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산을 남기는 믿음: 다윗의 고백과 성전의 비전
역대상 28장 1절부터 21절까지는 다윗 왕이 인생의 마지막 시점에서 백성들과 지도자들을 모아 하나님의 성전을 향한 비전을 선포하는 장면을 담고 있습니다. 이 장은 다윗의 유언처럼 들리지만, 단순한 인생 정리 이상의 깊은 영적 통찰이 담긴 선언입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과 허락하지 않으신 것을 분별하며, 다음 세대에 신실하게 하나님의 일을 위임하는 다윗의 모습은 우리에게 삶의 마지막까지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가르쳐 줍니다. 우리 각자에게 맡겨진 사명이 무엇이며, 그 사명을 어떻게 이어가야 할지를 돌아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을 존중하는 순종의 자세
다윗은 이스라엘의 모든 고관과 지휘관들을 예루살렘에 소집하고, 공개적으로 자신의 뜻과 하나님의 뜻을 구별하여 선언합니다. 2절에서 그는 "내 마음에 여호와의 언약궤를 두고 하나님의 발등상을 둘 성전을 건축할 마음이 있었으나"라고 고백합니다. 여기서 "마음에 있었다"는 표현은 히브리어로 "עִם-לְבָבִי (im-levavi)"로, 단순한 의도나 바람이 아니라 깊은 결단과 헌신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결정을 허락하지 않으셨고, 다윗은 이에 순종합니다.
이 장면은 우리에게 중요한 신앙의 교훈을 줍니다. 아무리 선하고 거룩한 동기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아니라면 그 일은 멈추어야 합니다. 다윗은 성전 건축이라는 위대한 사역을 자신이 아닌 아들 솔로몬에게 맡기신 하나님의 뜻을 인정하고, 오히려 이를 도와주는 자의 역할에 집중합니다. 이는 권한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겸손한 순종의 태도입니다.
다윗은 그동안 전쟁을 통해 이스라엘의 경계를 확장하고, 평화를 이룬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피를 많이 흘린 다윗 대신 평화의 상징인 솔로몬(히브리어: שְׁלֹמֹה, '샬롬의 사람')을 택하십니다. 이는 하나님의 성전은 평화 가운데 세워져야 한다는 상징적 메시지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인간의 능력이나 열심이 아닌, 하나님이 정하신 사람과 때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묵상하게 됩니다.
다음 세대를 향한 믿음의 위임
9절부터 10절까지는 다윗이 솔로몬에게 전하는 유언 같은 권면이 담겨 있습니다. "내 아들 솔로몬아, 네 아버지의 하나님을 알고...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섬기라"는 말씀은 단순한 충고가 아니라, 신앙의 정수를 담은 명령입니다. 여기서 "알다"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יָדַע (yada)"이며, 지식 이상의 인격적 친밀함과 체험을 포함하는 단어입니다. 다시 말해, 단순히 하나님에 대해 아는 것이 아니라, 그분과의 깊은 관계 안에서 섬기라는 의미입니다.
다윗은 솔로몬에게 단순한 건축 명령을 넘어서, 마음의 정결함과 전적인 헌신을 요구합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라는 구절은 신명기 6장 5절의 말씀과 연결되며, 모든 율법과 선지자의 핵심이 되는 계명의 핵심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성전은 건축 양식이나 규모가 아니라,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고 경외하는 자의 마음 위에 세워진다는 사실을 말해 줍니다.
10절에서 다윗은 "네가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게 하셨으니 힘써 행하라"고 명령합니다. 이는 단순한 과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택하심 안에서 주어진 소명입니다. 우리가 어떤 사역을 맡았든지, 그것이 우리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이라는 것을 확신할 때, 우리는 그 일을 기쁨과 책임으로 감당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가정, 교회, 사회 가운데도 하나님의 나라를 이어갈 다음 세대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신앙의 유산을 남기고 있는지, 혹은 단지 지식이나 규칙만을 전달하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다윗처럼 하나님의 언약과 뜻을 신실하게 계승하도록 도와주는 믿음의 부모, 스승, 선배가 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설계도: 하늘로부터의 지시와 충성된 전달
11절부터 19절까지는 다윗이 솔로몬에게 성전의 설계도를 전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는 단지 건축가가 만든 도면이 아니라, 하나님의 감동으로 받은 청사진입니다. 12절에서는 "성령으로 감동하사"라는 표현이 등장하는데, 이는 히브리어로 "בְּרוּחַ (beruach)"—성령, 곧 하나님의 영을 의미하며, 여기서는 성령께서 직접 다윗의 마음에 도면을 새겨주신 것으로 이해됩니다.
모든 기구, 방, 창고, 제단, 심지어 직무의 조직까지 하나님께서 직접 보여주신 설계를 따라야만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일은 인간의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식대로 이루어져야 함을 말합니다. 솔로몬이 그 성전을 아름답게 짓고자 해도, 하나님의 도면을 벗어나서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다윗은 이 설계도를 충실하게 솔로몬에게 넘깁니다. 본문은 반복해서 "그가 다 기록한 책"이라고 말하며, 다윗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을 정확히 전수했음을 강조합니다. 이는 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자질이 '창조성' 이전에 '충성됨'임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주님의 종으로서, 하나님이 주신 말씀과 지시를 왜곡하지 않고 그대로 전하고, 바르게 살아내는 것이 가장 중요한 사명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성전은 단지 예배 공간이 아니라, 하나님이 거하시는 거룩한 임재의 처소입니다. 그러므로 그 구조 하나하나가 하나님과의 언약을 드러내는 상징이 됩니다. 오늘날 우리 몸이 성령의 전이라면(고전 6:19),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도면에 따라 살아가야 하며, 그 구조와 질서 안에 거해야 합니다.
20절과 21절에서 다윗은 다시금 솔로몬을 격려하며, "강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고 말합니다. 이는 여호수아에게 모세가 남긴 유언과도 흡사하며, 새로운 세대가 새로운 사명을 감당할 때 필요한 말씀입니다. 다윗은 솔로몬에게 하나님께서 함께하실 것을 확신하며, 성전 건축의 사명을 믿음으로 감당하도록 권면합니다.
마무리
역대상 28장은 다윗의 인생 말기에 선포한 가장 영적인 유산의 장면입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신 일 앞에서 순종하고, 허락하신 일 앞에서 겸손히 도우며, 다음 세대에게 정확하게 계승하는 그의 자세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본이 됩니다. 우리의 삶 역시 지금 무엇을 이루느냐보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며 다음 세대에게 무엇을 남기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말씀의 도면을 붙들고, 성령의 감동을 따라 살아가는 신실한 청지기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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