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의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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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의 믿음
서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는 듯이 산 사람
모세(Moses)는 구약 성경에서 가장 위대한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그는 이스라엘을 애굽의 종살이에서 이끌어 낸 출애굽의 지도자였고,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은 선지자였으며, 광야 40년 동안 백성을 위해 하나님 앞에 엎드린 중보자였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모세를 위대하게 보는 이유는 단순히 그의 지도력이나 기적 때문만이 아닙니다. 히브리서 11장은 모세를 “믿음의 사람”으로 해석합니다. 모세의 생애를 움직인 근본 힘은 정치적 능력이나 인간적 야망이 아니라 믿음이었습니다.
히브리서는 모세의 믿음을 몇 가지 중요한 장면으로 설명합니다. 그는 믿음으로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받기를 거절했습니다(히 11:24). 그는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했습니다(히 11:25). 그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습니다(히 11:26). 그는 믿음으로 애굽을 떠났고,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같이 하여 참았습니다(히 11:27). 그는 믿음으로 유월절과 피 뿌리는 예식을 정했습니다(히 11:28). 그리고 이스라엘은 믿음으로 홍해를 육지같이 건넜습니다(히 11:29).
그러므로 모세의 믿음은 단순한 종교적 감정이 아닙니다. 그것은 선택하는 믿음이고, 거절하는 믿음이고, 고난을 감당하는 믿음이며,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실제로 보는 믿음입니다. 모세의 믿음은 세상의 영광보다 하나님의 약속을 더 크게 보았고, 현재의 안락보다 장차 받을 상을 더 귀하게 여겼습니다.
믿음으로 숨겨진 아이
모세의 믿음 이야기는 사실 모세 자신보다 먼저 그의 부모에게서 시작됩니다.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 달 동안 숨겨 왕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아니하였으며”라고 말합니다(히 11:23). 모세는 믿음의 가정 안에서 보존된 아이였습니다.
모세가 태어난 시대는 죽음의 시대였습니다. 애굽 왕 바로는 히브리 남자아이가 태어나면 나일강에 던지라고 명령했습니다(출 1:22). 이는 단순한 정치 정책이 아니라 생명을 끊으려는 사탄적 명령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자손의 번성을 막으려는 제국의 폭력이었습니다(창 15:5).
그러나 모세의 부모 아므람과 요게벳은 왕의 명령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아이를 석 달 동안 숨겼습니다(출 2:2). 이것은 단순한 부모의 본능만이 아니라 믿음의 행동이었습니다. 그들은 바로의 명령보다 하나님의 생명을 더 귀하게 여겼습니다. 왕의 말보다 하나님의 약속을 더 두려워했습니다.
믿음은 때로 생명을 숨기는 용기입니다. 세상이 죽이라고 할 때 살리는 것이 믿음입니다. 세상이 포기하라고 할 때 하나님의 손에 맡기는 것이 믿음입니다. 모세는 태어날 때부터 믿음의 보호 아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부모의 믿음을 통해 장차 이스라엘을 구원할 사람을 보존하셨습니다.
물에서 건짐받은 믿음의 사람
모세의 이름은 “물에서 건져냄”과 관련됩니다. 애굽 공주는 나일강 갈대 사이에 놓인 갈대상자에서 아이를 발견하고 그 이름을 모세라 했습니다. “이는 내가 그를 물에서 건져내었음이라”고 말했습니다(출 2:10). 모세는 먼저 건짐받은 사람입니다. 그가 훗날 이스라엘을 건져 내는 사람이 되기 전에, 그는 하나님의 섭리로 죽음의 물에서 건짐받았습니다.
여기서 깊은 신학적 의미가 드러납니다. 모세는 스스로 살아남은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자기 힘으로 나일강을 이긴 아이가 아닙니다. 그는 아무 힘 없는 아기였고, 죽음의 명령 아래 있던 생명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갈대상자 안에 보존하셨습니다(출 2:3). 이 갈대상자는 노아의 방주와 같은 단어인 테바(תֵּבָה)로 불립니다. 노아의 방주가 홍수 심판의 물 가운데 생명을 보존한 것처럼, 모세의 갈대상자도 죽음의 물 가운데 생명을 보존한 작은 방주였습니다.
