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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세계/성경인물

[인물 설교] 나아만의 생애와 교훈

by 파피루스 2025. 5.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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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아만의 생애와 치유: 하나님의 은혜와 순종의 여정

서론 도입

성경 속에서 나아만은 열왕기하 5장에 등장하는 아람 왕국의 군대장관으로, 문둥병(한센병)에 걸린 인물입니다. 그는 이방인이었지만, 하나님을 만나고 깨끗함을 경험함으로써, 은혜와 순종, 믿음과 겸손의 상징적인 인물로 성경에 기록됩니다. 오늘은 나아만이 생애와 교훈을 묵상해 봅시다.

 

히브리어로 나아만은 나아만(נַעֲמָן, Naaman)은 "기쁨, 즐거움, 우아함”이라는 뜻을  가자고 있습니다. 이 이름은 그의 처음 상태, 즉 위엄 있고 존귀한 위치를 나타내는 동시에,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게 낮아지는 과정을 통해 참된 기쁨과 회복을 얻게 된 인생을 예표하는 상징적 이름입니다. 이름은 아름답지만 그렇지 못했지만, 하지만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그는 다시 이름이 가진 의미를 회복한 사람이 됩니다.

 

나아만의 이야기는 단순한 병 치유의 사건을 너머서, 하나님과의 만남, 인간의 교만과 그 깨어짐, 그리고 순종을 통한 은혜의 회복이라는 깊은 신학적 주제를 담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그의 생애를 중심으로 성경신학적으로 중요한 교훈들을 주제별로 풀어보고자 합니다.

 

 

나아만의 배경과 인간적 권세(아람의 장군 나아만)

열왕기하 5장 1절은 나아만의 위치와 인물됨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아람 왕의 군대장관 나아만은 그의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니, 이는 여호와께서 전에 그에게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음이라. 그는 큰 용사이나 나병환자더라.” (왕하 5:1)

 

그는 ‘크고 존귀한 자’(gadol u-nikhbad)였으며, 왕 앞에서 인정받는 권세자였습니다. 놀라운 것은 그가 이방인임에도 불구하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구속사적 계획 안에서 이방인조차도 사용하신다는 섭리의 폭넓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인생에는 단 한 가지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습니다. 바로 ‘나병환자’(메초라 מְצֹרָע)였다는 것입니다. 이는 단순한 질병이 아니라, 사회적 단절과 종교적 부정함을 상징합니다. 구약에서는 나병환자가 성전 출입은 물론, 공동체로부터 격리된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이는 죄로 인한 인간의 근원적 부패와 분리를 상징하는 신학적 질병이기도 합니다. 율법이 없었던 아람에서는 이스라엘 보다는 덜했겠지만 치명적인 질병이었기에 그는 항상 자신의 병으로 인해 고통스러워했음이 분명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런 모욕을 당하면서 요단강까지 들어갈 이유는 없기 때문이빈다.

 

나아만의 외적인 위치와 내적인 상태의 괴리는, 인간의 자랑이 아무리 대단할지라도,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해결할 수 없는 치명적 결핍이 존재함을 드러냅니다. 그의 회복은 단순히 병의 치료가 아닌, 존귀함과 부끄러움이 교차된 인간 존재가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다시 온전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과정입니다.

 

낮은 자의 증언과 겸손의 시작(이스라엘 계집아이의 신앙)

나아만의 치유 여정은 놀랍게도 가장 낮은 자, 이스라엘에서 끌려온 어린 여종의 말에서 시작됩니다.

“그의 아내에게 수종드는 한 소녀가 그의 여주인에게 이르되,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있었으면 좋겠나이다. 그가 그 나병을 고치리이다 하는지라.” (왕하 5:2–3)

 

하나님의 구원의 통로가 예기치 못한 자를 통해 열릴 수 있음을 강하게 보여줍니다. 이 여종은 전쟁의 포로로 끌려온 신분이었지만,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선지자를 통한 능력을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참된 신앙은 신분이나 환경을 뛰어넘어 역사할 수 있으며, 때때로 약한 자의 입술이 강한 자의 회복의 시작이 될 수 있다는 깊은 진리를 담고 있습니다. 나아만은 처음에 이 말을 따라 엘리사 선지자를 찾아가기로 결심합니다. 겉으로는 자신감 넘치는 결정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신이 해결할 수 없는 영역 앞에 마음이 무너진 상태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나아만이 엘리사를 찾아간 것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절박함 속에서 은혜를 구하게 된 겸손의 첫걸음이었습니다. 이는 오늘날 우리도 겉으로는 강해 보여도, 실은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는 살 수 없는 나병환자와 같은 존재임을 인정하게 될 때, 회복의 문이 열린다는 교훈을 줍니다. 그는 가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그의 절박한 또한 숨겨진 순수함이 이스라엘로 이끈 것입니다. 우리도 때로는 모든 것을 내려 놓고 순종해야할 때가 있습니다.

