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 일어나는 믿음의 사람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함께 묵상할 본문은 에스라서 5장 1절에서 17절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중단된 성전 재건이 다시 시작되는 전환점을 보여줍니다. 오랜 침묵과 방해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은 낙심했지만, 하나님은 다시 선지자들을 보내셔서 그들을 일으키십니다. 이 본문은 ‘말씀의 회복’과 ‘순종의 회복’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함을 보여줍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낙심한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는 믿음의 능력을 함께 배우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침묵을 깨뜨립니다 (에스라 5:1)
“선지자 학개와 잇도의 손자 스가랴가 이스라엘 하나님 이름으로 유다와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유다 사람들에게 예언하였더니” (5:1). 16년 동안 멈춰 있던 성전 공사는 이 한 구절로 다시 시작됩니다. 외적인 상황은 변하지 않았지만, 하나님은 ‘말씀’을 보내심으로 변화를 일으키셨습니다. 여기서 ‘예언하였더니’라는 단어는 히브리어 נָבָא (nava’)로, ‘하나님의 영에 의해 선포하다’는 뜻을 갖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단순한 격려가 아니라, 하나님의 권능이 담긴 명령이었습니다.
학개와 스가랴는 전혀 다른 성격의 예언자들이었습니다. 학개는 현실적인 순종을 촉구했고, 스가랴는 환상과 약속으로 소망을 일깨웠습니다. 학개는 “이 전의 영광이 나중 영광보다 크리라” (학개 2:9)고 선포했고, 스가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영으로 되느니라” (스가랴 4:6)고 외쳤습니다. 하나님은 낙심한 백성에게 ‘현실의 말씀’과 ‘소망의 말씀’을 동시에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말씀하실 때, 그 말씀은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부활의 능력’입니다. 낙심과 두려움이 짙게 드리운 인생에도 하나님의 말씀은 새 아침처럼 찾아와 우리를 다시 일으킵니다. 침묵의 시기는 결코 끝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멈춘 일도 다시 움직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다시 일어납니다 (에스라 5:2)
“이에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요사닥의 아들 예수아가 일어나 예루살렘에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기 시작하매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함께 있어서 그들을 도우니라” (5:2). 여기서 ‘일어나’라는 히브리어 קוּם (qum)은 ‘다시 서다, 일어서다’라는 뜻을 지닙니다. 단순한 행동이 아니라, 영적 부흥을 의미합니다. 낙심했던 지도자들이 다시 ‘일어섰다’는 것은, 그들의 믿음이 회복되었음을 나타냅니다.
흥미로운 점은, ‘선지자들이 함께 있어서 그들을 도우니라’는 구절입니다. 여기서 ‘돕다’는 히브리어 סָעַד (sa‘ad)로, ‘붙들어 주다, 지탱하다’라는 의미를 갖습니다. 선지자들은 단순히 말씀을 전하는 자가 아니라, 공동체를 ‘붙드는 자’였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언제나 말씀과 순종이 함께 갈 때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일을 하시기 전에, 먼저 사람을 일으키십니다.
성도 여러분, 신앙의 여정에서 중요한 것은 ‘넘어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다시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실패의 자리에 머무른 자를 부르셔서 다시 세우십니다. 우리의 믿음이 다시 일어설 때, 하나님의 역사가 다시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일이 시작되면 대적도 다시 일어납니다 (에스라 5:3-5)
“그 때에 강 서편 총독 닷드느와 스달보스내와 그들의 동료들이 와서 그들에게 이르되 누가 너희에게 명령하여 이 성전을 건축하고 이 성곽을 마치라 하였느냐” (5:3). 이전과 똑같이, 하나님의 일이 시작되면 대적이 즉시 반응합니다. ‘강 서편 총독’은 페르시아 제국의 행정관으로, 예루살렘의 정치적 움직임을 감시하던 자들이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백성들이 이번에는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방해를 받았지만, 멈추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눈이 유다 장로들을 살피셨으므로 그들이 능히 그 공사를 막지 못하였고” (5:5)라고 기록합니다. ‘살피셨다’는 히브리어 עַיִן (‘ayin)에서 유래된 표현으로, 문자적으로는 ‘하나님의 눈이 그들과 함께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눈이 함께한다는 것은 그분의 ‘보호와 인도’가 지속됨을 뜻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를 ‘보고 계신다’는 것은 감시가 아니라 사랑의 보호입니다. 하나님의 눈은 우리의 수고와 눈물을 다 보고 계십니다. 세상의 대적이 강해 보여도, 하나님의 시선 안에 있는 사람은 결코 무너지지 않습니다.
신앙의 담대함은 진리 안에서 나옵니다 (에스라 5:6-17)
닛드느와 그 동료들은 페르시아 왕 다리오에게 보고문을 보냅니다. “우리가 유다 지방의 장로들에게 물어 이르되 누가 너희에게 명령하여 이 성전을 건축하라 하였느냐…” (5:9). 그들은 예루살렘의 건축이 합법적인가를 조사하기 위해 편지를 보냅니다. 그러나 그 편지 안에는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유다의 장로들은 두려워하지 않고 믿음으로 자신들의 신앙을 고백합니다.
“우리는 천지의 하나님을 섬기는 하나님의 종이라 예전에 건축되었던 성전을 다시 건축하노라”(5:11). 얼마나 담대한 고백입니까. 그들은 정치적 언어가 아니라 신앙의 언어로 답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분명히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종이다.” 여기서 ‘종’은 히브리어 עֶבֶד (‘ebed)으로, ‘완전히 주인의 뜻에 복종하는 자’를 뜻합니다. 하나님께 속한 사람은 세상의 왕에게 충성하기보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합니다.
이 고백은 단순한 신앙의 선언이 아닙니다. 이는 구속사의 증언입니다. 그들은 이렇게 덧붙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하늘의 하나님께 범죄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들을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손에 넘기셨고… 그러나 바사 왕 고레스가 하나님의 성전을 다시 건축하라 명하였나이다” (5:12-13). 이 말은 역사를 해석하는 ‘신학적 안목’을 보여줍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과거를 부정하지 않고, 그 안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인정합니다.
성도 여러분, 믿음이란 단순히 현재를 견디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상처 속에서도 하나님의 손길을 보는 것입니다. 신앙은 역사 해석의 눈을 갖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을 기억할 때, 우리는 두려움 속에서도 담대하게 설 수 있습니다.
이 보고문은 결국 다리오 왕에게 전달되어 조사가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과정을 통해 다시 한 번 당신의 뜻을 드러내십니다. 인간의 통치 체계 안에서도 하나님은 일하십니다. 하나님의 구속사는 세상의 권력보다 크며, 인간의 제도조차 당신의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마무리
에스라 5장은 ‘다시 시작하는 믿음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침묵을 깨뜨리고, 믿음의 사람들이 다시 일어납니다. 방해가 다시 일어나지만, 이번에는 하나님의 눈이 그들을 지키십니다. 그들의 담대한 고백은 세상의 권력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사람을 일으키시고, 사람을 통해 구속사를 이어가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여러분의 삶 속에서도 어떤 일이 중단된 채로 멈춰 있지는 않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오늘도 말씀하십니다. “일어나라!” (qum). 주저앉은 자를 일으키시고, 꺼진 불씨에 다시 바람을 불어넣으십니다. 오늘 이 말씀이 우리의 영혼 속에서 다시 신앙의 불을 일으키는 부흥의 씨앗이 되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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