모세의 믿음은 이 은혜의 기억 위에 세워졌습니다. 그는 자신이 먼저 건짐받은 사람임을 알아야 했습니다. 믿음은 내가 하나님을 붙든 이야기이기 전에 하나님이 나를 붙드신 이야기입니다. 모세는 훗날 위대한 지도자가 되었지만, 그의 시작은 무력한 아기였습니다. 이것은 모세의 생애 전체를 해석하는 중요한 열쇠입니다. 하나님의 일꾼은 자기 힘으로 시작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시작합니다.
믿음은 정체성을 선택한다
히브리서 11장은 모세가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받기를 거절했다고 말합니다(히 11:24). 이것은 모세의 믿음에서 매우 중요한 장면입니다. 그는 애굽 왕궁에서 자랐습니다. 애굽 사람의 모든 지혜를 배웠고, 말과 하는 일이 능한 사람이었습니다(행 7:22). 그는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최고의 기회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자기 정체성을 선택해야 했습니다. 그는 바로의 공주의 아들로 살 수도 있었습니다. 왕궁의 영광과 권력, 부와 안전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히브리인임을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속한 사람임을 알았습니다.
믿음은 정체성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세상의 궁에 속한 사람인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속한 사람인가. 모세는 이 질문 앞에서 믿음으로 선택했습니다. 그는 애굽의 이름보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이름을 더 귀하게 여겼습니다.
이 선택은 단순한 민족주의가 아닙니다. 히브리서는 모세의 선택을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는 것”으로 설명합니다(히 11:25). 그는 고난받는 백성 편에 섰습니다. 믿음은 편안한 자리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고난의 자리로 내려가는 것입니다.
믿음은 거절할 줄 안다
모세의 믿음은 먼저 거절로 나타났습니다. 그는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받기를 거절했습니다(히 11:24). 믿음은 무엇을 붙드는 것만이 아니라 무엇을 거절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붙들기 위해서는 세상의 어떤 영광을 거절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모세가 거절한 것은 작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애굽의 보화와 명예와 권력을 거절했습니다. 애굽은 당시 강대한 제국이었고, 왕궁은 세상의 영광이 모인 자리였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그 자리가 영원하지 않음을 알았습니다. 세상의 영광은 크지만 잠시입니다. 왕궁의 즐거움은 화려하지만 지나갑니다.
히브리서는 그가 “잠시 죄악의 낙”을 거절했다고 말합니다(히 11:25). 이 표현은 세상의 즐거움이 실제로 즐거워 보일 수 있음을 인정합니다. 죄는 때로 달콤합니다. 세상은 실제로 매력적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잠시입니다. 믿음은 잠시의 즐거움과 영원한 상급을 분별하는 눈입니다.
모세는 영원의 관점으로 현재를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거절할 수 있었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눈앞의 유익을 놓지 못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 약속을 보기 때문에 보이는 유혹을 거절할 수 있습니다.
믿음은 고난을 선택한다
모세는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했습니다(히 11:25). 이것은 매우 놀라운 말씀입니다. 그는 고난을 어쩔 수 없이 당한 것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고난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물론 고난 자체가 선한 것은 아닙니다. 성경은 고난을 낭만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하는 고난,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 때문에 받는 고난은 믿음의 길에서 매우 귀한 의미를 가집니다. 모세는 편안한 불의보다 고난받는 의를 선택했습니다. 왕궁의 안락보다 노예 백성의 눈물을 택했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제자도와 깊이 연결됩니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16:24). 모세는 이미 구약 시대에 이 제자도의 그림자를 살았습니다. 그는 자기 유익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의 길로 들어갔습니다.
오늘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은 언제나 편안함만을 약속하지 않습니다. 때로 믿음은 손해를 선택하게 합니다. 믿음은 세상의 박수를 포기하게 합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울게 합니다. 모세의 믿음은 고난을 피하는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 고난을 감당하는 믿음이었습니다.
믿음은 그리스도의 수모를 더 큰 재물로 여긴다
히브리서 11장은 모세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다”고 말합니다(히 11:26). 이 표현은 매우 깊습니다. 모세는 예수님의 이름을 직접 알던 시대의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나 히브리서는 모세의 고난을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라고 해석합니다.
