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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성경

누가복음 23:44-56 묵상, 예수님이 운명하시다

by 파피루스 2025. 4.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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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된 숨결, 무덤을 준비한 사랑

누가복음 23:44-56은 예수님의 마지막 숨과 죽음, 그리고 그 시신을 정결하게 돌보는 이들의 행적을 통해 하나님의 구속 역사가 어떻게 마무리되고, 동시에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지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세 시간 동안 세상을 덮은 어둠과 성소의 휘장, 예수님의 마지막 외침은 단지 한 사람의 죽음을 넘어 인류를 위한 구원의 완성을 선포합니다. 이 장면은 단순한 비극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절정의 순간입니다.

어둠 속에 울려 퍼진 마지막 숨

“때가 제육시쯤 되어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하며”(44절). 십자가 위에서의 마지막 순간은 대낮에 갑작스레 어둠이 임한 기이한 현상으로 시작됩니다. 이는 자연 현상 그 자체라기보다 하나님의 초자연적 개입으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이 장면은 구약의 애굽에 임했던 마지막 재앙 가운데 어둠의 심판과도 연결되며(출 10:22), 예수님을 통한 새 출애굽의 절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교부 중 하나인 키프리아누스는 이 어둠을 "창조물이 창조주의 죽음을 슬퍼한 증표"라 해석했습니다.

이어지는 45절, “성소의 휘장이 한가운데가 찢어지더라.” 이 휘장은 지성소와 성소를 구분하던 막으로,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던 절대적인 경계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은 이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졌다고 증언하며, 이는 인간의 손이 아닌 하나님의 주권적 개입을 의미합니다. 히브리서 10장 20절은 이 휘장을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로 해석하며, 그분의 찢기심으로 인해 우리가 담대히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열렸다고 말합니다. 칼뱅 역시 이 휘장의 찢어짐을 성전 제도의 종말과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로운 예배의 시작으로 보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예수님께서 큰 소리로 외치십니다.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46절). 이는 시편 31편 5절을 인용하신 말씀으로, 당시 유대 어린이들이 잠자기 전 드리던 기도문이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은 고통 속에서도 아버지를 부르며, 자신의 영혼을 전적으로 하나님께 맡기십니다. 이 마지막 외침은 무력한 죽음이 아닌, 자신의 생명을 하나님께 드리는 주권적 죽음입니다. 헬라어로 ‘부탁하다’는 'παρατίθεμαι(파라티세마이)'는 맡긴다는 의미로, 예수님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자신의 존재 전체를 하나님의 손에 올려드립니다.

그분의 외침 후, 예수님은 숨을 거두십니다. 누가는 ‘숨지시다’는 표현을 ‘ἐξέπνευσεν(엑스프뉴센)’, 곧 “숨을 내쉬다”로 기록하며, 이는 단순히 죽음 이상의 의도된 행위를 암시합니다. 숨을 내쉰 자리에 이제 성령이 임할 준비가 되었다는 암묵적 연결이 여기 담겨 있다고 해석하는 주석가들도 있습니다. 이 마지막 호흡은 인간의 생명이 끝나는 절망이 아니라, 구속사의 완성이라는 선언입니다.

백부장의 고백, 무리의 통곡

예수님의 죽음을 목격한 이들의 반응은 각기 다릅니다. 먼저 로마의 백부장이 등장합니다. 그는 예수님이 죽으신 것을 보고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47절)라고 고백합니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서는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라고 표현되는데, 누가는 ‘의인’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이 표현은 예수님의 무죄함을 넘어,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신 메시아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칭호입니다. 칼뱅은 이 고백을 가리켜, "하나님께서 이방인의 입을 통해 자신의 아들의 의를 증언하셨다"고 해석했습니다.

백부장은 이방인이며,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자입니다. 그는 고통 중에 조롱한 군중과 달리, 끝까지 그분을 바라보며 결론에 도달합니다. 이는 신앙이란 단지 정보에 의한 이해가 아니라, 고난을 직면하며 생기는 눈뜸임을 보여줍니다.

