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매일성경

에스더서 개론

by 파피루스 2025. 4. 26.
반응형

에스더서는 어떤 책인가?

에스더서 개론

에스더서는 포로기 이후 유다 공동체의 보호와 생존을 주제로 삼는 책입니다. 이방 땅 페르시아 제국의 한복판에서 신앙적 정체성과 생명을 위협받던 유다 민족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구원받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에스더서에는 하나님의 이름이 한 번도 등장하지 않지만, 모든 사건은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길에 의해 움직입니다. 이는 신자에게 하나님의 침묵 속에서도 섭리가 역사하고 있음을 교훈합니다. 에스더서는 구속사적 흐름 안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신실하신 보전과, 메시아 구속사의 맥을 지키시는 은혜를 보여주는 귀한 책입니다. 오늘날 신자들에게도 세상의 위협 속에서 신앙을 지키며 살아가는 믿음의 태도를 가르쳐 줍니다.

저자와 기록 시기

에스더서의 저자는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전통적으로는 모르드개나 에스라와 같은 인물이 저술에 관여했을 것이라는 의견이 제기되어 왔습니다. 히브리어 본문의 언어적 특징과 제시된 역사적 세부사항들은, 이 책이 페르시아 제국의 시대적 배경을 잘 이해하고 있는 자에 의해 기록되었음을 보여줍니다.

기록 시기에 대해서는 대체로 기원전 5세기 후반에서 4세기 초반으로 추정됩니다. 에스더서의 사건은 아하수에로 왕(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가 말하는 크세르크세스 1세, 재위 기원전 486–465년) 시대를 배경으로 합니다. 따라서 에스더서가 기록된 시기는 이 사건 직후 수십 년 내, 즉 기원전 460년경으로 보는 견해가 유력합니다. 그러나 책이 최종적으로 현재와 같은 형태로 정리된 것은 다소 시간이 지나 기원전 4세기 무렵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기록 목적과 내용 요약

에스더서는 본질적으로 유다 민족의 구원을 기념하고, 부림절의 기원을 설명하기 위해 기록되었습니다. 부림절은 하만의 음모에서 구원받은 사건을 축하하는 절기입니다. 따라서 에스더서는 단순한 역사 기록을 넘어, 공동체 신앙을 유지하고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전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페르시아 제국의 왕 아하수에로가 왕후 와스디를 폐위하고 에스더를 새 왕비로 삼습니다. 유다인 모르드개는 에스더를 입궁시키고, 때마침 왕을 암살하려는 음모를 폭로하여 왕의 은혜를 입습니다. 한편, 아각 사람 하만은 모르드개가 자신에게 절하지 않는 것에 분노하여 유다 민족 전체를 멸하려는 계획을 세웁니다. 하만은 왕을 설득하여 유다인을 죽일 날을 정하고 조서를 내립니다.

에스더는 목숨을 걸고 왕 앞에 나아가 하만의 음모를 폭로하고, 결국 유다인들은 반격하여 자신들을 방어하고 살아남습니다. 하만은 교수형을 당하고, 모르드개는 왕의 총애를 받아 페르시아 제국의 높은 지위에 오릅니다. 마지막으로 부림절을 제정하여 후대에 이 구원의 사건을 기념하도록 합니다.

이 전체 사건은 하나님이라는 단어 없이 진행되지만, 모든 국면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섭리가 역사하고 있음을 강하게 암시합니다.

중요한 신학적 주제

에스더서에는 몇 가지 중요한 신학적 주제들이 녹아 있습니다.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1. 하나님의 섭리와 보이지 않는 손

에스더서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하나님의 이름이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모든 사건의 흐름은 우연이나 인간의 지혜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에스더가 왕비가 된 과정, 하만의 음모가 발각된 시점, 왕이 잠을 이루지 못해 기록을 읽게 된 일 등은 하나님의 숨겨진 손길이 사건을 이끌어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신자들에게 명백한 기적이나 게시가 없는 시대에도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가 여전히 신실하게 일하고 있다는 확신을 줍니다.

2. 하나님의 백성 보존

에스더서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끝까지 지키고 보호하신다는 주제를 강조합니다. 구속사의 흐름을 보면, 유다 민족의 보전은 단순한 민족적 존속이 아니라, 메시아가 오실 길을 유지하는 신적 계획의 일부입니다. 만약 하만의 음모가 성공했다면, 구속사 자체가 끊어질 위험이 있었지만, 하나님의 섭리는 이를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때로 직접적으로 개입하시지 않아도, 자신의 백성이 사라지지 않도록 세심히 간섭하십니다.

