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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세계/성경인물

[인물 설교] 엘리사: 엘리야의 부름에 즉시 소를 버림 (왕상 19:21)

by 파피루스 2025. 5.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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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심 앞에 미련 없이 떠난 사람, 엘리사

왕상 19:21 엘리사가 그를 떠나 돌아가서 한 겨릿소를 가져다가 잡고 소의 기구를 불살라 그 고기를 삶아 백성에게 주어 먹게 하고 일어나 엘리야를 따르며 수종 들었더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예배의 자리는 단지 말씀을 듣는 자리가 아니라, 말씀을 따라 결단하는 자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응답을 요구하십니다. 순종이란 단지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발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열왕기상 19장 21절 말씀입니다. “엘리사가 그를 떠나 돌아가서 한 결이 소를 잡아 그것을 삶고 백성에게 주어 먹이고 이르되 엘리야를 따르며 수종 들리이다 하더니 엘리야를 따르니라”(왕상 19:21). 이 말씀 한 절 속에는 인생을 바꾸는 결단의 전율이 담겨 있습니다. 엘리사는 부르심 앞에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익숙한 삶을 등지고, 고요한 들판에서 선지자의 좁고 험한 길로 들어섰습니다. 오늘 우리는 그 믿음의 첫 걸음을 함께 묵상해 보려 합니다.

 

갈림길에 선 사람(왕상 19:19)

엘리사가 처음 등장하는 장면은 이렇습니다. “엘리야가 거기서 떠나 사밧의 아들 엘리사를 만나니, 그는 열두 겨리 소를 앞세우고 밭을 가는 자라 자기는 열두째 겨리에 있더라”(왕상 19:19). 엘리사는 단지 농부가 아니었습니다. 열두 겨리 소를 부릴 정도면 상당한 부유함과 책임을 가진 자였습니다. 그에게는 안정된 삶이 있었고, 뿌리내린 터전이 있었고, 이어야 할 가문이 있었습니다. 그 모든 것을 등지고 새로운 길로 나아간다는 것은 단순한 변화가 아니라 전적인 전환이었습니다. 엘리야는 다가가 자신의 겉옷을 던집니다. 그것은 구약 시대 선지자의 부름을 상징하는 행위였습니다. 겉옷은 정체성과 권위를 나타내며, 곧 하나님의 부르심의 도장을 찍는 행위였던 것이지요.

 

엘리사는 그 순간 갈림길에 섰습니다. 익숙한 길과 낯선 길 사이, 안정된 삶과 불확실한 여정 사이, 소유의 세계와 부르심의 세계 사이에서 그는 선택을 해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늘 우리를 이 갈림길로 초대합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우리의 믿음이 드러납니다. 누구든지 소를 놓지 않고는 좁은 길로 들어설 수 없습니다.

 

소를 잡고 불태우다(왕상 19:21)

엘리사는 돌아가서 ‘소를 잡고 그것을 삶아 백성에게 먹였다’고 기록합니다(왕상 19:21). 이것은 단지 잔치를 베푼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결별의 선언이며, 과거와의 단절입니다. 그는 자기가 일하던 농기구, 소, 쟁기, 모든 것을 태우고 나눠주었습니다. 미련을 남기지 않겠다는 결단, 돌아갈 다리를 끊겠다는 결의, 앞만 보고 가겠다는 고백이었습니다. 그것은 신앙의 제사였고, 부르심 앞에서 드리는 희생이었습니다.

 

믿음은 종종 우리가 사랑했던 것들을 내려놓는 데서 시작됩니다. 우리가 익숙한 것들을, 붙잡았던 것들을, 손에 쥐었던 안정들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의 손을 붙들 수 있습니다. 엘리사는 소를 잡은 것처럼, 우리도 때로는 우리의 계획, 우리의 방식, 우리의 자존심을 잡아야 합니다. 그것을 하나님 앞에 드릴 때, 하나님은 그것 위에 새로운 사명을 부어주십니다.

