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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성경

에스라 4:11 - 4:24 묵상 및 강해

by 파피루스 2025. 1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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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힌 성전, 그러나 멈추지 않는 하나님의 뜻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에스라서 4장 11절부터 24절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이 경험한 ‘중단의 시기’를 함께 묵상하려 합니다. 이 본문은 성전 건축이 외부의 압력으로 인해 멈추는 장면을 기록하지만, 단순히 실패의 기록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속사적 섭리 속에서 준비된 ‘정지의 시간’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때로 우리의 손을 멈추게 하시지만, 그 멈춤 속에서도 당신의 뜻은 진행되고 있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우리 인생의 지연 속에서도 하나님의 역사는 여전히 살아 있음을 깨닫게 되길 바랍니다.

대적의 음모는 언제나 교묘하게 포장됩니다 (에스라 4:11-16)

본문은 아닥사스다 왕에게 보내진 고발문으로 시작합니다. “강 서편에 사는 신복들은 왕께 아뢰나이다…” (4:11). 겉으로 보면 충성스러운 보고문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는 거짓과 왜곡이 가득합니다. 이들은 예루살렘의 성벽과 성전을 재건하는 일을 ‘반역의 움직임’으로 포장합니다. “왕이여, 유다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패역하고 악한 성을 건축하나이다”(4:12). 여기서 ‘패역하다’는 히브리어 מָרַד (marad)로, ‘왕권에 대항하다’는 의미를 가집니다. 즉, 그들은 신앙의 순종을 정치적 반역으로 둔갑시킨 것입니다.

이들의 전략은 세 가지로 요약됩니다. 첫째, 역사의 왜곡입니다. “이 성은 예로부터 왕을 거역하던 성이라”(4:15)고 말하며, 다윗과 히스기야 시대의 사건들을 악의적으로 재해석합니다. 둘째, 두려움의 조성입니다. “왕이여, 만일 이 성이 중건되고 성벽이 완공되면 저들이 조공과 관세를 바치지 아니하리이다”(4:13)라고 경고합니다. 그들의 말은 불안과 공포를 부추기는 정치적 선전이었습니다. 셋째, 충성의 위장입니다. “우리가 왕궁의 소금을 먹는 자로서 왕의 수치를 참아보지 못하므로…” (4:14). 여기서 ‘소금을 먹는다’는 표현은 고대 근동에서 충성을 맹세할 때 사용된 관용구입니다. 그들은 마치 왕에게 충성하는 자인 듯 가장하면서, 하나님의 일을 훼손하려는 의도를 감췄습니다.

이 장면은 오늘날 우리 신앙의 현실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세상은 언제나 하나님의 일을 왜곡하고, 믿음의 순종을 불순종으로 오해합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진리는 침묵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말로 진리를 덮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일을 지키시고, 진리를 변호하시는 분이십니다.

세상의 권세는 하나님의 뜻을 막을 수 없습니다 (에스라 4:17-22)

“왕이 조서를 내려 이르되…” (4:17). 아닥사스다 왕은 고발을 받아들이고 예루살렘의 건축을 중단시키는 조서를 내립니다. 이 순간은 인간적으로 보면 참혹한 패배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신앙의 눈으로 보면, 하나님은 이 시간을 통해 ‘신앙의 본질’을 다시 세우고 계셨습니다.