3. 인간의 책임과 용기

에스더서는 인간의 적극적 순종과 결단을 강조합니다. 에스더는 왕 앞에 나아가는 것이 생명을 걸어야 하는 위험임을 알면서도 "죽으면 죽으리이다"(에스더 4:16)라고 결단합니다. 모르드개 또한 에스더에게 "네가 이 때를 위하여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에스더 4:14)라고 권면합니다. 하나님의 섭리와 인간의 책임은 서로 충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계획은 인간의 순종과 용기를 통해 구체적으로 드러납니다.

4. 부림절의 신학적 의미

부림절은 유다인들의 구원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부림'(히브리어 פּוּרִים, 푸림)은 제비를 뜻하는데, 하만이 유다인을 멸하려고 제비를 뽑아 날짜를 정한 데서 유래합니다. 이 절기는 인간적 음모를 넘어서는 하나님의 역사를 기억하고, 세상의 악을 이기는 하나님의 주권을 기념하는 신앙적 의미를 가집니다. 부림절은 구속사 속에서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대한 신실한 감사와 찬양을 상징합니다.

5. 신자의 정체성과 세상 속의 신앙

에스더서의 무대는 이방 제국 페르시아입니다. 유다인은 소수자로서 항상 정체성의 위협을 받는 처지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러나 에스더와 모르드개는 위협과 동화의 유혹 속에서도 자신들의 신앙과 민족적 정체성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이는 오늘날 세속화된 세상 속에서도 신자로서 정체성을 지키며 살아야 하는 모든 이들에게 귀한 교훈을 줍니다. 세상 속에 있으나 세상에 속하지 않는 삶, 이것이 에스더서가 전하는 신자의 태도입니다.

결론

에스더서는 이스라엘의 역사 속 한 사건을 넘어서,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길과 언약의 신실하심을 증거하는 책입니다. 비록 하나님의 이름은 나오지 않지만, 모든 순간마다 하나님의 섭리와 주권이 살아 역사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위기의 순간에도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인도하심을 신뢰하며, 믿음으로 살고 결단해야 함을 에스더서는 교훈합니다. 또한 구속사 전체 맥락에서 볼 때, 유다 민족의 보존은 장차 오실 메시아의 길을 지키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드러낸 사건입니다. 에스더서를 통해 우리는 오늘도 변함없이 일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신뢰하며, 세상 속에서도 믿음의 정체성을 굳게 지키는 신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에스더서 기록 전후 시대의 배경

에스더서가 기록된 시기는 대체로 기원전 5세기, 페르시아 제국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던 시대입니다. 유다 공동체는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자들과 아직 이방 땅에 남아 있던 자들이 공존하던 과도기적 상황에 놓여 있었습니다. 에스더서의 기록 배경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유대 민족의 상황, 페르시아 제국의 정치적 구조, 그리고 주변 국제 정세를 종합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1. 바벨론 포로와 귀환 이후 유대의 상황

기원전 586년, 남유다 왕국은 바벨론 제국의 느부갓네살에 의해 멸망하였고, 많은 유다인들이 포로로 잡혀 바벨론으로 끌려갔습니다. 이를 ‘바벨론 포로’라 부릅니다. 이후 기원전 539년, 바벨론은 페르시아 제국의 고레스 2세(고레스 대왕)에 의해 멸망합니다. 고레스는 너그러운 통치 정책을 펴며 포로된 여러 민족들에게 귀환을 허락하고, 신전 재건을 장려합니다.

성경 에스라서 1장에 따르면, 고레스는 하나님의 감동을 받아 유다인들에게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성전을 재건할 것을 허락합니다(에스라 1:1-4). 이로 인해 첫 번째 귀환(기원전 538년경)이 이루어졌습니다. 스룹바벨과 여호수아를 중심으로 약 5만 명 정도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성전 재건을 시작합니다.

하지만 귀환한 유다 공동체는 여러 가지 어려움에 직면했습니다. 경제적 궁핍, 주변 이방 민족들과의 갈등, 정치적 불안정이 심각했습니다. 성전 재건도 방해를 받아 오랜 기간 중단되었습니다. 결국 학개와 스가랴 선지자의 격려를 통해 성전은 기원전 516년경 완공되었습니다.