이것은 구속사적 해석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받은 고난은 장차 오실 그리스도와 연결됩니다. 하나님의 백성의 고난은 메시아의 고난과 분리되지 않습니다. 모세가 애굽의 영광을 버리고 하나님의 백성 편에 선 것은, 궁극적으로 그리스도께서 자기 백성을 위해 낮아지실 길을 미리 보여 주는 그림자입니다.
모세는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그리스도의 수모를 더 큰 재물로 여겼습니다(히 11:26). 이것은 가치관의 전복입니다. 세상은 보화를 재물로 봅니다. 믿음은 그리스도를 위한 수모를 재물로 봅니다. 세상은 고난을 손해로 봅니다. 믿음은 하나님 때문에 받는 고난을 영광의 씨앗으로 봅니다.
왜 모세는 이렇게 볼 수 있었습니까? 히브리서는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고 말합니다(히 11:26). 모세는 현재의 손해만 보지 않았습니다. 장차 하나님께서 주실 상을 바라보았습니다. 믿음은 현재의 계산을 넘어 하나님의 최종 평가를 바라보는 눈입니다.
믿음은 보이는 왕보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두려워한다
히브리서 11장은 모세가 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왕의 노함을 무서워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히 11:27). 바로는 보이는 권력입니다. 군대와 재물과 법과 폭력을 가진 왕입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바로보다 하나님을 더 크게 보았습니다.
믿음은 두려움의 대상을 바꾸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무엇인가를 두려워합니다. 세상의 권력, 사람의 평가, 경제적 손실, 죽음의 위협을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참으로 경외하는 사람은 세상의 두려움을 이길 수 있습니다. 모세는 왕의 노함보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더 두려워했습니다.
히브리서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곧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같이 하여 참았으며”(히 11:27). 모세의 믿음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는 듯이 사는 믿음이었습니다. 육신의 눈에는 바로가 보입니다. 군대가 보입니다. 애굽의 권세가 보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눈에는 하나님이 보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핵심입니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실제로 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처럼 살지 않는 것입니다. 모세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이는 왕보다 더 실제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그는 참을 수 있었습니다. 믿음은 보는 힘이고, 그 보는 힘 때문에 견디는 힘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유월절을 지킨다
히브리서 11장은 모세가 믿음으로 유월절과 피 뿌리는 예식을 정했다고 말합니다(히 11:28). 유월절은 출애굽 사건의 중심입니다. 애굽의 장자가 죽는 심판의 밤에, 이스라엘은 어린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발랐습니다(출 12:7). 하나님은 그 피를 보시고 그 집을 넘어가셨습니다(출 12:13).
모세의 믿음은 여기서 말씀에 대한 순종으로 나타납니다. 유월절의 피는 인간의 상상에서 나온 방법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구원의 표지입니다. 이스라엘이 구원받은 것은 그들이 애굽 사람보다 도덕적으로 우월해서가 아닙니다. 피 아래 있었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정하신 구원의 길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인간의 이성으로 볼 때 문설주에 피를 바르는 일이 어떻게 장자의 죽음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합니다. 하나님께서 피를 보시고 넘어가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모세는 그 말씀을 전하고 백성은 순종했습니다.
유월절은 그리스도를 바라봅니다. 신약은 예수 그리스도를 유월절 어린양으로 증언합니다(고전 5:7).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말했습니다(요 1:29). 모세가 믿음으로 유월절 피를 정했다면, 성도는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피 아래 거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는 길은 오직 어린양의 피입니다.
믿음은 홍해 앞에서도 하나님의 길을 본다
히브리서 11장은 이스라엘이 믿음으로 홍해를 육지같이 건넜다고 말합니다(히 11:29). 홍해 앞에서 이스라엘은 절망적 상황에 놓였습니다. 앞에는 바다가 있고, 뒤에는 애굽 군대가 있었습니다. 백성은 두려워하며 모세를 원망했습니다(출 14:10-12).
