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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성경

[매일성경] 에스라 9:9–15 설교

by 파피루스 2025. 1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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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 앞에서 무릎 꿇는 자—언약을 지키는 회개와 하나님의 긍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예배에 참여하신 여러분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우리가 받은 은혜는 오늘도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이끌어 주시는 힘입니다. 오늘 설교의 본문인 에스라 9장 9절에서 15절은 이스라엘 공동체가 죄 가운데 있을 때, 그 죄를 대신 짊어지고 하나님께 무릎 꿇어 회개하는 에스라의 중보 기도입니다. 이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어떤 모습으로 서야 하는지, 그리고 하나님께서 어떤 마음으로 우리를 바라보시는지를 보여주는 귀한 말씀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이 본문을 지나면서 여러분의 마음도 하나님의 긍휼 앞에 새롭게 세워지기를 기도합니다.

은혜의 회복—포로 가운데서도 버리지 않으신 하나님(느 9:9)

본문은 “우리가 비록 노예가 되었사오나…”라는 고백으로 시작합니다(느 9:9).
이스라엘은 포로에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여전히 페르시아 제국의 통치를 받는 종과 같은 처지였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에스라는 하나님을 향해 이렇게 고백합니다.

“우리 하나님이 그의 긍휼(חֶסֶד, 헤세드)을 우리에게 버리지 아니하시고…”(느 9:9)

여기서 등장하는 헤세드는 단순한 ‘자비’가 아니라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시는 변치 않는 사랑,
곧 covenantal loyalty, 언약적 신실성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은 죄를 지었고, 포로로 끌려갔고,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들의 삶 가운데 “피난처 같은 은혜의 울타리”를 주셨습니다.

에스라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우리를 살려 주사 성전(בֵּית־אֱלֹהֵינוּ, 베이트 엘로헤이누)을 일으키게 하시고…”(느 9:9)

즉, 하나님은 폐허가 된 성전을 다시 세울 기회를 주셨습니다.
포로된 삶 속에서도 ‘회복의 싹’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인생의 낮은 자리, 억눌린 자리, 무너진 자리에도
하나님의 헤세드는 찾아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절망 속에서도 회복의 길을 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머물게 하지 않으시고, 다시 세워 주십니다.

은혜를 받은 자의 책임—거룩을 회복해야 할 이유(느 9:10–12)

이스라엘의 문제는 포로 된 신분이 아니라,
그들이 받은 은혜에 합당하게 살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이제 우리 하나님이여… 이것이 어찌 우리의 죄에 합당하오리이까?”(느 9:10)

에스라는 회개하면서 죄의 본질을 정확하게 진단합니다.

이스라엘의 죄는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언약을 고의적으로 저버린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이 땅의 백성과 언약하지 말며”(신 7:3–4)
“너희가 그들과 연합하면 너희를 올무가 되리라”(출 34:12–16)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다시 이방과 혼합하고 타락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땅을 주시고, 예배를 회복시키고, 성전을 다시 세우게 하셨는데
그 은혜를 받은 이스라엘이 다시 죄로 나아간 것입니다.

에스라는 이 문제를 “우리가 범한 죄악이 하늘에 미쳤나이다”(느 9:6)라고 고백합니다.
여기서 ‘미쳤다’는 히브리어 라바(רָבָה) 로,
‘넘쳐 흐르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많아지다’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의 죄는
하나님의 은혜를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훼손하는 죄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은혜는 책임을 요구합니다.
우리가 회복되었다면
그 회복은 거룩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는
그 은혜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남은 자의 은혜—하나님이 주신 잠깐의 여유(느 9:13–14)

본문에서 에스라는 매우 중요한 신학적 표현을 사용합니다.

“우리를 넘어지지 않게 하시려고 잠시 동안 우리에게 여유(מִפְלָטָה, 미플라타)를 주셨사오며…”(느 9:8)

미플라타는 성경에서 거의 등장하지 않는 희귀한 단어입니다.
뜻은
“도망할 틈”,
“숨을 공간”,
“재난에서 벗어나는 숨구멍”
이라는 의미입니다.

즉,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완전히 무너뜨리지 않으시고
‘숨을 틈’을 주셨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13절에서 에스라는 또 하나의 은혜를 고백합니다.

“우리에게 일말의 생명(פְּלֵיטָה, 플레타)을 남겨 주셨사오며”(느 9:13)

플레타*는 “남겨진 자”, “살아남은 자(remnant)”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남은 자(remnant theology)
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완전히 끊지 않으시고
남은 자를 통해 다시 시작하십니다.

그 남은 자들에게 주신 은혜가 무엇입니까?

“우리 눈을 밝히사(느 9:9) 우리에게 조금의 회복을 얻게 하셨나이다.”

눈을 밝히다—오르(אוֹר)
‘빛을 비추다’, ‘어둠 속에서 다시 보게 하다’.

즉, 하나님은
무너진 자들에게 다시 보게 하시고,
절망한 자들에게 다시 숨을 쉬게 하시고,
남겨진 자들에게 다시 시작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살아 있는 것 자체가 은혜입니다.
우리가 회개할 수 있는 것도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폐허 위에서도 남은 생명을 일으키십니다.

마지막 기도—하나님의 의를 인정하고 은혜만을 구하다(느 9:15)

에스라의 기도는 이렇게 끝납니다.

“여호와여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우리는 우리의 죄 가운데 있으니
이로 말미암아 주 앞에 설 수 없나이다”(느 9:15)

이 말은 단순한 절망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인정하는 최고의 고백입니다.

‘설 수 없다’는 히브리어 עָמַד(아마드)
‘서다’, ‘버티다’, ‘하나님 앞에 존재한 채 머물다’라는 의미입니다.

즉,
“하나님, 우리는 죄로 인해 당신 앞에 존재할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은혜만이 우리를 세우는 힘입니다.”
라는 고백입니다.

이 기도는 구속사의 핵심을 드러냅니다.

죄인은 스스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지만
하나님의 긍휼과 언약적 사랑이
우리로 하여금 다시 일어서게 한다.

이 고백은 후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됩니다.
우리는 스스로 의롭게 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보혈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습니다(롬 3:22–24).

에스라의 기도는 결국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다”
라는 복음의 진리를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회개는 우리를 낮추는 길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서게 하는 길입니다.

마무리

에스라 9장 9–15절의 핵심 메시지를 정리합니다.

  1. 하나님의 헤세드(언약적 사랑)는 우리를 결코 버리지 않는다.
  2. 우리가 받은 은혜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
  3. 하나님은 남은 자를 통하여 새로운 회복을 시작하신다.
  4. 은혜는 숨 쉴 틈(미플라타)을 주시고, 다시 일어설 힘을 주신다.
  5. 참된 회개는 하나님의 의를 인정하고 자신을 낮추는 것이다.
  6. 죄인은 스스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지만, 은혜가 우리를 세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어떤 자리에 있든,
하나님은 우리를 다시 살리기 원하십니다.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숨을 틈을 주시고,
남은 자로 세우시며,
다시 눈을 밝히시는 은혜로 우리를 붙드십니다.

오늘 에스라의 기도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거룩한 은혜 앞에 겸손히 무릎 꿇고
새로운 회복으로 나아가길 소망합니다.
주님이 여러분을 다시 일으키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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