그러나 귀환한 유다인 외에도, 상당수의 유다인은 여전히 바벨론과 페르시아에 남아 있었습니다. 이들은 디아스포라(흩어진 유대인) 공동체를 형성하며 살아갔습니다. 에스더서는 이러한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의 삶과 생존을 배경으로 합니다.

2. 페르시아 제국의 정치와 사회 구조

페르시아 제국은 기원전 550년경 키루스 2세(고레스 대왕)가 메디아를 병합하고 수립한 이후, 빠르게 세계적 대제국으로 성장했습니다. 기원전 539년 바벨론을 정복한 이후, 페르시아는 소아시아, 이집트, 인도 북서부까지 아우르는 광대한 영역을 지배하게 됩니다.

에스더서의 배경이 되는 아하수에로 왕(히브리어 'אֲחַשְׁוֵרוֹשׁ', 아하슈에로쉬)은 일반적으로 크세르크세스 1세(재위: 기원전 486–465년)로 이해됩니다. 크세르크세스 1세는 다리우스 1세의 아들이며, 제국의 전성기를 이은 군주였습니다.

페르시아 제국은 ‘사트라피(satrapy)’라 불리는 지방 행정 구역으로 나뉘어 통치되었습니다. 각각의 사트라피는 총독(사트랩)이 통치하였으며, 왕에게 직접 보고했습니다. 유다 지역도 ‘트란스유프라테나’(강 건너 지역)라는 광범위한 행정 구역에 속해 있었고, 성전세를 바치는 등의 의무를 지고 있었습니다.

페르시아는 비교적 관용적인 종교 정책을 펼쳤습니다. 점령한 민족들에게 고유 종교를 허용하고, 자체 행정과 법률을 존중하는 방식을 취했습니다. 이러한 관용 속에서도 제국 내 소수 민족들은 늘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습니다. 권력 투쟁이나 음모 속에서 쉽게 희생양이 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에스더서에서 하만이 유다인을 멸하려고 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배경 때문입니다.

3. 아하수에로(크세르크세스 1세) 통치와 국제 정세

아하수에로 왕은 재위 초기에 주로 제국 내 반란 진압과 국제 정세를 안정시키는 데 주력했습니다. 다리우스 1세 때부터 지속되어 온 이집트, 바빌로니아 지역의 반란을 계속해서 다스려야 했습니다.

또한 크세르크세스 1세는 그리스에 대한 대규모 원정(기원전 480년)을 단행하였습니다. 이른바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입니다. 크세르크세스는 살라미스 해전에서 참패하고, 플라타이아 전투에서도 패배하여 결국 그리스 정복에 실패합니다. 이 사건은 페르시아 제국의 패권이 서서히 약화되기 시작하는 전환점이 됩니다.

이러한 국제 정세 속에서, 제국 내 유대인 디아스포라 공동체도 큰 불안 속에 있었습니다. 강력한 중앙 권력과 군사력으로 통치되던 페르시아 제국은, 한 사람의 은혜나 한 사람의 분노에 의해 소수 민족의 운명이 좌우될 수 있는 구조였습니다. 하만과 같은 고위 관리가 마음만 먹으면 소수민족을 전멸시킬 수 있었던 것입니다.

4. 유대인의 디아스포라 현실

페르시아 제국 시기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다양한 지역에 퍼져 살았습니다. 바벨론, 수산(페르시아의 겨울 수도), 에크바타나, 니네베 등 메소포타미아와 페르시아 본토 지역에 이주하여 상업, 행정, 농업 등에 종사했습니다.

이들은 종교적 정체성을 유지하려 애썼지만, 이방 문화와의 경계선 위에서 늘 긴장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에스더와 모르드개는 이런 디아스포라 유대인의 대표적 인물입니다. 특히 모르드개는 궁중 관료로 일했으며, 디아스포라 유대인이 어떻게 현실 세계에 참여하며 신앙 정체성을 지키려고 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또한 부림절의 기원 역시, 디아스포라 공동체가 겪은 생존 투쟁과 신앙 공동체성 회복의 산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5. 종교적 침체와 신앙의 재정립

이 시기의 유대인 공동체는 여러 면에서 종교적 침체를 경험했습니다. 포로 귀환자들은 성전은 재건했지만, 영적 열정은 점차 식어갔습니다. 에스라와 느헤미야가 활동하던 시기에도 백성들의 신앙적 무기력, 율법 무지, 이방 결혼 문제 등이 빈번하게 발생했습니다.

