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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성경

매일성경 묵상, 빌립보서 3:1 - 3:11 세상의 자랑을 배설물로 여기다

by 파피루스 2025. 5.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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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그리스도를 얻고자 하는 인생: 율법에서 은혜로, 육체에서 그리스도로

빌립보서 3장 1절부터 11절은 바울이 신앙 여정의 중심을 ‘그리스도’로 철저히 재정의하는 강력한 영적 선언입니다. 그는 과거의 자랑을 모두 배설물로 여기고 오직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그리스도를 얻는 것, 그 안에서 발견되는 삶만을 참된 가치로 여깁니다. 이 말씀은 신앙의 본질이 무엇이며, 우리가 어디에 생명의 중심을 두고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쳐 줍니다. 오늘도 이 말씀을 시편처럼 묵상하며, 우리가 정말 그리스도를 중심에 두고 살아가고 있는지를 진실하게 점검해 봅시다.

 

주 안에서 기뻐하고 경계하라

바울은 1절에서 “끝으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고 말하며, 본격적인 권면의 내용을 시작합니다. '기뻐하라'는 헬라어 χαίρετε (chairete)는 단순한 감정 상태가 아니라, ‘기쁨으로 살아가라’는 명령형입니다. 이 기쁨은 상황이나 환경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주 안에서’ 오는 기쁨입니다. 바울은 감옥에 있으면서도 기쁨을 명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기쁨이 환경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 뿌리내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어 바울은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몸을 상해하는 일을 삼가라”고 경고합니다. 이는 유대 율법주의자들, 곧 유대인 신자들 가운데 여전히 율법의 의로 자신을 주장하며 이방인 신자들에게 한례를 강요하던 자들을 말합니다. '개들'이라는 표현은 당시 유대인들이 이방인을 비하할 때 사용하던 표현이었으나, 바울은 오히려 율법의 육체를 주장하는 자들에게 그 표현을 돌려주고 있습니다.

 

‘몸을 상해하는 자들’이라는 표현은 헬라어 κατατομή (katatomē)로, ‘찢다, 잘라내다’는 뜻입니다. 이는 ‘할례’(περιτομή, peritomē)와의 언어유희이며, 바울은 율법적 할례가 더 이상 의미 없음을 강하게 주장하는 것입니다.

3절에서 바울은 진정한 할례자가 누구인지에 대해 밝힙니다.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파라.” 여기서 '봉사한다'는 말은 λατρεύω (latreuō)로, 제사 드리는 행위를 뜻하며, 참된 예배가 더 이상 육적인 제사나 형식에 있지 않고 성령으로 드리는 예배임을 나타냅니다.

진정한 신자는 육체의 조건이나 외적인 의식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하고 의지하는 자들입니다. 바울은 이 본문을 통해,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이 어떤 문화적, 육체적 기준이 아니라 믿음과 영에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선포합니다.

 

세상의 자랑을 배설물로 여기다

4절부터 6절까지 바울은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합니다. 그는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며…”라고 말하며, 자신의 출신, 열심, 율법의 의로 따지면 누구보다 흠잡을 데 없는 자였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자신을 “여덟째 날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라 소개합니다.

이는 유대인으로서의 혈통적 자부심과 율법적 정체성을 최고 수준으로 갖추었다는 의미입니다. 특히 '베냐민 지파'는 사울 왕이 나온 지파이며, 바울의 히브리 이름 ‘사울’도 여기에서 유래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민족적, 종교적으로 누구보다 탁월한 배경을 가지고 있음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7절에서 그는 이러한 모든 것을 '손해로 여긴다'고 고백합니다. ‘여기다’는 ἡγέομαι (hēgeomai)로, 깊이 숙고하여 가치 판단을 내리는 단어입니다. 즉, 바울은 단순한 감정적 변화가 아닌, 깊은 신앙적 재해석을 통해 자신의 모든 자랑을 가치 없는 것으로 여긴다는 것입니다.

8절에서 그 절정이 나타납니다.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여기서 ‘아는 지식’은 γνῶσις (gnōsis)가 아닌 τὸ ὑπερέχον τῆς γνώσεως (to hyperechon tēs gnōseōs)로, ‘가장 뛰어난 지식’이란 뜻입니다.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인격적이고 경험적인 관계를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알고 사는 삶이 가장 고상하며, 이전의 모든 가치들은 ‘배설물’이라 표현합니다.

‘배설물’이라는 단어는 헬라어 σκύβαλον (skubalon)로, 쓰레기나 짐승의 똥처럼 전혀 가치 없는 것을 뜻합니다. 이는 바울의 이전 자랑이 얼마나 철저히 무가치하게 여겨졌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그는 단지 무시하는 수준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얻는 데 방해가 되는 모든 것을 해로 여깁니다.

이 말씀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신앙의 본질을 묻습니다. 나는 무엇을 자랑하며, 무엇에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세상의 인정, 학벌, 지위, 신앙 경력조차도 그리스도보다 더 귀하게 여기고 있지 않은가? 바울의 이 고백은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 외에 자랑할 것이 없는 참된 신앙으로 이끌어 줍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는 생명

9절에서 바울은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라고 고백합니다. 여기서 ‘발견되다’는 εὑρίσκω (heuriskō)로, 누군가를 찾고 그 안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의미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의가 아니라, 믿음으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의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기를 원했습니다.

'의'는 δικαιοσύνη (dikaiosynē)로, 단지 도덕적 바름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의미합니다. 바울은 율법으로부터 얻는 자기 의를 버리고, 믿음을 통해 주어지는 하나님 주권의 의를 전적으로 의지합니다. 이는 구원의 본질이 인간의 행위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에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핵심 구절입니다.

10절에서는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라고 말합니다. 바울이 ‘알고자 한다’고 한 것은 단지 지식의 습득이 아닌, 실제 삶 속에서 그리스도의 부활과 고난에 동참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참여함'은 κοινωνία (koinōnia)로, 깊은 일치와 동참을 뜻합니다. 즉, 바울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소유하는 기쁨뿐 아니라, 고난에 동참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생명에 더욱 깊이 참여하고자 했습니다.

11절에서 그는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부활’은 ἐξανάστασις (exanastasis)로, 일반적인 부활 ἀνάστασις(anastasis)보다 더 강조된 형태입니다. 이는 마지막 날, 주와 함께 영광스럽게 일으켜 세워지는 부활의 소망을 말합니다. 바울은 그것이 자신의 노력이나 공로로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고, 오직 은혜와 믿음으로 이루어질 일로서,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 고백은 오늘날 우리에게 구원의 궁극적 목표가 단지 이 땅에서의 복이나 성공이 아니라, 부활의 생명, 곧 예수 그리스도와의 영원한 연합임을 가르쳐 줍니다.

 

마무리

빌립보서 3장 1절부터 11절은 바울의 신앙 여정의 정수이자, 참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담고 있는 감동적인 고백입니다. 그는 육체적 자랑과 세상적 의를 모두 내려놓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얻는 것, 그 안에서 발견되는 삶을 최고의 가치로 삼습니다. 바울은 이 땅에서의 어떤 성취도 하늘의 부활에 비교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우리도 이 말씀을 날마다 묵상하며, 신앙의 중심을 철저히 점검하고, 예수 그리스도만을 최고의 기쁨과 자랑으로 삼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한 삶이야말로 진정한 복음의 여정이며, 영원한 생명의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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