왕의 조서 내용은 이렇게 말합니다. “명령을 내려 그 성을 수색하게 하였더니 이 성이 옛적부터 왕들을 거역하며…” (4:19). 이는 명백한 오판이었습니다. 왕은 거짓된 보고를 근거로 판단했고,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백성의 손이 묶이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권력의 허상’을 봅니다. 인간의 왕이 역사를 지배하는 것 같지만, 실상 모든 결정의 주권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중단’이라는 단어는 히브리어 בָּטַל (batal)로, ‘멈추다, 쉬게 하다’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단순한 중지의 개념이 아니라, ‘하나님이 허락하신 휴식’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인간의 시선에서는 막힘이지만, 하나님의 시선에서는 준비의 시간입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때에 다시 문을 여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앙의 여정 속에서 하나님이 우리의 걸음을 멈추게 하실 때가 있습니다. 기도가 막히고, 계획이 지연되며, 아무 일도 진전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침묵은 버림이 아닙니다. 그것은 다듬음의 시간입니다. 하나님은 그 시간 속에서 우리의 신앙을 정결케 하시고, 오직 그분의 뜻으로만 일하도록 준비시키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중단 속에서도 믿음을 지킵니다 (에스라 4:23)

“아닥사스다 왕의 조서 사본이 읽히매, 사마리아의 관리들과 그들의 동료들이 예루살렘으로 급히 가서 유다 사람들에게 이르러 권력으로 억제하니 성전 공사가 그쳤더라”(4:23). 여기서 ‘억제하니’는 아람어 בְּאֶזְרַע יְדַיִן (be’ezra yadayin)으로, ‘힘으로 억누르다’라는 뜻을 갖습니다. 즉, 그들은 물리적 강압으로 하나님의 일을 멈추게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권력은 하나님의 섭리를 꺾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손은 멈추었지만, 마음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겉으로는 건축이 중단되었지만, 내면에서는 믿음의 불이 꺼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눈물 속에서도 역사를 준비하셨습니다. 16년 후, 다리오 왕 때 학개와 스가랴를 통해 다시 성전 공사가 시작됩니다 (에스라 5:1). 하나님의 구속사는 결코 실패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중단은 하나님의 재시작을 위한 무대일 뿐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믿음의 본질을 배웁니다. 신앙은 ‘성공의 지속’이 아니라 ‘중단 속의 인내’입니다. 세상이 우리를 억누르고, 우리의 손이 묶일지라도, 우리의 믿음은 멈추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사람은 멈춘 것 같아도 이미 다음 단계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중단의 시간에도 하나님의 계획은 계속됩니다 (에스라 4:24)

“이에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의 성전 공사가 바사 왕 다리오 제이년까지 중단되니라”(4:24). 본문은 이렇게 마무리됩니다. 단 한 문장, 그러나 신학적으로 깊은 선언입니다. 성전 건축이 멈추었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그 성전의 주인이십니다. 그분은 당신의 때에, 당신의 방법으로, 당신의 사람을 통해 다시 시작하십니다.

성경의 구속사는 ‘중단’이 없습니다. 인간의 눈에는 공백처럼 보이는 시간에도, 하나님은 쉬지 않으시며 섭리의 실을 엮고 계십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백성들이 다시 멈추었지만, 그 멈춤은 영적 성숙의 시간으로 사용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시간의 주권자’이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조급함을 잠재우고, 당신의 때를 기다리게 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지금 여러분의 인생에서도 어떤 일이 중단되어 있습니까? 기도하던 일이 막히고, 계획하던 일이 멈춘 것처럼 보이십니까?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여전히 일하고 계십니다. 인간의 시간표는 멈출 수 있지만, 하나님의 구속사는 멈추지 않습니다. 오늘의 멈춤은 내일의 일하심을 위한 하나님의 전초전입니다.

마무리

에스라 4장 11절부터 24절은 성전이 멈춘 사건을 기록하지만, 본질적으로는 ‘하나님은 멈추지 않으신다’는 진리를 선포합니다. 대적의 음모와 세상의 권세, 인간의 오판이 겹쳐도 하나님의 뜻은 꺾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중단 속에서도 일하시며, 지연 속에서도 역사를 이루십니다. 우리의 신앙은 그 기다림 속에서 다듬어집니다. 그러므로 중단의 시간에도 낙심하지 마십시오. 그 침묵 속에서 하나님은 더 깊이 일하고 계십니다. 그분의 때가 오면, 다시금 성전의 문이 열리고, 예배의 불이 타오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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