에스더서에는 성전이나 제사가 언급되지 않습니다. 이는 디아스포라 유대인의 종교 생활이 성전 중심이 아닌, 공동체 중심의 신앙과 정체성 유지로 방향을 잡아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명시적으로 나오지 않지만, 백성들은 금식하고 회개하며, 구원을 위해 하나님을 간구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는 신앙의 본질이 제도나 형식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언약적 관계에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줍니다.

6. 국제적 관점에서 본 유대와 페르시아

에스더서 기록 전후로 세계는 전환기에 있었습니다. 페르시아는 서서히 약화되기 시작했고, 이후 알렉산더 대왕(기원전 4세기 후반)의 헬레니즘 세계로 넘어가는 과정이 시작됩니다.

유대는 여전히 제국의 변방 민족이었지만, 하나님은 이 작은 공동체를 통해 구속사의 흐름을 보존하셨습니다. 페르시아 제국은 인간적으로 볼 때 막강한 힘을 가졌지만, 하나님의 섭리 앞에서는 모든 권세가 일시적이고 제한적임을 보여줍니다. 결국 하나님의 계획은 세계사의 거대한 흐름을 넘어 지속됩니다.

결론

에스더서가 기록된 시대는 인간적 불확실성, 국제적 불안정, 신앙적 침체가 겹친 시기였습니다. 그러나 이 가운데 하나님은 여전히 자신의 백성을 보호하시고, 구속사의 맥을 이어가셨습니다.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길은 바벨론의 몰락, 페르시아 제국의 흥망, 그리고 디아스포라 공동체의 생존이라는 역사의 큰 무대 위에서도 신실하게 일하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이 배경을 통해, 역사의 어둠 속에서도 하나님의 섭리가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음을 믿으며 신앙을 붙들어야 합니다.

Cyrus II

페르시아 제국 주요 왕들과 성경 관련 정리

페르시아 제국(아케메네스 왕조, 기원전 550년~330년)은 성경의 여러 부분, 특히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서, 다니엘서 등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합니다. 이 제국의 여러 왕들은 이스라엘 민족의 포로 귀환과 성전 재건, 그리고 유다 공동체 재건에 직접적 또는 간접적으로 관여하였습니다. 각각의 왕과 그 통치가 성경에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1. 고레스 2세 (Cyrus II, 재위 기원전 559–530년)

기본 정보
고레스 2세, 흔히 고레스 대왕이라고 불립니다. 메디아, 리디아, 바벨론을 정복하여 페르시아 제국을 세웠습니다.
역사상 최초로 광범위한 인권선언인 ‘고레스 칙령’을 반포한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주요 통치 내용

  • 기원전 539년, 바벨론을 정복하고 페르시아 제국을 수립하였습니다.
  • 피정복 민족의 종교와 문화의 자유를 허용하는 관용 정책을 실시했습니다.
  • 바벨론 포로로 잡혀 있던 유다인들의 귀환을 허락하고, 예루살렘 성전 재건을 명령했습니다.

성경과의 관련성

  • 에스라서 1장과 2장, 역대하 36:22-23에 등장합니다.
  • “바사 왕 고레스가 칙령을 내려”(에스라 1:1) 유다 백성의 귀환과 성전 재건을 허락합니다.
  • 이사야서 45장에서 고레스는 ‘기름 부음 받은 자’(히브리어 מָשִׁיחַ, 마쉬아흐)로 불립니다. 이는 하나님의 특별한 사명을 받은 이방 통치자라는 독특한 칭호입니다.
  • 구속사적으로 고레스는 메시아적 예표로 이해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방 왕을 사용하여 자신의 구속사를 이루신 대표적 사례입니다.

2. 캄비세스 2세 (Cambyses II, 재위 기원전 530–522년)

기본 정보
고레스 대왕의 아들입니다. 이집트를 정복하여 제국의 영역을 넓혔습니다.

주요 통치 내용

  • 이집트 정복(기원전 525년).
  • 종교적으로 다소 가혹한 면모를 보였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 그의 통치 말기에 제국 내 혼란이 가중되었습니다.

