질이나 조건에 의해 좌우되지 않음을 선언하는 고백입니다. 주님의 사랑은 세상의 어떤 것도 대체할 수 없으며, 그 무엇으로도 살 수 없습니다. 매튜 헨리는 이 구절을 “하나님의 사랑은 절대적이며, 값으로 거래될 수 없는 영원한 가치”라고 주석합니다.

가꾸어진 동산이 되어가는 교회의 사명

8:8-9에서는 공동체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우리에게 작은 누이가 있는데 그에게 유방이 없도다.” 이는 아직 신앙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존재, 혹은 교회 안에서 자라나야 할 새로운 영혼들을 의미합니다. 신앙의 공동체는 성숙한 자만이 아닌, 성장 중인 이들도 함께 품어야 할 책임을 가집니다. “그가 말하기를 원할 때에 우리가 그를 위하여 무엇을 할까.” 이 문장은 목양적 돌봄의 책임을 상징하며, 성장과 보호의 공동체적 사명을 강조합니다.

“그가 성벽이라면 우리는 은 망대를 그 위에 세우리라. 그가 문이라면 백향목 판자로 두르리라”(8:9). 이는 두 가지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성벽’은 단단한 믿음, 곧 거절과 저항을 상징하며, 그 위에는 은으로 장식된 망대를 세워 아름다움과 영광을 더하겠다는 뜻입니다. ‘문’은 열려 있는 태도, 즉 수용과 교제의 가능성을 의미하며, 그럴 경우 백향목으로 보호하겠다는 다짐입니다. 이는 교회가 성도 각자의 형편에 따라 적절하게 돌보고 세워주는 사명을 말합니다.

이에 신부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성벽이요 내 유방은 망대 같으니 그러므로 나는 그의 눈앞에서 화평을 얻은 자 같도다”(8:10). 이는 자신의 정체성과 신앙의 자리를 분명히 하는 선언입니다. 성벽이라는 표현은 순결과 경건의 방어력을, 유방과 망대는 성숙과 신앙의 풍성함을 의미합니다. 주님 앞에서 화평을 얻었다는 고백은, 회복과 만족의 정서가 아니라, 언약 안에서의 안식과 기쁨을 드러내는 표현입니다. 칼뱅은 이를 “성도가 주님 앞에서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담대함은 거룩함의 결실”이라 설명합니다.

주님의 소유와 성도의 결단, 끝까지 이어지는 사랑의 삶

8:11-12에서는 사랑과 소유, 그리고 사명의 균형이 드러납니다. “솔로몬이 바알하몬에 포도원이 있어 지키는 자들에게 맡겨서 각기 그 실과로 대가를 바치게 하였도다.” 이는 주님의 나라가 그리스도의 소유이며, 우리는 그 포도원을 맡은 청지기라는 인식을 상기시켜 줍니다. “솔로몬 너는 천을 얻고 그 열매를 지키는 자도 이백을 얻으리이다”(8:12). 이는 주의 일을 맡은 자에게도 풍성한 은혜의 보상이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포도원을 지키는 자로서 충성할 책임과 동시에 보상의 약속을 받는 자입니다.

마지막으로 신부는 주님께 간청합니다. “동산에 거하는 자들아 친구들이 내 음성에 귀를 기울이게 하니 너는 듣고 내게로 오라”(8:13). 이는 기도자의 자세이자, 주님의 음성을 사모하는 자의 간절한 부름입니다. 사랑은 머무는 것이 아니라 찾아가는 것이며, 부르고 응답하는 인격적 교제입니다.

그리고 아가서는 이 마지막 고백으로 마무리됩니다. “내 사랑하는 자야 너는 빨리 달리라 향기로운 산 위에 있는 노루나 어린 사슴 같아라”(8:14). 이는 회복된 관계가 끝이 아니라, 끊임없이 주님을 따라가야 할 순례의 길로 이어진다는 고백입니다. 사랑의 여정은 일회성 사건이 아니라, 평생을 따라가는 과정입니다. 이 고백은 마치 요한계시록 22장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는 고백처럼, 다시 오실 주님을 향한 성도의 열망으로 읽힙니다.

불링거는 이 마지막 구절을 “믿음의 사람은 주님의 음성을 들을 뿐 아니라, 그분을 갈망하며 끝까지 따르는 자”라고 주해합니다. 우리의 신앙은 단지 주님을 향한 사랑을 입는 데서 끝나지 않고, 그 사랑을 붙들고 날마다 주님을 따라가는 삶으로 완성되어야 합니다.

전체 마무리

아가서 8:5-14은 사랑의 여정이 어떻게 영적 성숙으로 이어지는지를 보여주는 결론입니다. 그 사랑은 죽음처럼 강하고, 불처럼 타오르며, 물로 끌 수 없는 거룩한 불꽃입니다. 신자는 그 사랑을 마음에 인처럼 새기며, 날마다 주님의 음성을 따라 사는 자로 부름받았습니다.

신부의 고백은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의 사랑을 기억하며, 그 사랑 앞에 순종하며, 주님의 포도원을 지키는 자로 살아가는 삶. 그리고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며, 오늘도 “향기로운 산 위의 노루처럼” 그분을 따라 달려가는 자. 이것이 아가서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복음의 사랑입니다.

이제 우리는 사랑의 인을 가슴에 새기고, 주님의 부르심에 온몸으로 응답해야 할 때입니다. 주님은 오십니다. 그 사랑은 멈추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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