그때 모세는 백성에게 말했습니다.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출 14:13). 이것은 믿음의 선언입니다. 눈앞에는 길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이 길을 내실 것을 믿었습니다. 믿음은 막힌 현실 앞에서도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라고 하셨습니다(출 14:16). 바다는 갈라졌고, 이스라엘은 마른 땅으로 건넜습니다. 애굽 군대가 뒤따라 들어왔지만 물이 다시 덮여 그들을 삼켰습니다(출 14:27-28). 같은 바다가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구원의 길이 되고, 애굽 군대에게는 심판의 자리가 되었습니다.
믿음은 홍해가 없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 아닙니다. 홍해는 실제입니다. 위기는 실제입니다. 그러나 믿음은 홍해보다 크신 하나님을 봅니다. 모세의 믿음은 막힌 길 앞에서 하나님이 여시는 길을 바라보는 믿음이었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백성을 끝까지 품는다
모세의 믿음은 출애굽 순간에만 나타난 것이 아닙니다. 광야 40년 동안 그의 믿음은 계속 시험받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반복해서 원망했습니다. 물이 없다고 원망했고, 먹을 것이 없다고 원망했으며, 애굽을 그리워했습니다(출 16:2-3, 출 17:3). 모세는 그런 백성을 이끌어야 했습니다.
믿음은 사람을 견디는 능력이기도 합니다. 모세는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백성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는 지쳤고, 괴로워했으며, 때로 탄식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계속해서 하나님 앞에 엎드렸습니다. 백성이 죄를 지을 때마다 그는 하나님께 나아가 중보했습니다.
금송아지 사건은 모세의 믿음을 가장 깊이 보여 줍니다. 백성은 시내산 아래에서 금송아지를 만들고 그것을 자신들을 애굽에서 인도해 낸 신이라고 말했습니다(출 32:4). 하나님은 진노하셨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 앞에서 백성을 위해 간구했습니다(출 32:11-13).
나아가 그는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라고 말했습니다(출 32:32). 이것은 놀라운 중보자의 마음입니다. 모세의 믿음은 자기 구원만 생각하는 믿음이 아니라, 죄지은 백성을 품고 하나님 앞에 서는 믿음이었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영광을 사모한다
모세의 믿음은 단순히 문제 해결을 구하는 믿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을 사모했습니다. 출애굽기 33장에서 모세는 하나님께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라고 간구했습니다(출 33:18). 이것은 모세의 믿음이 얼마나 깊은지를 보여 줍니다.
모세는 광야의 필요를 알았습니다. 백성에게 물과 양식이 필요하고, 길이 필요하고, 보호가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모세가 가장 깊이 구한 것은 하나님의 임재였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함께 가지 않으시면 자신들을 그곳에서 올려 보내지 말아 달라고 간구했습니다(출 33:15).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보다 하나님 자신을 사모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은 하나님께 무엇을 달라고 구합니다. 그러나 성숙한 믿음은 하나님 자신을 구합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했습니다. 열 재앙도 보았고, 홍해도 보았고, 만나도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더 깊이 알기를 원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자신의 선하심을 보이시고, 여호와의 이름을 선포하셨습니다(출 33:19). 모세의 믿음은 하나님의 일을 수행하는 데 머물지 않고 하나님과 친밀히 교제하는 자리로 나아갔습니다.
믿음은 하나님과 대면하는 교제로 자란다
신명기 34장은 모세를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라고 평가합니다(신 34:10). 민수기 12장에서도 하나님은 모세와는 대면하여 명백히 말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민 12:8). 모세의 믿음은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 속에서 자랐습니다.
믿음은 거리감 속에서 자라지 않습니다. 믿음은 하나님 앞에 머무는 시간 속에서 깊어집니다. 모세는 회막에서 하나님과 대화했고,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으며, 백성을 위해 하나님께 중보했습니다. 그의 지도력은 하나님과의 친밀함에서 나왔습니다.
모세가 산에서 내려올 때 그의 얼굴에는 광채가 났습니다(출 34:29). 이는 하나님과 교제한 흔적입니다. 사람은 하나님 앞에 오래 머물면 어떤 방식으로든 그 흔적을 지니게 됩니다. 모세의 얼굴 광채는 그의 믿음이 단순한 신념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빚어진 삶이었음을 보여 줍니다.