성경과의 관련성

  • 성경에는 직접적으로 언급되지 않습니다.
  • 그러나 그의 통치기 말기에 유다 지역에서도 성전 재건 사업이 중단되는 어려움이 있었습니다(에스라 4:5 참조).

3. 다리우스 1세 (Darius I, 재위 기원전 522–486년)

기본 정보
캄비세스 2세의 사후 혼란을 수습하고 제국을 재정비한 왕입니다.
행정 체계를 확립하고 왕의 절대권을 강화하였습니다.

주요 통치 내용

  • 사트라피 제도를 확립하고 제국의 체계를 정비했습니다.
  • 왕실 도로망을 건설하여 통치 효율을 높였습니다.
  • 그리스와의 전쟁(마라톤 전투, 기원전 490년)에서 패배했습니다.

성경과의 관련성

  • 에스라서 5장과 6장에서 중심적으로 등장합니다.
  • 유다인들의 성전 재건이 중단되었을 때, 다리우스는 고레스의 칙령을 확인하고 재건을 다시 허락합니다(에스라 6:1-12).
  • 성전 재건은 다리우스의 지원 아래 기원전 516년경 완성됩니다(에스라 6:15).
  • 다니엘서 6장에는 '다리오 왕'이 나오지만, 이는 '다리우스 1세'가 아니라 다른 인물(다리오 메대인)로 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4. 아하수에로 (Xerxes I, 재위 기원전 486–465년)

기본 정보
다리우스 1세의 아들로서, 페르시아 제국의 군사적 전성기와 쇠퇴기를 동시에 경험한 왕입니다.
히브리어 성경에서는 ‘아하수에로’(אֲחַשְׁוֵרוֹשׁ, 아하슈에로쉬)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요 통치 내용

  • 그리스 원정(살라미스 해전)에서 패배함으로써 서방 진출이 좌절되었습니다.
  • 제국의 중심을 내정과 궁정 생활로 돌렸습니다.

성경과의 관련성

  • 에스더서의 주인공인 왕입니다.
  • 와스디 왕후를 폐하고 에스더를 왕후로 삼으며, 모르드개와 하만의 갈등, 유다인의 구원을 이끌어냅니다.
  • 비록 하나님의 이름은 에스더서에 나오지 않지만, 아하수에로 치하에서 일어난 이 사건은 하나님의 섭리를 통한 구속사의 한 장면입니다.

5. 아닥사스다 1세 (Artaxerxes I, 재위 기원전 465–424년)

기본 정보
아하수에로 왕의 아들로, 제국을 안정시키고 이집트 반란을 진압하는 등 내외적 과제를 해결했습니다.

주요 통치 내용

  • 이집트 반란 진압과 제국의 체제 안정화.
  • 소아시아 그리스 도시들과의 긴장 지속.

성경과의 관련성

  • 에스라서 7-10장, 느헤미야서 전반에 등장합니다.
  • 에스라가 아닥사스다 왕의 칙령을 받고 예루살렘으로 귀환하여 율법을 가르칩니다(에스라 7장).
  • 느헤미야가 아닥사스다의 조서를 받아 예루살렘 성벽 재건을 주도합니다(느헤미야 2장).
  • 아닥사스다의 지원은 포로 귀환 공동체의 신앙과 사회 재건에 결정적이었습니다.

6. 이후 왕들

에스더서 이후 성경에서는 명확히 등장하지 않지만, 페르시아 왕조는 계속 이어졌습니다.

  • 다리우스 2세, 아르타크세르크세스 2세 등이 뒤를 이었습니다.
  • 결국 페르시아 제국은 기원전 330년 알렉산더 대왕에게 정복되어 헬레니즘 세계로 전환됩니다.

결론

페르시아 제국의 주요 왕들은 단순한 역사적 존재를 넘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구속사의 한 부분을 담당했습니다. 고레스 대왕의 칙령에서 시작된 포로 귀환과 성전 재건, 다리우스의 재확인, 아닥사스다의 지원, 아하수에로 치하에서의 유다인의 보호는 모두 하나님의 신실하신 언약의 실현을 향한 흐름이었습니다. 세상의 제국은 변하고 왕들은 사라지지만, 하나님의 계획은 역사 전체를 아우르며 변함없이 성취되어 가고 있습니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