 

이 장면은 신약의 마가복음과도 놀랍게 연결됩니다. 마가복음 1장 18절을 보면, 예수께서 갈릴리 바닷가에서 베드로와 안드레를 부르셨을 때,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막 1:18). 또 조금 더 가시다가 야고보와 요한을 부르셨을 때도 “곧 부르시니 그 아버지 세베대를 삯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두고 예수를 따라가니라”(막 1:20)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반복되는 단어가 바로 '곧'(헬라어로 'euthys')입니다. 지체함이 없는 응답, 즉각적인 순종이 마가복음의 제자들을 특징짓는 모습이라면, 엘리사의 반응 역시 그에 뒤지지 않는 전폭적 반응입니다. 그는 소를 잡고, 삶고, 백성에게 먹이고, 엘리야를 따르기로 결단하기까지 단 한 순간도 지체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순종은 이성의 계산을 넘어선 신속한 응답이었고, 마음의 전환이 아니라 삶 전체의 항로를 바꾸는 선택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그 즉각적인 순종 위에 자신의 사역을 세워가십니다.

 

따름의 길에 들어서다(왕상 19:21)

엘리사는 “엘리야를 따르며 수종 들리이다”라고 말합니다(왕상 19:21). 그는 주연이 되기를 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조연의 길을 기쁨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는 배움의 자리에 자신을 겸손히 내려놓았습니다. 수종 든다는 것은 단순한 시중이 아니라, 마음을 낮추는 헌신의 자리입니다. 그는 일꾼이 아닌 제자가 되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엘리사는 처음부터 예언을 선포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먼저 따라갔고, 섬겼고, 기다렸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부르실 때 곧바로 쓰시지 않으십니다. 먼저 훈련하시고, 먼저 길을 걷게 하시고, 때로는 침묵 속에서 연단하십니다. 엘리사는 그 여정을 묵묵히 감당했습니다. 그는 급하지 않았고, 조급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사명의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정하신 시간표를 신뢰하는 것이며, 섬김은 하나님이 주신 자리에서 기쁨으로 낮아지는 것입니다.

전 생애를 바꾼 한 번의 응답(왕하 2:13)

 

엘리사의 여정은 단순한 이직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존재의 전환이었습니다. 그는 농부에서 선지자로, 평민에서 하나님의 대변인으로 변화되었습니다. 그 시작은 바로 열왕기상 19장 21절, 한 절의 응답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후 열왕기하 2장에 이르면, 엘리야는 불말과 불병거에 실려 하늘로 올라가고, 엘리사는 그의 겉옷을 집어 들며 사명의 바통을 이어받습니다(왕하 2:13).

 

엘리사는 준비된 사람이었습니다. 순종으로 시작된 여정은, 결국 기름부음을 이어받는 결실로 이어졌습니다. 그는 끝까지 따랐고, 끝까지 섬겼으며, 끝까지 충성했습니다. 그 삶 전체가 부르심 앞에 놓인 제물과 같았습니다. 그는 소를 잡았고, 자기 자신도 하나님 앞에 드렸습니다. 그것이 바로 참된 제자의 길입니다.

 

마무리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부르심의 겉옷을 던지십니다. 우리의 인생 속에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하나님의 손짓이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합니까? 우리는 붙잡은 쟁기를 내려놓을 수 있습니까? 우리는 익숙한 소를 잡을 용기가 있습니까? 우리는 떠날 길 앞에서 뒤돌아보지 않을 수 있습니까? 믿음은 방향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존재를 전환하는 것입니다. 오늘 엘리사처럼, 부르심 앞에 미련 없이 떠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은 소를 버리는 그 자리에 새로운 겉옷을 던지십니다. 그 겉옷을 받고, 순종의 길, 섬김의 길, 거룩한 따름의 길로 함께 나아갑시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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