신약은 이 장면을 새 언약의 영광과 연결합니다. 바울은 모세의 얼굴의 영광도 귀했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지는 영광은 더욱 크다고 말합니다(고후 3:7-18). 모세는 하나님의 영광을 반사한 사람이었지만,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이십니다(히 1:3).
믿음은 온유함으로 나타난다
민수기 12장은 모세가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였다고 말합니다(민 12:3). 이것은 모세의 믿음이 성품으로 드러난 장면입니다. 온유함은 약함이 아닙니다. 온유함은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에 자기 권리를 하나님께 맡기는 힘입니다.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했을 때, 모세는 자기 변호로 맞서지 않았습니다(민 12:1-2). 하나님께서 친히 모세를 변호하셨습니다. 모세는 자신의 명예를 지키는 일보다 하나님의 판단을 신뢰했습니다. 이것이 온유입니다.
젊은 모세는 혈기로 애굽 사람을 죽였습니다(출 2:12). 그러나 광야에서 훈련된 모세는 비방 앞에서도 하나님께 맡길 줄 아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믿음은 성격을 변화시킵니다. 혈기 많은 사람을 온유한 사람으로, 자기 힘을 의지하는 사람을 하나님께 맡기는 사람으로 바꿉니다.
온유한 믿음은 지도자에게 매우 중요합니다. 지도자는 비난을 듣고, 오해를 받고, 원망을 겪을 수 있습니다. 그때마다 자기감정으로 반응하면 공동체는 무너집니다. 모세의 믿음은 하나님을 신뢰했기 때문에 온유함으로 나타났습니다.
믿음도 실패할 수 있다
모세의 믿음은 위대했지만, 모세는 완전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생애에서 가장 안타까운 장면은 므리바 물 사건입니다. 백성이 물이 없다고 원망했을 때, 하나님은 모세에게 반석에게 명하여 물을 내라고 하셨습니다(민 20:8). 그러나 모세는 분노하여 반석을 두 번 쳤습니다(민 20:11).
하나님은 모세와 아론에게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민 20:12). 그 결과 모세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매우 엄중합니다. 모세는 믿음의 사람이었지만, 그 순간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못했습니다. 믿음의 사람도 방심하면 실패할 수 있습니다. 오랜 순종이 한순간의 불순종을 정당화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겸손을 가르칩니다. 모세 같은 사람도 넘어질 수 있다면, 우리는 얼마나 더 깨어 있어야 하겠습니까. 믿음은 과거의 승리로만 유지되지 않습니다. 오늘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오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오늘 하나님의 거룩함을 드러내야 합니다.
믿음은 약속을 바라보며 죽는다
모세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느보산에 올라가게 하시고 가나안 땅을 바라보게 하셨습니다(신 34:1-4). 모세는 그 땅을 눈으로 보았지만 들어가지는 못했습니다. 그는 모압 땅에서 죽었고, 하나님께서 그를 장사하셨습니다(신 34:5-6).
인간적으로 보면 안타까운 결말입니다. 40년 동안 백성을 인도한 지도자가 정작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관점에서 보면 모세의 삶은 실패가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며 죽었습니다. 그의 생애는 자신의 성취가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증언했습니다.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의 사람들이 약속을 받지 못했으나 멀리서 보고 환영했다고 말합니다(히 11:13). 모세도 그런 사람입니다. 그는 자기 생애 안에서 모든 성취를 보지 못했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믿음은 내가 다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루실 것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모세가 들어가지 못한 가나안은 여호수아가 백성을 이끌고 들어갑니다. 이것도 신학적으로 의미가 깊습니다. 모세는 율법의 대표자이고, 여호수아는 이름상 예수와 같은 계열의 이름입니다. 율법은 약속의 땅을 보여 줄 수 있지만, 참 안식으로 인도하는 분은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모세의 믿음과 그리스도
모세의 믿음은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합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 냈지만, 그리스도는 자기 백성을 죄와 사망에서 이끌어 내십니다. 모세는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백성에게 전했지만, 그리스도는 친히 유월절 어린양이 되셨습니다(고전 5:7). 모세는 홍해를 건너게 했지만, 그리스도는 죽음의 바다를 통과하여 부활의 생명으로 인도하셨습니다.