 

순종의 시험과 은혜의 사건(요단강에서의 치유)

엘리사를 찾아간 나아만은 그의 기대와는 다른 대우를 받습니다. 엘리사는 직접 나오지도 않고, 사자를 보내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가서 요단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회복되어 깨끗하리라.” (왕하 5:10)

그러나 나아만은 이 말에 크게 분노합니다. 그는 엘리사가 나와 직접 손을 얹고 기도하며 ‘공식적이고 권위 있는 행위’를 통해 병을 고쳐줄 것이라 기대했던 것입니다.

“나는 그가 내게로 나와 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손을 그 부위 위에 흔들어 나병을 고칠 줄로 생각하였도다.” (왕하 5:11)

 

여기서 드러나는 것은 인간의 기대와 하나님의 방식은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나아만은 요단강의 작고 초라함을 무시하며, 자신이 가진 이방의 강들이 더 나은 것처럼 주장합니다(왕하 5:12). 그러나 그의 종들이 지혜롭게 조언합니다.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에게 큰일을 행하라 하였더면 행하지 아니하였겠나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하였으니 얼마나 더 하리이까.” (왕하 5:13)

 

이 말에 감화된 나아만은 결국 요단강에 몸을 일곱 번 씻는 순종의 행위를 감행합니다. 부하가 얼마나 중요한지요. 우리 곁에는 저런 부하와 같은 사람들이 있어야 합니다. 본질을 통잘하고 그대로 이끄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 결과는 명확합니다.

“그의 살이 어린 아이의 살같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되었더라.” (왕하 5:14)

 

이 장면은 순종의 단순함이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하는 통로가 되는지를 강하게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사람의 자격이나 조건이 아니라, 순전한 순종과 믿음 위에 임하는 것입니다.

 

영적 변화와 고백(나아만의 하나님 인식)

육체적 치유 이후, 나아만은 엘리사를 다시 찾아가 다음과 같은 고백을 합니다.

“이제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는 줄을 내가 아나이다.” (왕하 5:15)

 

그의 병은 나았지만, 더 놀라운 변화는 그의 신앙의 변화였습니다. 그는 단순한 문둥병 환자가 아닌, 이제 참된 하나님을 아는 자, 믿음의 사람으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이 고백은 단지 한 번의 감정적 표현이 아니라, 이방인이 하나님을 인정하고, 거짓 신들을 버리는 신앙의 회심 사건입니다. 나아만은 이방인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감사하며 예물까지 드리려 하지만, 엘리사는 그것을 받지 않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은혜는 값으로 살 수 없는 선물임을 선언하는 신학적 선언이기도 합니다.

 

결론 정리: 나아만을 통해 배우는 은혜의 영성

나아만의 이야기는 하나님의 은혜가 누구에게나 주어질 수 있으며, 그 은혜는 교만한 자를 깨뜨리고, 겸손히 순종하는 자에게 임한다는 복음의 원리를 담고 있습니다. 그는 이방인이었고, 나병환자였으며, 처음에는 자존심 강한 자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의 사람의 말을 따르고, 자기의 자존심을 내려놓고 순종했을 때, 그는 몸의 회복뿐 아니라, 마음과 믿음까지 새로워지는 은혜의 역사를 체험하게 됩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겉보기엔 존귀하고 정결한 것처럼 보여도, 내면에는 나병과 같은 은밀한 죄와 교만이 숨겨져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여전히 요단강에서처럼, 겸손한 순종을 통해 역사하고, 우리를 치유하고 회복시키는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 앞에 자신을 낮추고, 순종함으로 나아가십시오. 우리를 고치시는 이는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십니다. 나아만의 이름처럼, 주의 은혜 안에서 **참된 기쁨과 회복의 삶을 누리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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