또한 그 자리에 있었던 모든 무리는 “그 되어진 일을 보고 가슴을 치며 돌아가고”(48절), 예수를 따르던 여인들은 “멀리서 바라보며” 그 일을 지켜봅니다(49절). '가슴을 친다'는 행위는 회개의 표현입니다. 그러나 이는 감정적인 통곡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진정한 회개는 마음의 방향이 바뀌는 것이며, 자신이 외면하고 조롱했던 진리를 이제는 향해 나아가는 결단을 포함해야 합니다. 매튜 헨리는 이 장면을 주석하며, "군중은 비로소 자기가 무엇을 저질렀는지 깨닫기 시작했고, 이는 성령의 조명 없이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 말합니다.

멀리서 바라보는 여인들은 이전에도 예수님을 섬기던 이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십자가 앞에서 도망치지 않았고, 무덤까지 따르며 끝까지 그분의 죽음을 지켜본 이들입니다. 고난의 자리에 함께 있는 믿음, 이는 주님의 사랑을 경험한 자들만이 지닐 수 있는 은혜입니다. 교부 요한 크리소스톰은 이 여인들의 헌신을 가리켜 "사도의 침묵 속에서 여인들의 사랑이 말하였다"고 평했습니다.

요셉의 헌신, 안식일을 준비하는 사랑

예수님의 시신은 아리마대 사람 요셉에 의해 정결히 장사됩니다. 그는 공회원이었고 선하고 의로운 자였으며,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였습니다(50-51절). 공회가 예수를 정죄할 때 그의 뜻은 달랐으며, 그는 당당히 빌라도에게 예수님의 시신을 요청합니다(52절). 이는 용기 있는 신앙의 표현입니다. 자신도 공회원이었기에, 예수와 연결되는 것은 자신의 위치를 위태롭게 할 수 있었지만, 그는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세마포를 가져와 예수님의 몸을 싸서 바위에 판 무덤에 모십니다. 이 무덤은 아직 누구도 장사된 적이 없는 곳이었습니다(53절). 이는 예수님의 부활이 ‘다른 시신과의 혼동 없이’ 선명하게 증명되도록 섭리하신 하나님의 배려이며, 동시에 예수님이 장차 첫 열매가 되심을 상징적으로 드러냅니다. 츠빙글리는 이 무덤에 대해 "구약에서 언급된 새 무덤은 새 언약의 시작을 의미한다"고 해석합니다.

그날은 준비일이었고, 안식일이 시작되려는 참이었습니다(54절). 준비일에 장사를 마쳤다는 기록은 유대 율법에 따라 안식일을 철저히 지키려는 요셉과 여인들의 경건함을 보여줍니다. 여인들은 그 무덤과 예수의 몸이 누인 것을 확인하고, 돌아가 향품과 향유를 준비합니다(55-56절). 이들의 헌신은 단지 정리된 사랑이 아니라, 부활 이후 더욱 선명해질 믿음의 기초가 됩니다.

여인들은 안식일에 계명을 따라 쉬었습니다. 이는 고통 가운데서도 율법을 잊지 않은 신앙의 자세이며, 다음 장면에서 부활의 아침을 맞이할 자로서의 준비입니다. 불링거는 이 장면을 두고 "믿음은 죽음 앞에서도 절차를 지키는 법이며, 하나님을 경외함은 절망 중에도 흐트러지지 않는다"고 해석했습니다.

전체 마무리

누가복음 23:44-56은 십자가에서의 마지막 호흡과 무덤으로의 여정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의 절정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둠은 심판을, 휘장의 찢어짐은 길이 열림을, 마지막 숨은 대속의 완성을, 백부장의 고백은 선포된 진리를, 무리의 가슴침은 회개의 가능성을, 여인들의 헌신은 신앙의 끈질김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 모든 중심에는 십자가에서 자신의 영혼을 맡기신 예수님이 계십니다. 그분은 무기력하게 죽은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사명을 다 이루시고 아버지께로 돌아가신 것입니다. 그분의 죽음은 절망의 종착지가 아니라 부활의 새벽을 준비하는 안식일의 문턱이었으며, 이제 곧 생명의 주가 무덤을 깨우시고 일어나실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말씀 앞에서 질문해야 합니다. 나는 그분의 마지막 숨결 앞에서 무엇을 느끼고,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가? 감정적인 동정에 머무를 것인가, 아니면 회개와 믿음으로 그분의 장례에 참여할 것인가? 무덤은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준비일의 사랑이 부활 아침의 영광으로 이어지듯, 우리의 믿음도 고난을 통과하여 부활에 이르는 복된 길 위에 서야 합니다. 완성된 숨결은 이제 우리에게 새로운 생명의 숨으로 불어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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