모세는 중보자였습니다. 그는 백성의 죄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갔습니다(출 32:31-32). 그러나 모세는 완전한 중보자가 아닙니다. 그는 자신도 죄인이었고, 백성의 죄를 실제로 속죄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참 중보자이십니다(딤전 2:5). 그는 자기 몸을 드려 완전한 속죄를 이루셨습니다(히 9:12).
모세는 하나님의 집에서 종으로 충성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로 충성하셨습니다(히 3:5-6). 그러므로 모세는 위대하지만 그리스도보다 크지 않습니다. 모세의 믿음은 그리스도를 향한 그림자이고, 그리스도는 그 믿음의 완성입니다.
변화산에서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과 함께 나타났을 때, 그들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이루실 별세, 곧 엑소도스에 대해 말했습니다(눅 9:30-31). 이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 더 큰 출애굽임을 보여 줍니다. 모세의 출애굽은 그리스도의 구원을 예표합니다.
모세의 믿음이 오늘 우리에게 주는 교훈
모세의 믿음은 오늘 성도에게 매우 실제적인 교훈을 줍니다. 첫째, 믿음은 정체성을 선택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자녀로 살 것인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 것인지 선택해야 합니다. 모세는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받기를 거절했습니다(히 11:24). 신자도 세상의 이름보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이름을 더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둘째, 믿음은 잠시의 즐거움을 거절합니다. 죄악의 낙은 잠시입니다(히 11:25). 세상은 화려하지만 영원하지 않습니다. 믿음은 현재의 쾌락보다 영원한 상급을 봅니다.
셋째, 믿음은 고난의 가치를 압니다. 모세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습니다(히 11:26). 하나님 때문에 받는 고난은 헛되지 않습니다.
넷째, 믿음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는 듯이 삽니다. 모세는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같이 하여 참았습니다(히 11:27). 이것이 믿음의 힘입니다. 보이는 상황이 전부가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가장 실제입니다.
다섯째, 믿음은 말씀에 순종합니다. 모세는 믿음으로 유월절과 피 뿌리는 예식을 정했습니다(히 11:28). 믿음은 하나님이 정하신 구원의 길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여섯째, 믿음은 막힌 길 앞에서도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봅니다. 홍해 앞에서 모세는 두려워하지 말고 여호와의 구원을 보라고 말했습니다(출 14:13). 믿음은 길이 없을 때에도 하나님이 길을 내실 수 있음을 믿습니다.
결론: 믿음으로 세상을 거절하고 하나님을 본 사람
모세의 생애는 믿음의 생애입니다. 그는 믿음의 부모에게서 태어나 죽음의 명령 아래 보존되었습니다(히 11:23). 그는 믿음으로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받기를 거절했습니다(히 11:24). 그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선택했습니다(히 11:25). 그는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위한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습니다(히 11:26). 그는 믿음으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는 듯이 참았고(히 11:27), 믿음으로 유월절을 지켰으며(히 11:28), 믿음으로 홍해의 길을 걸었습니다(히 11:29).
모세의 믿음은 선택하는 믿음입니다. 거절하는 믿음입니다. 고난을 감당하는 믿음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입니다. 백성을 위해 중보하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사모하는 믿음입니다.
그러나 모세의 믿음은 완전한 믿음이 아닙니다. 그는 실패했고,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민 20:12). 그래서 모세는 우리에게 자신을 바라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는 더 크신 분,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합니다. 모세는 종으로 충성했지만, 그리스도는 아들로 충성하셨습니다(히 3:5-6). 모세는 유월절을 전했지만, 그리스도는 유월절 어린양이 되셨습니다(고전 5:7). 모세는 출애굽을 이끌었지만, 그리스도는 죄와 사망에서 우리를 건져 내시는 참 구원자이십니다.
그러므로 모세의 믿음을 묵상하는 마지막 결론은 이것입니다. 믿음은 세상의 보이는 영광보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더 크게 보는 것입니다. 믿음은 잠시의 즐거움보다 영원한 상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믿음은 애굽의 보화보다 그리스도의 수모를 더 귀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참된 믿음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께로 우리를 이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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